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24화 (224/323)

224화 남산은 (1)

“아…….”

박원상은 지친 얼굴로, 새벽 2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소피가 마렵다는 표정을 지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또?”

“네네.”

“의사란 양반이 전립선 비대도 어떻게 못 하나?”

“그…… 그게.”

“하여간 가 봐.”

“네네.”

복도엔 늘 그렇듯 지키고 선 병사가 있었다.

아니, 원래는 이렇게까지 삼엄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혹시 모르니 혼자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세요. 적어도 새벽 2시부터 10여 분간은 그래야만 합니다. 걸리면…… 아시죠? 곱게 못 죽을 겁니다.

김태평의 조언대로 지금껏 전립선 비대증을 위장해 오지 않았다면 아마 걸리고도 남았을 터였다.

복도에 병사 하나가 없다가 생긴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 마당이었다.

그러나 병사도 설마하니 여기에 뭔 일이 생길까 싶어 하는 상황이었고, 정작 병사들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경계가 삼엄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느슨한 면이 있다, 이런 얘기였다.

치직

그렇게 화장실 빈 칸에 들어간 박원상은 아이구, 아이구를 연신 내뱉으면서 라디오를 켰다.

그러자 곧 김태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연구소에 인간 실험체가 늘었습니까?

요 며칠 연락이 없어서 혹 뭐가 어떻게 되었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현경이는 어찌 되었을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원칙은 원칙이었다.

게다가 시기도 별로 좋지 못했다.

걸리면 곱게 죽지 못할 거란 김태평의 섬뜩한 경고가 가슴을 저며 왔다.

간혹 현경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기에 일단은 안심하고 있던 것도 있었다.

물론 최근에 왜 연락이 없었는지가 궁금했지만…….

그런 걸 물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 않나.

무엇보다 방금 질문을 듣고 보니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늘고 있습니다. 원래도 1호에게 물리게 하는 실험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대상이…… 늘었어요. 으아, 안 나오네. 이거. 아……. 미치겠네.”

말을 하다 보니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서 넋두리를 해 보았다.

다행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진 않고, 그대로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저런 일도 거의 없었는데, 최근 확실히 좀 이상하긴 했다.

톡하여간, 박원상이 마지막에 한 말 때문인지 라디오 너머에서는 그저 톡톡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괜찮을 때 알려 달라는 의미였다.

“지금 됩니다.”

-혹 남산 외에 다른 연구 시설이 있을 거란 얘기는 없었습니까?

해서 알려 주자마자 질문이 이어졌다.

‘음…….’

이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기는 했다.

전에 박원상 측이 방송 때문에 오갈 때 습격을 당하지 않았나?

이후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방송이 끊겼더랬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찍어 놨던 걸 짜집기 하는 형식으로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갑자기 김조은 박사의 외유가 시작되었다.

“김조은이 자리를 비우는 때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하여간, 이만해야 할 거 같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0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제대로 된 통화가 아니라 라디오 송수신을 번갈아 가면 해야 하는 방식이다 보니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후딱 날아갔다.

뿐만 아니라, 2시에 알람도 없이 일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늘 이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워야 하는 박원상으로서는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복수와 구원을 위해 하는 일이라지만…….

원래 복수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그랬다면 왜 여전히 오자서의 고사가 회자되겠나.

톡답 대신 톡 소리가 돌아왔다.

“후우.”

순간 긴장감이 해소되면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얼굴 그대로 복도로 나오자, 병사가 빙그레 웃었다.

“거참 나이 든다는 게 슬프구만요.”

“네네, 그렇죠.”

박원상은 의심이라곤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병사를 지나쳐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작은 장비를 베개 안쪽에 쑤셔 박고는 눈을 감았다.

당연하겠지만 바로 잠이 오진 않았다.

‘후우…….’

아내는 살아 있나?

살아 있을 터였다.

‘난 어찌 될까…….’

그보다 문제는 이쪽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애초에 나가리 되었던 이를 다시 받아 준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질 않고 있으니 이러는 거 아니겠나?

“흐음.”

그가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 시각, 김조은 박사도 깨어 있었다.

아까 화장실을 지나쳐 갔던 인물이 바로 그였더랬다.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해를 못 보는 생활이다 보니 오히려 더 철저히 바이오리듬을 지키고 있는 그였기에 그랬다.

다른 이들의 생명은 헌신짝 버리듯 하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끔찍하게 아끼는 놈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시고 있는 건가?”

“네.”

“별일인데…….”

“별일이기는 하죠.”

김조은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남산 연구소의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준장과 함께란 얘기였는데, 청와대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실세는 여전히 김조은이었다.

그는 놀라우리만치 침착한 태도와 타고난 말빨로 준장을 구워삶은 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갔기에 더 쉬웠다.

준장은 김조은을 인간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라 여기고 있을 지경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라드로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겠나.

“오시는군요.”

“아. 그러고 보니.”

이내 타타타타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산 아래 위치한 연구소임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려 있다 보니 헬기 소리가 아주 안 들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작전에 쓸 헬기는 없다고 하더니…….’

김조은은 얼마 전에 있었던 화상 회의에서 들었던 일을 떠올리다가 이내 얼굴을 풀었다.

상대는 대통령이지 않나.

물론 나라가 다 박살 나긴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여전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다다다닥

이내 군인들이 뛰어 들어왔다.

김선태를 위시한 대통령의 정예들이었다.

‘저 새끼들……. 사람은 맞나.’

김조은뿐만 아니라 준장마저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을 정도로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 가운데서 대통령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한때 자괴감인지 뭔지에 의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지금은 다시 한창 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개선장군이라도 된 줄 알 정도로 위풍당당했다.

“오랜만이네. 직접 보는 건.”

그는 반말로 김조은과 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김조은은 세상에 이처럼 반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네, 각하.”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바로 가지.”

“네, 안내하겠습니다.”

남산 연구소 내에 병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어차피 내부 인원 통제만 가능하면 될 일 아니겠나.

문 걸어 잠근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들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되었다.

전차라도 오면 모르겠는데, 이미 수도권 근처의 전차 중 움직일 수 있는 건 죄다 대통령의 손안에 떨어진 지 오래였다.

-크아아!

-배…… 배고파……!

때문에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데려온 인원만으로도 남산을 뒤엎을 수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누구보다도 남산 방위를 맡고 있는 준장이 제일 잘 알았다.

계급만 준장일 뿐, 주어진 병력은 일개 소대조차 안 되지 않나.

게다가 대다수의 병력이 행정 인력이다 보니 더더욱 다른 마음은 품을려야 품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남산은 자력갱생이 불가해, 청와대에게서 지속적인 물품 공급을 받아야 했다.

‘일부러…… 남산 주변 라드들을 남겨 두고 있을 거야.’

다른 쪽의 옵션은 떠올릴 수도 없었다.

여기에 있는 병력으로는 남산을 벗어나는 것조차 모험이 될 테니.

“시끄럽구만.”

“이쪽은 실패작들뿐입니다.”

“그럼 왜 살려 두는 거지?”

“죽어 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도 연구의 일환입니다.”

“아, 그렇군. 그래.”

하여간, 여러 가지 생각 속에서 복도를 지나 연구실 안에 들어선 대통령은 창살 안에 갇힌 라드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잡혀 올 때까지만 해도 사람이었던 자들이었다.

그 증거로 거대화된 존재가 거의 없었다.

그에 반해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푸, 풀어 줘. 물어 버린다?”

나름 의미 있는 말을 해 대는 이가 있었다.

물론 눈을 보면 벌건 것이 당장 달려들 것 같긴 했지만…….

하여간 뭔가 달랐다.

“이건?”

“실패작입니다. 충동 조절이 아예 안 됩니다. 대화도 지시를 이행하긴 하는데……. 그 이상은 불가합니다.”

“그렇군.”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조용해졌다.

라드들의 숫자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각자 떠드는 양이 적어서였다.

동시에 개체가 살아남은 지 오래되었는지 꽤 거대한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먹이는 주고 있습니다. 검사 결과도 꾸준히 확인하고 있는데, 호르몬 수치의 변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군.”

김조은은 아무리 봐도 마지막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서 말을 덧붙였다.

“다시 말해 노화가 지나치게 빠릅니다. 아마 몇 년 못 견딜 겁니다. 사진을 보시면…….”

“허……. 이게 언제지?”

“불과 두 달 전입니다.”

“몇 년은 늙은 거 같은데…….”

“네. 대부분의 라드들이 이러한 경과를 밟습니다. 아무래도 호르몬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그렇구만. 그래. 그런 얘기를 박원상이 했다고 했나?”

“네. 그의 말에 따르면 버티기만 하면 되었죠. 하지만…….”

김조은이 그런 말을 하는 사이, 일행은 더 깊은 곳에 도달했다.

또 다른 문이 걸려 있었다.

병사 둘이 끼익 소리를 내며 돌리고 나서야 열렸는데, 안쪽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이 안에 있는 것들은 다릅니다.”

“드디어 직접 보게 되었구만.”

“네. 각하.”

그렇지 않아도 복도도 좁아서 발걸음 소리가 우중충하게 번져 나갔다.

투둑 소리와 함께 불을 켜고 나서야 주변에 뭔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한 곳엔 무려 6개체의 라드가 갇혀 있었다.

각각 독방을 쓰고 있었는데, 빈방도 있었다.

따라서 꽤나 넓은 공간이었는데 그 끝에는 1호 박기태가 자리하고 있었다.

“너…….”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김선태를 알아보는 듯했지만, 섣불리 일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달려들어 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눈이 달랐다.

붉은 기운이 없었다.

물론 이따금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치거나 이를 가는 등의 쓸데없는 행동이 수반되고 있긴 했지만…….

“이건 어떻지?”

아무리 봐도 사람 같은 박기태를 보면서, 대통령이 물었다.

“호르몬 수치가 안정화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 수명이 줄기는 할 텐데…….”

“오랜만에 보는 건데도 별로 얼굴이 늙지 않았는데?”

“네. 적어도 십수 년은…….”

“이런 개체가 늘어난다면 십수 년이나 버텨야 한다는 거로군.”

“그나마도 나이가 든 개체에서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젊은 것들 중에서는…… 음? 지금 뭐 하시는…….”

“어차피 비슷한 개체가 여럿 있지 않나? 이 친구는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김선태가 조용히 총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에 반항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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