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세브란스 (4)
‘음.’
암만 감시가 느슨해졌고, 또 남산에서의 지위가 올라갔다고 하지만…….
애초에 보안이랄 것이 존재할 수 없는 라디오를 이용한 대화가 길게 지속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막말로 누군가 그 시간에 라디오 틀어 놓고 주파수를 마구 돌려 대고 있다면 바로 적발되지 않겠나?
김태평의 말에 따르면, 정부가 되었건 어디가 되었건 요원 비슷한 사람만 있어도 벌써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했다.
해서 유현은 기껏해야 10분 남짓 이어졌던 라디오 송수신을 마친 후 잠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교수님, 저쪽에서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요?”
물론, 그럴 만한 시간이 많이 주어지진 못했다.
옆에 있던 대령 때문이었다.
“아, 네. 대령님.”
이러한 설비와 대우를 받게 된 것도 다 대령 덕이다 보니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고, 그러한 처지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유현이기에 별 딜레이 없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라드를……. 좀비랑 혼동하는 이들이 많죠?”
“뭐……. 저도 머리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헷갈리죠.”
“그렇죠. 그렇지만…… 감염병입니다. 병원균이 들어와 있고 그로 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라드가 되는 건…… 그냥 감염병의 증상이 그런 것입니다. 모든 감염병이 그러한 것처럼 이 ARS-24에 의한 감염도 숙주나 환경 그리고 치료 유무에 따라 경과가 천차만별인 것이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 감염병이라는 점입니다.”
자리에는 대령뿐 아니라 박중 대위를 포함해 원래 수원에 있던 이들도 있었고, 오예리와 이순규 그리고 최우식 등을 위시한 유현의 일행들도 있었다.
그 외에 본부에서 온 대원들 중 죽어 버린 전 본부장을 대신해 자연스레 대원들을 이끌게 된, 이종범 대원도 있었다.
하여간, 그들은 모두 이 사안에 관련 지식이 있건 없건 간에 관심이 없기가 어려운 이들이었기에 또 동시에 유현에 대한 존중도 있었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미 라드에 감염이 된 상황에서 다른 감염병이……. 그러니까 다른 병원균이 침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 상황을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허나 반대의 경우엔 우리는 몇 가지 예외적인 경과를 본 바 있습니다.”
예외라.
다른 이들의 시선이 잠시 이순규에게 머물렀다.
“음.”
딱히 기분 좋을 만한 시선은 아니었기에 금세 흩어지긴 했지만…….
이 자리에서 이순규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은 건 오예리뿐이었다.
그녀는 죽어 버린 이진호를 떠올리고 있었다.
‘제기랄…….’
그의 생사를 모를 때, 그러면서 유현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땐 마냥 좋았더랬다.
그래, 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 세상이지 않나.
다들 죽어 나가고 있는데 어찌 이 일행만 비껴갈 수 있겠나.
‘하…….’
이진호.
그는 사실 일행에 따라붙을 이유가 없던 이였다.
나중에 와서 보니 유현과 함께했던 것이 더 안전하긴 했다지만…….
처음 그가 나선 데에는 아마도…….
‘미안하다…….’
아예 모르고 있진 않았다.
이진호가 오예리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이 단순히 선배를 향한 동경이나 애정을 넘어섰단 건,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분명한 것이었으니.
“그리고 지금 저 위에서도……. 그 예외 사항을 우연히 마주할 가능성이 생겼군요.”
유현은 복잡한 감정을 띠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 따위가 아니라, 앞에 벌어질 일들이었기에 그랬다.
‘오 형사……. 괜찮나?’
물론 그런 정유현조차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억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는 잠시 고개를 털어 내는 것만으로 잡념을 덜어 내고는 대령을 바라보았다.
“김태평 팀장님이……. 아니, 박원상의 말대로 다른 곳으로 메인 실험실이 넘어갔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완전히 우연히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동일한 상황이 그곳에서도 벌어졌으리란 보장은 없어요.”
“흐음……. 그렇다면……?”
“이쪽에서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게 되죠. 아무래도…… 실험체의 수가 줄었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우리가 경험한 것에 비하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로서도 유의미한 결괏값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그걸 저쪽에는 숨기는 것이군요. 근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군대는 다른 사람이 이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임 준장이라는데, 혹시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저는 공군이라……. 아니, 같은 공군이라고 해서 다 알고 지내진 않습니다.”
“그렇군요.”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새카만 밤이다 보니, 또 빛이라고 해 봐야 달빛뿐이다 보니 뭐가 잘 보이진 않았다.
그냥 저기가 서울이겠거니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만약…… n수가 충분히 많다면……. 그리고 비인간적인 실험을 자행할 수 있다면 어쩌면…….’
남산에서 뭔가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변수를 정부가 아닌 이쪽에서 이용할 수 있다면…….
“일단…….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남산 쪽은 전체적으로 토사구팽당한 느낌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도 처음엔 정부 측에 협조를 했…… 아니, 명령을 받았는데……. 의심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대통령은.”
말은 안 했지만 수원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을 때가 있었더랬다.
가령 지금 지시를 받고 있는 사람의 명단과 사진을 모두 올리라는 둥…….
전투기가 조금이라도 북상하게 될 경우 받게 될 페널티를 숙지하라는 둥…….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게 다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긴 한데, 하여간, 의심받는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령이 옛 기억을 뒤적거리고 있을 때에도 유현은 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허임 준장도 뭔가……. 명령을 따르지 않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일을 했거나 아니면 그냥 억울하게 팽당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럴 공산이 큽니다. 설득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군요.”
“그렇죠. 아니면 아예 숨겨도 좋을 겁니다. 어차피 연구에는 문외한일 가능성이 크니까요.”
“그것도……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남산이 정말로 정부와 척을 지게 되는데, 혹 우리가 배후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정부를 완전히 적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유현은 대령을 보며 속으로만 피식 웃었다.
정부는 이미 적이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통령은 절대로 자기 외에 다른 권력자를 남길 생각이 없을 터였다.
특히 그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정보나 요인을 쥐고 있거나 한다?
살려 둘 리가 없었다.
‘뭐……. 이 부분은 김태평 요원이 알아서 할 거라고 했었지.’
입이 근질거렸지만, 유현은 참았다.
이간질은 전문 분야가 아니니까.
“음, 그건 제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안할 뿐이죠.”
“네, 그…… 이건 심사숙고를 해 봐야겠습니다. 뭐……. 당장 보고를 안 해도 며칠 지연되는 거 정도는 능력 부족으로 볼 가능성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그건 그렇고…….”
대령은 아까 유현이 그랬던 것처럼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가 보기 원하는 건 남산이 아니라 김태평 아니, 그와 함께 간 병사들이었다.
병사가 아니라 실은 하사와 중사였고 적어도 이 부대가 보유한 인원 중에서는 가장 우수한 인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고 있을까요?”
그들이 과연 무슨 정보를 들고 올까.
또 그 정보가 김태평이 주는 정보와 다르진 않을까?
아니, 혹 일이 잘못돼서 손실이 생기지는 않을까.
어쩌면 김태평이……. 중간에 손을 쓰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는 채였는데, 이러한 모습이 대통령과 얼마간 닮아 있다는 건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글쎄요. 위험하긴 할 텐데……. 잘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김태평 팀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태평은 바람결에 떨어진 낙엽을 머리에서 툭 하고 치웠다.
겨울이 아니라 봄이 오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용케 어디 붙어 있던 모양이었다.
“뭐야, 이거.”
“네?”
“아니, 나뭇잎이야.”
김태평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병사를 돌아보고는 아무것도 아니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곤 아까처럼 발걸음을 옮겨 궁산 위로 향했다.
올라가면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실은 이미 좀 이상했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주변이 꽤 환했으니까.
횃불 따위와는 광량이 아예 달랐다.
어느 정도였냐면, 밤에 산을 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손전등 따위가 필요치 않을 지경이었다.
우우웅
부우웅
거기에 더해 엔진 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타다다다다
그건 양반이었다.
헬기 소리도 뒤섞여 있었다.
일단 헬기가 떴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이런 야밤에 헬기가 뜰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목적지가 되는 곳이 밝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나?
뭐…….
전쟁 중에는 횃불로 활주로를 표시하기도 했단 기록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아, 팀장님.”
그때, 우측을 살피며 올라가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나무 사이로 거대한 건물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래쪽에서부터 불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광량인 것을 미루어 볼 때 횃불이 아니라 거대한 조명 장치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나가는 트럭은 비어 있고 들어오는 트럭은 꽉 차 있다는 점이었다.
너무 멀기도 하고 그 지점이 밝아서 자세한 것은 보기 어려웠지만, 흔들리는 실루엣 등을 통해 미루어 볼 때 사람이 타고 있었다.
“음……. 저거 세브란스 병원이지?”
“네. 옆으로도 뭐가 더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저 안으로 뭐가 막 오가고 있네. 그것도…….”
김태평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2시.
활동하기에 적합한 시간은 아니었다.
“민간인들 잡아 오는 시간인가……?”
“그런 거 같지 않습니까? 아무리…… 저놈들이라 해도 백주대낮에 계속 사람을 납치하고 있진 않겠죠.”
“하긴……. 그렇겠지. 김일용 형사뿐만 아니라 몇몇 생존자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던 걸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소문이 났다는 건데……. 의식이 안 되긴 어렵겠지.”
“이미 늦은 거 아닙니까?”
“잡아떼면 되지.”
정 안 될 것 같으면…….
세상이 정상화되었을 때 저쪽에서 제일 먼저 팽당할 게 누굴까?
김태평은 자연히 김선태의 얼굴을 떠올렸다.
원래 가장 충직한 개일수록 손에 피를 많이 묻힐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제일 먼저 끓는 솥에 들어가게 되는 법이었다.
다 저놈이 혼자 벌인 짓이라고 하면 깔끔하게 정리될 거라고…….
아마도 대통령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아무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태평은 사진을 찍다 말고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은 바짝 얼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새끼들은 악마로군요.”
여전히 아까 지나온 충무로역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