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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33화 (233/323)

233화 세브란스 (5)

‘어쩐다…….’

김태평은 여전히 궁산 정상에 서 있었다.

걸릴 것을 염려할 이유는 없었다.

경계가 삼엄하긴 한데…….

이쪽은 예외라서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야밤에 뭐 주워 먹을 것이 있다고 산에 오겠나.

게다가 여전히 인류에게 있어 가장 거대한 적은 라드였다.

그놈들이야 뭐 이런 곳 저런 곳 돌아다니든 말든 뭔 상관이겠나.

“팀장님.”

“음.”

“더 가까이 가시려고요?”

“규모가 적당하면 그냥 그것만 보고 가려고 했지. 근데……. 저거 봐라.”

김태평은 손가락으로 세브란스 쪽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오가는 차량이 벌써 열 대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 대당 민간인이 몇이나 실려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 열은 넘어가지 않겠나.

매일 벌어지는 일이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일 터였고, 며칠에 한 번씩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건 변치 않았다.

“대체 무슨 실험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지 않냐?”

“그건……. 그렇긴 합니다.”

“게다가 남산 쪽을 완전히 배제했어. 잘 보면……. 주변을 지키고 선 놈들도 좀 이상해.”

“이상……해요?”

“잘 보이진 않는데…….”

거리가 멀다 보니 아무리 망원경을 이용해도 잘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그곳이 너무 밝다 보니 오히려 실루엣만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일반 병사로는 안 보여. 별일이 있을 리가 없는 곳인데……. 저렇게 서 있는 놈들이 얼마나 되겠어.”

“아……. 그건 그렇군요.”

뭐 적이 총부리 들이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짝다리 짚고 있는 놈들조차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저런 게 말이 되나?

당장 요원들을 세워 둔다고 해도 저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애초에 요원들에게 요구되는 기질이나 시행하는 훈련도 다르긴 하지만…….

하여간, 대단히 혹독한 훈련을 시행하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군기가 잡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렇게 운영되던 곳이 있지.”

“어디……. 아. 지구 병원.”

“그래. 뭐라도 새어 나가면 누구라도 X 될 수밖에 없는…….”

“그럼 저기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뭐가 되었건 아주 비밀스러운 것일 테지.”

혹 백신일까, 싶기도 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린 그냥 다 죽었다고 봐야겠지.’

대통령…….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라지만…….

만약 이 사태의 타개책을 스스로 들고 온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터였다.

애초에 통신망을 싹 뭉개 버린 마당 아닌가.

‘시나리오 중엔 스타링크도 있긴 했는데…….’

미국도 맛탱이가 가 버린 마당에 스타링크는 무슨 놈의 스타링크인가.

안 그래도 간혹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 중 대부분이 인류가 쏘아 올렸다가 보수가 안 되어 떨어지는 위성들일 거란 얘기도 있었다.

물론 유현이나 최우식이 술 먹다가 아무렇게나 떠든 내용이긴 했지만, 너무 그럴싸하지 않나?

만약 그것들이라도 떠 있다면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이 먹통일까?

이 와중에 돌아가고 있는 건 오직 하나, 정부 직영 방송뿐이었다.

해적 라디오들도 있긴 한데…….

대다수는 개소리였다.

이쪽은 역추적의 위험 때문에 삼가고 있었고.

‘시발……. 시발 새끼.’

여론 플레이로 넘어가게 되면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했다.

지금 당장도 쉽지가 않은데…….

백신이 나와?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혹 그에 준하는…….

치료제 비스무리한 거라도 나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모든 전략이 수정되어야만 해.’

지금 그가 유현에게 붙어 있는 건, 그가 옳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지 않나.

물론 그 이유도 있고 또 죄책감에 의해 속죄하고픈 마음이 있는 것도 맞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김태평은 생존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었다.

가장 커다란 이유를 대라면, 역시 그만이 정부의 대항마로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이를 예언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또 그 후로도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하지만 만약 정부 측에서 이 사태를 끝마칠 수 있을 만한 것을 만들었다면?

“팀장님,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특히 그놈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위험하지. 하…….”

“일단 이 루트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이번 탐색은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각오는 하고 왔다지만 실제로 며칠간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으음.”

너무 멀리까지 보고 있어서 머리가 복잡한 김태평과는 달리, 팀원은 그저 당장 앞의 일만 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명료한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덕분에 김태평도 우선은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그래……. 그렇지.’

성급하게 움직이다간 미래가 아니라 여기서 죽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그렇지 않나.

당장 위로 헬기도 날았던 참이었다.

오가는 차량들 또한 많았고, 무엇보다 저 근방에 지키고 선 놈들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래, 돌아간다.”

“네.”

“휘유.”

김태평이 발걸음을 돌리자 팀원들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시 그 통로를 지나야 한다는 것은 역시나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여기서 저기로 가는 건 더더욱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어서였다.

타박타박

하여간, 역 안으로 들어서자 충무로역만큼 많은 건 아니지만 방치되어 있는 시신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역과 병원 그리고 여러 시설에서 물자를 지속적으로 징발해 왔던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불복했던 이들.

즉 목격자로 남은 이들은 죽거나 좌천되었고.

‘지금 남산 지휘관으로 가 있는 사람도 아마도…… 그렇겠지.’

아예 탈영을 감행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생사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뭐 성공적으로 도망쳐서 정착한 이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죽었을 것이 뻔했다.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다들 튀지 않았겠나.

마음을 꺾고 정부 안에서 굴종하는 대신에 말이다.

찍찍찍

라드들도 얼씬조차 하지 못하는 곳이니만큼 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 같았으면 이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에 다들 질겁했을 텐데, 이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안전을 보장하는 소리처럼만 들렸다.

“후…….”

그래서 병사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을 때에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원 하나가 말을 받아 이어 갔다.

“힘들죠?”

“네? 아, 아닙니다. 체력적으로는 괜찮습니다.”

“원래 적진에서 돌아다니는 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대북 공작원 키울 때도 말 아예 안 해 주고, 훈련인 것처럼 북한에서 걸어 다니게 하죠.”

“아……. 그게 진짜였군요?”

“네, 그렇죠.”

옛날이야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실은 너무 끔찍하니까, 과거는 점점 미화되기 마련 아니겠나.

게다가 이 얘기는 어디에서 쉬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 동시에 요원으로서도 어디서 쉬이 꺼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월급도 기밀인 국정원 요원이 진짜 기밀 작전에 대해 말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이제는 국가도, 그가 충성했던 회사도 다 망가진 지 오래였다.

그 증거로 김태평은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냥 시골길인 줄 알았습니다. 산에 나무가 너무 없는 것도 그렇고 차도 없는 것도 그렇고……. 드문드문 보이는 민가가 너무 허름하고, 또 밤이 어두운 것도 이상하긴 했는데……. 그래도 설마하니 훈련 도중 북한에 왔다고는 아예 생각지도 못했죠.”

“그랬을 거 같습니다. 북한이라니……. 그럼 거기서 작전도 했습니까?”

“아, 저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뭐……. 진짜 훈련의 일환으로 간 거라서요.”

“그냥 그렇게 가기가 쉬운가 보네요?”

“저야 잘 모르죠.”

요원은 그가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품이었을 적부터 팀장이었던, 그러니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인 김태평을 슬쩍 돌아보았다.

모든 훈련을 총괄했던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었다.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훈련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때 뭔가…… 공작이 있었지?’

훈련이라고 하니까 했지, 아니었으면 떨려서 뒤졌을 것 같았다.

그때 찍은 사진들, 그게 국군 관련한 시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뜻 아닌가.

들어갈 때도 그냥 잠수함 타고 가다가 개인 수영 보조 장치로 해안으로 들어갔었는데…….

거기가 북한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실수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는 그냥 가라니까 갔죠. 저는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활동했습니다.”

“아……. 뭐, 정말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 죽이고 그럽니까?”

“그런 것도 있는데……. 대개는 뭐.”

요원은 과거를 회상했다.

사람 죽이고 했던 적도 많지만, 대개는 주요 요인의 약점을 캐는 게 많았다.

가령 뭐 불륜 사진을 찍어 둔다든지…….

딱히 정치인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유력 경제인 대상으로도 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는데, 그게 나중에 꽤 중요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었다.

안 되던 일이 되게 만드는 키로 쓰인다 이 말이었다.

“아……. 그렇군요. 기대랑은 좀 다르네요?”

“네, 근데 또 뭐……. 마약 자금 같은 거 추적할 때도 있고요.”

“야야. 거긴 너무 갔다.”

“아, 네.”

마약 얘기에 김태평이 끼어들었다.

그러자 요원은 입을 다물었고, 병사는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것만 해도 그랬는데, 이어지는 말에는 얼굴이 아예 하얘졌다.

“그리고…….”

얘기를 나누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충정로역이었다.

사방에 널려 있는 시신들에 모두의 얼굴이 나빠지려 하는 가운데, 김태평은 밖을 가리켰다.

“현재 시각 4시. 돌아 나가는 과정에서…… 해가 뜨거나 하면 발각될 위험이 있어. 여기서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은데…….”

“네에?”

“아니…….”

“그건 좀…….”

병사들뿐만 아니라, 요원들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사실 김태평도 그렇긴 했다.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 일이 떠올라서 그랬다.

김선태, 그가 저지른 악행을 말리지 못했다.

대의가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그때 청와대는 딱히 뭐가 부족해서 저지른 게 아니야…….’

부족하게 만들려고 저지른 짓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시민과 라드의 식량을 줄이려고, 즉 이건 애국이고 나발이고 전혀 관계없는 짓거리였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시민은 식량이 부족해져서 죽어 나갔지만, 라드는 그런 식의 약탈이 자행되자 곧 시민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유현의 말에 따르면 그러면서 뭔가 더 변이가 진행된 것 같다고 하는데…….

하여간에 여기 있다 보면 자꾸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돌아가도록 하지.”

“네네.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그들은 충정로역을 나섰다.

4시라곤 해도 여전히 칠흑같이 어둡기만 했다.

겨울이니 동틀 시간이 아직 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든 밝아지긴 할 것이 분명하다 보니 지체할 수가 없어 일행은 일단 내달렸다.

“음?”

“왜?”

“아니, 저쪽에 뭔가…….”

“라드겠지.”

“그렇……겠지?”

“당연하지. 뭐, 가 볼 거야?”

그렇다 보니 소란이 살짝 일었는데, 대개는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오히려 서울역 쪽이 아니라 남영동 방면에서 용산으로 향하는 공원 안에서였다.

탕탕

탕김태평은 소변을 보고 있던 라드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니,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 모잠비크 드릴 기법으로 몸통에 두 발 머리에 한 발을 쏴 맞힌 후 욕설을 내뱉었다.

“이 시발…….”

김태평은 벌써 다 죽어 가고 있는, 배낭 위에 가둬 둔 쥐들을 돌아보다가 욕설을 내뱉었다.

라드들이 세대 교체가 되면서 별 효과를 느끼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다.

“저 새끼들은 밤잠도 없나.”

“소변……. 보고 있던 거 같은데. 노화가 진행된 걸 보니 전립선 때문인 듯합니다.”

“이럴 때가 아냐.”

소리를 죽인 총성이었다곤 해도 여러 방이었다.

예민한 놈들은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쥐도 소용이 없는 상황 아닌가.

크르르르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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