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34화 (234/323)

234화 실험 (1)

“이런 미친…….”

세브란스.

명실공히 5대 메이저 병원.

신촌 주변으로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보니 홀로 우뚝 선 느낌마저 주는 거대한 병원 안은 마치 사태가 터지기 전처럼 북적거렸다.

지하 얘기가 아니었다.

그냥 전체적으로 그랬다.

‘이렇게까지 공공연히……. 하긴……. 이 근방에 뭐가 올 수 있겠나.’

헬기를 타고 오면서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이나 세브란스는 밝았다.

그러나 근처에 밝은 건물들이 몇몇 있다 보니 여기만 눈에 띄는 느낌은 아니었다.

당장 서대문역 근처만 해도 경찰청, 서대문 경찰서 등등은 불야성이었다.

불야성이라고 하기엔 제대로 된 전기가 들어오는 건 아니다 보니 아주 밝진 못했지만…….

횃불만 달랑 가져다 둔 서울역이나 그 근처랑은 확실히 다르다 이 말이었다.

‘군인들……. 흐음.’

그쪽에서 청와대까지는 다 그랬다.

군인들도 많고.

그러나 세브란스 병원 주변만큼은 아닐 터였다.

이쪽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이나 병사들이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무장 상태나 훈련 정도도 어마어마해 보였다.

이 안에 들어올 때까지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그들이었을 정도였다.

“박사님.”

“음.”

“이쪽으로.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 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전까지 봤던 건 다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개조된 병실 안에는 민간인들이 갇혀 있었다.

“꺼, 꺼내 주세요!”

“이봐, 당신들! 당신들 뭐야!”

“군인들 아냐?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감염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창살 가까이에 들러붙어서 외치는 이들은 어딜 보나 그냥 인간이었다.

아니, 라드도 인간이니…….

비감염자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무수한 사람들을 지나가니, 어둑한 병실이 나왔다.

“괜히 불을 켜 두면 자극이 돼서요. 이놈들 보통 사나운 게 아닙니다.”

“여기가…….”

“실패작들입니다.”

“실패작들이라.”

김조은은 그렇다면 성공작도 있다는 얘긴가 싶어서 자신을 이끌고 온 군의관을 돌아보았다.

말이 군의관이지 사실 이름도 직급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였다.

팀장이라지만 권한은 확실히 그 전보다 훨씬 적어서 그랬다.

‘괜찮아. 그 인간이 아무 이유 없이 여기에 날 이끌었을 리가 없어.’

김조은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병동을 거닐었다.

이쪽은 아까 사람들이 갇혀 있던 곳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크르르르

-너!

-배고파!

이따금 사람 말소리도 들려오긴 했지만……. 목소리부터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몇 마디 이상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쾅몇몇은 쇠창살에 온몸을 이용해 달려들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기괴한 광경이었지만…….

김조은은 놀라지 않았다.

이거야 남산에서도 많이 보아 온 광경이지 않나.

“성공작이라 해야 할지……. 하여간, 뭔가 다른 놈들은 맨 위에 있습니다.”

“위라……. 엘리베이터가 움직입니까?”

“네. 병원이라……. 비상 발전기가 있어서요.”

“아하.”

기름을 어디선가 공수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라지만, 유전 비슷한 것들은 있지 않나.

주유소들만 털어 와도 앞으로 몇 년간 전기 걱정은 없을 터였다.

어차피 수요 자체가 극적으로 줄어들었으니 가능한 얘기였다.

우웅

김조은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곧 맨 위층에 닿았다.

여느 대학 병원들이 그러한 것처럼 여기도 맨 위층이 곧 VIP실이었다.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저쪽은?”

맨 위층은 반반 나뉘어 있었는데, 동편에는 VVIP실이 반대편으로는 특실들이 줄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특실들에는 라드들이 들어가 있었다.

1호 박기태부터 해서 여러 명이.

“일단은 이쪽으로 오시죠.”

“아, 네.”

이쪽도 역시나 창살이 처져 있었는데, 인간들이 있던 병실과도 또 라드들이 있던 병실과도 분위기가 달랐다.

복도에만 불이 켜져 있어 병실 안쪽은 어둑했는데, 몇몇은 자고 있지 않았다.

침대를 의자 삼아 앉아 있거나 서성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용했다.

인간들보다도 더.

“모르는 얼굴도…… 있군요?”

“네. 저희가 자연 포획한 놈들도 있고……. 실험 도중 발생한 놈들도 있습니다. 이상한 건…….”

“이상한 건?”

“문 놈은 오히려 별 개체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다른 실험 도중 발생한 변종입니다.”

“문 놈은 그렇게까지 똑똑한 놈이 아니었다, 이 말이죠?”

“네.”

“흐음.”

김조은의 얼굴에 드디어 당혹스러움 대신 흥미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호기심에 세상을 팔아 치운 놈이지 않나.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해 온 가설과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어찌 흥미가 일지 않겠나.

“어디에 있죠?”

“좀 기다려 보시죠. 자고 있을 겁니다. 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놈이라.”

“규칙이라. 확실히…… 1호나 다른 놈들이랑 비슷한데…….”

김조은은 그런 말을 하면서, 병동 스테이션이었을 곳에 자리했다.

일반적인 스테이션과 비교했을 때 그리 많이 다르진 않았다.

컴퓨터가 놓여 있고, 또 차트도 놓여 있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런저런 무기들이나 구속 기구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특히 총기류가 있다 보니 지금 이곳이 병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하는 짓은 그리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맨 위에다가 이놈들을 두고 있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아무도 못 들어오니까요.”

“아무도……. 흠.”

“탈주하더라도 나가기 어려울 것이고요.”

“하지만 들키면…….”

“누구한테요?”

“아.”

“무엇보다 옥상에 헬기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적어도 이 위에 있는 인원들은 모두 탈출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 확실히…….”

그냥 앉아 있으면서 버티기엔 꽤 긴 하루이기도 했거니와 김조은은 궁금한 게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대화가 이어졌다.

군의관도 딱히 숨길 게 없다고 여기고 있었는지 묻는 족족 답을 해 주고 있어서 별 막힘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 변수가 발생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체적으로는 원인을 전혀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나는 1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는 것에 더해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온 것이로구만?’

그 순간 박원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놈이 있으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놈은 팽당했다.

이런저런 말은 없었지만, 정황상 명확하지 않나.

“걱정 마십시오. 저희 측에도 군의관은 많습니다. 지구 병원에서…… 복무하던 사람들이니 믿을 만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청와대죠. 여기…… 북적북적해서 꽤 오래된 것처럼 보이시겠지만 한 달도 안 되었습니다. 그 전의 작업까지 하면 뭐 더 되었을 것 같기는 한데…….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아……. 청와대.”

대통령이나 주요 인물들의 진료를 위해 있었을 터였다.

대통령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주요 인물일수록 주변에 두지 않나.

‘이만한 인력이……. 남산에 있었으면 뭐라도 더 했을 것을…….’

쓸데없는 인력만 있었다고 하면 좀 그렇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수한 인력이 있었냐고 하면 결단코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뭔가 변할 만한 일이 있었다는 걸 의미할 터였다.

여유가 생겼든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지.

“아, 일어난 모양입니다.”

“어떻게 알죠?”

“불을 켰어요.”

“불을……. 확실히 지능이 있군요.”

“네. 놀라운 일이죠. 정작 저거 문 놈은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놈이 문 다른 놈들이 다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요.”

“흐음…….”

“뭐…….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긴 합니다.”

“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도중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군의관의 말에 김조은은 귀를 기울였다.

놀랄 일을 얘기해 놓고 아니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도 이런 놈들이 일부 관찰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주 적은 것도 아니랍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아, 남산과는 별개로 진행되던 건이라서요.”

“그렇군요.”

확실히, 나도 그 안에 계속 있었다면 위험했겠다 싶었다.

괜찮았다.

이젠 탈출했으니까.

하여간,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병실 앞이었다.

9호실.

병실 내부는 들었던 것처럼 밝았다.

안에 있는 이의 눈빛도 그러했다.

‘저건…….’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은…….

1호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1호 박기태도 비록 지능이 보존되고 있던 참이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호르몬 탓에 변이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말투만 따져 보면 교양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에 소름이 끼쳐 올 지경이었다.

“아, 김조은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이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조은은 역시 그답게 당황하는 대신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말에 안쪽에 있는 사내는 웃었다.

“병원이라. 하하…….”

모든 라드가 그러하듯 얼굴이 좀 변해 있었다.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인데…….

왜일까?

김조은은 어쩐지 알던 사람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잠깐…….”

“어,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합니다.”

“당신 얼굴을 좀.”

“네?”

해서 철창에 가까이 다가갔다.

군의관은 그런 김조은을 이상하단 얼굴로 바라보았다.

얼굴이라니?

라드를 알아보기라도 한다, 이 말인가.

인종만 달라도 다 비슷해 보이지 않던가.

라드는 그보다 훨씬 더 했다.

괜히 사람들이 라드를 짐승 대하듯 하는 게 아니었다.

구분이 거의 안 갔다.

물론 매일같이 보다 보면 확실히 좀 다르다는 걸 알 수는 있겠지만…….

“내 얼굴? 이런 말은 또 처음인데…….”

다행히 상대는 달려들거나 하는 대신 재밌다는 듯 웃으며 얼굴을 보여 주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빛 아래 얼굴을 드러냈다, 이 말이었다.

“티비에서 본 거 같은데…….”

“허.”

그러던 상대는 김조은의 말에 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 확실히. 그때…… 뉴스에서. 너 연쇄 살인범……. 최창식 아닌가?”

“오……. 대단한데…….”

“네? 최창식이요? 저게……. 최창식이라고요?”

뉴스에 나온 최창식은 왜소한 인상이었더랬다.

거기에 더해 순해 보이기까지 했다.

주변인들 또한 다들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살인범이었다.

무려 여섯을 죽인.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죠.

꽤 유명한 범죄학자가 최창식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을 지경이었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잠깐……. 잠깐만…….’

그때 김조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사이코패스의 뇌는 기질적으로도 다릅니다.

언젠가 들었던 말과 함께.

-저 사람은 잡혀 왔는데도 침착하네요.

1호에게 물리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 중에 이상하리만치 침착한 이들이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끔찍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 성공작이 나왔던 것 같았다.

이제 드는 생각이니만큼 오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 MRI 됩니까?”

“네? 그게 무슨.”

“뭔가 알 거 같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MRI 됩니까?”

“아……. 네. 되긴 됩니다.”

이제부터 확인을 해 볼 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