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36화 (236/323)

236화 실험 (3)

“모두 11명이라고요?”

“네, 왜 그러십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많아서……. 아니, 뭐…… 그럴 수 있지.”

김조은은 보고를 들은 후, 밖을 내다보았다.

세브란스에서도 가장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그것도 밝은 대낮에 내려다보는 서울은 빈말로도 멀쩡하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집값이니 뭐니 하면서 폭격을 자제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서울 서쪽과 강남 일부를 포함한 인구 밀집 지역에는 폭격이 가해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생존자들 또는 라드들이 겨울이 오면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을 붙인 것이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보니 더더욱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정신 멀쩡한 사람들이 살아남았으려나?’

멀쩡했던 세상에서도 소시오패스들의 성공 확률이 더 높다는 썰이 있지 않았나.

물론 김조은은 그렇게 생각지는 않았더랬다.

자신만 봐도 그놈의 인성이 발목을 잡았으니까.

그래서 따로 상담 치료까지 받았을 지경이었다.

물론 남들이 불편해하는 것일 뿐, 본인은 별 불편감이 없었던 만큼 효과는 없었다.

‘이따위라면……. 살아남는 거 자체가 목적이 되지. 흐음…….’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규범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그마한 양심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거나 짐을 지고 있는 이들부터 죽어 나갔다.

소위 말하는 좋은 사람들 중에 지금껏 살아남은 이들이 있을까?

개인의 능력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훌륭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 어려울 터였다.

“내려갈까요?”

그렇다 해도 인구의 1% 또는 그보다 희귀할 거라 했던 사이코패스가 219명 중에 무려 11명이나 된다는 것은 퍽 의외였다.

너무 많지 않은가?

‘후천적으로 그게 유리하단 판단이 섰을 수도 있을 텐데……. 흐음…….’

김조은은 과연 후천적인 변화가 라드화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했다.

그걸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여기 모아 뒀습니다.”

“아하.”

김조은은 작은 방 안으로 옮겨 온 이들을 바라보았다.

공교롭게도 남자 6명에 여자 5명이었다.

나이대는 제각각이었지만, 굳이 묶자면 20대에서 40대 언저리에 있었다.

이것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보다 나이가 많거나 어린 경우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얼굴만 봐서는 정말 모르겠구만…….’

생김새는 미추의 기준을 떠나 진짜 다양했다.

선하게 생긴 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지만, 뭐가 되었건 진짜 악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뭐 이것도 미디어나 기타 등등의 영향으로 인해 만들어진…….

일종의 선입견일 수도 있을 테지만 하여간, 김조은은 이들의 본질을 눈이 아니라 다른 걸 통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애초에 먹고 있던 참이다 보니 딱히 더 놀라거나 실망하는 일은 없었다.

“결과를 좀 보죠.”

“네.”

“가면서 보죠. 뭐……. 어차피 싹 다 찍어야 하니까?”

“네.”

김조은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병사들이 아직은 정중한 태도로 피험자들에게 말했다.

“영상을 좀 찍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쌓이지 않는 건 아닐 터였다.

설문 조사까지는 그렇다 쳐도 영상은 왜?

피험자들이 빠르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앞에 서 있던 이가 나섰다.

“무슨 영상입니까?”

딱히 긴장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목소리만 들으면 무슨 강의장에서 질문이라도 하나 싶을 정도로 평온한 느낌만 주었다.

“MRI입니다.”

“그걸 왜…… 찍죠?”

“상부 지시입니다. 저도 정확한 것은 모릅니다.”

물론 평온한 것으로만 따지자면 병사 쪽도 만만치 않았다.

과연 김선태가 선별해서 뽑아 키운 놈들답다고 해야 할까?

저것들을 보고 있자면 천하의 김조은조차 찝찝함을 느꼈을 정도니, 상대가 아무리 검사 결과에서 사이코패스라 뜬다 해도 놀라지 않기는 어려웠다.

“아니……. 이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해가 될 만한 검사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렇긴 할 텐데…….”

“가시죠. 시간을 더 지체하면 안 됩니다.”

병사는 아까보다 좀 더 단호한 말투가 되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대기 중이던 두 병사가 총 들고 있는 팔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이곳의 병사들에게 끌려온 경험이 있는 이들로서는 더 망설일 기운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흐음……. 점수들이 가관이네.”

“왜……. 이상합니까? 좀 추려야 할까요?”

김조은은 그 꼴을 잠시 보고 있다가 지금은 이미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군의관과 함께였는데 둘 다 여상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지금 진행 중인 것이 실험이 아니라 진료로 착각할 것만 같은, 그런 태도였다.

“아니, 아뇨. 점수가 높아요. 내가 기억하기로…….”

김조은은 과거를 떠올렸다.

-박사님의 점수는 유영철하고 비슷할 정도군요.

-제 점수가요? 그럼 저도 사람을,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여럿을 죽이게 된다 이 말입니까?

-아, 아뇨. 이게 무슨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건 아니라서요. 다만…… 그만큼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사가, 그러니까 임원이 되시면 아래 사람들이 늘어날 텐데 예기치 않게 상처를 주기 쉽겠죠.

그때 그 정신과 의사는 아니라고 했지만.

따지고 보면 유영철이 다 뭔가?

김조은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사실 검사 결과가 꽤 신빙성이 있었던 셈이 되었다.

아무튼, 당시 김조은이 받았던 결과만큼이나 심각한 놈들이 지금 뒤따라오고 있었다.

다시 말해 연쇄 살인범 예비 후보들이…….

‘아니지. 벌써 여럿 죽였을 가능성도 크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렇지 않아도 별 거리낌 없던 김조은의 얼굴에 무려 미소까지 지어지기 시작했다.

실험이 단순히 실험이 아니라 합리적인 처벌이 되는 기분이랄까?

누군가 자신을 대상으로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다면야 끔찍하겠지만…….

알 게 뭔가.

“차례로 들어가죠. 영상의학과 의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네, 대기 중입니다. 아마 얼굴 보면 아실 겁니다.”

“아.”

그런 생각과 함께 검사실로 들어가자 근무복을 입고 서 있는 여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

사관 학교 출신이라고 했던가.

야망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딱 보니까 확실히 기억이 났다.

“오랜만이네요.”

“아, 네.”

“제가 정확히 뭘 보면 되죠?”

“펑셔널 MRI로…… 뇌 활성도를 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뇌 구조를 보기 위한 MRI도 보고요.”

“아……. 그럼 시간 꽤 걸릴 거예요. 명당 최소 40분?”

“40분이라.”

“사람 바뀔 때마다 포지션 잡고 해야 하니까 1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이제 막 오전 11시를 넘어가고 있었으니, 11명을 다 찍고 나면 밤 10시가 될 거란 얘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딱 정해지자 돌연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영상의학과 군의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숨 주무시죠. 이게 뭐 급한 것도 아니고요.”

“아……. 네. 그러죠. 그럼 염치 불고하고.”

“네.”

김조은은 그렇게 검사를 맡기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 잠들었다.

바람 소리 말고는 딱히 소음이랄 게 없는 곳이다 보니 빛만 가리자 밤 같았다.

“박사님, 좀 보실까요.”

오후 11시가 다 되어서야 결과가 나왔다.

잠에서 깨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는데, 괜찮았다.

이번 일은 루틴을 깨도 될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해서 그는 부리나케 몸을 일으켜 아래로 향했다.

지하는 아니었고, 민간인들이 갇혀 있던 1층으로 갔다.

가서 보니 이미 민간인들의 숫자가 좀 줄어 있었다.

군의관은 김조은의 눈길을 따라 살피다가 설명을 보태 주었다.

“일단 50명 정도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성공작은?”

“아직…… 성공이나 실패 유무를 판단할 만큼 시간이 흐른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성공작은 없습니다.”

“11명은 예외로 둔 거죠?”

“네? 아, 네. 그것들은 선별해서 따로 두고 있습니다.”

“좋군요.”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군의관은 민간인들,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긴 하지만 아까보다는 확연히 지쳐 보이는 민간인들을 지나쳐 작은 방을 가리켰다.

빛이 새어 나오는 방이었다.

다른 곳은, 그러니까 민간인들이 갇혀 있는 쪽에는 빛이 없다 보니 이곳만 유독 밝은 느낌을 주었다.

끼이익

그래서 그럴까?

문이 열리면서 빛이 더 새어 나오자 소란이 한층 더 심해졌다.

“야, 이 개새끼들아!”

“우리를 왜 가둬 두는 겁니까!”

“아까……. 아까 갔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야!”

김조은은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그쪽을 둘러보기라도 했지만, 앞서가던 군의관은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인지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열린 문을 다시 닫을 뿐이었다.

안에는 아까 보았던 영상의학과 군의관이 있었다.

“오셨어요?”

아침보다는 확실히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얼굴엔 피로함으로도 가릴 수 없는 희열이 드러나 있었다.

“이게…… 확실히 놀라운데……. 저도 관련 기사를 본 적은 있는데 논문까지 찾아본 적은 없거든요.”

“네네.”

“결론만 말씀드리면 기질적으로도 뇌가 좀 달라요. 물론 11명 중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건 뭐 선행 연구가 없어서 제가 마음대로 나눈 건데……. 이렇게 보시면……. 7명은 뇌의 회백질이 굉장히 얇고요. 기능을 봐도 이쪽 기능이 거의 억제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예요. 이건 아마 신경 전달 물질이나 그 수용체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거 같은데…….”

“정확히 하려면 조직 검사를 해 봐야겠군요?”

“네, 부검을 해 봐야겠죠.”

대화를 듣고 있던 군의관이 웃으며 말했다.

“하나 지금 만들어 볼까요?”

“아, 아뇨.”

김조은은 황급히 손을 젓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물게 해 보죠. 물게 해 보고 결과를 봅시다. 그룹을 나눠서요. 방금 말씀하신 대로 이 그룹을 7명, 4명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또 반으로 나누자고요.”

“그래서요?”

“절반은 맨 위층의 성공작이 물게 하고 나머지는 실패작이 물게 하는 거죠. 만약 외인성 요인이 더 강하다면 성공작이 문 놈들만 성공할 것이고, 그보다 내인성 요인이 더 강하다면 별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제 가설이 맞다는 가정하에서입니다.”

“으음……. 확실히……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그러니까요.”

그의 말에 영상의학과 의사도, 또 군의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환히 웃으면서였다.

그렇게 11명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쪽으로?”

“저는 저쪽?”

영문도 모른 채 네 그룹으로 나뉜 그들은 하나씩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이미 노하우가 쌓인 지 오래여서 그랬다.

마지막 한 명이 물릴 때까지도, 그 누구도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흠…….”

“음.”

“이제 지켜보면 될 일이겠군요.”

11명은 각기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고, 세 악인은 그 광경을 안전한 곳에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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