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실험 (4)
라드화.
즉 변이는 세대를 거듭하고 또 거듭할수록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이전엔 물리고 나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변이가 이루어졌다면, 본격적으로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물리고 수분 이내로 줄어들지 않았나.
지금은 거의 즉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숙주의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한데…….
덜컹
지금 저기 묶인 이들이야 별 이상이 없던 이들이니만큼 약효, 즉 진정제의 효과가 떨어지자마자 침대가 덜컹거리고 있었다.
이 진정제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긴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진정제도 없이 라드 앞에 사람을 들이미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겠나?
이리저리 날뛰다가 되레 간단하게 팔뚝이나 물리면 끝났을 것을 목이나 이런 데를 물려서 죽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극히 드물긴 한데, 오히려 라드 측이 죽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덜컹
하여간, 그래서 반감기(약의 효과가 반으로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가 아주 짧은 수면제 같은 걸 쓰고 물게 한 뒤에 이렇게 묶어 두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 덕에 일행은 그룹별로 나누어서 그들을 편안히 관찰할 수 있었다.
“으…….”
곧 한 명의 라드가 인상을 잔뜩 쓴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는 표현이 맞을 터였다.
사지가 묶여 있었으니.
라드화가 진행이 되면 힘이 세진다고야 하지만, 그것도 좀 자라고 난 뒤의 일이었다.
단지 신경 전달 물질의 증가만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물론 몸이 망가지는 걸 감수하면서 근육을 수축하거나 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바이러스도 멍청한 건 아니다 보니 숙주의 몸을 그렇게 함부로 쓰진 않았다.
“흐…….”
두 번째 라드도 눈을 떴다.
“우연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죠.”
첫 번째 그룹.
그러니까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았던 그룹의 실험체들이 먼저 눈을 뜨고 있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또 넷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성공작에게 물린 놈과 실패작에게 물린 놈들이 하나씩 교대로 눈을 떴다.
“넷이나 먼저 깼으면 우연은 아니겠는데.”
“이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군의관의 질문에 김조은은 즉시 답하는 대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 걸 어떻게 알겠냐.’
알 수가 없지 않나.
확실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는 것이 더 나았다.
모름지기 과학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겠나?
“어, 저기도.”
“으음.”
하여간, 군의관은 김조은의 답을 기다리지 못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할까.
다른 그룹의 녀석들도 하나둘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저 으, 어……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만 내고 있었으니까.
“이제 다 깼군요.”
조용히 있던 영상의학과 의사가 입을 열었다.
아닌 게 아니라, 11개의 개체가 다 눈을 떴다.
덜컹거리는 소리도 나고 있었는데, 팔다리가 묶여 있는 상태다 보니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 보죠.”
“괜찮은 겁니까?”
군의관은 그녀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문을 벌컥 열었는데, 막상 김조은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라드인데, 그곳에 들어간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랬다.
무섭지 않나.
특히 김조은이 있던 남산에서는 이러한 세련된 방식이 아니라, 그냥 철창 사이로 사람 팔을 집어넣어서 물게 하는 야만스러운 방식을 차용했었기 때문에 라드의 무서움을 더더욱 날것 그대로 참관할 수 있었더랬다.
“괜찮습니다. 저거…… 가죽도 아니에요.”
“아…….”
군의관의 말에 다시 보니 라드들의 팔과 다리에 달린 억제대가 좀 특별해 보였다.
“제대로 된 놈들도 대부분 가둘 수 있는 소재입니다. 뭐라더라.”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검증이 되었다면…….”
“네. 그리고 저희만 들어갈 건 아니라서요.”
“하지만…….”
“아, 함부로 상해할까 봐요? 저거 마취탄입니다.”
“아,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거기에 더해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들어가게 되자, 김조은도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성공작을 함부로 쏴 죽이기는 싫다 보니 저어하는 면이 있었지만, 군의관의 설명이 더해지자 그제야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아깝잖아.’
성공작.
사실 생각해 보면 성공작이라는 말도 좀 이상한 말이었다.
어차피 라드 아닌가.
이성이 있는 놈들은 더 무서운 적일지언정, 결코 아군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과학자인 김조은의 마음은 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으…….”
“이름. 이름이 뭐지?”
김조은은 첫 번째 라드를 마주하자마자 아까 떨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이나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군의관은 그의 얼굴을 보며 또 눈을 보며 역시 이 인간을 부르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확실히 지금은 인간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 않겠나.
오자마자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낸 것도 그렇고…….
이 태도도 그렇고…….
저번 책임자처럼 갑자기 양심 운운하면서 무너져 내릴 것 같진 않았다.
‘하긴……. 어지간했으니까 저 대통령조차도 꺼림칙한 놈이라고 남산에 처박아 두려고 했겠지.’
곱씹어 보면 대통령이야말로 이상한 새끼였다.
민간인이고 나발이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처리하는 주제에 너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면 못 믿을 놈이라고 하질 않나…….
그렇다고 또 양심상 그런 일은 못 하겠다고 하면 숙청을 하질 않나…….
때문에 대체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에 들 수 있는지에 대해 한동안 고민을 했더랬다.
‘그냥……. 지금 정도가 딱 좋아.’
결론은, 모든 군대가 다 그러하듯 중간만 가자는 것이었다.
괜히 눈에 띄면 처음엔 어떨지 몰라도 결국엔 X 될 수도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들의 상관인 대통령은 그런 인간이었다.
“나……. 나현수. 넌……. 넌 뭐지?”
그때 첫 번째 라드가 이름을 말했다.
군의관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뒤따르던 영상의학과 의사도, 김조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김조은은 나현수라 하는 라드와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원래 얼굴로 돌아왔다.
“난 김조은. 이 센터의 책임자일세.”
“센터……. 아, 잡혀 왔……. 근데 내가 왜……. 으…… 이건……. 이건……!”
멀쩡히 대화를 나누는가 싶었던 나현수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충동.
처음엔 분노라 생각했었는데 호르몬과 행동 분석을 통해 평가를 해 본 결과, 충동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물고 싶나?”
“내가 왜……? 난…….”
상대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충동이 치밀어오르는지 험악해져만 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굉장히 묘한 얼굴이 되었는데 비단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에 있던 다른 개체들도 태반이 그러했다.
다만 끝에 위치한, 그러니까 그룹을 나눌 때 점수가 낮았던 이들 중에서는 그저 충동만 느껴지는 이들도 있었다.
“자는 중에 물렸지.”
“물려……? 여기에서? 여긴…… 안전…….”
김조은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을 말할까.
아니면 속일까.
어떤 것이 앞으로의 연구를 진행할 때 도움이 될까.
‘아니……. 아니지.’
그러나 잠깐 생각을 해 보니 그럴 게 아니었다.
여긴 검체가 많지 않나.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모르는 라드들이 무려 8개체나 있었다.
이것들을 그룹으로 나누고 관찰한다면…….
“어떻게…….”
“뭐, 일단은 이따 말하는 걸로 하죠.”
“아, 네.”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군의관은 김조은의 생각을 대강이나마 알아먹었다.
그러곤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영상의학과 의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일단 다들 나오니까 따라 나왔다.
“무슨……?”
“그룹을 다시 나누죠. 보니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4명에겐 우리가 라드에게 물리게 했다라고 밝히는 거죠. 분노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거죠. 다른 4명에게는 라드가 몰래 와서 물었다고 하죠. 기억 상실을 유발하는 약으로 재운 것이니……. 속을 겁니다. 그리고 저 셋은…… 실패작인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따로 보죠.”
김조은은 그렇게 밖으로 나와 나머지 둘과 병사들을 마주한 채 계획을 떠들었다.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비인간적인 실험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다.
정상적인 세상에서는 처단의 대상이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최적의 인재였다.
누가 들어도 그 이상 가는 계획을 더 떠들어 댈 수가 없어서 일단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다.
라드들은 손발이 묶인 채로 끌려가 각기 방으로 나누어 들어갔다.
어차피 세브란스 자체가 원체 커다란 병원이었다 보니 방은 남아돌지 않겠나.
지금도 각각의 병실이 남아도는 상황이었다.
물론 병사들의 숙소로 쓰이는 곳들이 태반이긴 했지만.
“천천히 보도록 하죠.”
“네.”
하여간, 그렇게 따로따로 처넣은 후 계획을 다시 정리하려는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뭐? 총소리?”
“어디.”
“남영동 부근입니다.”
“용산 공원이라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오발 사고 아냐?”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직 군의관들에게까지 화제가 옮겨 오진 않았다.
직급만 따지고 보면 당연히 이쪽이 일반 병사들, 심지어 지휘관들보다도 더 위였지만 엄연히 지휘 체계가 달라서 그랬다.
“뭐죠?”
“모르겠습니다. 이봐!”
물론 군의관의 부름을 완전히 씹을 수 있는 병사는 없었다.
남산처럼 일종의 유배지 역할을 하던 곳이라면 또 모를까, 이곳은 명색이 연구 시설이었으니까.
오히려 병사들보다는 이들이 훨씬 더 핵심 인력이었다.
우선 숙소 위치만 봐도 명확하지 않나?
“네, 소령님.”
그제야 김조은은 군의관의 직급이 소령이라는 걸 알았다.
사실 별 의미 없는 일이긴 했다.
김선태가 중령에서 중장이 된 세상 아닌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전무한 데다가, 계급만 높지 실제로 지휘 가능한 병사는 훨씬 적은 상황에서 직급이 뭔 소용일까.
“무슨 일이지?”
당연한 얘기지만 그건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의 일이었다.
안에서는 직급이 깡패고 또 전부였다.
일종의 군부 독재 비슷한 시스템이 되어 버린 정부에서 소령은 상당한 권력자였다.
병사는 바짝 얼은 얼굴로 군의관에게 답했다.
“남영동 인근에서 총소리가 들려서……. 지금 확인해 보고 있습니다.”
“총소리……? 라드 나타나서 쏜 거 아닌가?”
“그게…… 보고에서 그런 소리가 전혀 없어서요.”
“오발인가? 그런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잖아.”
“네, 그렇습니다만 일단은…….”
“일단은 무슨 일단. 여기에 있는 병사들은 여길 지키는 게 우선이지. 남영동이면 그 근처에서 알아서 하라고 해.”
“그.…….”
“왜. 내가 대신 말해 줘? 오늘 당직 누구야. 어딨지?”
병사는 ‘하 시발!’을 속으로 되뇐 후,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1층……. 정찰대 꾸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어. 뭔 정찰이야, 정찰이. 청와대 빼면 여기가 제일 중요한 곳이라는 거 몰라?”
군의관은 투덜대면서 걸음을 옮겼고, 김조은과 영상의학과 의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