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실마리 (1)
대령은, 그러니까 사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더더욱 신중해진 대령은 모두가 자리로 떠난 후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곤 물었다.
“어땠나? 아까 한 말이…….”
“전부 사실입니다.”
“아니, 그보다…… 충정로역의 참상을 봤는데,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대통령은 악마입니다.”
“그런가…….”
대령은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래 봐야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령 나부랭이다 보니 직접 임명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나.
먼발치에서 본 게 다였다.
그러나 그때 봤을 땐…….
‘흔한 정치인 인상이었는데.’
적어도 악마 같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더랬다.
그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 특유의 부드러운 인상을 느꼈을 뿐이었다.
‘뭐……. 부질없는 일이지.’
일이 이렇게 됐는데 인상 얘기를 해서 뭐 하겠나.
아무튼, 김태평의 말이 교차 검증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충정로 등의 역, 마트, 백화점에서의 학살이 사실이라면…….
거기에 더해 세브란스 쪽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대령이 잡을 줄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청주랑 연락을 해 봐야겠는데.”
“맡겨 주십시오.”
“아니, 고생했으니까 일단 쉬고. 아니지. 그 전에…… 혹 따라붙거나 한 인원이 있거나 하진 않겠지?”
대령의 신중함은 이제 집착에 가까워져 있을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망할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려면…….
집단 안에서야 차별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여간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대령에게 있었다.
마치 봉건시대 영주들이 그러하듯 권리만 있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아……. 그건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론 없었습니다. 그럴 만한 길도 아닙니다.”
“흔적을 지웠다는 뜻인가?”
“음.”
두 병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흔적을 지웠나?
충정로역에서 지하 철로를 통해 움직이던 루트 자체는 흔적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
제아무리 악마라 해도 본인이 본인 손으로 한 학살의 현장에 들어가 보진 않을 테니.
그러나 용산 미군기지나 그 후로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타이어 자국을 지우긴 했습니다. 포대가 왜 있나 했는데 먼지 포대였습니다.”
“아……. 그 후로는?”
“한강 이남은 라드들이 많아서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군……. 그렇더라도 따라붙은 놈들은 없었다, 이거지?”
“네. 대령님.”
“흐음.”
그래, 다리까지는 어떻게든 흔적을 지웠던 것 같았다.
워낙 정신이 없어 차 안에 있거나 시키는 일이나 하긴 했지만 이제 와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그랬더랬다.
하지만 그 후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냥 차를 타고 달리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지점들이 있지 않았나.
강남 일대는…….
정치인들의 욕심 때문에 폭격에서 벗어난 지역이 대부분이라 그런가 라드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알겠네. 고생했어. 가서 쉬게.”
“네!”
대령은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 지친 기색이 더욱더 역력해진 인원을 해산시키고 옆을 돌아보았다.
조영상 소령이 서 있었다.
말이 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지, 사실상 대령이 대부분의 상의를 나누는 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조 소령.”
“네.”
“경계 태세를 끌어올리는 게 좋겠나?”
“정찰 인력도 늘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중간에 이벤트가 있었다면…… 과할 정도로 나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내 생각도 그렇네. 박중을 불러오지.”
“네.”
그렇게 박중 대위가 불려왔다.
그는 조영상처럼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시키면 하는 군인이었다.
까라면 까는 군인 정신이 그득한 인원이라는 건데, 칼로 쓰기엔 이만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능력도 있다 보니 대령으로서는 뭔 위기만 있다 싶으면 써먹을 수밖에 없었다.
“북쪽……. 경계를 늘리란 말씀이시죠?”
“그렇네. 문제라도 있나?”
“현재 재난 본부를 무너뜨린 라드 무리 때문에 남쪽 경계를 대폭 늘린 실정이라 인력이 살짝 모자랍니다.”
“아, 그렇지. 그쪽도……. 하.”
그러나 이번만큼은 즉각 네라는 답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그랬다.
대령도 이해할 만한 어려움이었기에, 얼굴을 쓸어내렸다.
망한 세상이다 보니 원래도 그렇긴 했지만…….
어찌 된 게 들려오는 소식마다 안 좋은 소식뿐이었다.
‘제기랄…….’
그러나 어쩌겠나.
대령은 책임자인데.
“일단…… 북부로 더 돌리게. 남부도 남부지만……. 라드보다는 훈련받은 군대가 아무래도 더 무섭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말이었다.
‘만약 남쪽이 뚫리면…….’
그리고 동시에 책임도 져야 했다.
어쩐지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쏴 죽은 옛 사령관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나도 피하기 어렵나……. 아니지. 이제 와 내가 죽으면…….’
그러나 그 사람처럼 죽음으로 도피하기도 어려웠다.
이젠 대령에게 의지하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물론 정유현이라는 인물이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이 과연 군인들에게…… 잘 대해 줄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위인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그 희생의 태반이 군인들의 목숨일 것만 같았다.
“군인들이 움직이네요.”
그 시각, 유현은 자고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박원상과 대화를 나눠야 하지 않나.
적어도 유현을 비롯한 주요 멤버 몇몇의 시간은 남들보다 더 늦게 돌아가고 있었다.
“네, 형사님. 아마…… 아까 김태평 팀장이 한 말 때문일 겁니다.”
“그렇겠죠. 현명한 처사입니다. 가능성이 작겠지만, 만약 군인들이 내려와 우리가 이리로 향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김태평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정말이지 걱정이 된다는 얼굴이었는데, 속으로는 또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원에 상주하는 병력이 적지가 않지……. 전면전은 아무리 대통령이나 김선태가 미친놈이라 해도 무리야.’
무리다.
정말로.
물자나 사람이 넘치는 시절이 아니지 않나.
라드야 물면 충성스러운 부하가 나오지만, 사람은 그럴 수가 없었다.
훈련된 병사가 하나 죽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무장도 잃었다면 영영 충원이 안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둘 놈들도 아니지.’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의혹은 의혹으로 남겨 두고 오히려 수원 쪽과 연락을 재개하는 것에 치중할 터였다.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회유하는 게 최선일 테고.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했던 놈들이라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두었겠나?
‘참수 작전이라도 하긴 할 거야.’
저쪽에는 헬기가 있다.
장갑차도 있고.
전차도…… 있기야 할 텐데, 운용이 가능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그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주변 아스팔트가 다 아작이 나 있어야 할 텐데, 적어도 그런 흔적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살짝 남겼다.
아무나 찾아내기는 어려울 터였다.
가령 이쪽의 병사들이나 저쪽에 있을 평범한 병사들은 그럴 터였다.
“저렇게 나서면 남쪽은 어쩌죠?”
“라드? 모르죠. 하지만 아마……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한동안은.”
“한동안? 왜요?”
“뭐……. 순전히 제 생각이긴 한데. 총을 무서워할 겁니다. 지능이 있었으니…….”
유현은 아래를 바라보다가, 이내 라디오에 집중했다.
그렇게 잠시 있으려니, 예의 그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박원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과는 달리 잡음이 거의 없었다.
혼자 있는 방에서 편안히 앉아 떠들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남산 자체의 위상이 위태롭다고 해도, 박원상은 지금이 이전보다는 편안했다.
-주변 수색 요청이 들어왔는데……. 혹시 아는 바 있습니까?
원래는 그랬는데, 오늘은 목소리가 좀 떨렸다.
주변에 잡음이 거의 없다 보니 오히려 떨림이 더더욱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 쪽 문제 때문일 거 같은데…….”
“생각보다 과민한데요?”
오예리와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흔적이 아주 살짝, 그것도 어느 정도 의도적인 흔적이 남았다는 걸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리 말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그런 말에 장단을 맞춰야만 했다.
‘대령보다는 정유현이 이 집단을 이끄는 게 맞아.’
김태평은 애써 품고 있는 생각을 슬며시 뒤로 돌리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요. 뭔가…… 다른 일이라도 겹친 게 아닐지.”
“아무튼, 뭐라고 하죠?”
“잘 모르겠다고 하죠. 그게 좋을 겁니다. 박원상을 더 불안하게 해서 좋을 게 없죠.”
“하긴…….”
그 결과 마음을 정한 유현은 송신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쪽에서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있지는 않았던 건가?”
-현재 연구 결과를…… 살짝 숨기고 있지만, 그걸 알 방법이 없을 겁니다. 아무튼, 그렇군요.
“평소보다 목소리가 큰데, 괜찮나?”
-수색 요청 때문에 절반 이상이 밖으로 나가서……. 괜찮습니다.
절반이라.
남산의 중요성이 아무리 떨어졌다 해도 절반이나 밖으로 돌리다니.
그사이에 저기가 뭐 어떻게 될 만한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해도…….
내부 인원 중 불만 어린 인원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한다는 건, 확실히 이번 일을 아주 커다랗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너무 예민한데……?’
그리고 이건 김태평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이었다.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건 용산 공원 근처에서의 일이지 않나.
정작 병원은 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더랬다.
뭘 본 게 없다는 건데…….
‘진짜 다른 일이 있나?’
김태평조차 진짜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쯤, 박원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그렇고……. 특이체가 나왔습니다.
특이체.
유현이나 최우식, 이순규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때문에 둘은 이순규를 돌아보았고, 이순규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유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고, 박원상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독감으로 추정되는 열병과 ARS-24 변이체가 동시에 병발한 케이스가 대략 10케이스가 있습니다. 그 중 2케이스에서…… 라드화가 진행되었지만, 사람을 물어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이지 않는 성향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것도 n수가 적다 보니 확률을 추정하긴 어렵겠지만…….
단순히 계산해 보면 20%이지 않나.
완치율이 20%라고 하면 너무 낮긴 하지만,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보였다.
‘어쩌면…… ARS-24의 변이체가 다른 바이러스들에 비해 생존력이 좀 떨어질 수도 있지.’
유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박원상의 말이 이어졌다.
끝인 줄 알았던 참이라 다들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개체들 또한 변이가 좀 느리거나 약합니다. 확실히 식욕이나 먹는 양의 증가 같은 것이…….
이건 몰랐던 내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밖에서는 확인이 불가했던 내용이라고 해도 좋았다.
“혈액 검사 등으로도 확인이 됩니까?”
-아, 네. 호르몬 수치 증가량이 확실히 적습니다.
“허.”
유현의 눈이 빛났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우식과 이순규의 눈도 그러했다.
사태 해결에 대한 단초가 실낱같은 형태로나마 보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