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생산 (3)
“이런 미친.”
대령은 유현과 김태평의 보고를 듣자마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곤 욕설을 내뱉었는데, 그 종류가 꽤 다채로웠다.
지금 그의 위치가 사령관 대리가 아니었다면 아마 더더욱 심한 욕설을 내뱉지 않았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허나 그는 다 망가진 상황에서조차 도망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인간이지 않나.
“이게 사실입니까?”
대령은 곧 정신을 차린 채, 그러니까 날카로운 얼굴로 돌아와 물었다.
김태평은 즉시 답을 하는 대신 유현과 눈을 마주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마? 그게 국정원 요원이었다는 사람이…….”
“정황상 거의 확실합니다.”
그의 말에 유현이 힘을 보태었다.
그냥 근거 없이 떠들어 대는 건 아니었다.
“라드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을 떠나서, 다들 아직 너무 작습니다. 기껏해야 라드화가 진행된 지 1주일도 안 되었을 텐데 그런 라드들이 이렇게 많이 대부분 혼자 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죠.”
“으음…….”
“여기, 사진입니다.”
사진도 있었다.
간신히 충전한 폰으로 찍은 것인데, 증거로 삼기에 이보다 좋은 게 또 있겠나.
“확실히 작군…….”
“네, 그리고 상처가 없습니다. 저항했던 흔적이 없어요.”
“저항? 아, 그렇지. 이게 자연적으로 발생한 라드라면…….”
물론 다 포기한 채 담담히 물리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이만큼 살아남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에 그랬다.
하지만 드물었다.
대부분은 죽기 직전까지 아니, 죽는 건 아니니 물리기 직전까지 저항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령은 적어도 수원 근방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몸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식으로 라드를 포획하기도 하고 또는 사살 작전에 직접 나가기도 했었는데, 그 덕에 유현의 말을 듣자마자 딱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네.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면 응당 있어야 할 흔적이 없습니다. 이건……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겁니다.”
유현의 말에 이번에는 김태평이 말을 보태었다.
“이 세상에……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놈들이 많진 않죠. 제가 아는 놈은 김선태와 대통령, 둘뿐입니다.”
“흐음…….”
대령은 그런 둘의 말에 일단 한숨부터 내쉬었다.
딱히 한숨이 나올 만한 상황이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소리를 지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울기에도 그랬다.
‘이런 미친놈들이…….’
정부가 적이다.
모르겠다.
다른 직업군이었다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었을까?
적어도 군인인 대령에게는, 이 생각이 너무 죄스러운 생각이었다.
뭐가 되었건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이니까.
무엇보다 김선태는 같은 군인이고.
이 둘이 이 나라를…….
‘믿기 싫지만……. 거의 확실하지.’
정황상 증거는 사실 차고 넘쳤다.
돌이켜 보면 최초의 사태 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탈주가 일어난 곳이 바로 경복궁 즉 청와대 근처 아니었던가.
그런데 정부는 별 피해가 없었다.
수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인원 중에 죽은 사람이 있었나?
모르겠다.
근처에 딱히 주둔 중인 군부대가 공식적으로는 없다는 걸 감안한다면, 정말이지…….
“청주와 계룡에도 도움을 요청해야겠군요.”
“계룡. 거기에 부대가 있긴 합니까?”
“뭐, 거의 없지만……. 그래도 기백명은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도움이 되긴 하겠군요.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러 가는 길에 너무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건 무리입니다.”
김태평은 대령의 말에 답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그가 있다가 온, 부대 남측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고요하기만 했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봄이 왔지만 여전히 밤은 추웠고, 모든 생명은 자연의 섭리대로 굴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 않나.
“그렇죠.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으니, 소수 정예로 자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일단 그쪽에서 우리 말을 들어 줄지도 의문이다 보니.”
“비슷한 스탠스를 공유하고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만……. 얼굴 보고 말해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막상 갔더니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긴…….”
대화를 듣다가 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계룡이나 청주가 어찌 되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당장 전투력만 놓고 보면 그 둘보다 훨씬 강력했을 육군 부대들조차 사단째로 증발해 버렸는데, 그들이 여전히 건재하리란 믿음을 갖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뭐……. 이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정보가 더 필요하면 부르죠.”
“당장 남쪽은 그럼 어찌하시겠습니까? 아마 흘러나온 라드들은 더 남쪽으로 못 내려오게 하려고 풀어 둔 놈들일 겁니다. 뭔가 준비 중일 겁니다.”
“그렇겠죠. 그럴 겁니다. 뭐…….”
대령은 고개를 저어 대다가 몸을 일으켰다.
쯧 하고 혀도 찼다.
어느새 생존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비록 군이라는 울타리 내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내키지 않았을 일마저 해야 했던 사람 특유의 비감마저 느껴졌다.
“모르고 당했다면 몰라도 알고 있는 이상, 무력하게 당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탄환이 문제라지만……. 재래식 무기가 없는 건 아니니까요.”
“재래식?”
“네. 활이나 창 같은 것들 말이죠. 놈들이 라드를 소모품으로 쓸 작정이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아.”
재래식이라는 말에 비단 활이나 창 따위의 무기만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김태평과 유현 모두 알아들었다.
지금 밭에 파종하고 물을 길어 오느라 고생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확실히……. 라드와의 싸움에서는 그들을 소모하는 것이 전술적으로 유리하긴 할 터였다.
일단 라드 놈들의 크기가 작다 보니 재래식 무기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터였다.
게다가 이쪽은 철조망 안에 진을 치고 있을 작정이지 않겠나.
‘탄환을 아낄 수 있겠군…….’
사실 탄환만 충분하다면 라드 정도야 총으로 쓸어버리면 그만일 터였다.
초거대 개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쉽지 않겠나?
하지만, 부대 내에 비축분으로 남아 있던 탄환은 계속해서 줄어만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김선태 부대와 한판 붙으려면, 어떻게든 아껴야 했다.
사람도, 무기도.
“뭐……. 알겠습니다. 저희도 정찰이 가능하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팀장님과 함께 나가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도움이 될 여지가 있으니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이쪽 일은 걱정 마시고요.”
둘은 대령의 속뜻까지도 다 알아들었지만, 그럼에도 별말은 없었다.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현실적으로……
어쩌겠나.
모두를 생각하면 이게 맞았다.
그리고 둘은 그런 면에 있어서 무척이나 닮은 꼴이었다.
필요하다면 정도 이상으로 냉정해질 수 있었다.
“조영상, 박중 다 오라고 해.”
그렇게 둘이 나가자, 대령은 애써 숨기고 있던 격양된 감정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 말에 부하 병사 둘이 대번에 나가서 조 소령과 박 대위를 데리고 왔다.
“박 대위.”
“네.”
“남쪽이 심상치 않다고 했지?”
“네. 라드가 너무 늘었습니다. 아직 크기가 작기도 하고 무리를 이루지 않아서 위협이 되진 않습니다만……. 근처에서 생존자 무리가 당했는지 어쨌는지…….”
대령은 박중 대위를 그저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친구는 그냥 군인이로군.’
김태평, 정유현은 잠깐 나갔다 온 것만으로 사태의 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던데.
이 친구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한 일인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기실 그 둘의 추론 능력이 이상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니까.
‘그래도 시키는 일은 잘하지.’
대령은 입맛을 다시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영상을 바라보면서였다.
“청주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언제지?”
“통신으로는 폭격 이전이니 거의 5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는?”
“음……. 두어 달 되었을 겁니다. 비공식적으로 만난 것까지 다 해도 그 이후로는 아마 없을 겁니다. 재난 본부가 저렇게 된 이후로는 남쪽으로는 거의……. 접근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땐 그냥 일상적인 내용 교류밖에 없었지?”
“네, 그렇습니다.”
둘 다 신통치 않았다.
망할.
이 둘 말고 저 둘이 부하였다면…….
‘아니, 아니지…….’
사람은 그릇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김태평, 유현의 그릇은 대령보다 더 크다고 봐야 했다.
특히 유현은 알게 모르게 병사들이나 장교들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일상 속에서조차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인간이었다.
‘그래……. 일단은…….’
그렇다고 그와 딱히 권력 다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 시점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예 박살 나 버리지 않겠나?
뭐…….
무력을 동원해 어디 가둬 두면 되기야 하겠지만, 일단 그 무력이라는 것도 좀 애매했다.
게다가 유현은 전혀 그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사령관 대리로 해야 할 일뿐일 터였다.
“박중 대위.”
“네.”
“청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게. 조 소령은 박 대위가 가져갈 만한……. 증거 자료를 만들어 줘. 대충 자료는 여기에 다 있네.”
“네, 알겠습니다.”
“서둘러야 해. 남쪽에 있는 것들, 그저 라드뿐만이 아닐 거야.”
해서 명령과 함께 지금 이 명령을 내리는 근거를 설명해 주었다.
밑으로 와 있는 놈들이 단순 라드가 아니라 김선태일 수 있다는 것.
“그런…….”
“이런……. 이거 큰일이군요.”
과연 놈의 이름값은 대단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해 놓은 짓들이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투 부대를 주로 이끌고 있는 박중으로서는 어느 정도 경쟁심 내지는 투쟁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더더욱 반응이 극렬했다.
“최대한 빨리 청주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도움을 이끌어 내 보게. 작은 부대라도……. 밑에서 올라온다면 확실히 도움이 될 거야.”
“네.”
“아주 소수로 이루어져야 할 거야. 자원을 받거나 또는 자네 판단에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인원들로 하게.”
“네.”
박중은 대답을 하면서 전에 김태평과 함께 세브란스까지 갔다 왔던 병사 둘을 떠올렸다.
‘그 둘이라면…….’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직접 놈들의 만행을 목도했던 이들 아닌가.
그렇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할 터였다.
“내려가는 김에 계룡대도 가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을 거야.”
“음.”
“계룡에 뭐 대단한 전략 물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청주 쪽으로 집중하기로 했다.
계룡에도 뭐가 있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똥별들이 괜히 묻어오기라도 하면…….’
세상이 망했다지만 여전히 권위는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대령이야 인정하지 않겠지만 밑에 놈들이 흔들린다면 다 의미 없는 거 아니겠나.
‘이건 권력욕이 아니야…….’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구심점으로 해서 일치단결해야 할 터였다.
“청주만 가게.”
“네.”
“자, 움직이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