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254화 (254/323)

254화 역습 (5)

“방금…… 들었나?”

김선태는 아스라히 들려온 비명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옆을 지키고 있던 신진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 무슨…….”

둘은 그렇게 뒤를 돌아보고 있다가,

탕타타타탕

바람결에 흘려오는 폭발음을 들었다.

총소리.

너무 거리가 멀어서 확실하진 않겠지만…….

이 시절에 저만한 소리를 낼 만한 물건이 총 말고 더 있겠나.

“우리…… 우리 쪽.”

“성동격서라고요?”

“상대가 수원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이런 망할…….”

신진식은 주변을 둘러보던 병사들부터 불러 모았다.

딱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다들 들려오기 시작한 소리를 들을 귀도 있고, 경험도 있었으니.

“서둘러! 돌아간다!”

“경계는 철저히! 여기서도 급습이 있을 수 있다!”

두 지휘관은 필사적으로 부대를 규합해 이동을 개시했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어차피 도보 아닌가.

차가 없는 이상, 낼 수 있는 속도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어두운 밤이고 또 저기 어딘가 적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었다.

‘시발.’

김선태로서는 사실상 처음 겪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승장구해 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대단한 지휘관이긴 하지만…….

그럴 만한 상황에서 그렇게 했던 것일 뿐이었다.

모든 것이 유리한 상황에서 혹은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해 왔다는 말이었다.

‘중간에 매복이 있다면…… 우리도 위험해.’

여기 달려올 때는 이따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수원이라고 해도 여력이 많을 거라 여기지 않아서 그랬다.

게다가 들려오던 총소리도 적지 않았나.

허나 지금 본부 쪽에서는 총소리가 아예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 말은 습격의 규모가 꽤 대단하다는 뜻 아니겠나?

아니, 어쩌면 라드가 풀려나왔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망할.’

김선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악의 상황으로만 치닫는 생각을 애써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주변을 훑어봐야 했기 때문에 심력 소모는 대단했다.

그런 김선태의 노력이 아주 무용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예상과는 달리, 수원은 아니었지만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쪽에서 총소리는 뭐지?”

“모르겠습니다. 움직이는 거 보면 예상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흐음…….”

“따라가 보시겠습니까?”

“위험할 거 같진 않군.”

“그렇긴 하겠죠.”

상대는 얼핏 봐도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인간들이 봤어도 한눈에 알 수 있었을 텐데, 심지어 라드들은 냄새로 상대의 감정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변화가 있을 뿐이긴 했지만…….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이 있을 수 있을까?

있을 수야 있겠지만, 평소보다는 훨씬 나을 터였다.

“가지.”

“다요?”

“음. 어쩔까.”

김민수는 위에서 내려다보다가, 이내 초거대 개체와 거대 개체들을 데리고 나섰다.

말보다 행동으로 나선 셈인데 라드들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물론 구우준은 예외였기에, 김민수는 움직이면서 동시에 말을 이었다.

“저놈들 털어먹을 수 있다면 어떨 거 같나?”

아직 확실한 건 없지만, 김민수나 구우준은 급격하게 세를 불리면서 그 과정 속에서 민간인들을 닥치는 데로 감염시켜 온 놈들 아니던가.

그렇다 보니 그냥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몇 있었다.

숙주마다 감염 후 행태가 조금씩 달랐다.

감염 전의 모습으로 그걸 다 유추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즉, 저 군인들은 감염된 후 적어도 초거대 개체나 거대 개체로 화할 가능성이 크단 얘기가 되었다.

몇몇은 구우준처럼 이성을 갖춘 라드가 될 수도 있었고.

“어마어마한 전력이 되겠죠.”

“그러니까, 말이지.”

“그럼 가시죠.”

“그래.”

해서 둘은 다른 라드들과 함께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눈에 보일 만큼 지척에서 쫓지는 못했다.

탕후퇴가 아니라 숫제 도망가는 처지에 속한 놈들인 주제에 좀만 가까이 가도 총을 쏴 대서 그랬다.

실제로 부주의하게 움직이던 라드 하나가 총에 맞아 낙오했다.

뭐 주요 부위를 맞은 것도 아닌 데다가, 거대 개체 급에도 속한 놈은 아니었으니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한 놈 잃은 건 잃은 것이지 않나.

게다가 이들은 라드다 보니 냄새만으로도 추적이 가능했다.

“따라붙은 놈이 있습니다.”

“이런 망할. 속도 높여. 그래도…….”

방금 총질을 본 김선태는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다.

따라붙고 있다는 건, 매복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않겠나.

확신이야 하기 어렵겠지만…….

보통 매복이 있다면 빨리 그쪽으로 가길 바라지, 이딴 식으로 추적을 붙여서 괜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진 않을 터였다.

적어도 자신이 지휘관이라면 그럴 것이었다.

타타타타타타

그 이유 때문에만 속도를 높히는 건 아니었다.

주둔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총소리가 더 크게 울려 오고 있었다.

아까보다 총질 횟수는 줄었다.

허나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씹.”

간신히 아까 도로가 막혀 차를 놓고 왔던 지점에 도달한, 후미를 맡은 김선태를 대신해 선두를 맡아 달려온 신진식은 시신 두구만 두고서 텅 비어 버린 도로를 보면서 욕설을 내뱉었다.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던, 즉 차분한 리더쉽을 보여 주던 그로서는 꽤나 파격이었다.

물론 놀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저것보다 더 지랄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상황이었으니까.

“씨발.”

뭐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우연이 필연처럼 이어져서 발생한 결과다 보니, 일개 사람의 머리로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뭐, 정유현처럼 추론 능력과 직감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니, 지금 이 상황은 유현이나 김태평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게 분명했다.

“씨이발…….”

그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이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신진식은 욕설을 내뱉다가, 이내 다시 주둔지 쪽을 돌아보았다.

타타타타

아까보다 총성이 더 커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총소리 횟수는 줄었다.

탄약이 비어져 가고 있든지 아니면 죽어 가고 있든지 둘 중 하나였다.

둘 다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일단…… 가지.”

“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그를 따르고 있는 병사들은 훈련 정도도 그렇고, 전우애도 뛰어난 편이었다.

오밤중에 차도 아니고 도보로, 적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긴 거리를 오가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령에 불만을 품는 이는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신진식보다도 서둘러서 움직이고 있었다.

두두두두

숫제 달리는 수준이었다.

어차피 후미는 김선태가 맡았다.

그렇다면 후방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였다.

타타타타

그만큼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그러자 총소리 외에 다른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크아아아

-죽여!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의 소리였다.

짐승 울음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남성 호르몬과 스테로이드 등의 영향으로 인해 성대가 지나치게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심지어 의미 있는 단어를 말하더라도, 대번에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랐다.

“제기랄.”

오면서 내내 걱정은 하긴 했더랬다.

김선태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신진식 또한 김선태를 따라 굵직굵직한 일들에 끼어든 몸 아닌가.

‘라드들이 풀려났구나.’

수백에 달하는 라드들.

놈들이 철조망 안에서 풀려났을 거란 생각을 하자, 뒷골이 당겨 왔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준비한 무기가 오히려 역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칼이 될 줄이야.

탕그렇게 가다 보니 점차 라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별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수백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도 아니고, 몇 안 되는 놈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건데 문제가 되겠나.

다만 병사들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가고 있었다.

라드가 눈에 보인다는 건…….

그들이 계획했던 작전이 망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꾸로 되었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시발, 대체 언제 오냐고!”

그렇게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임시 주둔지를 눈앞에 두었을 때, 일행은 몇몇 생존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몇몇이었다.

그나마 높이 쌓아 올린 초소 위에 있던 인원들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다.

아마 경계에 나선 인원들 말고는 다 죽거나 라드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인원들 태반이 공병들이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받은 방향성 자체가 다르지 않나.

“정리…… 정리해! 수류탄 까!”

참담한 마음에만 젖어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물경 400을 헤아리는 라드들이 철조망 안팎을 메우고 있었다.

흩어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놈들은 굶주렸고 또 사람을 물어야 한다는 본능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주둔지 내에 몇 남지 않은 인간들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김선태 부대에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저 많은 라드들을 고스란히 상대해야 했으니.

쾅콰아아앙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류탄이 충분하진 않아도 꽤 구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제대로 던지는 거야 문제될 일이 없었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훈련만큼은 단 한 번도 게을리한 적이 없었으니.

“크아아!”

그렇게 수류탄으로 밀집되어 있는 라드들의 숫자를 크게 줄이자, 라드 중 일부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도망가기 시작했다.

또 몇몇은 분노에 젖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면 철조망 때문에, 이미 망가진 문 말고는 도망가는 놈과 분노한 놈 모두 갈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즉 신진식으로서는 둘을 분간하기는커녕 그냥 총질하기에 여념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타다다다다

탄약 소모량은 극심했다.

원래는 이 총알을 쏴 대야 할 놈들이 저기 저 수원에 있는 놈들이었어야 했다는 생각은 잠시도 떠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여유롭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건, 유현과 김태평 그리고 박중 일행이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갔군.”

“확실히, 교수님 말대로네요.”

“네. 주둔지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저렇게 될 거 같더라고요.”

“슬슬 탄약 없어서 뒤로 빠지는 병사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주둔지 내에 점멸하는 불빛에 의지해 인간과 라드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원래 같으면 냄새에 걸렸을 터였다.

인간이 아니라 라드에라면.

하지만 이들은 모조리 김 주무관의 쥐를 지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몇 마리는 스트레스와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벌써 죽었지만.

단체로 움직일 때는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덮칠까요?”

선두에 있는 건 박중이었다.

유현과 김태평은 민간인이었을 라드를 보고도 딱히 놀라거나 하지 않았지만, 박중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군인은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저기 있는 놈들을 죄 쳐죽일 상상만 하고 있지 않을까?

“좀 더 기다리죠. 아직 라드가 많습니다.”

“네. 여유를 갖죠.”

박중에게는 유현과 김태평도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적이 너무 미워서, 그런 마음은 잠시 밀어 두기로 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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