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역습 (7)
죽음.
김선태의 머릿속을 방금 스쳐 지나간 단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는 그 자신이 만들어 놓은 라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고, 뒤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라드들이 있었다.
측면으로 날아들었던 일제 사격의 여파도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 외에 다른 단어가 떠오른다면, 그것이야말로 김선태가 미쳤다는 증거 아니겠나.
“신 대령!”
“네!”
물론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순순히 죽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곧장 명령부터 내렸다.
지휘관은, 그중에서도 특히 현장 지휘관은 어떤 상황이 와도 당황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수하들을 이끌어야만 했다.
“너는 정면만! 모자라는 탄약은 수급했지?”
“네, 네! 알겠습니다!”
그 덕에 잠시나마 패닉에 빠지려 했던 신진식 대령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수하들을 독려할 수 있었다.
“야야! 빨리! 빨리! 앞을 봐!”
그사이 김선태는 뒤쪽을 맡고 있던 수하들을 돌아보았다.
아주 빠른 속도로 수하들이 수하들이었던 것으로 화하고 있었다.
일단 붙고 나면 총이 있건 뭐가 있건 간에 죽어 나가는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측면 부대 후방으로 사격!”
“네, 하지만 아직…….”
“그놈들 조용한지 벌써 몇 분이데, 후방으로 사격!”
“그…… 저 병사들은…….”
“이미 늦었어! 쏴! 네놈 머리부터 쏴 줄까?”
“아, 아닙니다!”
포기해야 했다.
늦었다, 저긴.
정말이지 자원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키워 낸 수하들이었기에 아쉬움은 가득했지만……. 뭐 어쩌겠나.
저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본대가 다 날아갈 지경이었다.
타타타타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우였던 이들을 향한 사격이 쏟아졌다.
그와 더불어 전우를 공격하던 라드들도 일부 쓰러졌다.
하지만, 그야말로 일부일 뿐이었다.
“밀어붙이지.”
“네? 지금 너무 많이 죽어 나가는 거 같은데…….”
김민수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라드는 많았다.
아까 확보한 민간인들.
이제 막 라드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작고 약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감염은 시킬 수 있었고 그 때문에 탄약을 소모시킬 수 있었다.
‘이런 망할…….’
거대 개체들, 즉 조악한 방패 같은 것을 들이밀고 설치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딱 봐도 방금 잡아들인 민간인이었을 라드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수가 적었다면 그냥 육탄전으로 붙어도 좋았을 터였다.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물경 100개체를 헤아리는 숫자였다.
당연했다.
매일 그만큼의 민간인을 잡아들이고 있었고, 여기서 라드로 생산하고 있었으니까.
‘버틸 수 없어.’
방금 라드가 된 놈들은 속절없이 쓰러지는 중이었다.
허나 김선태의 부대 또한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탄약이 빠르게 줄고 있었다.
수류탄?
아까 원래 주둔지에 있던 놈들을 처리하느라 다 소비한 지 오래였다.
‘죽는다…….’
또다시 죽음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확히 같은 단어였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아깐 그저 압도적인 상황 속에 갑작스레 떠오른 팝업창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 떠오른 죽음은 차분한 계산 끝에 솟아난 결과물이었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확률로…….
여기 있다간 죽을 게 뻔했다.
‘도망가야 한다.’
부하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그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혼자 내뺄 수 있을까.
그것도 무리였다.
적어도 차량도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무리였다.
그렇다면…….
“계속 사격해!”
“탄약이 부족합니다! 주둔지에서 빼 와야 합니다!”
“너, 너! 나랑 같이 간다!”
“네? 주둔지에도 라드들이……!”
“뚫어야지! 여기 그냥 있으면 죽어!”
“아, 알겠습니다!”
김선태는 주변에 있던 병사들 중 그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즉 실력이 뛰어난 병사들을 데리고 정면으로 뛰었다.
그 자신도 일신에 지닌 무력이 결코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정면을 뚫고 텅 빈 주둔지로 향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마침 운 좋게 신 대령의 부대가 대부분의 라드를 정리한 덕도 있었다.
“자네는 후방 지원해! 나는 탄약 가지러 갈 테니까. 너, 너! 따라와!”
“네!”
신 대령은 시원스레 답은 했지만, 재차 보급받은 탄약이 5분의 1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듯이 달려가고 있는 김선태를 보고 있자니, 역시나 희망이 조금이나마 샘솟았다.
저 사람이라면…….
적에게는 악마 그 자체지만 아군일 때는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저 사람이라면 지금 이 상황도 어떻게든 해결을 해 줄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막아! 사격 계속해! 야야! 조정간 단발로! 연발로 소모하지 마! 조준 사격이다! 가까이 오는 거 겁내지 마! 그놈들은 우리 후방 부대가 맡는다!”
무엇보다 김선태가 남겨 두고 간 부대에 대한 지휘도 중요한 상황이었다.
같은 역량을 지닌 부대도 누가 어떤 지휘를 하느냐에 따라 전투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던가.
‘그래……. 중장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죽어라고 버틴다…….’
이러라고 자신을 남겨 준 것이리라.
신진식은 최선을 다해 부대를 지휘해 라드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여기, 여깄습니다!”
“많지는 않습니다만…….”
“저놈들 다 죽일 정도는 됩니다!”
그사이 김선태는 차출한 네 명의 병사들과 함께 주둔지 안으로 들어왔다.
안쪽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어려울 만큼이나 많은 시신들, 그러니까 조각한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대부분은 군복을 입은 시신들이었는데 아무래도 공병들의 시신인 듯했다.
물론 라드였던 놈들의 시신들도 있었다.
그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광경은 김선태에게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더욱이 이 계획을 밀어붙이던 이가 자신이었다 보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망할…….’
그는 욕설을 내깔기면서, 남겨 두었던 차량부터 찾았다.
병사들은 그가 지시한 대로 총알 찾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겁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나쁜 놈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김선태의 머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이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다. 내가 죽으면…… 정부는 망해.’
일견 맞는 말이기도 했다.
폭력과 억압으로 일어선 정부 아니던가.
그 뒤에 감추어진 추악한 비밀까지 감안하면, 압도적인 무력은 필수였다.
그리고 그 무력을 갖추는 데 가장 유리한 인물은 바로 김선태였다.
“어, 중장님?”
“차량으로 이동한다! 언제 총알 손으로 다 옮기고 있어!”
“아! 역시!”
물론 핑계도 다 준비되어 있었다.
워낙에 그럴싸한 핑계였던 데다가, 병사들의 김선태에 대한 충성 또한 훌륭했기 때문에 병사들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들이 찾아낸 탄약들을 차곡차곡 차 안에 쌓았다.
시간을 더 들이면 아마 충분한 탄약을 옮길 수도 있을 터였다.
허나, 김선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일단…… 저기로 이동해서 신진식이라도 데리고 튀면 돼. 정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는 후방에서 라드들이 날뛰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도망만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나.
탄약을 가지고 간다고 상황이 바뀔까?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애초에 충분한 탄약을 가지고 있었다면 모를까…….
옮기느라 허비된 이 몇 분이 저쪽 방어선에 있어서는 치명적이었을 터였다.
물론, 가서 봤는데 생각보다 잘 막고 있다면 그에 따른 대비도 하긴 할 생각이었다.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하지.’
전 부대를 버리는 방법부터 다 지키는 방법까지 고려한 그는, 뻔뻔한 얼굴로 병사들을 불렀다.
“가지. 한시가 바빠!”
“네!”
병사들이야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의 지휘관에게 절대 충성할 뿐이었다.
부우웅
곧 탄약과 우수한 병사들을 실은 차가 부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
여전히 총소리가 하늘을 메우고 있었지만, 그 수는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어선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 와중에도 최선을 다했는지 수많은 라드들이 쓰러져 있긴 했지만 잘 보면 태반이 오늘 라드가 된 녀석들이었다.
“으, 으아아악!”
“아, 안 돼……!”
그에 반해 병사들을 유린하고 있는 놈들은 크기가 컸다.
저들이 주력이라는 건, 전술의 ‘ㅈ’ 자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신진식만 데리고…… 가야겠군.’
김선태는 차디찬 눈으로, 아직 살아 있는 부대원들을 지나쳐 달렸다.
“주, 중장님!”
“여기, 여깁니다!”
“구원군이 왔다, 탄약이 왔다!”
모두의 희망도 지나쳐 달렸다.
“중장님! 탄약은 어떻게…….”
“멀쩡한 놈들 태우기나 해.”
“네?”
“작전상 후퇴다, 이대로 여기서 싸우다간 다 죽어. 개죽음이다!”
“아니…….”
그렇게 지나친 이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은 건 아니었다.
삽시간에 절반도 넘는 이들이 죽었지만, 그럼에도 정예는 정예다 보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근접해 버린 라드들 때문에 앞으로는 점점 더 빠르게 줄어들기만 하겠지만…….
“신 대령!”
“네!”
“일단 타!”
“어…… 네!”
그 와중에 모자란 병력을 수습해 대항하고 있던 신 대령까지 빼 갔으니 어찌 되겠나.
대열이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던 부대는 그야말로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저기, 저 차…… 도망가는군.”
“운이 나쁜 거 같군요.”
“그러게나 말이야.”
김민수와 구우준은 그런 김선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둘이 보유한 거대 개체와 초거대 개체들을 무작정 쏟아부었을 리가 있는가.
한참 전부터 다가가고 있던 이들이었다.
측면 사격이 있기 전에 이미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총알이 충분한 것으로 보였다면 그것으로 그치고 빠졌겠지만, 얼마 안 되는 피해만 감수하면 병사들을 싹 밀어 버릴 수 있을 거 같아서 공격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선태가 탄 차량은 아직 대기 중인 초거대 개체와 거대 개체들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쾅그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뭐, 뭐야!”
운전대를 쥐고 있던 김선태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소리를 질렀다.
길도 달린 게 아니다 보니, 또 어두운 밤이다 보니 노면 상황을 확인하진 못했더랬다.
하지만 충격은 분명 측면에서…….
“읍…… 으윽…….”
고개를 돌려 보니, 거대한 창이 차량 옆구리를 관통한 상황이었다.
뒷자리에 있던 병사의 입에서는 왈칵왈칵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쾅그것으로 끝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터였다.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엔진은 괜찮았으니.
하지만 철로 된 창은 길도 아닌 곳으로 접어들어 느려진 데다가 헤드라이트 때문에 눈에도 잘 띄는 차량을 그냥 두지 않았다.
쾅쾅연속으로 날아드는 철창에 차량은 곧 퍼져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라드들이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김선태의 머리에 또 한 번 죽음이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