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탈주 (1)
“이런 망할!”
“쏴! 쏴!”
형편없이 건물 벽을 꼬라박고 멈춰 선 자동차.
충격과 함께 병사 하나가 더 정신을 잃었다.
허나 나머지는, 김선태와 신진식 대령을 포함한 인원은 즉시 차에서 내려 총을 쏴 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
덕분에 가까이 다가오던 라드들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무려 거대 개체 둘이 쓰러졌을 지경이었다.
허나, 그뿐이었다.
슉뒤이어 쇠창살이 날 들기 시작했다.
조준은 형편없었다.
허나 워낙에 큰 것들이 날아들고 있는 데다가 거리가 가깝다 보니 위협적이었다.
“어, 어쩌죠?”
신진식 대령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당황한 채로 물었다.
김선태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나.
일단 다 같이 살아 나간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나려면…….’
김선태는 그저 혼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한 것은 그가 여태 보여 준 모습 때문에라도 이놈들은 달리 생각할 거란 점이었다.
그 믿음을 배신해야 한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한번 저버린 양심은 이미 더럽혀진 지 오래다 보니 반딧불이보다도 못한 빛을 내다가 절로 사그라들기 마련이기에 그랬다.
“앞장서! 뚫는다!”
“어…… 네?”
“뚫어야 살아! 여기 있으면 다 죽어!”
대강 봐도 라드의 수는 열을 헤아렸다.
같은 수라고 해도 불리할 텐데, 더 많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원거리에서 투척 무기를 던질 정도의 지능이 있는 것들이었다.
그에 비해 이쪽은 탄약만 챙겼을 뿐, 정작 탄창을 채우지 못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총탄도 거의 없었다.
더욱이 방금 비워내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겠나.
“가, 갑니다!”
“네!”
심지어 모두 당황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직 김선태만이 확신에 찬 얼굴로 소리를 치고 있으니, 나머지는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타다다다
우선 앞장서게 된 것은 병사였다.
김선태의 눈에 띌 정도로 우수한 녀석이었던 만큼, 달리면서도 지향 사격이 제법 정확했다.
벽 뒤에 숨은 라드가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였다.
슉허나 라드가 어디 한둘이라던가.
흩어져 있기까지 한 데다가 등에 철창을 여러 개 메고 있다 보니 다른 곳에서 철창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슉다행인 것은 라드 놈들은 덩치가 크면 클수록 충동이 크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보니 철창을 던지기에 합당한 완력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조준이 형편없었다.
움직이고 있다 보니 더더욱 맞기는 어려웠다.
“컥.”
물론 숫자가 많다 보니 이내 맞아 나뒹구는 이가 나오긴 했다.
“어…….”
“달려! 달려!”
앞서가던 병사가 저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 나온 쪽을 돌아보자, 김선태가 등을 쳐 댔다.
“어쩔 수 없어. 언젠가 반드시 복수해 준다!”
그러곤 진심이 반쯤 섞인 말을 했다.
당연히 이 상황을 그저 모면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병사도 무섭긴 매한가지였기에 그저 내달렸다.
“도망간다!”
“따라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만 던져 대던 놈들이, 그 육중한 몸을 내달리기 시작했으니까.
장거리 달리기로 넘어가면 아무래도 라드에 비해 인간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여기 있는 이들은 모조리 군인이지 않나.
군인이었던 이들도 아니고, 현역 군인이었다.
훈련과 작전에 지속적으로 투입되고 있는.
“으, 으악!”
하지만 단거리 달리기에서는 도저히 라드를 떨쳐 낼 도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뒤에 있던 병사 둘이 더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셋뿐이었다.
그마저도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악, 하악!”
병사, 신진식 대령과 내달리던 김선태는 뭔가 결정했다는 듯한 얼굴로, 병사의 뒷덜미를 잡았다.
“왜, 하악.”
최선을 다해 달리던 병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김선태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김선태는 별말도 없이, 그저 감아쥔 손을 뒤로 내던졌다.
완력이 제법 대단한 데다가 병사는 전혀 마음에 준비가 안 되어 있던 터다 보니 속절없이 뒤로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탕“왜, 왜! 으. 으아!”
김선태는 심지어 병사를 그냥 그렇게 두지도 않았다.
바로 총을 쏴서, 무력화시켰다.
“주, 중장님?”
달리던 신진식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김선태는 그런 신진식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어쩔 수 없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해.”
“그…….”
신진식도 그런 김선태를 향해 더 말을 붙이진 못했다.
그의 말마따나 라드의 추격이 조금이나마 느려져서 그랬다.
왜?
인간인 데다가, 피까지 흘리는, 심지어 건강히 날뛰고 있는 병사를 두고 라드들끼리 잠시 몸싸움이 벌어져서 그랬다.
구우준이나 김민수 정도 되는 놈들이 아니라면 저만한 먹잇감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지 않나.
어디 실험실에서 나온 결론은 아니었다.
다만 김선태는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신진식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지금껏 병사를 이용한 적이 없었을 뿐, 민간인은 숱하게 희생시켜 온 이들이었다.
“부지런히 뛰어. 곧 따라온다.”
“네, 네!”
하여간, 둘은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을 이용해 부리나케 뛰었다.
이미 체력의 한계는 넘어선 지 오래가 될 정도로.
땀 대신 피가 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뛰었다.
종래에는 나름 단련된 다리가 완전히 풀려 버렸을 지경이었다.
“하아, 하아.”
“흐…….”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뒹굴었다.
그렇게 바로 누운 후에야 비로소 해가 완전히 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전혀 알 수 없었고.
그저 정신없이 달렸을 뿐이었다.
“흐……. 이제, 이게 어쩌죠?”
“어쩌긴. 돌아‥…. 가야지.”
그렇게 자리에 누운 채, 둘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곤 놀라운 정신력을 통해 몸을 일으켰다.
몸은 이미 한계를 맞이했으나, 이대로 있으면 죽는단 생각으로 간신히 일으킨 몸이었다.
‘총은…… 탄창 하나에 권총 하나…… 라드 떼라도 만나면 그대로 죽음이군.’
김선태는 또 라드를 만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부터 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신진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으나, 훈련된 군인 둘이 움직이는 것과 홀로 움직이는 것을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둘 쪽이 훨씬 확률이 높을 터였다.
최대한 조심해서, 라드를 피해 움직이는 것이 좋다 이 말이었다.
뭐 그게 가능한가를 따지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하여간에 최선은 그랬다.
“우선…….”
그사이 신진식은 시계에 딸린 나침반을 통해 북쪽을 가늠했다.
뭐가 되었건 북쪽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가다 보면 뭐라도 나올 터였다.
병사를 만나면 제일 좋을 테고.
“가시죠.”
“그래.”
그렇게 둘이 탈주를 감행한 사이, 라드 떼 앞에 남겨졌던 병사들은 거의 다 제물이 되었다.
그나마 병사들이다 보니 저항이 극심해 죽거나 달려든 라드에게 물린 이들이 많았지만, 수십 명의 병사들은 김민수에게 물렸다.
“쫗을까요?”
“그래야지. 놈들은 가능성이 높아.”
김민수는 병사들의 라드화가 진행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구우준과 몇몇 라드를 이끌고 심선태를 쫓기로 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헛수고일 가능성이 높았다.
“헌데…… 흔적이 벌써 오래됐어요. 진짜 죽자사자 달린 거 같은데…….”
“병사들을 다 희생시키면서 말이지.”
“네.”
상대가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기에 그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김민수는 이들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만한 놈은 재난 본부 쪽에서 봤던 외에는 처음 보았다.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만 했던 게 분명해……. 지위가 높아 보였는데도 그랬다는 건…….’
미친놈이란 뜻이었다.
이기적이고, 공감하지 못하고.
그 말은 곧 자기와 같다는 말도 되었다.
“가지.”
“네.”
그는 곧 마주하게 될 이름 모를 사이코패스를 기대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건 김선태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김민수에 비하면 현저히 느릴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도 차도 없이 덩그러니 놓이게 된 바깥은 그야말로 위험 지대였다.
‘제기랄…….’
김선태는 말없이 자신 옆을 지키고 있는 신진식을 돌아보았다.
그 또한 속으로 의미 없을 욕을 내뱉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방에 늘어선 폐가 때문에 시야가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위험이 산재해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방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또한 신경이 곤두서게 만들기 부족함이 없었다.
가뜩이나 잠도 못 자고 뭐 먹은 것도 없는 둘에겐, 실체화되지 않은 위험조차 위험 요소란 말이었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좋군.”
“슬슬…….”
“냄새도 맡을 수 있으…… 음. 동류가 있군그래.”
김민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이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근거리에, 그러니까 목표로 삼고 있는 놈들보다 더 가까이에 라드가 있었다.
그저 인간을 보면 물어뜯을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당장 내일 어찌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바이러스에게 끌려다닐 뿐인 저열한 놈들일 것이 분명했다.
그에 비하면 김민수, 구우준은 한차례 진화한 족속이었다.
뛰어난 이성과 그에 걸맞은 힘 그리고 체격까지.
어쩌면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다른 이들을 물라는 본능은 본능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계시일지도 모른다…… 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쓸어버릴까요?”
“아니, 굳이……. 급한 일부터 처리하지.”
“혹 이놈들이 공격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가 나서도록 하지. 죽 써숴 개 줄 수는 없으니.”
“네.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러지.”
동류라고 했지만, 놈들이 물어 버리면 용케 찾아낸 진짜 동료 후보가 망가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 불안감 때문에라도 김민수는 일행을 데리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달리면 한동안 쉬어야 하지만, 구우준의 감을 믿었다.
녀석의 추적술은 지금까지 대개 맞았으니.
두두두두
그렇게 김민수가 달리기 시작하자, 앞에 있던 다른 무리가 자극을 받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끌어 낸 소음과 진동은 이내 김선태에게도 전해졌다.
“망할.”
“라드다…….”
“일단 숨어!”
“놈들은 냄새…… 냄새로…….”
“그렇다고 여기 있을 거야?”
“그건 아니, 아닙니다.”
둘은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폐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곤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기고 총구를 겨누었다.
‘라드 중엔 총을 두려워하는 놈들이 있어……. 그리고 이놈들…… 이렇게 조심성 없이 달려드는 걸 보면 놈들은 아냐.’
속으론 희망 사항을 되뇌고 있었다.
그래야 했다.
일반적인 라드여야만 했다.
놈들은 사납긴 해도 멍청하고 또 조심성은 부족한 주제에 공포심은 있었으니.
그것만 잘 이용하면…… 둘이라도 도망갈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으려니, 아까 둘이 서성이던 곳을 향해 라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휴.”
딱 걷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구세대 라드였다.
방심할 수는 없겠지만, 한결 나은 상대다 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