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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59화 (259/323)

259화 탈주 (3)

드다다다다

김선태는 구닥다리 오토바이를 몰고 빠르게 달렸다.

그 와중에 물린 쪽 팔은 웃옷을 찢어 묶었다.

감염을 미루기 위함인데…….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있겠나?

이런 나이브한 방식으로 예방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감염된 사람들이 다 억울해서 죽어도 좋을 터였다.

“씨발…….”

김선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구우준이 보였다.

다른 라드들은 이미 흥미를 잃었거나 혹은 명령 때문에 뒤로 물러선 듯했다.

부다다다닥

김선태는 또다시 오토바이에 속도를 내고 더 멀리 갔다.

혹 구우준이 뛰어오면 어쩌나 했지만 녀석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오토바이는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움직이고 있었으니.

더군다나 라드에게 물린 이는 늦어도 수분, 정말 길면 10분 이내에 발작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벌써 2, 3분은 지난 마당이었다.

“흐, 흐!”

김선태는 허리춤에 꽂아 두었던 대검을 뽑고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자를 수 있을까.

아니, 자르기 전에 아픈 걸 참아 낼 수 있을까?

‘저 꼴이 된다……. 안 될 말이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 같았지만, 아까 보았던 라드 놈들을 떠올리고 나니 손이 절로 움직였다.

“으, 으아아악!”

콱 하는 소리와 함께 김선태의 굵직한 팔뚝에 대검이 갖다 박혔다.

단숨에 자르려고 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대검이라서도 그랬고, 아무래도 자기 팔을 자르는 것이다 보니 자세가 나오지도 않았다.

“뭔…… 지랄이지?”

멀리 있던 구우준은 돌연 들려온 비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발작인가.”

그러다가 이내 다시 천천히 걸었다.

생각해 보니 라드화되는 과정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하는 놈들이 꽤 있지 않던가.

저놈이라고 해서 예외일 거 같진 않았다.

해서 그냥 천천히 걸었다.

잘됐다 싶기도 했다.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 어디에 있는지 쫓지 못할 염려도 덜었으니까.

끼기기긱

김선태는 그렇게 박힌 칼을 바라보다가 이내 톱질을 하듯 칼을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비명이 절로 새어 나왔다.

땀도 쉴 새 없이 흘렀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통증이 지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대로 혼절해도 이상할 거 없을 만큼 끔찍한,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라드가 되는 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참아 냈다.

그것만은…….

오히려 라드를 끊임없이 생산해 왔고 또 그걸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김선태이기에 더더욱 거부감이 심했다.

“으, 으.”

김선태를 싫어하는 이들도 이 광경을 봤다면 경이로움을 느꼈을 터였다.

마취도, 진통제도 없이 자기가 자기 팔을 무딘 칼로 잘라 내다니.

드드드득

마침내 뼈에 닿았다.

뼈의 껍질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 아는 사람들은 두 눈을 질끔 감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게 그냥 그렇게 견딜 만한 통증이었다면 관우의 고사가 천년이 넘도록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겠나.

“으…….”

김선태는 비명만으로 이걸 견뎌 냈다.

툭이내 팔이 떨어져 내렸다.

아까 질끈 동여맨 덕에 피는 그렇게까지 흘러내리지 않았다.

“으…….”

김선태는 마지막으로 이로 붕대 삼아 동여매어 둔 옷가지를 씹어다가 당겼다.

“흐, 흐…….”

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팔을 보다가, 이내 구우준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여전히 느긋하게 걸어오는 중이었다.

개새끼.

김선태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고서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는 액셀을 밟았다.

다행히 한번 켜진 시동은 쉬이 꺼지지 않아서, 김선태는 금세 더 멀어질 수 있었다.

부다다다

오래된 데다가 관리도 안 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는 꽤 커다랬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구우준으로서는 들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이었다.

“응?”

아까 비명이…….

라드화가 진행되면서 내질렀던 게 아니란 말인가?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신음 소리를 냈었는데, 그건 대체 뭐지?

지금 저 오토바이는 누가…….

설마 누군가 구하러 왔나?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는데……?

여러 생각이 오가면서, 구우준은 일단 달렸다.

뭐가 되었건 진상 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이 미친놈이…….”

그렇게 아까 비명이 있었던 자리에 닿았을 때 구우준이 발견한 것은 팔이었다.

잘라 냈다기보다는 누군가 거칠게 뜯어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이나 단면이 엉망인 팔.

이걸 맨정신으로 잘라 냈다고?

“무슨……. 이게…….”

라드가 된 구우준조차도 엄두도 못 낼 만한 일이었다.

헌데 한낱 인간이 이런 짓을 해?

‘저 새끼……. 대체 뭐지?’

평범한 군인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라드를 생산해서 공격을 꾀한다는 것부터가 비상한 놈 아닌가?

라드 입장에서는 생산이니 뭐니 하는 말이 기분 좋을 수가 없긴 했지만, 하여간,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김민수가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 정도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건 따라가야겠는데…….’

김민수 아니라 구우준도 개인적인 호기심이 자리했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오토바이도 오토바이지만 군데군데 떨어지는 핏자국 때문에라도 쫓는 게 그리 어려울 거 같진 않았다.

구우준은 당장 돌아가서 김민수에게 보고했다.

“뭐? 팔을 잘라?”

“네.”

“무슨 그런…….”

“쫓아야 합니다. 저런 놈은 드물어요.”

“그래, 그렇지. 잘라 냈더라도 일족이 될 수 있겠지? 시기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흠.”

김민수 또한 흥미가 돌긴 했다.

사실 다른 라드 백 개체가 있건 말건 자신과 비슷한 개체 하나가 더 중요치 않나.

하지만 이번엔 나름 피해를 입었고, 그 대가로 병사 출신 라드를 꽤 여럿 구했더랬다.

이놈들을 데리고 북상하는 건 아무래도 좀 그랬다.

시간이 필요했다.

더 강해질.

마침 이 주변엔 아직 생존자들이 남았고 꼭 그놈들 아니더라도 음식이 있어 보이니 잠깐 머무르는 것이 좋아 보였다.

“저 혼자 다녀와도 됩니다.”

“아니, 혼자는 위험해. 당장 라드도 위협이 될걸. 게다가 서울은…… 원래 인구가 많은 곳이었으니 생존자들도 많겠지.”

“아.”

김민수는 혼자 가겠다는 구우준을 만류하고, 거대 개체 셋을 붙여 주었다.

남은 거대 개체가 열 개체였으니 상당한 전력을 붙여 준 셈이었다.

“몰래 가야 하는 곳이 나오면 떼고 다녀도 돼. 이놈들, 잘 싸우긴 해도 몰래 움직이는 건 안 되니까.”

“네.”

그렇게 전력 보강을 한 구우준은 곧 거대 개체들을 데리고 김선태가 간 곳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갈 길이 먼 데다가 동력 기관도 없다 보니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 판단해서 그랬다.

“흐, 흐…….”

한편, 오토바이에 탄 김선태는 그저 정신없이 달렸다.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밤을 샜다거나 부하들을 잃었다거나, 종래에는 가장 신뢰하던 부하조차 배신해야 했던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통증과 출혈이 그의 정신을 흐트려 놓고 있을 뿐이었다.

“하……. 시간이…….”

그 와중에도 김선태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잘린 팔에서 들고 온 물건이었다.

피에 잔뜩 젖은 와중에도 방수 기능이 있는 제품이라 그런가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10분…… 15분? 어쩌면 20분…….’

정작 정확지 않은 것은 그의 기억이었다.

당최 언제 물렸는지 기억이 제대로 나질 않았다.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적어도 10분은 지났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감염을 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흐……. 살아남은 건가…….’

돌이켜 보면 언제고 살아남아 왔던 그였다.

사태가 터지기 전이라고 해서 위기가 없었겠나.

대통령이 안 좋은 마음을 먹자마자 그의 칼을 자처한 김선태였다.

당연히 온갖 구린 일들을 하게 되었고, 아직 인프라가 돌아가고 있던 시절엔 그것만으로도 위험했다.

사태 이후?

그때는 실질적인 위험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아무리 잘 무장하고 훈련된 이들과 함께 나갔다 해도 위험이 어찌 없었을까.

‘이번에도…… 살아남았어.’

김선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졌지만, 그럼에도 이겼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어마어마한 위기를 넘겨서일 터였다.

‘이 정도 인상이면 부하들이 뭘 의심하진 않겠군…….’

동시에 김선태는 당장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다.

저기서 살아 돌아올 놈이 있을까?

없을 터였다.

만약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놈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 먼길을 온다?

그런 놈이 있다면 그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부하들을 지키다 팔까지 잘린 중장이라…….’

그 만약을 소거하고 보면 지금 김선태의 모습이야말로 전쟁 영웅 그 자체였다.

평범한 전쟁이었다면 이만한 부상이 있을 시 무조건 퇴역해야 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전장도 아니지 않나.

적어도 어느 한쪽이 절멸할 때까지는 이어질 전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팔 하나 잃는 건 훌륭한 훈장 대신으로 생각해도 좋을 거 같았다.

부다다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던 김선태는 흐트러졌던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다시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훈장으로 삼으려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면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 것이 분명한 추격자들을 따돌려야만 했다.

‘기름이 꽤 있구만그래.’

불행 중 다행으로 기름이 남아 있었다.

성능이 개판이다 보니 연비를 예상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서울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서울로 가고 있군.”

한참 뒤, 그러니까 두어 시간이나 지난 후 김선태가 잠시 서 있던 곳에 도달한 구우준은 아까 김선태가 그랬던 것처럼 북쪽을 바라보았다.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이라 그럴까?

하늘은 맑디맑았다.

덕분에 서울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오토바이 바퀴 자국도 그랬다.

딱 봐도 조작을 했다거나 한 것 같진 않았다.

다친 와중에, 팔까지 자른 와중에 여기까지 와서 조작을 했다면 별수 없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이면 놓쳐야지 뭐.

“가지.”

“응.”

하여간, 생각을 정리한 구우준은 세 거대 개체를 데리고 위로 향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강인하다 해도 인간이고 또 다친 몸인 김선태는 어디선가 멈출 터였다.

그에 반해 구우준은 결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강자니까.

횃불을 들건 뭘 하건, 그 결과로 자신들을 노출하건 간에 알 게 뭔가.

불안에 떨 것은 피식자들이지 그들이 아니었다.

“제길…….”

김선태는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서울 남쪽, 고속터미널 인근에서 기름이 떨어진 오토바이를 버려야만 했다.

길이 막힌 것도 아니었음에도 여기까지 오는 데 두어 시간이 걸렸다.

일단 속도가 느리기도 했거니와 길이 너무 엉망이어서 그랬다.

물론 걸어온 것에 비하면 체력이 남아 있어서, 더 걸을 순 있었다.

‘이쪽 지하…… 생존자들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생존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부하들에게 들은 말이니만큼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군복 입은 모습을 보면 어떻게 나올까?’

아직 이 근방의 생존자들까지 본격적으로 잡아들이고 있진 않았다.

허나 잡아들이는 모습을 아예 목격하지 못했을 거 같진 않았다.

‘뭐……. 방법은 있겠지.’

뭐가 되었건 뒤쫓아 오고 있을 놈들보단 낫지 않겠나?

그런 심정으로 김선태는 쉬지 않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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