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정찰 (2)
“김선태.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 어쩌다 잡힌 거지?”
“뭘 안 했는데 잡아간 겁니다. 그냥…… 저희 그룹은 간신히 살아남고 있었습니다.”
김선태는 물론 잡혀가는 쪽이 아니라 잡아가는 쪽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잡혀가는 쪽의 심정을 아예 모르냐, 그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제일 많이 지켜본 사람이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는 더 잘 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냥 잡혀간다라……. 확실히 소문대로군. 북쪽에서 넘어오는 거 같던데…….”
“네, 잘 들어 보니까…….”
김선태는 슥 눈치를 살폈다.
이전부터 쭉 고민을 했더랬다.
이 고속 터미널 쪽 놈들을 어떤 식으로 대할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번에 와서 확신했다.
이 물자는 피해 없이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이 맞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일을 좀 해야 했다.
‘부하들 다 잃고 아무 소득도 없이 돌아갔다가는 내 입지가 흔들리겠지.’
숙청?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 경애하는 대통령 각하께서는 정말이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갈아 치울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사람이 없으니까.
가뜩이나 인재가 없어 죽겠는데 갈아 치우긴 뭘 갈아 치운단 말인가.
“들어? 아, 놈들의 말을 들었다는 얘기겠지?”
“네, 그렇습니다.”
김선태는 속으로 떠올리는 생각과는 별개로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 밤의 격한 전투와 끔찍할 정도로 길었던 도망길 그리고 잘린 팔까지 더해져서, 지금 당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진정성이 뚝뚝 떨어져 나올 지경이었다.
“어떤 말이지?”
“네……. 그놈들…… 탈영병입니다.”
“탈영? 근데 그렇게 규모가 크다고?”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그랬던 모양입니다. 얘기 들어 보니까……. 아……. 너무 끔찍한 얘기라…….”
김선태는 말끝을 흐리면서,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자기 팔을 돌아보았다.
김태평이 보았다면 기함할 만큼이나 어설픈 연기였지만, 그건 김태평처럼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 보기에나 그런 것이었다.
아니, 일말의 의심이라도 품고 있었다면 알아차렸을 법한 가능성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김선태를 의심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어떤, 어떤 끔찍한 일인가?”
리더로 보이는 이를 포함해서도 그랬다.
그는 이미 김선태의 말에 몰입해 있었다.
아마 단지 김선태의 몰골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애초에 강북에서 넘어와 사람들을 잡아가는 군인들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오히려 그의 경계심의 빗장을 풀어 제낀 것일 터였다.
“갑자기 군복을 주더군요. 낡은 군복도 있고 새것도 있었습니다.”
“군복을……?”
“네. 하지만 완전히 같은 군복은 아니었습니다. 제것도…….”
“아, 확실히. 색은 군복 색인데…… 이런 건 처음 보네.”
김선태는 자신의 군복을 보여 주었다.
부대가 부대가 보니 당연히 군복이 달랐더랬다.
거기에 더해 그 자신은 허울뿐이긴 해도 중장이지 않나.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일반 병사들은 아예 처음 볼 만한 모양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처음에야…… 총으로 위협하면서 입으라니까 입었죠.”
“그래, 그래서.”
이제 리더는 김선태가 방금 밖에서 잡혀 온 사람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흥미진진해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물론 그렇다 해서 완전히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뭐가 되었건 이 거대한 집단을 지금까지 살아남게 했을뿐더러 그 위에 여전히 앉아 있는 놈 아닌가.
그런 놈에게 특별한 점이 없으리란 기대를 품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입고 나니까 다시 가뒀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가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수원 쪽이었습니다.”
“수원……?”
“네. 비행장이요. 제가 그쪽으로 예비군 훈련을 갔어 가지고 확실히 아는데 비행장 맞더군요.”
“아니, 그럼 그쪽에 있는 군인들이라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근처에 차를 세우더니……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건물이라. 그래서?”
김선태의 말은 퍽 자연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을 떠들어 대고 있지 않나.
물론 그 일을 저지른 놈이 당한 사람 입장이라고 치고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긴 한데…….
그 덕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는 마치 현장에 있던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주 오래된 건물인데…… 이상한 게 입구는 새로 만든…… 창고 같은 곳이었습니다.”
“창고……?”
“네, 안에는 저처럼 잡혀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왜 잡아 오는 거지? 일을 시키던가?”
“아, 아뇨. 이게 너무 좀…….”
“아까부터 너무 좀이라는 말만 하고 있는데 빨리 해 봐.”
리더의 말에 김선태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연기는 아니었다.
‘시발……. 이걸 실패할 줄이야.’
작전은 완벽했다.
아니, 완벽한 정도가 아니라 끔찍했고 동시에 악마적이었다.
이 세상에서 대통령만이 떠올릴 수 있는 발상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같은 발상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다섯은 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선을 넘은 것으로만 치면 김선태 또한 어마어마하게 넘어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도 그럴 터였다.
“왜 그러나. 뭔 일이 있었길래…….”
리더는 그런 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김선태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랬다.
뭔 일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건 분명했다.
아무리 무도한 세상이라지만 이렇게 팔이 잘리고 얼마 안 된 사람은 처음 봤다.
“그놈들이 거기서 사람들을 라드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응?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라드를 만들고 있었어요. 지들끼리는 생산이라고 하던데.”
“무슨…… 그게 대체…… 무슨……?”
방금 말로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해는 했다고 해도 납득을 하진 못하고 있었다.
라드를 생산을 한다?
없애야 하거나 피해서 달아나야 할 대상을 사람이 만들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 안에 라드들도 있더군요. 그놈들에게 강제로 물리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다 라드가 될 거라고 생각을 했는지, 말도 조심하지 않더군요.”
“무슨 그런…… 그런 놈들이…….”
김선태는 경악한 리더 그리고 얼굴이 창백해지다 못해 숫제 핏기가 사라져 버린 나머지를 보면서 기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그래, 이 계획이 잘못되었던 건 아니다.
단지 운이 없었다.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계획이 실패한 건 그만큼의 불운이 있었기 때문이지 잘못한 건 아니다.
역시 대통령은…… 자신이 보좌하는 한 이 망할 세상의 지배자가 될 터였다.
아무튼, 김선태의 말에는 여전히 진정성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묻어 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그도 그렇고 부하들도 그렇고 라드에게 밀어 넣은 민간인들 앞에서 서슴지 않고 앞으로의 계획을 떠들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있던 일이다, 이 말이었다.
“그렇게 라드를 만들고 나서…… 다시 트럭으로 이동시켜서 청와대를 전복시킬 거라고 했습니다…….”
“하! 라드를 이용한다고? 이런 미친놈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정신이 없어지더군요. 앞에 있던 놈을 공격해서 총을 뺏고 도망친 거 같은데……. 제 옆에 있던 사람들은 죽은 거 같습니다…….”
“어……. 허어…… 이런 미친……. 수원이라고?”
김선태가 어찌 그런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캐묻는 이는 없었다.
궁금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리더가 너무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또 그게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다 보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원이면…… 너무 가깝습니다.”
“그렇지. 대비를 해야 해. 그냥 둘 수는 없어.”
“말대로 비행장…… 공군이 그랬을까요?”
“알 수 없지. 그러고 보니 거기서 온 사람들이 있잖아. 짐도 다 뺏기고 쫓겨났다며?”
“아, 그랬습니다. 확실히…… 그쪽이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망할……. 미친놈들…….”
김선태는 심각해진 분위기를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균열.
수원과의 균열을 심었다.
그리고 북측의 정부는 이번 일과 전혀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심었다.
물론 이놈들이라고 해서 딱 김선태가 흘린 정보만 가지고 뭔가 액션을 취하진 않을 터였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그만큼 신중한 놈들일 테니 이리저리 정보를 취합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수원을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게 뻔했다.
‘수원을 오가던 트럭들의 흔적은…… 그대로 있지.’
그쪽은 거의 적진이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다 보니 흔적을 지우면서 다니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둔 것이긴 한데…….
지금에 와서는 잘된 일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수원을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정부를 의심의 눈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 봐도 큰 수확이었다.
대통령에게 가서 고속 터미널과 연결 고리가 생겼다고 보고를 하게 된다면, 꽤나 좋아할 터였다.
문제는 어떻게 강을 넘어가느냔데…….
‘뭐…….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
김선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어두침침한 지하상가뿐이었다.
어찌저찌 전기를 끌어와 쓰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전력이 충분치는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김선태가 보고자 하는 건 그 너머에 있었다.
‘사람들이 있군…….’
구우준은 거대 개체들과 함께 고속 터미널에 닿았다.
오늘 길에 몇몇 라드 무리들과 마주쳤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집단전을 할 수 있는 거대 개체 앞에서는 초거대 개체조차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
“이거.”
“그래, 여기 있군.”
곧 오토바이도 찾았다.
다시 봐도 엉망진창인데, 용케 여기까지 왔다 싶었다.
아무튼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올 수 있었다는 건 그 이름 모를 군인 놈이 라드가 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대단하군……. 자기 팔을 자르고 도망갈 줄이야.’
구우준은 왜 김민수가 자신을 탐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비슷한 갈증이 그의 머릿속을 메우고 있었다.
그의 생각인지 아니면 바이러스의 조종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근래 들어 거의 처음으로 안개 낀 듯한 머리가 확 개운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죽인다?”
“아니, 위험해.”
앞에 보초를 서고 있는 건 두 명이었다.
제대로 된 총도 아니고 볼트 액션 총을 들고 있었다.
하잘것없는 놈들이다 이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게 된 것은 그 뒤에 있는 구조물 때문이었다.
지하상가 중에서 코엑스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거의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고속 터미널 지하상가가 있었다.
그 안에 사람들이 대체 몇이나 있을까?
적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무장은 형편없어……. 수원은 건너뛰고, 이쪽으로 오면 어떤가……?’
구우준은 김민수에게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여기 먼저 치고 그다음에 내려가자는 제의를 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