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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64화 (264/323)

264화 주변 (3)

원래는 딱 여기까지, 혹은 조금만 더 간 후에 돌아가려고 했다.

이 앞부터는 진짜 위험 지대가 열릴 수도 있어서 그랬다.

단순히 라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당 위로 가면 군인들도 마주칠 수 있었다.

그것도 김선태가 이끄는 놈들로.

“어쩔까요.”

“이놈…… 이게 만약에 교수님 말씀대로 절단이라면 오래 못 갔을 겁니다. 그래야 하는데…… 지금 보면 바퀴 자국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그건 그렇습니다. 흐음……. 정말 김선태일까요? 보통 사람은 아닌 거 같긴 한데.”

“물론 병사 중에서도 있을 수는 있겠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그리고 일반적으로 병사는 같은 병사를 버리고 도망칠 수 있어도 이렇게까지 냉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죠. 저도…….”

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가 보았던 김선태를 떠올렸다.

군인답지 않게 능글거렸던 모습과 지나치게 군인같이 딱딱했던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동시에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여러 만행들도 떠올렸다.

‘개자식.’

말 그대로 천인공노할 짓이다 이건데…….

그런 놈이기에 역설적으로 이 자리에서 죽지 않았을 거 같았다.

“더 따라가 보죠.”

“네.”

“저는 좋습니다.”

김태평은 의견을 말하면서 동시에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책임자, 즉 박중 대위를 돌아보았다.

박중 대위야말로 김선태를 제일 잡아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보니 대답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게 의견이 일치한 일행들은 더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폐허에 가깝던 건물 지대를 지나고 곧 경부 고속 도로와 연해서 있는 도로가 나왔다.

이 근처 건물들이라고 해서 돌연 마천루가 형성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번화가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으음.”

“여긴 누가 매복해 있다면 꽤 위험하겠는데.”

“정찰을 돌아볼까요?”

일단 차를 멈추고, 김태평과 정유현이 위험에 대해 언급하자 박중이 나서려 했다.

허나 김태평은 그런 박중을 우선 제지하고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퀴 자국은 드문드문 보였다.

이게 뭐 자연적으로 지워져서는 아니었다.

발자국에 의해 지워져 있었다.

“라드 놈들은 쉬지 않고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주변으로 향한 발자국이 전혀 없어요.”

“아, 그렇군요.”

“그 말은…….”

“이 주변에 뭐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감히 라드 무리를 건드릴 만한 세력을 이루진 못했다는 거죠. 무엇보다 바퀴 자국도 거의 똑바로 나 있습니다.”

김태평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는 바퀴 자국을 바라보았다.

잠깐씩 비틀거렸던 흔적은 있지만, 의도적으로 방향을 틀거나 하지는 않은 거 같았다.

그 말은 곧 그대로 쭉 달렸단 말이었다.

‘아, 설마…….’

수원에서 민간인들을 이용해 라드들을 생산하지 않았나.

굳이 그걸 서울까지 가서 잡아 왔을까?

가까운 데서 수급하지 않았을까?

‘이미 다 잡아갔다는 걸…… 알고 있나?’

굳이 소탕까지 할 필요도 없긴 했을 터였다.

무장한 군인들이 와서 사람들을 잡아가는 모습을 봤다면 그게 누구라도 남아 있진 못할 테니까.

라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놈들도, 아무리 구세대 라드라 해도 두려움을 느꼈으니.

방해가 되었다면 라드들이야말로 닥치는 대로 죽였을 것이 뻔하다 보니 이곳이 이렇게 조용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뭐…… 더 가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생각을 정리한 김태평은 굳이 이러한 얘기는 꺼내지 않고 다만 앞을 가리켰다.

유현은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고, 박중은 그저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우웅

그렇게 그들의 몸을 실은 트럭은 점점 더 위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경부를 타도 될 겁니다.”

“어……. 탈 수가…… 있네요?”

“그놈들이 뚫어 놨을 거예요. 아니더라도 길이 여러 개 있어서요. 분당으로만 안 들어가면 됩니다.”

김태평은 심지어 차를 끌고 이제 판교IC를 지나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세 먼지 하나 없이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서울은 여전히 대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다.

다만 사람이라는 것이 상상을 피할 수 없는 동물이다 보니 안을 채우고 있을 비참한 광경도 같이 떠올라 느낌은 생경하기만 했다.

“허…….”

“저기, 저쪽에 교수님 병원이 있죠?”

“네, 그렇죠. 이렇게 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는데…….”

원래 서울에 있다가 내려온 김태평에게는 그저 익숙한 광경일 뿐이었으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도망쳤던 유현과 오예리에게는 퍽 특별한 광경이었다.

지방 출신으로 수원으로 올라와 복무하고 있던 박중 또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가는 도로 위엔 차가 거의 없었다.

차가 거의 꽉 차 있는 하행선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광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질서를 지키더군요. 역주행은 안 하더라고.”

김태평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차를 계속 몰았다.

그렇게 달리는 타는 양재IC를 지나 고속 터미널 근처까지 닿았다.

양옆으로 우뚝 서 있는 빌딩엔 드문드문 반짝이는 빛들이 있었다.

“저건…….”

“아마 생존자거나 라드일 겁니다. 라드는 보통 굳이 저렇게 높이까진 안 올라가니까, 생존자겠죠.”

“여긴 확실히 사람이 많군요. 근데 우리 대부분 군인인데 전혀 뭔가 알리질 않네요?”

“알리겠습니까? 사태 초기도 아니고…… 지금 군인들은 두려운 존재일 뿐일 겁니다. 정부도 정부지만 탈영병들로 이루어진 무리들도 꽤 있는 걸로 압니다.”

“아……. 무장한 놈들이 있으면 위험한 거 아닐까요?”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이렇게까지 무장한 부대를 상대로는 싸움을 걸지 못할 겁니다. 애초에 용기가 있었으면 탈영도 안 했겠죠.”

이럴 때 유현은 김태평이 여전히 국가 요원인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티를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사의 이곳저곳에서 국가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느껴졌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왜곡된 것으로만 느껴질 따름이었지만.

그 장본인인 김태평이야말로 가장 괴로울 것이 뻔했기에 유현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경들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한때 자주 오가던 이곳은 이제 지옥의 한 부분으로 변해 있었다.

“아, 방금.”

눈이 좋은, 그러니까 멀리 있는 것들도 식별해 내기 일쑤인 오예리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리킨 방면을 급히 돌아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총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확실하진 않아요. 색이 좀.”

“수제 총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제 총……?”

“네. 생각보다 만들기 쉽습니다, 총. 원리만 알면…….”

김태평은 고속 터미널, 정확히 말하면 파미에스테이션이 보일락 말락 한 곳에 차를 세웠다.

중간에 토사구팽당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망해 버린 이후에도 여전히 정보를 다루던 그가 아닌가.

상황이 워낙에 빠르게 변할 수 있는 시대이긴 하지만 이 근처는 예외일 터였다.

뭐, 차지한 세력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아무것도 없는 무주공산이 될 가능성은 낮았다.

적어도 강남으로 한정을 지어 본다면 여기만큼 인구도 많고 모든 물자가 풍부한 곳이 거의 없었으니까.

“저쪽에 꽤 큰 무리가 있을 겁니다. 낮에도 경계를 서고 있다면……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간 놈도, 라드 놈들도 멀쩡히 뚫을 수는 없었을 거 같군요.”

“그럴 거 같긴 합니다. 그럼 김선태는 어찌 되었을까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느새 일행은 오토바이 탄 놈을 김선태라 지칭하고 있었다.

사실상 수원에서 김선태라는 건 나쁘고 독한 놈을 가리키는 고유명사화 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틀렸다고 보기도 좀 어려웠다.

해서 누구도 그런 유현을 지적하지 않고 그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리만 건너면 거의 놈들 영역이에요. 제가 전에 갔을 때만 해도 한글 박물관 있는 데까지는 아직 영역을 넓히지 않았지만……. 말 그대로 안 한 거지, 못한 건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럼 이미 도망갔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네. 아니면 저기 있겠죠.”

“고터 안에? 합류했다고?”

“경계 서던 놈들에게 걸렸으면 잡혀갔을 겁니다. 이 근방에 있는 생존자들에게는 군인들이 민간인 잡아간다는 소문이 번졌을 테니…….”

“죽었으려나.”

대화를 잠자코 듣고만 있던 박중이 좀 아쉽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놈만큼은 반드시 내가 죽였어야 한다, 뭐 이런 얼굴이었다.

김태평은 그런 박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를 일입니다. 어떻게 둘러댔을지 몰라요. 생각보다 다른 생존자 무리들이 파악하고 있는 정보는 부정확하기도 하고, 또 적기도 합니다. 최우식 서기관이 취합하고 있는 정보를 보세요.”

“저는 본 적 없습니다.”

“아, 그렇겠군. 참. 아무튼,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우리처럼 무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정보를 다루는 것에 대한 훈련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아, 그럼…….”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김선태가 죽었으리란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그놈은…….”

작전에 같이 나섰던 적도 있지 않나.

그때 보았던 김선태는 너무 악랄했고 또 뻔뻔했다.

군인인 주제에, 나라의 녹을 받아먹고 사는 놈인 주제에…….

아무리 명령이 있었다고 한들 합리화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스스로가 뻔뻔한 편이라고 여기는, 어쩌면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김태평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놈이니까.

“그놈은 좀 달라요.”

“그놈은 그놈인데. 여기서는 완전히 막히네요.”

“네. 고속 터미널을 지금 차지하고 있는 무리의 성향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호전적이거나 혹은 약탈과 식인까지 하는 놈들이라면 좀 위험할 수도 있어요.”

김태평은 주변 건물을 돌아보았다.

그에 따라 나머지 인원들도 주변을 보았다.

흔하디흔한 상가 건물들 그리고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나 저기 어딘가에 매복이 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제아무리 조악한 수제 총으로 무장한 놈이라 한들 총이라는 무기는 살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들자 몽골이 송연해졌다.

“문제는 라드 놈들입니다. 그놈들도 저걸 목격한 게 틀림없어요. 흔적이 여기서 흩어진 것을 보면……. 주변으로 간 모양인데…….”

“더 못 찾겠습니까?”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저도 이런 식의 훈련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몇 가지 기기의 도움이 있다면 또 모를까…….”

“뭐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죠. 아무튼, 수원 근방에 있던 라드 놈들이 일시적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여기로 온 것은 확인한 거 아닙니까?”

유현 또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발자국이 혹시 남은 것이 있나 하면서였는데 소득은 없었다.

물론 지금 여기서 없다는 것이지 전체적으로 보면 방금 말한 대로였다.

며칠 전 있었던 어부지리로 인한 역습부터 해서 지금까지 모두 잘된 일뿐이었다.

“아쉽지만…… 돌아가야겠군요. 병사들이 동요합니다.”

박중은 김선태 놈을 쐈어야 하는데 하는 표정으로, 허나 부하들에 대한 염려 또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김태평 또한 아쉽긴 해도 당장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너무 많은 수가 움직이면 오히려 더 노출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수원 일행의 정찰은 일단락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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