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결국, 위로 (1)
“그렇군요. 아무래도 고터에서 본 그놈들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입니다.”
“근데 그놈들이 왜 갑자기 아래로 왔을까요?”
안으로 들어간 박중 대위의 말에 유현과 김태평 그리고 그 일행이 다 불려 갔다.
나름 그 주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인식되고 있는 김용일 형사와 최근 생존자들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최우식도 포함해서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김태평이었다.
어느새부터인가 ‘정보’라고 하면 우선 김태평부터 다들 바라보게 되어서 그랬다.
무엇보다 김태평부터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여간, 되물은 것은 박중이었다.
이 중에서 수원에 있는지 제일 오래되었고, 따라서 수원 부대에 대한 애착도 가장 강한 그로서는 아무래도 염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그건 좀 더 캐 봐야 합니다. 최우식 서기관 의견이 필요할 거 같은데…….”
“아, 네.”
그의 말에 최우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마른 편이었던 그는 최근 고생을 해서 그런가, 더 말라 있었다.
그러나 우묵하게 들어간 눈가에서 느껴지는 건 비단 피곤함만은 아니었다.
그의 고집스러운 우직함 덕에 얻어 낸 정보에 대한 자부심 또한 묻어나고 있었다.
“서초구 쪽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고터 쪽 집단은 폐쇄적이긴 하지만 호전적이진 않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왜 거기 남지 않고 여기로 왔죠?”
“모두 지하에서 지내고 있다 보니 그렇게까지 자리가 많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뭐, 이건 제 예상이긴 한데…….”
최우식은 고터 쪽에 접근했다가 퇴짜 맞았다는 이들 여럿을 떠올렸다.
뭐라 꼭 집어 말하긴 어려웠지만…….
그래, 결격 사유가 있었다.
아주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아마 재난본부였다면 그냥 받았을 터였다.
아니, 수원 부대에서도 받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쪽이 너무 풍족하다 보니 사람을 가려 뽑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부탁을 하면 받아 주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되면 한강 고수부지에 가서 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고 하더군요.”
“고수부지? 거기서 무슨 노동을?”
설마하니 벌주기 위한, 그러니까 무용한 노동은 아니지 않겠나.
그건 확실한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 다른 것이 떠오르진 않았다.
다행히 김태평의 질문에 최우식은 별 막힘없이 답할 수 있었다.
“이건 다리 건너서 온, 강북 출신 생존자들에게 취합한 건데…… 뭔가 땅을 갈아엎는 거 같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개간이겠죠.”
“거기에……? 홍수 나면 바로…… 아니, 홍수 아니라 그냥 장마만 돼도 넘치기 일쑤일 텐데.”
“그렇죠. 하지만 생각해 보십쇼. 그 근처에는 땅이랄 게 별로 없습니다. 우면산 쪽으로 가면 되기는 할 텐데……. 군대라 해도 산을 장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래, 그런 식이다 이거지?”
“네. 차 얘기를 들으니 더더욱 거기 같습니다. 종종 근처 도로에 고급 차들이 경주하듯 달린다는데 그게 다 고터 소속이랍니다.”
“확실히…… 이쪽하고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군.”
대체 얼마나 경각심이 없으면 시끄럽게 경주를 할까.
아니, 기름이 남아도는 건가?
그러한 물자를 이쪽이 탈취한다면, 정부를 이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비단 김태평만의 것은 아니었다.
박중이나 다른 이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요새 모일 일이 별로 없었으니, 지금 하는 게 좋겠군요.”
차분히 듣고 있던 유현이 입을 열었다.
고생하기로만 따지면 그 또한 최우식과 비견될 지경일 터였다.
허나 그는 여전히 강건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 보였다.
어지간한 라드 따위는 맨손으로도 때려잡을 것 같은 기세가 느껴졌다.
‘실제로도…… 전투에 나서면 꽤 든든하지.’
총만 잘 쏘는 게 아니었다.
근접전에서의 위력이 꽤 좋았다.
오죽하면 김태평이 최근 들어서는 오예리의 호위에 이순규에 더해 유현을 넣게 되었겠나.
합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려 이순규에 비할 만큼 강하단 반증이기도 했다.
“박원상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아, 네. 근데 남산…… 거기 완전히 버림받은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정부는 이번에 어마어마한 손실을 봤다.
통신이 무너진 시절이니만큼 즉각 보고를 받진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박원상과도 라디오로 소통을 하고 있지 않나.
모든 것이 이쪽에 비해 더 풍족한 정부 측이 그보다 나은 방법을 간구하지 못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알고는 있을 터였다.
그 말은 곧 정부 측의 여유가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남산으로의 수송이 끊겼더군요. 뭐,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이미 연구는 세브란스에서 따로 진행 중이니까요. 게다가 이번에 우리가 한번 제대로 먹였죠.”
“그래서 어떻게 하고 있답니까?”
이미 전반적인 사항을 들어 알고 있는 김태평 등과는 달리 딱히 뭔가 전해 들은 바 없는 박중과 조영상이 초조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이제 남산 지휘관도 인정을 한 모양입니다. 박원상과 완전히 협조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어요. 아, 아직 우리까지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흐음……. 남산이 돌아선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주력 부대를 잃지 않았습니까? 적어도 병력의 4분지 1은 잃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으음…….”
박중과 조영상은 이번 전투에서 상대가 잃은 부대의 양을 가늠해 보았다.
적어도 200명 이상은 잃었을 터였다.
절반은 공병이었으나, 알 게 뭐란 말인가.
죽어 간 생명은 분명 200명이 넘었다.
수원이라고 치면 무려 병사들의 3분지 2에 해당하는 병력이었다.
궤멸이라 해도 좋을 정돈데‥…..
“전술적으로 그 정도를 잃었으면 그냥 전멸에 가까운 걸로 칩니다. 편재가 무너지니까요. 하지만 독립해서 움직였으니 그렇게까지 생각할 건 아닙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단 건 맞죠.”
조영상은 애써 보수적으로 말했다.
당장이라도 들떠서 개새끼들 X 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유현은 그런 조영상을 보면서 굳이 그러한 점을 지적하는 대신 다른 말을 이었다.
“네. 그렇죠. 박원상을 통해 알렸습니다. 지휘관에게도 알렸고……. 따로 정찰을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근처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리겠죠.”
“칼을 하나 얻은 셈인데.”
박중이 잘됐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유배지로 쓰였던 곳이니만큼 남산의 부대는 허약하기 그지없긴 할 터였다.
하지만 그 약한 부대라고 해도 위치가 중요하지 않겠나.
거기서 청와대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툭 하고 찌르고 들어가면, 대통령도 놀랄 터였다.
“거기에 더해 연구도 어느 정도 진척이 있더군요. 탄저균 얘기를 들었죠?”
“아…….”
탄저균.
테러에 쓰이는 균 아닌가.
그런 것이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원래 있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허나 이제 와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놀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보니 다들 잠자코 들었다.
“독감보다는 높은 확률로 라드화를 이겨 낸다고 합니다.”
“오…….”
“하지만 그 경우에 해당하는 케이스는 전원 사망했다고 합니다.”
“아니……. 그럼…….”
“탄저균을 예방적으로 또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거죠. 제 생각에는 바이러스가 아닌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거 같아서, 다른 바이러스를 사용해 보라고 조언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유현의 지금 말은 자신도 그 실험의 일원이고 동시에 공범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박중이나 조영상 등이 퍽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상 여기에 모인 모두는 손에 묻힌 피의 양이 좀 다를 뿐 비슷하지 않던가.
다들 죄인이었다.
살기 위해 그랬다는 건 핑곗거리로 좀 부족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랬다고 해야 그나마 정상 참작이 될 터였다.
다른 누구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함이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연구실에 엄청 뭐가 많더군요. 그중에 그나마 이 ARS-24와 비슷한 것이 뭐가 있을까 했는데……. 광견병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광견병……?”
“네. 공수병이라고도 불리죠. 뇌에 직접적으로 침입하는 약이고 백신을 맞지 않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면 여전히 치명률이 40%를 넘어가는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그걸…….”
“어차피 라드화가 진행될 사람들이니까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네.”
그렇다고 해 봐야 발악에 가까운 일이긴 했다.
어쩔 수 없다는 일로 자행되는 악행이 얼마나 많던가.
따지고 보면 수원 근처로 왔던 군부대를 그런 식으로 날려 버렸던 것도 일종의 전쟁 범죄 아닌가.
이이제이라 해도 라드를 활용하는 건…….
그에 대해 찜찜해하는 이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럴 때가 아닌 데다가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다는 일을 알기에 다들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남산은 점점 더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 고터군요. 이자들이 왜 이쪽으로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우식이 말대로 호전적이지 않은 놈들이라면 분명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더욱이 풍족한 놈들이 여기까지 왔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죠. 혹시 짚이는 구석 없습니까?”
유현은 그렇게 말하다 박중 대위를 바라보았다.
직접 보고, 따라가기까지 했던 건 너니까 네가 한번 말해 봐라 이 뜻이었다.
“음……. 멀리서 보다가 저희가 따라가니까 진짜 미친 듯이 도망갔습니다. 겁이 많은 놈들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잠시.”
그래서 말하는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박중 대위와 함께 다니던 하사였다.
혹시 몰라 근처를 더 둘러보라고 시켜 놨었고 또 모두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조용해졌다.
하사는 자신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서 잠시 당황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버스 흔적을 봤습니다.”
“버스?”
“네. 그곳 말입니다. 라드가 있던 곳.”
“아, 거기.”
“거기에 없던 흔적이 있었어요. 버스 바퀴 자국하고…… 발자국이 진짜 많았습니다. 버스 한 대 거의 꽉 채울 만한 놈들이 왔다가 간 거 같은데……. 이거.”
“이건 뭐……. 담배? 장초네? 어떤 놈들이 돈이 썩어나나?”
“거기 있던 겁니다.”
“아……. 그럼 버스도 고터인가?”
“확실합니다. 흔적은 완전 최근에 형성된 거였어요.”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바뀌었다.
버스까지 왔다면, 이건 절대 보통 일이 아니지 않나.
정찰만을 위해서 왔을까?
그랬더라도 큰일이었다.
그만큼 강성하단 뜻이니.
여하간 좋지 못한 일일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역시 그쪽은 더 들여다보긴 해야겠군요.”
여러 가지 말들이 뒤따랐으나, 결국, 결정된 것은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