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동맹 (1)
“저, 저 새끼!”
“잡아!”
“저 시발놈이……! 여기 좀 도와줘!”
김선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또 침착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사실 한쪽 팔이 없다는 건 근접전에서 어마어마한 단점으로 작용하는 일인데도 그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랬다.
김태평이나 유현 또는 김용일 형사 등이 저쪽에 있었다면 살짝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무의미가 가정이었다.
이미 김선태는 여럿을 때려눕히고 잔뜩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탕탕파이프 소총을 쏘고 있었지만 영 엉뚱한 곳만 치고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총탄이 튀기도 했는데 훈련도가 떨어져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총이 정말 너무 후져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김선태는 저대로 무리 없이 강을 건널 것 같았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살짝 배알이 꼴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죽일 걸 그랬나.’
실제로 그럴 수 있었던 김태평으로서는 짙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저 인간이랑 대통령.
그 둘만큼은 진짜 눈앞에 두고 죽이고 싶었다.
지금껏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죽는 거나 다름없는 지경에 빠뜨려 왔던 그였지만 이 둘만큼 진심으로 원했던 적은 없었다.
‘아니, 아냐.’
김태평은 고개를 저으면서,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은 이미 총에 맞았던 이에게 달려가 있었다.
“제가 보겠습니다.”
“아, 네.”
뒤늦게 쫓아온 이들 중 일부가 이 새끼는 뭔데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정유현 교수님이야.”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홈페이지, 인마!”
“아, 그…… 그 예언자?”
아까 유현의 소개를 미리 들었던 이들이 부리나케 입을 털어서 그랬다.
덕분에 유현은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시중까지 받아 가면서 환자를 살필 수 있었다.
‘상태가…… 다행히 즉사는 피할 곳을 쐈어. 뭐……. 그렇겠지.’
다리를 쐈다.
허벅지를.
죽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아마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터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바라는 건 환상을 바라는 것과 같으니, 불구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부축을 위해 양옆으로 둘씩이나 순식간에 빠졌으니 김선태는 딱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어 낸 셈이었다.
“일단 닦아야 합니다. 혹시 여기 약이나 이런 게 있습니까?”
“네? 아주 많습니다.”
“많아요?”
“네, 저기서.”
“아……. 맞네. 여기 병원이 있죠. 흠. 아무튼, 안으로 옮깁시다. 여기선 무리예요.”
유현은 사방을 가리켰다.
자동차가 사라져 매연은 없었지만 대신 바닥을 쓸고 닦는 이가 하나도 없다 보니 먼지가 흩날리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누군가를 치료하기에 그리 좋은 곳은 아니었다.
유현이 보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경계를 서던 병사들을 포함해 우르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로 향하게 되었다.
“거기 제대로 들어요!”
“아, 네. 죄송합니다.”
심지어 유현은 고속터미널 쪽 사람들에게 호통까지 치고 있었다.
나머지 김태평, 박중, 김용일도 덩달아 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심지어 거의 호위를 받아 가면서였다.
“김태평 팀장님! 옷 찢어요.”
“김용일 형사님은 힘 좋으니까 나 좀 돕고. 박중 대위는 저기!”
“네!”
유현이 딱 돌아가는 꼴을 파악하자마자 그들에게 환자를 맡겨서 그랬다.
그러니 다른 이들로서는 뭐 어쩌겠나.
의사가 시켜서 뭔가 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찌 방해한단 말인가.
심지어 다친 사람들은 싹 이쪽 사람들이었다.
상당히 폐쇄적인 집단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를 서던 인원들은 다 서로서로 알고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재난 상황을 마주했다 보니 그 유대감의 발달도 다른 상황에 비하면 훨씬 빠를 수밖에 없었다.
수원 쪽 군인들이나 재난 본부에 있던 구급대원들 정도의 유대감을 떠올려 보면 아마 비슷할 터였다.
“뭐, 뭐야.”
“비켜! 총 맞았어!”
“아니, 안 그래도 총소리가…….”
“일단 비켜!”
“어어.”
그중에서도 총 맞은 이들과 친한 몇 명이 주도적으로 길을 텄다.
당황한 경계 인원들이 뭐라 말을 붙였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뭐 어쩌겠나.
총 맞았고 치료를 위해 가야 한다는데.
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는 데다가 의사들이 꽤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보니 의료진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많은 집단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 의료적 상황에 익숙했다.
덕분에 단번에 길을 뚫고 달려서 병원처럼 쓰이는 곳에 도달했다.
보아하니 지하상가 중 하나였는데 그걸 비우고 이렇게 마련한 모양이었다.
‘설비만 따지고 보면 수원보다 훨씬 낫네. 무영등 정도만 없지…….’
수술방이나 외래를 비롯해 여기저기 막 털어 온 듯했다.
“누가 다쳤다고?”
거기에 더해 의사들도 꽤 있었다.
“어……?”
“어……. 교수님?”
강남 성모 병원 출신 교수도 있었다.
그중 몇몇이 유현을 알아보았다.
“오랜만이네. 살아 있었구나!”
“아, 네. 근데 여긴 어쩐…….”
나름 대우를 받고 있는 듯했다.
하긴 대개의 경우에서 의사는 필수 인력으로 취급을 받기 마련 아닌가.
심지어 전쟁 상황에서도 의사는 포로로 잡혀도 어지간히 미움받는 대상이 아니면 활용하는 방향으로 쓰는 편이니…….
“일단, 환자를 보자.”
“아, 네네.”
하여간, 그런 얘기를 하기에 지금은 그리 적절한 때가 아니었다.
해서 뒤늦게 나타난 외과 의사와 정형외과 의사 그리고 내과 후배까지 해서 넷이 함께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죽을 환자는 아니었다.
다만 아까 유현이 판단했던 것처럼 불구가 되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이야 집단이 풍족한 편이다 보니 어지간히 보살펴 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불구가 된 몸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흐음.”
“으으으음.”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의 얼굴이 그리 밝지 못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하여간, 수술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이 되었다.
그사이 보고가 올라갔는지 이쪽의 리더, 파출소장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아……. 그게.”
그제야 무작정 일행을 안으로 이끌고 온 경계병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게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는 일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유현? 아, 그 교수……? 그 사람이 갑자기?”
“네, 그리고 김선태 그 개자식이…….”
“그 사람이 왜.”
파출소장도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창 수술 중인 곳에 뛰어들 만큼은 아니었다.
상당히 여유로운 집단이기도 하거니와 리더로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서도 그랬다.
그사이 설명이 이어졌는데, 김선태 얘기가 나올 땐 표정이 확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 새끼가 날 속였다고?’
군인이었다니.
심지어 그냥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들을 잡아 가두는 수괴였다니.
그 와중에 왜 팔이 잘렸는지는 의문이었지만 하여간, 도망을 가지 않았나.
심지어 둘이나 다치게 하고서였다.
유현 쪽으로 확 신뢰가 기우는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 교수가 맞아.’
게다가 정유현의 얼굴은 꽤 인상적인 편이지 않나.
본인이 먼저 의사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모델인가 할 정도의 기럭지에 얼굴도 잘생겼다.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이건데…….
심지어 홈페이지 때문에라도 계속 회자가 되어서 더더욱 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집단에는 그의 경고를 허투루 듣지 않고 마치 생존주의자라도 된 것처럼 별의별 물자를 바리바리 싸 들고 있던 내과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도 그랬다.
지금 수술방에 들어가 일손을 돕고 있는 이가 바로 그였다.
“후.”
그렇게 자초지종을 듣고 나름대로 상황 파악을 하고 있으려니 수술이 끝났는지 의사들이 우르르 나왔다.
마취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인공호흡을 해야 할 정도의 상태들은 아니다 보니 환자들도 얼추 정신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눌 준비가 되었다, 이 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세요.”
소장은 평소처럼 자신의 집무실로 끌고 가지도 못했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다음이다 보니 주변으로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랬다.
더군다나 수원에서 왔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받아 왔던, 또는 상대해 왔던 여러 군상들과는 확연히 구별이 되었다.
일단 체격들이 다들 좋았는데 김태평은 눈이 날카로운 것이 자칫 잘못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었다.
김용일은 헤비급 복서를 연상케 할 만한 덩치에 얼굴에 칼빵 자국까지 있다 보니 역시나 심상치 않았다.
상대적으로 박중 대위가 가장 평범했는데, 그조차도 꽤 덩치가 큰 데다가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정유현입니다. 전 태화 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이었습니다. 사태가 터지기 전엔 나름 개인 방송에 출연도 했었죠.”
“아, 네. 김준현입니다. 서래 파출소 소장이었고……. 지금은 부족하나마 이곳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역시나 유현이었다.
감염내과 과장 정유현.
그의 이름은 사태가 터지고 나서 오히려 더더욱 널리 알려진 편이다 보니, 특히 생존자 집단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보니 그랬다.
“여기는 김태평 팀장. 전직 국정원 요원입니다.”
“아…….”
“이쪽은 김용일 형사님. 광수대에 계셨습니다.”
“어……. 그렇습니까?”
“이쪽은 박중 대위입니다. 수원에 있습니다.”
“수원…….”
“들으셨겠지만 라드를 생산한 건 정부 측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악행을 저지른 바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천천히 일러 드리겠습니다.”
“그…….”
그리고 소개가 이어졌다.
어쩐지, 범상치 않더라니, 저런 사람들이 여길 왜? 등등의 반응이 있었다.
일부러 이렇게 뽑아 오지 않았나.
소개도 평상시와는 달리 살짝 과시하듯 했으나 반발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만큼 임팩트가 있는 소개여서 그랬다.
“그…….”
소장은 살짝 압도되는 느낌마저 받았다.
막말로 자신의 전직에 비해 너무 어마무시하지 않나?
하지만 그가 평범한 소장이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터였다.
권력을 잡는 데 필요한 것은 총뿐일 수도 있겠지만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훨씬 더 많은 법이니.
“그렇군요. 잘 오셨습니다만……. 이쪽에 투신하려고 오신 겁니까? 그렇다면 부탁드릴 만한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기에 당황에서 금세 벗어난 후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었다.
“아. 그건 아닙니다. 저희는 수원 군부대 소속입니다.”
“그렇군요.”
유현 또한 비범한 인물인 데다가, 그는 소장과는 달리 할 말이 준비되어 있던 상황이지 않나.
더군다나 여기 꽤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이 있다는 것도 확인한 마당이다 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참이었다.
소장도 주변에 모여든 이들 때문에 또 환자를 치료해 준 것 때문에 일단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둘의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