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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72화 (272/323)

272화 동맹 (2)

소장은 우선 일행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말이 방이지 한때는 이 일대에서 가장 커다란 뷔페식당이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집보다도 컸다.

그와 동시에 안쪽을 신세계 백화점의 가구 코너에서 끌고 온 것들로 가득 채워 놓은 데다가 그림들도 여기저기 걸어 놨고 또 조명도 쭉 깔아 놔서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촌스럽군…….’

허나 주인의 취향이랄 것 하나 없이 그저 비싸 보이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보니 보는 이로 하여금 그렇게까지 대단한 감흥을 주진 못했다.

특히 대형 병원의 과장으로서 이런저런 행사에도 가고 했던 경험이 있는 유현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그는 그냥 이렇게만 느끼고 말았지만, 김태평은 보다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주제에 맞지 않은 걸 가지고 있군……. 위기가 없어서 버티고 있던 것이지, 조금만 건드리면 무너질 거야.’

이렇게 보면 대령이 진짜 대단한 인간이었다.

그 근처에서도 얼마든지 글겅이질을 하려고만 했다면 할 수 있었을 터였다.

왜 안 그렇겠나.

수원 근처에도 백화점이 있고 마트가 있는데.

허나 그는 일부러라도 허름한 곳에서 잤고, 일부러 자기가 지내는 건물에 다른 병사들을 돌아가면서 지내게끔 함으로써 우리가 별로 다르지 않은 곳에 지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여긴 지나가다 보면 무조건 눈에 띄게 되어 있어.’

별채에 따로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하상가에서 이어지는 한 건물 지하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위는 다 틀어막아 놨을 테고, 또 그쪽에서 경계 인원을 두었을 터였다.

완전히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이 말인데…….

그게 통하려면 사태 이전에도 이미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가령 저기 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처럼.

사실 대령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지내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소장이라는 작자의 행태가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앉으시죠.”

그러나 유현도 김태평도 전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에 더해 박중 대위는 상당히 순진한 사람이다 보니 주변을 와 하면서 둘러보기까지 해서 소장은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권위를 내보이는 데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랬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하기는 했다.

리더 개인은 별거 아닌 것 같긴 했지만 하여간, 생각했던 것보다도 고터 집단의 부가 대단하다는 것을 김태평조차 느끼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런 꼴을 매일 보고 있을 텐데도……. 다른 구성원들의 소요가 없었다는 거지?’

대단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얼마간 힘을 동원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무슨 힘인지는 지금 당장 알아내긴 어렵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품은 채로 대화가 이어졌다.

“수원에서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거리도 거리고 오가는 길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소장은 자신이 정찰을 보냈었다는 것은 숨긴 채 이렇게 물었다.

딱히 그런 걸 지적할 이유는 없는 데다가, 미리 준비해 놓은 말이 있는 유현이 그 말을 받았다.

나머지 인원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 오거나 혹은 자신의 신분을 통해 도움이 될 일이 있을 때만 나서기로 합의를 본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소장 앞에 유현이 앉아 있었다.

“저희 수원 부대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습격…… 이요?”

정찰 보고에 따르면 수원 군부대는 상당히 견고한 곳이었다.

이곳처럼 조악한 총이 아닌 제대로 된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인원이 적어도 수백은 되어 보인다고 들었다.

헌데 습격이라?

역시 정부 측의 농간인가?

아니면, 혹 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머릿속이 부쩍 혼란스러워졌지만 일단 어영부영 이들을 안으로 끌어들이게 된바,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네. 정부 측…… 김선태 중장이 이끄는 군대가 저희를 습격했습니다. 한 번은 남쪽과 북쪽에서 노렸다가 저희가 간신히 막았는데, 그다음으로는 민간인들을 잡아 와 라드로 만들더군요.”

“그건……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미 한번 습격을 당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정찰에 나섰습니다. 사실 정부 측에서 민간인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건…… 여기 계신 국정원 팀장 김태평 요원이 알려 주었거든요.”

“아?”

시선이 쏠린 것을 느낀 김태평이 답했다.

당연하게도 답이 다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저는 사태 전부터 정부 측에 있었습니다. 여러 뒤가 구린 짓들을 도왔죠. 하지만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점점 선을 넘었거든요. 심지어 역에 있는 구호물자를 털기 위해 안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신경가스 공격까지 지시했습니다.”

“아니……. 무슨 그런…….”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정말입니다. 지금도 남산과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부 주도하에 민간인 감염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근처에 있는 민간인들을 잡아가고 있는 거죠.”

“아.”

잡아갔다.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말이지만, 이미 그러한 정황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더는 ‘아’라는 짤막한 말만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을 보면서 유현과 김태평은 이 사람들도 대강의 정황을 알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럼에도 김선태에게 속아 수원을 정찰했던 이면에는 잡아가는 이들이 누군지는 몰랐었다는 것 또한 알아차렸다.

“아무튼…… 저희는 그걸 두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비등비등한 병력인데…… 라드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현은 일부러 탄약이 떨어질 수 있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작전의 대성공으로 인해 많은 양을 노획하기도 했지만, 여하간에 약점을 보여 주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죠. 근데 그걸 어떻게…….”

“운이 좋았습니다. 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유현은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어느 정도는 연기가 뒤섞여 있었지만 거의 진심이었다.

실제로…….

운이 좋아서 해결이 된 것 아니던가.

라드 떼가 없이 그저 수원 쪽만 나갔다면 결코 그 날 그렇게까지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을 터였다.

어느 정도 성과는 보았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인원을 잃었을 것이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던 라드 놈들과 전투가 벌어졌더군요. 아마……. 너무 많은 민간인들을 끌고 가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이놈들, 냄새에 민감하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홈페이지에도 작성을 했었죠?”

“네. 초창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떠한 연유로 그걸…….”

“폭격이 있었습니다. 서울 쪽은 거의 없었던 거 같은데 제가 있던 세종시는 거의 반파되었어요.”

“아.”

유현은 일부러 자신의 치적을 내세웠다.

효과는 있었다.

소장은 그나마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그랬지.

저 사람이 도움이 됐지.

사태가 터지기 전에 저 사람 말을 정부에서 막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우리의 적은 정부가 맞군 등등의 말들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고…… 저희도 그때 끼어들어서 놈들이 모아 놓았던…… 라드가 갇혀 있던 곳을 열어 버렸습니다.”

“아. 이런.”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들이 라드에게 물려서 마구잡이로 변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진 않더군요.”

“그랬군요. 근데 그 후로 여기는 왜……?”

“일부 병력이 북쪽으로 도망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참에 아예 끝을 보지 않으면 수원으로의 위협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쫓아왔습니다. 그러다 여러분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아.”

몇 가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했다.

대체 왜 정부가 수원을 치려고 하나, 이것이 우선 걸렸다.

하지만 그 동기를 제외하면 다 이치에 맞는 듯했다.

무엇보다 김선태가 이 안에서 지내다가 도망갔다는 사실, 그리고 총질까지 하고 갔다는 사실 등이 소장의 머릿속을 극단으로 밀고 있었다.

“정부 쪽은 이제 강북은 거의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그때 김태평이 입을 열었다.

아주 진중한 얼굴이었는데, 그의 비범해 보이는 얼굴도 얼굴이지만 애초에 국정원 요원이라는 소개 때문에 이미 관심은 쏠릴 수밖에 없었다.

소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국정원이라고 하면 정보를 다루는 이들 아닌가.

그런 사람이 그렇다고 하면 그냥 그렇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이제 아래로 내려올 일만 남았죠. 그걸 위해서는 남부에 있는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하는데…… 사실 수원에 이런 명령이 하달된 적이 있습니다. 청주 비행장을 폭격하라는 명령이었죠.”

“네? 같은 공군 아닙니까?”

“청주에서 정부의 명을 어겼나 봅니다. 하지만 제가 파악하기로 청주 비행장은 나름 청주 근방 생존자들을 규합한 단체입니다. 그걸 어떻게…… 치겠습니까?”

“그, 그렇죠.”

“거기에 수원에 저와 정 교수님이 있다는 것도 놈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뭐 새어 나갈 구멍은 많지 않겠습니까? 첩자를 심어 놨을 수도 있고…….”

“아.”

첩자라.

애써 참았지만 소장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름 선별해서 사람들을 받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기준에 첩자 구별은 없었다.

그저 쓸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그들의 선별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 주는 사건이 있지 않았나.

김선태.

‘개자식.’

그놈만일까?

최근에 받은 놈들이 한둘이 아닌데.

소장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으면서 들었다.

“아무튼, 놈들의 기준에서 수원은 적입니다. 그리고 아마…….”

김태평은 일부러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에 따라 방 안에 있던 고터 쪽 인원들과 박중 그리고 김용일 형사의 시선 또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취향을 무시하고 본다면 확실히 사치스러운 벽면이었다.

어찌 보면 청와대와도 비견될 지경이었다.

아니, 더할지도 몰랐다.

뺏기기 싫었다.

뺏겨서는 안 되었다.

“김선태가 도망갔죠. 이제 고터도 정부의 적입니다.”

“아니, 우리는! 우리는 일방적인 피해자인데…….”

“그는 중장입니다. 정부의 핵심 인물이죠. 아마 여기에 와서 어떤 공작을 펼친 것은…… 이곳을 이용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어디까지 보여 줬습니까?”

“보여 줘……?”

“질문을 바꾸죠. 고터가 가진 것들 중에 숨긴 것이 있습니까?”

“아.”

딱히 없다.

거의 다 보여 주었다.

애초에 지하상가에 많은 시설이 있다 보니 그걸 보는 건 막을 수 없다.

여기도 왔었고, 고속버스들도 다 봤다.

거기에 더해 차들도 보고…….

병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젊은 사람들은 얼마나 있는지도 거의 다 알게 되었을 터였다.

“놈이 이곳의 전력과 부유함을 파악한 이상 회유를 하건 점령을 하건 할 겁니다. 근데 마지막이 그렇게 틀어졌으니 회유보다는 공격을 해 오겠죠.”

“이,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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