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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80화 (280/323)

280화 세브란스 (2)

“저것들이 지금 뭐 하는 거지?”

“전에 하던 짓 아니겠습니까?”

“민간인 데려다가……. 라드로?”

“네.”

“혹시 저기 리더가 라드인가?”

김민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나?

심지어 라드인 그조차 얼마간 불편한 감정이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헌데 정작 저기 움직이는 인간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으레 하던 일인 듯 착착 움직이는 꼴이 매우 숙련된 노동자같이 보였다.

대상이 같은 인간만 아니었다면,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너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구우준은 주변을 돌아보다가, 전보다 더욱더 정교해진 발음으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어느 한 건물 옥상이었다.

세브란스가 보이는 위치다 보니, 아무래도 이화여대의 건물 중 하나일 터였다.

모든 골목골목을 다 틀어막고 있는 건 아닌 데다가 한둘 정도는 제아무리 무장을 하고 있었다 해도 처리하는 게 일도 아니다 보니 지금까지는 조용히 올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세브란스 병원보다 낮은 건물이었고, 저 위에서 주변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바로 발각될 것이 뻔했다.

“그래, 밤에 다시 와 보지.”

“네.”

“그것들은?”

“안에 들여다 놨습니다.”

골목 들어오면서 처리했던 군인 둘은 별 걱정할 일이 없었다.

바로 제압한 까닭에 어떤 흔적이 남은 것도 아니었으니.

게다가 죽인 게 아니라 물었다.

다시 말해 라드화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었다.

아마 탈영이라도 한 줄 알지 않겠나?

이곳의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렇게까지 좋아 보이진 않아.’

동쪽에서부터 돌아오다 보니, 종로 근처도 볼 수 있었다.

청와대에서 가까운 곳인 만큼 상당히 철저하게 관리가 되고 있었는데, 그 안은 놀랍게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움직이는 이들도 많았는데 하나같이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이 재난이 그곳만큼은 침범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다 그런 상황이라면 이곳의 책임자는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겠지만 다른 곳들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뭐 정확한 판단이야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착취한 자원으로 저들이 즐기는 듯했다.

“그래, 기다리지.”

그런 생각에 마음이 홀가분해진 김민수는 건물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날이 풀린 지도 한참인 데다가 이 건물은 창도 다 온전히 남아 있다 보니 차라리 온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다른 라드 놈들이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쓸데없이 부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김민수와 구우준은 안으로 들어와서도 여전히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종로 근처가 상당히 번화해 보였다면 이쪽은 부산스러웠다.

트럭들이 오가고, 총 든 군인들이 이리저리 소리를 치고…….

뭐가 되었건 간에 저곳.

세브란스가 아주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방금 보지 않았나?

“그거 분명 그놈이었지?”

“네. 얼굴은 못 봤지만……. 팔이 하나 없었습니다. 그리고…….”

“걷는 모습이 그놈이지.”

“네.”

라드가 되면 모든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오히려 본능에 가까운 영역에 있어서는 강화가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특히 무언가를 알아보고 추적하는 과정에 필요한, 즉 사냥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랬다.

라드가 되기 전부터 인간 사냥꾼으로 살았던 구우준은 그 정도가 더더욱 심했다.

“그놈이 드나드는 곳이 아무 곳일 리는 없지.”

“네. 그나저나 배는 안 고프십니까?”

“아까부터 고팠지.”

“아. 이봐.”

둘은 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누다 거대 개체 하나를 불렀다.

그러자 녀석은 메고 있던 자루를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무언가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외에는 달리 소음은 없었다.

안에 든 것은 인간이었다.

딱 죽기 전의 상태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여기서 불을 피우면 안 되겠지.”

“큰일 나겠죠.”

그는 김민수와 구우준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오줌을 지렸다.

그러나 그 오줌에 닿은 라드까지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불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다른 동물은 없었나?”

“아시잖습니까. 인간이 제일 흔한 동물입니다.”

“그것도 그렇군.”

아무래도 바이러스는 살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보니, 어떤 거리낌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도덕심이고 나발이고 다 무너져 버린…….

어쩌면 인간일 적에도 본인의 양심이 아니라 사회적인 규범에 의해서만 규제를 받았던 것들에게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이쪽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을 때쯤, 김선태는 세브란스에서도 꽤나 중요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1호가 있는 곳인데 그사이 몇몇이 더 충원되었는지 수가 늘어 있었다.

“흐음…….”

모든 ‘지능 있는 라드’가 주요 대상이니만큼 그들은 각방을 쓰고 있었다.

김선태는 짐짓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가면서, 그러나 혹 아는 얼굴 중 사라졌거나 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는 놈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면밀히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를 따라온 김조은과 군의관 놈을 살피기도 했다.

이놈들도 훈련을 받은 놈들은 아니지 않나.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다면 표정에 변화가 있을 터였다.

허나…….

‘이상하군.’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보여야 할 그런 반응도 없었다.

그것도 둘 다 그랬다.

‘이놈들이 아닌가…….’

실험체들 또한 그랬다.

몇몇 늘어난 것 외에는 입고 있던 옷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팔이 잘렸군? 무슨 일이 있었지?”

변한 것은 김선태 자신이었다.

한껏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박기태, 즉 1호가 보였다.

녀석은 전혀 야위지도 않고, 그렇다고 살이 찌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허나 분명히 늙어 있었다.

돌이켜 봐야 몇 달 되지도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수년 만에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너 같은 놈들에게 물려서 스스로 잘랐지.”

“아, 그게 되던가?”

“해 보니 되더군.”

그래서였을까?

아니, 그 전부터 김조은이나 군의관보다는 이놈을 만나 보고 싶었다.

해서 김선태는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갔다.

군의관이나 김조은도 말릴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김조은은 심지어 이 모든 것이 잘 녹화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CCTV를 돌아보았다.

왜?

사실 저 박기태라는 놈을 포함해서 이놈들이 인간과 대화를 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는 게 굉장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꼴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박기태는 한스럽다는 얼굴로 말하다, 이내 김선태를 바라보았다.

“근데 어떻게 물렸지?”

그 모습에 김선태는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단지 상대가 늙어 보여서만큼은 아니었다.

‘원래 이렇게 말을 잘했던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실 김선태도 박기태랑 딱히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확실치는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상한…….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왜…….’

물리고 나서 아니, 어쩌면 자르고 나서부터 받았던 느낌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변인들에 대한 불쾌감이 지금 비로소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다.

‘이게 뭐지.’

김선태는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리곤, 박기태를 향해 답했다.

“함정에 빠졌지.”

그렇게 말하다 말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김조은과 군의관이 있었다.

아까와 같은 얼굴을 하고서였다.

뭐 이제 와서는 별 상관없었다.

이놈들이 배반자이건 아니건…….

그럼에도 한 번은 더 떠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네놈들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놈들이 있던데. 너한테 직접 물린 놈들 말고도 말이지.”

이 말에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였는데, 김조은이 살처럼 뛰어나왔다.

“네? 자연 상태에 이런 놈이 있었습니까?”

오버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건 진짜였다.

‘이놈들은 아닌 거 같군.’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한줄기 의심이 다른 이에게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부에 진짜 악은 따로 있지 않던가.

‘대통령……. 설마 남산인가.’

생각해 보면 남산을 갑자기 배제하게 된 것도 좀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곳을 자신 모르게 또 하나의 비밀 기지로 쓰기 시작한 것일는지도 몰랐다.

서로 모르게 연구를 진행한다든지 해서 그 결과를 따로 확인하는…….

“물릴 때의 느낌은 어땠지?”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박기태가 말을 걸어왔다.

김조은에게는 이 또한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같은 라드 놈들끼리 대화하는 건 많이 봤다.

그들 사이에는 나름의 유대감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위계질서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인간에게만큼은 적대감만을 표출했었는데…….

‘팔 잘린 게 그렇게 신기한가.’

김조은은 무작정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기다리는 대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렇게 대화가 다시 재개되었다.

“아프더군.”

“그렇기만 했나?”

박기태는 묘한 눈을 하고 있었다.

허나 라드가 아닌 이상 그 사소한 표정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김선태는 그 질문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아프기만 했나?

‘아니……. 아니었어.’

물리는 순간은 아니었던 거 같았다.

그때는 그저 아팠다.

하지만 중간에 오토바이를 멈추었을 때, 그때…… 정말 자르려고 멈췄나?

멈출 수밖에 없었던……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가?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감각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느낌이 일었다.

“흐흐……. 아니지? 아니었을 거 같은데…….”

김선태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그나마 비틀거리지 않은 건,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간신히 버텼다.

“흐흐흐.”

그런 김선태를 보다가, 박기태는 미련 없이 돌아서 자리로 가 버렸다.

그러곤 누워서 눈을 감았는데, 그 후로는 누가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김선태가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뭐, 입을 열게 하려면야 고문을 하건 뭘 하건 가능하긴 하겠지만…….

이들에게 있어 박기태는 너무 중요한 실험체이기에 그랬다.

“잘 보셨습니까?”

“그래.”

그사이 이미 평정을 회복한 김선태에게 김조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헌데…… 밖에도 이런 지능체가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자네가 모르는 일을 어찌 알겠나.”

김선태는 대강 뭉개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평소라면 강건한 그에게 붙을 생각도 못 했을 텐데, 학자로서의 궁금증이 도져 버렸는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쾌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던 참이었지만 그렇다고 패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랬다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요.”

“휴……. 알았네. 알겠어.”

김선태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엔 누구 하나 그 한숨 속에 인간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냄새가 옅게나마 뒤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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