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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86화 (286/323)

286화 염탐 (2)

김선태의 곁에 붙어 있는 건, 예전처럼 옷이 좀 다른 군인들이었다.

일부러 검게 염색한 기색이 엿보이는 이들.

딱 봐도 정예 중의 정예라는 느낌을 주는 이들.

사실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이라고 해도 딱히 다르진 않았더랬다.

부대 편제부터가 잘게 잘려 있었던 데다가 병사들보다는 부사관 또는 장교 수급에 미쳐 있던 김선태 때문이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진심으로 갈고닦은 이들이 지휘를 맡고 있다 보니 일반병들까지도 꽤 훈련도가 높았다.

“그럼…… 조심히 가시죠.”

“마지막으로.”

“네.”

헌데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김선태에게 마중 나와 있는 이의 견장에도 별이 세 개였다.

김민수나 구우준은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보지 못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딱히 별생각은 없었다.

허나 김태평은 달랐다.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광경 속에 담긴 이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힘의 균형이 전과는 많이 다른 듯했다.

‘확실히 김선태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전처럼 강력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진 못하는 거 같은데.’

같은 계급의 군인이 있다.

그것도 딱 보니 이 근처의 통제권은 김선태의 것도 아닌 듯했다.

사실 이렇게 나누는 것이 맞기는 했다.

정부 측의 영역이 더 커져 가고 있고, 사실상 전체주의 국가처럼 군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그 군부의 축이 한 명이면 대통령으로서는 얼마나 불안하겠나.

잘게 조각내야지.

‘근데, 그 중장이 남산으로 가 있던 놈이라니.’

김태평은 스스로의 눈을 믿지 못해 몇 번이나 확인했다.

볼 때마다 그놈이 맞는 것 같았다.

확실했다.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는 놈을 끌어올렸다……. 흐으음……. 그것만으로는 저렇게까지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데.’

남산에 있던 놈.

그러니까 박원상과 같이 유배 생활 중이던 놈이지 않나.

이유는 명확했다.

대통령의 눈 밖에 났으니.

눈 밖에 난 거야 뭐 명령 불복종일 터였다.

그 사례는 김태평도 몇 개나 줄줄 읊을 수 있었다.

-네?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라고요?

-네? 민간인들을…… 약탈하라고요?

-네? 의사나 군인들이 아니라…… 연예인들부터 구하라고요?

-네? 방송국 설비를 탈취하라고요? 지금 한정된 자원으로는……. 경기 북부에 고립된 기갑사단부터…….

대통령은 김조은 박사에게서 ‘이 라드라는 것들이 수명이 짧고 또 스스로 번식하지 못할 거’란 얘기를 듣자마자 노선을 완전히 갈아탔다.

사실 정부 수반이라는 놈들의 나이가 그리 적은 편은 아니지 않나.

특히 대통령은 일흔이 넘은 노인이다.

나라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재빨리 원상 복구시키거나 그게 정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그럴싸하게 굴러가는 영역을 늘리는 데 집중을 했어야 할 테지만, 저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반기를 들었던…… 나름 양심 있는 군인이었던 이가 저기 책임자로 가 있다……. 이 말인가?’

사태가 터지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양심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던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 가거나 또는 변질되어 온 것은 사실이었다.

이전 사회에서 통하던 옳고 그름을 지금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많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군인이 적극적으로 민간인에 대해 실험을 한다는 건 여전히 통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하여간, 입 모양으로 유추해 보건대 김선태는 아직 순순히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린 채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네, 말씀하시죠.”

상대는 그런 김선태를 심드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좌우로 선 군의관이나 김조은 박사 또한 비슷했다.

‘개새끼들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뻣뻣하게 나올 수 있나 싶었더랬다.

아무리 자신의 주요 주둔지가 바뀌었다고 해도 뭐가 되었건 편제 아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랬다.

하지만…….

이제 세브란스 일대는 눈앞에 있는 사내, 이대엽 대령 아니, 이대엽 중장이 맡았다.

직급이 아예 같은 만큼 권한도 같았고, 따라서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은 위법이었다.

“부디 고깝게 듣지 말아 주게.”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눈앞에 이 인간을 남산에 갖다 박아 버렸던 것이 바로 김선태 자신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땐 이제 곧 숙청 대상이 될 거라 여기고 있었다.

그나마 고급 장교들의 수가 적고, 또 이대엽을 따르는 군인들의 숫자는 그리 적은 편이 아니다 보니 거기에 둔 것이었는데…….

고작 한두 달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바뀔 줄이야.

“네, 말씀하시죠. 원래 이 근처를 통제하셨던 분이니만큼 듣겠습니다.”

김선태는 착잡함을 뒤로하고 말을 이었다.

상대가 대놓고 삐딱선을 타지는 않고 있으니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였다.

“지금 인원들이 다 어디로 나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세브란스 통제 인원이 너무 적습니다. 더 필요해요.”

“네, 뭐.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라드…… 1호를 비롯한 지능이 있는 것들 말입니다.”

“네, 김선태 중장.”

“그것들 지키는 인원은 확실히 교대를 하고 있습니까?”

“그건 왜?”

“혹 라드에게 현혹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하.”

뭐 겉으로만 그랬을 터였다.

지금 봐라.

의미 있는 조언을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지 않나.

이런 건…….

사실 괜찮았다.

‘이 새끼…… 뭔가 더 아는 것이 있는가 본데.’

문제는 정보의 차이였다.

세브란스가 일단 이놈에게 넘어가 있다면, 그만큼 라드에 대한 정보에 있어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그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남산과 세브란스 그리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여러 곳에서 라드에 대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을 테니까.

이전에도 그랬으니 더 강대해진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라드에 대해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음…….”

“이제 그만 가시죠.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러지.”

여기서 캐묻는다고 뭘 알려 주겠나.

그냥 가는 게 옳았다.

오히려 순순히 물러나는 쪽이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적이지 않던가.

그리고 뒤로 접근해서 캐 보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터였다.

그렇게 김선태는 차량에 올랐다.

차량은 마치 쫓겨나는 모양새로 급하게 세브란스를 빠져나와 서대문 경찰서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터널로 사라졌다, 이 말이었다.

그 모든 대화를 지켜본 김태평은 판단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의 말에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던, 사실은 주변에 널린 집기들을 부숴 가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김민수와 구우준을 비롯한 나머지 인사들이 귀를 기울였다.

라드 때문에 역한 냄새가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이제 와 그런 사소한 일에 인상을 쓸 만큼 어설픈 이는 여기 없었기 때문에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다.

“일단 김선태가 이 근처를 통제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뭔가 분위기도 좀 어수선하고……. 무엇보다 중장이 하나 더 있더군요.”

“중장이요?”

“네. 아, 정 교수님. 혹시 최근에 박원상하고 연락이 된 적이 있습니까?”

“일주일 전쯤……. 그 후로 매번 시도해 보는데 연락이 안 됩니다.”

“그때 뭐 특별한 얘기 없었습니까?”

“뭔가 성과가 보이는 거 같다. 이게 다입니다.”

“흐음.”

사실 이 얘기는 전에 들었던 말이었다.

성과가 보인다…….

애매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연구하는 놈들, 그중에서도 나랏돈 받아먹는 놈들이 주로 하는 말이지 않나?

그래서 그냥 넘기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른 모양이었다.

“지금 저기, 세브란스 쪽으로 다시 들어가는 군인……. 새로운 중장 말입니다.”

“네.”

“남산에 있던 놈입니다. 원래 거기 지휘관이었어요.”

“네? 아니, 어떻게……?”

“모르겠습니다만…… 추정을 해 볼 수는 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 성과를 냈을 겁니다. 박원상 그 양반이…… 부주의한 편이죠?”

“그렇게까지 용의주도한 편은 아닐 겁니다.”

애초에 평범한 의사지 않나?

게다가 한번 아예 버림받을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작은 자리나마 잡았다.

거기서 성과 비슷한 것을 냈다면 어찌 행동했을까?

흥분했을 거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얘기까지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그러니까 이쪽과 연관된 얘기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실험 결과를 상대가 알게 되었다면, 그걸 이용해서 딜을 걸었을 수 있겠죠. 세브란스 측, 김조은 박사가 그 얘기를 듣고 뭔가 더 해 볼 수 있겠다 싶었을 수 있고요.”

“그래서 여기로 왔다? 그럼 박원상은……?”

“연락이 안 된다고 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쪽으로 왔다면 연락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거고, 재수 없으면…….”

“죽었을 수도 있겠군…….”

“네, 뭐. 아닐 수도 있고요.”

죽어?

죽음이 과연 가장 무서운 형벌일까?

김태평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도 죽음보다 무서운 벌들이 만연하게 있던 세상이지 않나.

국정원이야 아무래도 CIA처럼 막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직접 경험해 본 바는 없지만, 건너 건너 들려오는 흉악한 정보들을 보면 이게 진짜 인간들인가 싶은 것들도 있었다.

지금?

지금이야 뭐…….

‘어쩌면 라드가 되었을 수도 있지.’

박원상 같은 인간이 어찌 되는지는 알 바 아니었다.

다만 자꾸 상황이 바뀌는데 그걸 실시간으로 감지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태라는 게 불만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연찮게 여기서 김선태와 저 이대엽 중장이 대면하는 것을 보았다는 점일 터였다.

그로 인해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아무튼,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의 책임자가 김선태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더 봐야겠지만, 보통 지휘관이 이런 식으로 바뀌게 되면 모든 체계가 바뀌기 마련이죠.”

“그런가요? 군대는 보수적인 집단 아닙니까?”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 아닙니까? 전쟁 중에 장군이 바뀌었다면……. 새로 온 장군이 뭘 해야겠습니까?”

“아, 그렇지. 거기는 정치로군요.”

“네. 윗선에서 왜 저놈을 자르고 자신을 앉혔는지부터 고민할 겁니다. 실제로 전쟁하는 부대도 아닌 만큼 더 그렇겠죠. 그렇다면 일단 이전 체계부터 갈아엎을 겁니다. 윗선에 보여 주기 위함도 있을 것이고, 또 내부적으로도 지휘관이 바뀌었다는 걸 체감하게 해 주는 것이죠.”

대화를 하면서도 일행은 지속해서 밖을 엿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태평의 말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명령이 바뀌는 건 순간이지만 그걸 따르는 인간들까지 바뀌는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서 그런가, 상당히 어설퍼 보이는 지점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 교대 시간이 그랬다.

아예 정문이 텅 비는 느낌을 주는 시간마저 있었다.

“좋군.”

“이거……. 시간이 중요합니다. 더 끌면 빠르게 안정될 거예요.”

“그럼……?”

“차라리, 이렇게만이라도…….”

결단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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