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제2 사태 발발 (1)
라드 중에 통제가 가능한 것은 원래 김민수가 데려온 것들과 이 안에 갇혀 있던 것들뿐이었다.
새로이 라드가 된 것들…….
그러니까 이 지하실에서 숙식을 해 가며 별별 연구를 다 진행하던 실무진들과 그런 그들을 돕던 이들 그리고 경비를 서던 이들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당연히 김민수나 그 밑에 딸린 식구들에게 물렸으니 본능적으로 김민수를 따르려 하긴 했지만, 그것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야 가능한 얘기였다.
애초에 구우준 급으로 지능이 갖춰질 놈들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충동을 바로 조절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밑에 많은데…….”
“불부터 켜. 깜깜하잖아.”
그렇다 보니 어마어마한 소음이 일고 있었다.
뒷산, 그러니까 연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개활지에서 이동해 온 부대 전체는 잔뜩 긴장한 채 아래로 향했다.
다행히 이들은 정부군 소속이었고 따라서 장비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기역 자로 꺾인 손전등을 방탄복에 달거나 소총 밑으로 달아 둔 채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거의 자동차 헤드라이트라도 닿는 것처럼 밝디밝았다.
그래 봐야 전체 점등한 수준으로 밝지는 못했다.
와장창
쨍그랑
내려오면서 계단 옆으로 있는 스위치를 딸깍거려 봤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이미 김민수, 구우준을 비롯한 놈들이 스위치만 내린 게 아니라 전등을 깨 버려서 그랬다.
물론 모두 깬 것은 아니다 보니 드문드문 불이 들어오는 전등도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불이 들어오는 동시에 다 깨 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지하는 암흑이었다.
“망할.”
“라드만 있는 거 맞아요?”
“어쩌면…… 풀려났을 수도 있어.”
“뭐가요?”
“여기서 실험하던 것들.”
“아.”
일선 부대를 제외하면, 실험체에 대해 자세히 아는 놈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는 그랬다.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으니.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가 있지 않았나.
김선태의 실각.
그와 더불어 이 일대에 혼선이 있었다.
지휘관들보다야 덜했지만, 병사들도 보다 못한 보직으로의 이동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진 것 중 하나가 세브란스 쪽에서 근처 개활지로의 이동이었다.
“그럼 지능이……?”
“그렇지.”
“시발…….”
“뭔 소리야?”
해서 부대 내에도 몇몇은 이 밑에 뭔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능이 있는 라드.
상상이 어려운 존재지만, 분명히 봤더랬다.
심지어 대화가 가능한 놈들도 있다지 않았던가?
직접 그러한 것을 해 봤거나 목도한 놈들이야 이미 김선태 쪽으로 이동했거나 또는 김선태가 복귀하기 전에 벌써 실각하고 외곽으로 옮겨졌지만, 원래 사람 말이라는 걸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했다.
“아니, 그럼……? 그놈들이 탈출했다고?”
“그랬을 거 같은데요? 이 소리…….”
“이, 일단 위. 위…… 어.”
“오, 온다! 쏴!”
그렇게 단편적으로나마 일부만 알고 있던 지식이 번지는 순간 부대 내에는 동요가 일었다.
모두 지하로 향했던 것도 아니었던 만큼, 기껏해야 수십밖에 안 되는 인원이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단에서 서성이던 인원들이 뒤로 돌아 나가려는 순간, 김민수가 이제 막 라드화를 끝낸 인원들에게 명을 내렸다.
“물어!”
그러자 그들은 맹목적인 명령과 또 본능에 따라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쏴!”
타타타타
애초에 근접전을 염두에 두고 내려온 병사들이지 않나.
연사로 돌려놓고 순식간에 탄창을 비우는 자동 소총 앞에서, 이제 막 라드가 된 놈들이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무력하게 쓰러지는 모습뿐이었다.
“헉. 헉.”
찰나.
순간이라고 해야 좋을 만한 시간에 수십에 달하던 라드들이 쓰러졌다.
그제야 병사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걸.
“잠깐…….”
“이거…….”
쓰러진 인원들이 입고 있는 옷이 이상하다.
군복이 있는 건 차라리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적이 있다면 그들도 군인일 테니.
일반적인 놈들이 감히 여기까지 온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허나 의사들 또는 연구원 복장을 하고 쓰러진 놈들이 태반이라는 건…….
“어, 어! 악!”
그때,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던 사격을 틈타 계단 옆쪽으로 이동했던 라드들이 좌우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이들의 발목을 낚아챘다.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인 데다가, 김민수가 이끄는 주력 부대에 해당하는 놈들인 만큼 괴력의 소유자들이었다.
하릴없이 예닐곱 명의 병사들이 당했다.
죽었다는 건 아니었다.
변이가 시작되었다.
“으, 으으으으!”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물리면 수초, 길어야 수분 이내에 무력화된다.
그리고 곧이라고 해야 할 만큼이나 짧은 시간 후에 일어나 다른 이를 문다.
혼자 동떨어져 있다면 상황 파악부터 하겠지만 주변에 지금처럼 사람이 있으면…….
“어, 어쩔 수 없어! 쏴!”
“이런 씨이발!”
사태 초반이었다면 그걸 몰랐으니 당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아니, 알았다 해도 방금 전까지 옆에서 떠들어 대던 동료이자 전우, 친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쏠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타타타타
내키지 않을지언정 쏴 버릴 수 있었다.
딸각
딸각
조종간을 연사로 걸고, 벌써 두 번이나 별 조준도 없이 난사를 해 버렸다.
여기저기서 딸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대 내에서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된 가운데, 무언가 움직였다.
애초에 귀를 기울인 채 바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김민수가 명령을 내린 까닭이었다.
시작은 계단 양옆으로 있던 거대 개체들이었다.
놈들은 그 놀라운 괴력과 운동 신경을 이용해 곧장 난관을 타고 위로 뛰어올랐다.
몇몇이 그간의 고된 훈련과 반사 신경의 성과를 등에 업고 총을 겨누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딸각
폭발음 대신 딸각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일부 발사된 총도 있긴 했지만 아쉽게도 너무 적었고, 제대로 겨누지도 못했다.
“으, 으아아아!”
탄창을 갈아 끼울 만한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벌써 부대는 곤죽이 되어 버렸다.
거대 개체라는 것들이 원래도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들이 아니지 않나?
거기에 더해 김민수가 이끌고 있는 놈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이미 싸움은 질릴 만큼이나 많이 겪었다는 얘기였고, 그중에는 군인들을 상대로 했던 적도 많았다.
죽여야 할 놈은 죽이고, 물어야 할 놈은 물었다.
그러한 것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뭐야.”
“불길한데요.”
1층에 남아 있던 부대는 아래층에서 두 차례에 걸쳐 들려온 총성과 그에 뒤이어 들려오기 시작한 비명에 몸을 움츠렸다.
좋지 않았다.
지휘관인 상사는 저도 모르게 위쪽을 바라보았다.
-중장님이 위험할 수 있어! 일단 너네는 대기! 뭔 일 있으면 무전 때리고!
끌고 온 부대 절반이 저 위로 향하고 있었다.
남은 부대의 절반은 아래로 향했었는데, 이젠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전은?”
“아래쪽에서는 답 없습니다.”
“위는?”
“위에서도…… 교전 중이라고 합니다.”
“교전?”
“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총성은 비단 밑에서만 들려오던 게 아니라는 걸.
위에서도 총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X 된 거…… 아닌가?’
위아래로 이렇다?
일단 위쪽은 그나마 총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쪽의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아래는?
치직
전멸 아닌가 할 때쯤, 무전이 들어왔다.
“뭐야.”
“아래…… 아래 같습니다.”
“아래라고?”
“네.”
“줘 봐.”
치직거리는 소리.
감도가 좋지 못했다.
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대한민국 군대 통신 마비시키려면 카톡부터 날려 버리라는 말이 있지 않나.
무전기는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엉망이었다.
“누구지?”
-박…… 원복 중사입니다.
“아, 박 중사! 어떻게 된 거야!”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나?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는 이름이 나왔다.
해서 상사는 반가움에 이렇게 외쳤고, 곧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수가 많아서 애를 먹었지만 다 제압했습니다. 다만 부상자들이 많아서 올라갈 수가 없는데……. 좀 도와주시죠.
원래 박원복 중사의 말투가 이랬었나?
잠시 기시감이 들었지만, 이게 기시감인지 나발인지 깨닫기도 전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박 중사를 비롯한 부대원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도 반가웠지만, 아래에 적이 없다는 사실이 더 반가워서 그랬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건 인간의 유구한 전통이었다.
“일단 가지!”
“아, 네!”
상사가 그렇게 나오는데 나머지는 어떻겠나.
가자는데 가야지.
좀 찜찜하긴 했지만 무전기 너머 들려온 이름은 분명 아는 이름이었다.
그 사람이 이미 제압했다고 했기 때문에, 부대는 별걱정 없이 아래로 향했다.
게다가 불을 비춰 보니 확실히 왔다 갔다 하는 군인들이 있었다.
약간 아파 보이긴 했지만.
“박 중사?”
“아, 여깁니다.”
그 와중에 묻는 말에 답도 했다.
보다 밝았거나 혹은 보다 주의 깊게 봤다면 방금 손을 든 사내가 걸치고 있는 군복이 지나치게 작아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 그렇구만. 어휴, 이거. 뭐가 어떻게 된…….”
상사는 자신의 불안감을 얼른 떨치고 싶어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한곳에 몰아져 있던 시신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이제 와 시신 때문에 움찔하기엔 너무 많이 보기도 했고 일단 아래쪽으로 향했던 지휘관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반가워서 그랬다.
“어, 자네……. 이게…….”
그렇게 다가온 상사는 가까이에서 본 박 중사의 키가 너무 크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부상병 또는 시신처럼 누워 있던 것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것들이 벌써 뒤따라온 부대 전체를 덮쳐 버렸다.
상사?
“윽, 으윽.”
그는 김민수에게 물렸다.
그렇게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고 나서야 김민수는 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러곤 끔찍한 몰골이 된 채 갇혀 있던 이들에게로 갔다.
“이제 입 열어도 되는데.”
“아.”
잔뜩 갈라지고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침대에 묶인 채 누워 있었는데, 무언가 안 좋은 짓을 당장 오늘 밤에도 당한 거 같았다.
“풀어…… 풀어 줘.”
같은 라드라는 생각에서일까?
아니면 자신을 억압하던 놈들을 다 죽인 존재여서일까.
상대는 꽤 호의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민수도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냉막한 얼굴로 상대에게 다가갔다.
딸깍
병실?
아니, 감옥이라고 해야 할 공간에 구우준이 불을 켰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라드…… 라드였다니.”
“뭘 한 거지, 놈들이?”
김민수는 상대의 말에 답해 주는 대신 일단 그를 살폈다.
여기저기 종양인지 농인지 모를 것들이 번져 있었다.
양쪽 팔다리에는 라인이 달려 있었다.
옆을 보니 총알에 맞아 깨진 모니터와 본체가 있었는데, 이제 와 뭐였는지 확인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여기, 여기도 있다!”
다른 지성체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갇혀 있던 라드들이 한둘이 아닌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