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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293화 (293/323)

293화 제2 사태 발발 (4)

“중장님! 조금만 천천히……!”

산길에 접어든 김선태는 사실상 무아지경에 가까웠다.

냄새…….

본능적인 그리움이 그를 이끌고 있어서였다.

‘이 느낌은…… 이게 뭐지!’

평소 냉정함을 넘어 냉막한 수준인 김선태로서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무엇이었다.

그 때문에 거의 나는 듯이 달리고 있었다.

뒤쫓아야 하는 병사들로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서로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하는데, 그게 정확할 수가 없지만서도 미칠 지경이라는 것 정도는 동의할 수 있었다.

“주, 중장님! 위험합니다!”

이게 그냥 시가지면 또 모를 일이었다.

다시 말해 완연한 인간의 영역이었다면, 괜찮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숲이었다.

라드의 영역이었다.

아직, 인간은 숲을 되찾지 못했다.

“미친…….”

“왜 저렇게 빨라?”

“몰라. 잡혀 있다가 탈주했다더니……. 저래서였나.”

“어째 몸이 더 좋아진 거 같지 않아?”

“약이라도 맞았나 보지. 요새 그런 놈들 많잖아.”

“하긴……. 시발 근데 적당히 달려야지.”

병사들은 그러려고 의도한 것도 아닌데 아주 자연스레 뒤처졌다.

김선태가 워낙에 빠르기도 했거니와 뒤를 돌아보지 않아서였다.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거리는 벌어져만 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어서 그랬다.

달이 밝은 밤이고 또 뒤로는 불길이 치솟고 있다 보니 시야가 여느 밤보다는 좋다고 해도, 말이 안 될 만한 속도였다.

아마 평생 산만 탄 사람이라고 해도 저 정도는 안 될 것 같았다.

“음…….”

그에 비해 앞서가던 박기태 일행은 그렇게까지 달리고 있지 않았다.

일단 박기태 등이 대우를 잘 받았다고는 해도 갇혀 있던 몸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양도 의도적으로 적게 공급받아 왔기에 이미 지쳐 있었다.

게다가 라드는 애초에 장거리 달리기에 적합한 육체가 아니었다.

단거리로는 인간보다 훨씬 빠를 수 있어도, 거리가 조금만 늘어나게 되면 푹 퍼지기 일쑤였다.

해서 잰걸음 정도로 걷고 있으려니, 뒤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뭐지?”

워낙에 헐떡거리면서 달리고 있는 데다가, 애초에 체취가 심한 라드였기 때문에 멀리서도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뒤에서 라드가 오고 있다니.

누군가 놓치고 온 건 아닐 터였다.

박기태는 모두를 기억하고 있었으니.

그렇다면 야생일까?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박기태를 쫗는 야생 라드는 있을 수 없었다.

또 다른 계통의 라드가 발생했다면 모를까…….

“너……!”

인간의 냄새는 없었다.

아니, 있기는 한데 한참 뒤처져 있었다.

게다가 숫자도 적었다.

맞붙게 된다면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이곳이 산이고 또 밤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해서 보다 천천히 걷다 보니 마침내 땀으로 범벅이 된 사내 하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너……!”

김선태…….

오랜만도 아니었다.

당장 어제 보지 않았나?

그때도 이미 어느 정도 변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린 참이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변이를 나타내려면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줄 알았다.

헌데 이렇게…….

‘아, 병원에서 피를 봤나.’

이건 순전히 예측일 뿐이었다.

실제 물리고 나서 저런 식으로 팔이나 다리를 잘라 인간성을 유지한 사례가 거의 없었으니.

허나 피가 라드의 충동을 자극한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경험으로도 그랬고, 김조은이나 다른 놈들이 떠들어 대는 걸 들어서도 그랬다.

“으…… 으!”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가는 박기태와는 달리, 김선태는 그저 터벅터벅 걸어 박기태 앞에 설 뿐이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간지럽던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에 압도된 채 박기태는 그저 서 있었다.

아무래도 변이가 일어난 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보니 몸집은 박기태에 비해 훨씬 작았다.

“이 자식이…… 이미……?”

김민수는 그런 김선태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대신 멍해졌다.

반드시 물고 싶던 놈이었는데 이미 이렇게 되었을 줄이야.

그를 물었던 장본인인 구우준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 와중에도 김선태는 단지 서 있었다.

“돌아가라.”

그런 김선태를 보면서, 박기태가 명했다.

그제야 김선태는 고개를 들어 박기태를 바라보았다.

총기가 사라져 있던 눈알에 초점이 선명하게 잡힌 채였다.

“돌아가……? 떨어지라고? 왜지?”

감정은 초기 라드답게 격했다.

눈에 핏발도 좀 서 있었고.

허나 명령에 대한 거부는 아니었다.

그저 박기태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그런 느낌일 뿐이었다.

“가서 김조은을 죽여야지. 그놈은 물면 안 돼. 가둬 놓고 죽여야 해. 너도 마찬가지였지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박기태는 그런 김선태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문장이 길진 않았지만, 안에 담긴 감정은 간단치가 않았다.

복수라고만 하기에도 뭐했다.

회한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복잡한 것들이 그의 말 마디마디마다 올올이 박혀 있었다.

“대통령도 어떻게 해야지. 그래야 우리 세상이 오겠지.”

박기태는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김선태에게 손짓했다.

가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김선태는 더 거역하지 못했다.

마지못한 기색이 역력하긴 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그를 남겨 둔 채, 박기태는 가던 길로 향했다.

김민수나 구우준이 왔던 길과 경로가 상당히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좀 달랐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아무래도 추적에 능한 구우준이다 보니 그러한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해서 물으니, 박기태가 미소와 함께 답했다.

“남산.”

“남산……?”

“정확지는 않지만, 김조은의 말에 따르면 거기에서 우리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더군.”

“아…….”

“아마 병원에도 있긴 할 텐데, 실패했을 거야. 성공했다면 그 김조은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지.”

박기태는 그런 말과 함께 남산 쪽으로 향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정확지는 않았기 때문에 구우준이 세밀한 조정을 더 했다.

“아, 중장님!”

그사이 뒤따르던 병사들은 간신히, 말 그대로 간신히 김선태를 따라잡았다.

김선태에게서 심한 체취가 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김선태의 생김새는 여전히 인간에 가까웠다.

“그래.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놓쳤군.”

게다가 말투 또한 라드와는 완연히 달랐다.

물론 지능을 간직한 라드도 있다는 것 정도는, 병사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실제 그런 라드를 대면한 이는 극히 드물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김선태가 키우다시피 한 놈들이지 않나.

김선태를 감히 의심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럼…… 돌아가시겠습니까? 여긴 위험합니다.”

“그러지. 제길. 병원은 어찌 되었지?”

“수습 중일 겁니다. 자세한 얘기는 가서 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김선태는 멀쩡한 척 병원 쪽으로 향했다.

병사들의 불필요한 호위를 받아 가면서였다.

한편, 유현 일행은 이제 다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아직 정부 영역이 아닌 다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뒤쫓는 라드나 정부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가는 길에 뭐라도 튀어나올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모여 있는 인간들이 다들 정예다 보니 급속도로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김조은 박사.”

“아, 네.”

해서 유현은 김조은 박사를 불렀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김조은은 지체없이 답했다.

“불필요한 고문은 하고 싶지 않은데……. 묻는 말에 다 답해 주겠죠?”

그런 김조은을 보며, 유현은 말했다.

김조은은 유현의 동공을 보면서 그의 진심을 읽었다.

아니,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바 있었다.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김태평과 유현은 사람을 벗어난 인간이었다.

동류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면 사람 죽이는 데 별로 망설이지 않을 거야.’

아까 불 지를 때도 보지 않았나?

아마 자신도 그럴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아니, 이미 그래 왔다.

김조은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때문에 오히려 진심으로 협조할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뭐든지……. 혹 질문이 없으시면 제가 아는 걸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 차에 타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요원들은 위장막에 가려 두었던 차를 확인했다.

다행히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

기름이 사라지지도 않았고.

해서 일행은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탄 후, 예의 그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제일 궁금한 건, 거기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던 거지?”

김태평은 차분히 기다렸다.

어차피 시간은 많지 않나?

손아귀에 떨어진 이상 놔줄 생각일랑 전혀 없었다.

그러니 가는 동안에는 일단 유현이 떠들게 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유현이 묻는 질문이나 그에 따른 답변 같은 것은 유현에게 맡기는 것이 답이기도 했다.

“네. 라드 무력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신은 포기했다고 들었는데, 그럼 치료제인가?”

“치료는…… 안 됩니다.”

김조은은 뒤에 올라타 있는 이순규를 힐끔 돌아보았다.

다행인지 뭔지 이순규는 픽업트럭 뒤에 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기척을 느끼진 못하는 듯했다.

“안 된다면 무력화는 어떤 방식으로 하려고?”

“죽이는 거죠. 무기가 아닌 바이러스로.”

“바이러스라…….”

“성과가 있었습니다. 남산에서요.”

“남산? 거기 누가 있지?”

유현은 함정 카드를 발동했다.

여기서 사실대로 고하지 않는다면, 김조은은 꽤나 험한 꼴을 겪게 될 터였다.

유현 본인도 인체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데다가 김태평을 비롯한 요원들은 인체 손상의 전문가들이지 않나.

오예리 또한 대상이 김조은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그리 탓하지 않을 터였다.

직접 행하거나 보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알고 있나?’

김조은은 그런 기색을 바로 알아차렸다.

눈치가 없어서야 어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의심 많은 대통령 밑에서 요직을 이토록 오래 맡아 왔다는 건, 능력의 입증이기 전에 처세술의 입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박원상 교수……. 정 교수님의 지인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 교수가 바이러스 감염 실험을 주도했었습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효험이 있었지?”

“천연두와 탄저가 효과가 있다는 건 확인했습니다만……. 그건 라드에게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치명적이라는 단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저 두 개 중 하나만 번져도 사실상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절멸 위기를 겪게 될 터였다.

또 다른 사태라 해도 좋을 지경이지 않나.

“그것을 보완한 것이…… 콜레라입니다. 애초에 많이 먹어야 하는 라드들인 만큼 대증적인 치료가 거의 불가합니다. 단점은…….”

“수인성 전염병이니 호흡기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번지질 못하겠군.”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집단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박살 낼 수 있을 겁니다. 남산에서 그…… 콜레라균을 배양 중입니다.”

“강에라도 풀려고?”

“네.”

“미쳤군…….”

인간에게 콜레라는 이제 위협적인 질환은 아니게 된 지 오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인프라가 있을 때의 얘기.

미리 강물이 위험하다는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마시게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큰 집단부터 박살이 나기 시작할 터였다.

“라드보다는 인간을 죽이고 싶었던 건가…….”

유현의 넋두리에 김조은은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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