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남은 무리는…. (3)
설마하니 이 일로 인해 한반도에 있는 모든 라드들이 죽었겠나?
그럴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 수가 크게 줄었다는 것 정도는 체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박기태를 제거하고 하면 걸림돌이 없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군대를 유지할 수 있단 전제가 필요하긴 했다.
“어쩌면 말입니다.”
김태평은 한참 유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수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불성설일 이야기였다.
수도권에서도 독보적일 만큼 개발이 이루어진 곳 아닌가.
고작해야 군부대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이 있으면 뭐 얼마나 되겠나.
허나 폭격 탓에 여기저기가 무너져 버린 탓에 몇몇 구조물 또는 산을 제외하고는 딱히 시야를 방해하는 것들이 없었다.
유현도 그 비슷한 어딘가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김태평은 그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일단 입을 열었다.
“정부와…… 협조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아…….”
김태평이 보기에 유현은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간이어서 그랬다.
아니, 가능하다고 봐야 할 터였다.
다른 놈에게 지금 이런 얘기를 했다면 대화가 아니라 싸움이나 하게 될 테니.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세상을 대하는 이들이 태반이지 않나.
나름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얼마간은 감정적이라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유현은 달랐다.
지금도 봐라.
화를 내는 대신 한숨을 쉬고 있지 않나.
어느 정도는 이미 본인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망할.”
유현은 인상을 쓰다가 이내, 욕설을 내뱉었다.
확신이 든 김태평은 자신의 생각을 더 이어 나갔다.
“지금 우리 일행 다 합쳐 봐야 20명 남짓합니다. 그것도 아픈 사람들 다 회복한다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얘기고…… 막말로 양재원 같은 친구는 전투원으로 써먹기가 어려워요.”
“그렇긴 하죠. 아팠던 사람들이 회복 과정에서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고.”
“그럼…… 대량 15명 정도 싸울 수 있다고 봐야 하는데…….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하아……. 그렇죠. 그놈들…….”
기습을 한다는 전제하에도 이기기 어려울 터였다.
제아무리 총이 있다고 한들 상대는 라드이지 않나.
게다가 기습은 이쪽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라드들의 기습이 훨씬 무서웠다.
놈들은 보통 인간보다 훨씬 더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 사각으로 침입해 오는 것이 가능해서 그랬다.
무엇보다 그 완력…….
상상을 초월하는 완력 때문에라도 예상치 못한 곳으로 쳐들어올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나머지 일행들이 얼마나 납득을 할까겠죠.”
유현은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재원과 오예리 그리고 김용일을 바라보았다.
셋도 여기 둘처럼 옥상에서 수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딱히 대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노을이 볼만하긴 하지만, 그게 어디 눈에 들어오겠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도 부족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렇죠. 많이 죽었습니다. 흐음…….”
안면 트고 살던 이들이 다 죽었다.
특히 유현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우식을 잃었다.
의외인 것은 라드로 변해 버린 박원상 또한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망할 새끼.’
그딴 식으로 갈 거면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김조은처럼 아득바득 살아남기라도 할 것이지…….
“그에 비해 정부는 대응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이번 기습을 통해 타격을 주긴 했지만……. 김선태가 멀쩡해요.”
“그게 문제죠. 우리가 일행을 설득해서 협상에 나선다 한들…….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어요?”
유현의 말에 김태평은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김선태가 멀쩡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비록 많은 수의 병사들이 죽었고, 또 세브란스가 날아가기는 했다지만…….
김선태가 이끄는 병사들이 있다면, 사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한반도 전역을 수복하고도 남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이참에 북한에 중국까지 쳐들어갈 수도 있지.’
중국이야 처음부터 주요 타겟이었던 만큼, 거기에 더해 주요 도시의 밀집도도 심하고 정보 통제만 하던 탓에 아예 박살이 나 버리지 않았나.
그렇게 자랑하던 중국 인민해방군은 안에서부터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심지어 장부상으로는 분명 존재한다고 했던 무기나 피복류들이 실제로는 없는 경우도 많아서 더더욱 커다란 피해를 입어 버렸다.
무주공산이다, 이 말이었다.
물론 그만큼 라드가 어마어마하게 많기는 하지만…….
“해 보긴 해야죠. 아니면 흔들어 보거나.”
김태평은 본인 스스로도 이게 될까 하는 얼굴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유현 또한 비슷한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세상엔 다 알면서도 침묵을 지켜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더더욱 그랬다.
오늘…….
일행은 고속터미널과 수원 모두를 잃었다.
그 안에 있던 대부분의 인력까지 대부분.
해서 둘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에 쥐고 있던 맥주만 마셨다.
오늘따라 술이 잘 받나, 취하지도 않는 기분이었다.
* * *
“으…….”
조영상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것은 이틀 후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중간에 죽을 고비를 한번 넘겼으니.
“좀 어떠세요?”
“제가…… 어떻게 된 겁니까?”
재원의 물음에 조영상은 물음으로 답했다.
아마 대강 알긴 알 터였다.
조영상이 쓰러진 건 대령과 거의 함께였으니.
증상만 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 또한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겠지만…….
이미 여러 차례 감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을 잃어 본 경험이 있지 않겠나.
현대 의학의 인프라가 사라진 세상에서 병은 인류사 전반에 걸쳐 그러했듯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쓰러졌어요. 콜레라입니다. 변형 콜레라죠.”
그 질문에는 재원 대신 유현이 나섰다.
김조은을 대동하고서였다.
“변형……?”
조영상의 입에서는 입 마른 사람 특유의 냄새가 번져 왔다.
그나마 스스로 물을 마실 만큼 회복이 된 상황이다 보니, 이 정도인 거지 아깐 더 심했다.
몸 상태가 얼마나 좋지 못한지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네. 이 사람이 김조은입니다. 아시죠? 그쪽 박사.”
“아……. 이…….”
“이 사람이 만든 건데. 보통의 콜레라하고는 아예 다릅니다. 지금 계속 물어서 정보를 확인했는데. 흠.”
유현은 김조은을 노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자들의, 그러니까 정부의 목표가 과연 라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어서 그랬다.
“이 균이 분비하는 독소는 90도 이상의 열을 가해도 수분 내에 파괴되질 않아요.”
“그럼……?”
“진짜 국 끓이거나 하는 게 아니면 파괴되지 않는 거죠. 게다가 요새 그렇게까지 불을 오래 쓰는 집단이 있겠습니까?”
“없죠…….”
“물론 독소만으로 감염이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급한 증세만 일으키게 되죠. 하지만 그 증세라는 게 설사죠. 그럼 현대인의 상식으로 물을 찾아 먹게 됩니다. 그런데 그 물이 다 오염이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염되겠군. 하! 생존자들을 노렸군요.”
라드만 노렸다면 굳이 독소를 신경 쓸 이유가 있었을까?
김조은은 순전히 우연히 이렇게 된 거라고 했지만…….
우연일까?
세상일이 우연히 더 좋게 흘러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특히 연구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죠.”
“그래도 다행입니다. 저희는 의사분들이 있으니.”
조영상에게 아직 다 말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긴 했다.
게다가 조영상과 같이 방을 쓰는 이들은…….
이를테면 유현이 고른 인원들이었다.
그들은 다행히 다 살아났다.
조영상이 마지막이었다.
“그게…….”
안 좋은 소식 전하기는 모든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이 소식은 단순히 안 좋다고 하기도 어렵지 않나?
다 죽었다.
조영상이 알고 지내던 이들은, 말 그대로 전멸이었다.
대령도 박 중위도 조영상의 부관이나 같이 있던 이들 모두 다 죽었다.
“수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열 명 정도입니다.”
“네?”
해서 재원이 망설이고 있으려니 유현이 단호한 말투로 알려 주었다.
질질 끌어서 뭐 하나.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빨리 알려 줘야 이 사람도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거 아닌가.
그래야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정부와 뭘 하건, 박기태를 잡건 여기서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오염된 식수 대신 먹을 수 있는 걸 찾기 위해서는…….
다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만 했다.
“다 죽었어요. 대령님도 돌아가셨고.”
“그게 무슨…… 으.”
조영상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혼절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터였다.
적어도 주요 보직을 받지 못했거나.
사태 전 계급은 훨씬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외곽으로 돌게 된 이들이 태반이었으니.
“그럼…… 남은 인원은 모두 몇…….”
“아까 말씀드렸듯이 열 명도 안 됩니다. 대부분 병사들이고, 구급대원도 하나 있습니다.”
“민간인들은?”
“민간인들은…….”
재원부터가 치료에서 배제했다.
자연 치료가 될 수 있을 만한 상태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숙주 상태도 별로인 데다가 일반적인 콜레라도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모자란 물자를 풀지 않았으니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물론 아주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또 모를 일이겠으나…….
그런 걸 어필할 만큼 대단했던 사람은 없었다.
있었어도 재원이 몰랐다.
그는 진료만 보고 있었으니.
“이런…… 이런 망할…… 이거…… 설마 그럼 정부에서 이런 겁니까?”
“네. 물을 오염시켰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서울은 한강이나 주요 지류가 다 오염된 것으로 보입니다.”
“미친놈들이…… 그럼……?”
“오면서 생존자나 라드는 하나도 못 봤습니다.”
“허.”
조영상은 어느새 몸을 일으킨 채였다.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서였다.
그럴 만한 사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병사나 구급대원들도 모두 경악했다.
“어찌…… 어찌해야 합니까, 그럼.”
조영상은 억지로 일어섰다.
재원이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유현이 만류했다.
어차피 스스로 딛고 서야 할 일이어서 그랬다.
원래도 여유가 없었지만, 이젠 더더욱 그랬다.
짐이 된다면 이고 갈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아마 스무 명 남짓한 인원에서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유현은 여기고 있었다.
“일단 옮겨야죠. 여기 물이 없어요. 거의 다 오염되었는데…… 일단 급한 대로 끓인다고 해도…… 이 자식들이 뭔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래도 여기 빗물…….”
“그건 치료하면서 다 썼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찾아봐야 합니다.”
“아……. 네, 잘 알았습니다. 그럼 가시죠.”
“괜찮습니까?”
“걸어가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건 그렇죠.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