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03화 (303/323)

303화 분열 (2)

김선태가 도망쳤다는 소문은 번지지 못했다.

도망치다 죽었다는 소문만 번졌다.

아무래도 그가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발견되었는데, 라드에게 습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어서 그랬다.

사방에 튄 피와 반항의 흔적 그리고 주변으로 흩뿌려진 총탄 자국.

그러나 차에는 딱히 총탄 자국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습격자는 비무장 인간 또는 라드였다.

비무장 인간에게 군인들이, 그것도 고도로 훈련받은 군인들이 당할 리는 없으므로 라드에게 습격당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이 개자식들! 이딴 식으로 토사구팽을 해?”

대통령의 불운은 김선태만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애초에 김선태가 서대문 경찰서에서, 그러니까 그 자리에서 수비하다 죽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지 않나.

방어 시설 하나 없는…….

그 흔한 철조망도 없이, 그저 건물 하나 덜렁 있는 곳에서 뭘 막겠나.

속절없이 죽어 나가고 무너져 내리는 건물을 보면서 도망 아니, 퇴각을 염두에 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러다 우리 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뭐?”

“이미 너희들 반역자라고 공문이 내려왔어!”

그렇게 도망에 성공한 이들은 우선 한강 다리 이북을 지키는, 실제 무력을 갖추고 있는 부대로 향했다.

그중에서는 지금처럼 정부의 공문을 곧이곧대로 믿고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김선태와 척을 지고 있던 이들이 많아서 그랬다.

대통령이 내부 분열을 통해 자신이 가진 권력을 공고히 했듯이, 김선태 또한 군대 내에서 그렇게 했다.

자신의 파벌이 아닌 이들 중 정말 말 안 듣고 유능한 이들은 죽이거나 내쫓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차별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니까? 장군님은 살해당했어!”

“이런 제기랄……. 이런 개새끼들이. 수원으로 내몰아 놓고……. 패배했다고 좌천시키더니, 이제는 죽여?”

“좌천시키지 않았다면, 우리 병력이 경계하고 있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지.”

“그렇겠죠. 아마추어 새끼들한테 그 중요한 곳을 맡겨 놨으니……. 근데 그럼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나! 부대 수습해서 대항해야지! 아마 이번 조치에 대해 불만 있는 군인사들이 많을 거라고!”

차별 대우에 의해 우대를 받았던 이들은 아예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도망쳐 온 자신의 전우를 극진히 대접하고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사실 이래 봐야 원래 같으면 산발적인 대항에 그쳤을 터였다.

반란군이 되는 순간 다른 모든 부대에서 고립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고립된 군대는 기존의 힘을 다 쓸 수도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아니……. 당신은?”

대통령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이번이 기회라 여겼다.

그들이 딱히 김선태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적의 적은 아군이란 아주 오래된 격언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이미 반포대교, 한강대교는 뜻을 같이하기로 했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우리까지 넘어가면…… 남은 부대의 40% 정도 되겠군요. 규모가.”

“단순 숫자는 그렇지만, 정부군에게는 혹이 있네.”

“혹……?”

“청와대와 종로. 특히 청와대 경호를 포기할 거 같나? 그 겁쟁이 대통령은 도망가기 바쁠 텐데……. 상당한 인원을 들고 튈 거야.”

“그렇겠군요! 실제 전투 인원은 그럼 동수일 텐데…….”

“하지만 주의해야 해. 종로를 치는 건 안 되네. 이제 종로에 있는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시민 전원이라고 판단해도 좋아.”

자리에 온 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이 사태를 일으킨 핵심 인물이자,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터지고 수습할 사망이 없어지자마자 권력에서 슬금슬금 멀어지게 된 인물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심지어 이 사태의 책임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미루고 있었다.

아마…….

‘이제 거의 끝났지. 그러고 나면…….’

이걸 끝났다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 가고는 있었다.

남부 지방에야 살아남은 사람도, 라드도 여기보다는 더 많긴 하겠지만…….

군대를 보유하진 못했을 터였다.

폭격에서 자유롭지도 못했고, 정보의 통제까지 있었던 데다가 애초에 후방 부대는 무장 수준도 후달렸기에 그랬다.

‘목매달 놈이 필요할 텐데, 그게 내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던 이유지.’

자신이라도 그랬을 터였다.

질병으로 인해 발생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뒤집어씌운다.

얼마나 그럴싸한가?

검증?

그런 게 필요한가?

설령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한들 가능한가.

“그들의 민의는 내가 잡겠네. 이미 여러 루트를 확보했어.”

“장관님이 안을 잡고 우리는 싸운다 이거죠?”

“그래. 격렬하게 싸울 필요도 없네. 위기만 심어 줘. 이 모든 사태가 대통령 탓이라는 프레임만 씌우면, 전쟁은 끝이야. 안에서부터 무너질 거야.”

“그렇군요.”

“나도 자네들 마음 잘 아네. 김선태 장군이 라드에게…… 다 죽이고 싶겠지. 원래 사이도 안 좋았던 놈들도 있을 거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야. 다 죽이고 죽였다가는 정말 우리 대에서 나라의 명맥이 끊기게 생겼네.”

장관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고개를 저었다.

명맥?

이미 끊긴 거 아닌가 싶었다.

나라를 이루던 대부분의 인프라가 사라졌지 않나.

이게 무슨 전쟁으로 인해서 사라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내가 했지.’

나라를 다스리고 이끌던 이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처음엔 우연히…….

아니, 테러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사실 그때라도 수습에 나섰더라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책임지기 싫었던 권력자들의 농간에 의해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이미 서울, 수도권 전역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지 않나?

이 망할 사태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살아남아 있던 수많은 생존자들과 라드들이 싹 죽어 버렸다.

“그렇죠. 그래선 안 되죠.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래, 내 대령만 믿겠네.”

“걱정 마십쇼. 근데…… 돌아가실 수 있습니까?”

“지금 엉망이야, 저긴. 게다가 이쪽 방면으로 와 있는 친구는 안면이 있어서 말이지.”

누군가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장관도 똑같은 놈이었기에 그랬다.

사태 전에는 부귀영화가 목표였고,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늘 생존만을 위해 살았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 가지 자부심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목표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무관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었다.

그랬기에 지금과 같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부우웅

장관은 내심 뿌듯함을 느끼며, 차를 타고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이가 지휘하고 있는 부대로 향했다.

“정지!”

“아, 나…….”

“아, 실례했습니다. 안으로.”

“그래.”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러곤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이제 이대로 통과해서 가면 될 일이었다.

헌데…….

“잠깐만.”

친분이 있던 대령이 나와 있었다.

뭐, 놀랄 일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게 급한 것도 아니지 않나.

어차피 시간은 있었다.

“아, 무슨 일인가. 할 얘기라도 있나?”

“있지. 포박해.”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별 거부감 없이 차에서 내려서 인사를 건네려는데, 양쪽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대령은 해명하는 대신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한 사람의 얼굴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가, 각하?”

“아직 나를 각하라고 부를 마음은 있나 보구만, 반역자 주제에.”

“아닙니다! 오햅니다! 저는 항복을 종용하러……!”

“바쁘게도 다녔던데. 너 때문에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어. 원래 같으면 군 지위를 유지한 채 보직만 변경했으면 될 사람들이지. 선동에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말일세.”

보직 변경?

군인이 노예가 되는 것을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나?

아니, 어쩌면…….

저놈 눈에는 군인이나 노예나 다 같아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럴 거란 확신이 뒤늦게 들었다.

“아, 아닙니다. 오햅니다!”

“웃기지 말게.”

대통령은 장관의 억지에 들고 있던 주민등록증 하나를 툭 하고 집어 던졌다.

자신이 믿을 만한 루트라 여기고 있던, 한 교수의 민증이었다.

“이건…….”

“그가 다 말해 주었네.”

“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중에 만나게 될 테니, 그때 물어보도록 하지.”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고, 대령을 바라보았다.

장관이 그 후로도 뭐라뭐라 떠들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철저한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쳐져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얌전히 가둬 두게.”

“안 죽입니까?”

“나중에. 정식 재판을 거쳐야지.”

“아……. 네, 각하!”

물론 둘의 대화는 고스란히 다 들렸다.

역시나 대통령은 장관을 바로 죽이지 않았다.

나중에 자기 대신 이 십자가를 질 사람인데 어찌 함부로 죽일 수 있겠나.

그게 아마 자신의 마지막 쓰임새일 터였다.

“흐, 흐흐흐. 너, 너는 다를 거 같냐? 김선태나 나나 다 대통령의 충신이었어!”

끌려가는 장관이 이렇게 외치자, 대통령은 조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무슨 놈의 충신이 반역을 꾀한단 말인가. 아무튼, 잘 가둬 두게. 죽어선 안 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네. 그것이 대한민국의 법이지 않나.”

“그…… 네.”

대령은 그럼 김선태는 왜 그냥 죽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쩌겠나.

대통령인 것을.

게다가 김선태가 실각한 것도 모자라 죽어 버렸으니, 이제 반대 세력의 세상이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부대를 이끌고 있는 대령은, 자신이 중장이 될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신 저 반란군 무리를 싹 쓸어버리게.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지금 당장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을 거 같진 않으니……. 기습이 효과적일걸세.”

“네, 각하!”

군 전술 같은 거야 문외한일 터였다.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참호전의 시대가 끝난 지도 어언 100년.

이제 전투는 더 이상 방어자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산개해서 중화기 또는 그에 버금가는 화력의 무기를 이용해 공격하는 공격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콰아아앙

공격은 비단 이곳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한강대교, 반포대교 이북에서도 벌어졌다.

다시 고속터미널 쪽으로 북상하던 유현의 일행이 이 전투를 목도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소음과 불꽃이 밤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 이남은 고요하기만 했다.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것들이 거의 없기에 그러했다.

“뭔 지랄이지.”

유현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위험이 많이 사라졌지만, 물과 식량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리 비축해 두지 않은 그룹이 왜 속절없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몸소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알아봐야 될 거 같습니다.”

김태평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 싸움은 중요했다.

규모도 규모고, 이유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저 일로 인해 뭐가 어떻게 될지도 대강은 파악해야만 했다.

“같이…… 가시죠. 어차피 이제 그룹 찢어져 움직이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유현도 동의했기에 지친 놈을 이끌고 나섰다.

나머지 일행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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