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분열 (4)
걸리면 어떻게 될까.
죽는 건 당연히 각오해야만 했다.
아니, 오히려 깔끔하게 죽기만 한다면 다행이었다.
죽지 못하고 라드가 되거나 실험체가 될 수도 있었다.
“으음…….”
그렇다 보니 종로로 갈 사람을 뽑는 과정이 쉬울 수가 없었다.
요원들조차 저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던 시절은,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때이지 않나.
국가도 그 무엇도 아닌 이유로 죽는 건……. 개죽음이라는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었다.
“저, 제가 가겠습니다.”
그 와중에 유현이 골라내었던 구급대원이 손을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종로에서 무슨 기준으로 사람들을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수 인력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나름 소방청에서 경력도 있고 훈련도 많이 받았으니……. 만약 그쪽으로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겁니다.”
자원할 줄 알았다.
이어지는 말은 예상치 못했지만.
유현이 듣기에 상당히 그럴싸한 말이었다.
‘인상도 좋은 편이고……. 덩치도 좋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학교에서 우리는 외모보단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아마 다들 알 거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외모는 생각보다 중요한 법이라는 것을.
생긴 걸로 차별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현상이 그렇다는 얘기였다.
‘저러면 아무래도 호감 사기 좋겠지.’
부드럽게 생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에 유리했다.
그에 더해 저 친구는 체격도 좋다 보니 유사시에 써먹기도 좋을 터였다.
“나도…… 가고 싶지만, 어렵겠지.”
“넌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돼.”
이순규.
그는 손을 들려다 말았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이전보단 말랐다 해도 골격 자체가 일반인의 그것을 넘어가 버린 지 오래였으니.
단순히 건장하네 어쩌네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잘 짜인 훈련 과정을 거친 보디빌더도 이렇진 못할 터였다.
뼈 자체가 자라나 버린 거인은 안타깝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나는 여기 지키고 있을게. 아니……. 박기태를 잡아야 하나?”
“우리들만으로는 역으로 사냥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그냥 물자나 구하고 있는 게 최선이야, 지금은.”
“하긴…….”
이순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폭발음은 그친 지 오래였다.
정부군 측의 기습으로 시작되었을 공격은 금세 끝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불길은 잡히지 않은 채 얼마 남지 않았던 인간의 유산을 태우고 있었다.
닫힌 창문 틈새로 매캐한 연기 냄새가 조금씩 흘러들어 올 정도였다.
관리되지 못한 탓에 부식이 일어나기도 했겠지만, 아마 무서운 기세로 타고 있는 모양일 터였다.
“저 지경이면 들킬 위험은 거의 없겠지.”
“얼마간은 수습하는 것도 쉽지 않을걸.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내분이 일어난 건, 그것도 가장 커다란 적이 찢어진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찢어진 적조차 두려운 규모인 것은 그리 좋은 일이 못 되었다.
“저도 가죠. 아무래도 아는 얼굴이 있을 겁니다.”
김태평이 손을 들었다.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죽음을 이고 사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마 실제로도 죽음을 염두에 둔 지 오래일 터였다.
이유?
그런 건 알 수 없었다.
유현은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요. 근데 들킬 염려는 없을 까요?”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종로에 뭐……. 시민들이 있다고 해 봐야 몇백, 많아도 천일 텐데……. 모르는 얼굴이 있다면 바로 걸릴 겁니다. 무엇보다.”
김태평은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만으로 유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중에서 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몇몇은 고속터미널에서, 그러니까 지하상가나 신세계 백화점에서 나름 새 의류를 챙겨 입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주기적인 세탁과 관리를 해 주지 않는 의류는 빨리 상하는 법이었다.
어떻게 봐도 일행의 몰골은 문명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였다.
“그렇군요.”
“네. 물론 안쪽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제가 나올 때, 그때도 이미……. 그때 자리 잡은 사람들은 필수 인력이라기보다는 특권층이긴 합니다마는. 인프라가 거의 다 갖추어져 있었어요.”
“확실히 이 꼴은 아니겠죠.”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일단 움직이기 전에 최대한 꾸며야 한다는 얘기가 되었다.
침투하고 나면 또 최대한 서둘러서 옷부터 바꿔야 할 테고.
“그럼 일단 이렇게 셋입니까.”
“저……. 교수님.”
“너는 일단 있어. 몸도 성치 않은 놈이.”
“제가…… 가겠습니다.”
일단 정해진 건 구급요원인 최이건, 김태평 그리고 정유현 셋이었다.
중간에 끼어들려 했던 재원은 빠졌다.
애초에 마른 편이었던 그가 콜레라에서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지 않나.
사실 유현은 둘 중 하나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건 우식이지 재원은 아닐 거라 생각했더랬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둘 다 죽을 줄 알았지만.
아무튼, 그 후에 끼어든 조영상에 대해서는 판단하기가 좀 애매했다.
그는 군인이니까.
“음.”
몸 상태만 놓고 보면 조영상이나 양재원이나 도긴개긴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조영상이 더 엉망일 터였다.
기존에 더 건강한 상태이기야 했겠지만…….
그는 말 그대로 죽을 뻔했으니.
하지만.
‘아무래도 군 관련 인사가 많을 거야. 모두가…… 지금 대통령에게 동조하고 있을까?’
정말 그럴까?
이쯤 되었으면, 제아무리 정보를 통제하건 뭘 하건 알 놈은 다 알 터였다.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대통령이 지금 상황에 책임이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특히 군 관련 인사라면 아무래도 현장 일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 더더욱 그럴 터였다.
“같이 가시죠.”
“저도 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든 것은 오예리였다.
“저는 경찰이고…… 또 여자니까 아무래도 같은 여자들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나무랄 데 없는 논리였다.
거기에 더해 오예리는 지금까지 일행이 또 그 개인이 처했던 그 숱한 위기 상황에서 말 그대로 대단히 우수한 대처 능력을 보여 준 바 있었다.
왜 거절하겠나.
“그럼 이렇게 다섯만 움직이도록 하죠. 나머지 분들 여기 있어야 할 거 같군요. 김용일 형사님 부탁드립니다.”
“네, 맡겨 주십쇼.”
유현의 말에 김태평도 딱히 토를 달진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데다가 유현은 가다가 짐이 되는 사람 버린다고 해서 뭐라 할 만한 놈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군인이라는 신분은 어떻게든 도움이 될 터였다.
외모가 주는 영향만큼이나…….
유니폼이 주는 영향도 상당한 법이니까.
조영상은 여전히 군복 차림이었고, 그 특성상 좀 허름해도 군복 자체가 주는 느낌이 강하진 않았다.
오히려 야전 군인 같아서 좋았다.
“바로 갈까요?”
“아까 말한 대로…… 오늘이 제일 쉬울 겁니다.”
“그렇겠죠. 그럼 갑시다.”
“네.”
넷은 곧 한글 박물관에서 빠져나왔다.
원래도 조용했을 동네긴 하겠지만…….
모든 것이 박살 난 이후란 생각 때문일까?
더더욱 조용하게만 느껴졌다.
실제로 국립 박물관을 넘어 용산 공원을 지나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라드가 콜레라에 더 취약하다고 하더니 진짜 그런 모양이었다.
“이건 좋구만.”
“좋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유현의 말에 김태평은 국립 박물관의 연못을 떠올렸다.
주변에서 갈증 때문에 몰려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생존자인지 라드인지 모를 것들의 시신과 그것들이 싸지를 분비물이 널려 있었다.
아마 연못의 물도 오염이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색이야 별로 모르겠지만…….
아마 그거라도 제대로 된 물이었다면 저렇게 그 자리에서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이 감염내과 유현의 설명이었다.
“정말 다 죽일 생각이었군요.”
“다 죽었죠, 실제로. 우리같이 운 좋은 몇명 말고는…….”
김태평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오예리가 고개를 떨구었다.
조영상 또한 비슷했다.
구급대원 최이건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말 몇 명 말고는 다 죽지 않았나.
사태 이후 간신히 본부에 모여 살아남았던 이들.
그 후 라드의 습격이 이루어졌을 때도…… 대장의 목숨을 핏값 삼아 살아남았던 이들이 전부 이번에 죽었다.
사태가 끝날는지도 모르겠지만, 기적적으로 끝났을 때 다 같이 살아남을 거란 철부지 같은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이딴 식으로 죽을지는 몰랐다.
“더 가죠.”
“네.”
감상에 빠질 시간이 어디 있겠나.
일상의 대부분이 사치가 되어 버린 시대였다.
심지어 이들은 그 시대의 벼랑에 내몰린 신세였고.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에 무려 둘이나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냉정한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유현과 태평이 먼저 몸을 일으키자, 나머지도 둘을 따라나섰다.
저벅저벅
일행은 곧 전쟁 기념관을 지나 남영동 인근에 도달했다.
후암동만 지나면 바로 명동이었다.
명동은 현 정부 기준에서 종로 권역이었고, 다시 말해 그쪽부터는 완연한 정부군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쪽은 아예 별천지였다.
그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봐도 그러했다.
“불빛이…….”
“밝군요.”
“저렇게 낭비할 자원이 있나.”
밤이다.
밤에 불 킬 일이 있나?
전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막상 사태 이후로 불 꺼진 세상에서 살다 보니 딱히 그럴 이유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뭐 경계나 환자를 보기 위함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렇게 휘황한 불빛은 낭비란 생각만 들었다.
“잘됐죠. 저쪽으로 걸어가면 될 일이니.”
“그렇긴 합니다. 다만 여기서부터는 이제 진짜 주의하셔야 합니다. 뭐…… 경계가 약해지긴 했겠지만, 부스러기 같은 놈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정부의 부스러기는 이쪽 전부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일행은 김태평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명동의 불빛을 등대 삼아 걷기 시작했다.
후암동의 골목은 원래 어지간하면 피하는 것이 좋았다.
비좁은 데다가 사방에 낙후된 건물이 있어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조용해진 거리에 오가는 건 오직 쥐새끼들뿐이었다.
다들 배가 불뚝 튀어나와 있었는데 뭘 먹고 저렇게 되었는지 짐작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읍.”
추론이 쉽다고 해서 납득하기 쉬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레 이어지는 생각 때문에 치밀어 오르는 헛구역질이 있었다.
물론 이제 와 진짜 구역질을 할 만큼 나약한 사람은 여기 없었기에 일행은 그저 걸을 수 있었다.
“저기…….”
철조망이 보였다.
그 너머에 있는 건물은 여전히 명동다웠다.
단순히 형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불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미친놈들.”
저 지랄할 기름이 있으면 전차 부대를 운용해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았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런 놈이 아니니…….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겠지 않나.
“가죠. 병력은 없어 보입니다.”
“지뢰가 있을 수 있으니. 발 조심하세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네.”
김태평을 선두로 유현, 조영상, 오예리 그리고 최이건이 따랐다.
곧 종로…….
정부의 영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