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종로 (1)
김태평의 움직임을 나머지 일행은 아주 열심히 바라보았다.
김태평이 시범을 보이는 셈 쳐서 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저게 정답이라는 보장이야 어디에도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훈련받은 사람이 이 중에서는 제일 낫지 않겠나.
‘좋아. 역시 이 병원 쪽은 아무래도 밀도가 적어.’
김태평이라고 해서 긴장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드물게 긴장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옳았다.
걸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다.
김태평은 스스로 죽기 위해 준비한 약물을 떠올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달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띌 테니.
자박자박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걷지도 않았다.
노출되는 시간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테니.
그렇게 스르륵 걷다 보니 어느새 병원 앞이었다.
김태평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겉으로 볼 때는 번지르르했지만, 관리가 완벽하지는 않은지 끼익 소리가 났다.
어쩌면 일부러 이렇게 해 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풍경 소리보다 오히려 더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으니.
실제로 김태평은 병원 안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이런 식이면 좋진 않겠군…….’
옷차림이……
아무래도 좀 차이가 났다.
나름대로 꾸민다고 꾸몄지만 야간에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때가 탔다.
한 사람 정도면 그래도 넘어가겠지만 이렇게 지저분한 사람이 5명이 모여 있는 걸 보게 되면 누구라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나?
‘아무튼……. 다 들어와야겠지.’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접수처로 이동했다.
앞에 있는 간호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괜찮았다.
표식이 있으니.
“아, 원장님하고 약속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는 접수하는 대신 쥐고 있던 철편을 보여 주었다.
간호사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딱히 경계하는 기색 없이 진료실로 향했다.
사실 그럴 것 같았다.
소리가 났고, 다 쳐다봤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그랬다.
이 안은 확실히 안전한 곳이었다.
그에 더해 풍족한 곳이었고.
시민들끼리 어느 정도는 경계를 하고 있긴 하겠지만 그 정도가 우려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 터였다, 절대로.
“들어오시랍니다.”
아무튼,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원장이 불렀다.
두 번째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정유현 교수가 두 번째.’
걱정해야 할까?
아니, 괜찮을 거다.
그 사람이라면 자기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아마 이유가 있어서 이동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렇게 여기며 김태평은 진료실로 향했다.
“아, 문 좀 닫아 주세요.”
안에 들어가자, 낯익은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문을 닫고 밖으로 향했다.
발걸음 소리를 들어 보니 접수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훈련받은 사람도 저런 식으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 오신 겁니까?”
김태평을 알아보자마자 크게 놀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침착한 얼굴로 돌아왔던 의사의 얼굴에 다시금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럴 만했다.
여긴 종로니까.
정부의 영역…….
그 누구도, 허락받지 않은 존재는 그 누구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까.
“몰래 왔죠.”
김태평은 그에 대비되는 얼굴로, 그러니까 침착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맞은편에 앉았다.
나름 신경을 쓰고 있는지 의자에서는 삐걱대는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푹신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제 불 난 거 보셨습니까?”
그런 김태평에게 의사는 다시 물었다.
김태평은 즉답을 하는 대신 서쪽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의사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평이 허튼소리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한 데다가…….
애초에 사태 터지고 난 직후 그를 살려서 여기로 데려다준 게 김태평이라서 그랬다.
-동생 덕 보는 줄 아십쇼.
알고 보니 동생이 국정원 요원, 그중에서도 해외 작전팀 소속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냥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무역 회사 다니는 줄 알았더랬다.
무역 회사라서 외국에 자주 나가는 줄 알았고.
헌데…….
-동생분은…… 작전 중 사망했습니다.
알고 보니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국정원 요원이었다.
“아, 네. 불만 난 게 아니라…….”
“시끄러웠죠?”
“네, 총소리가 밤새…… 아니, 밤새는 아니었지만.”
“세브란스 쪽 뒤에 있던…… 그거 지금은 뭐라고 합니까? 저 나갈 때는 그냥 농장이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덕에 신선 식품을 먹을 수 있죠.”
“그게 파괴되었습니다.”
내 손에,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건 눈앞의 의사는…….
이곳 주민이지 않나?
빚을 졌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일이 어떻게 풀릴 거라 생각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요원 일을 하다 보면 배신해야 할 일도 많지만 그만큼 배신당하는 경우도 많기에 생긴 경계심이었다.
세상엔 생각보다 배은망덕한 인간이 많았다.
처음부터 아, 이 새끼 배반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터였다.
그저 지금 당장 해가 된다고 판단이 되면 그 순간…… 배반을 하게 되는 것이지.
“네? 파괴요……?”
“종로가 유지되는 방식은 주변에서 약탈해 온 물자와 농장에서 생산되던 물자를 온전히 종로에서만 쓰기 때문이었죠? 여기서는 아무도 식량을 생산하지는 않으니까요.”
“그…… 그렇죠.”
“그게 날아갔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지금…… 명동이고 종로고 경계 병력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여기 왔죠.”
“아…….”
의사가 입을 쩍 벌리는 순간, 멀리서 끼이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정유현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해서 김태평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들어온 사람 포함해서 4명이 더 올 겁니다. 진료를 보셔야 하니…… 우리가 어디 좀 있을 만한 데가 있으면 좋겠는데요.”
“누, 누구…….”
“이따 말씀드리죠. 해를 끼칠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보장하죠.”
“그……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진료실 안쪽으로 방이 하나 있었다.
작은 침대 하나와 데스크가 놓여 있었는데, 사태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늑한 공간이었다.
“다 이리로 보내면 될까요?”
“네.”
김태평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부러 웃옷 안에 숨겨 두었던 권총을 살짝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사의 얼굴을 살폈다.
‘봤군.’
두려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상황에 따라 다를 텐데,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겠지.’
무엇보다…… 아까 이야기를 끊은 타이밍도 적절했다.
이곳에 경계 병력이 하나도 없어서 들어오기 쉬웠다는 말…….
얼마나 불안하겠나?
진료가 손에 들어올까?
빨리 진료 끝내고 얘기 나누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터였다.
“여기 되게 좋군요.”
“밖은 어떻습니까?”
“뭐……. 딱히 경계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워낙 무질서하게 보이게끔 돌아다니고 있다 보니, 아무렇게나 걸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나머지는 뭐, 너무 긴장하거나 하진 않았죠?”
“긴장이요? 음……. 구급대원 정도. 너무 힘들 거 같으면 그냥 그 자리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아, 잘하셨습니다. 사실 다 넘어올 필요는 없긴 하죠.”
솔직히 말하면 정유현만 넘어와도 된다.
물론 우리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경찰도 있고, 군인도 있고, 구급대원도 있다…….
다들 봉사하는 사람이고 따라서 우리는 좋은 집단이다 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라면 다 오는 것이 최선이긴 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계획은 바뀔 수도 있지 않겠나.
괜히 두 번째로 유현이 넘어오라고 지시해 둔 것이 아니었다.
끼이익
그 생각과는 별개로 마침내 구급대원까지 다 들어왔다.
오예리를 제외하면 다들 덩치가 큰 사람들이다 보니 아늑했던 공간은 순식간에 비좁아졌다.
다행인 것은 아무리 종로 사정이 좋다 해도 병원에 마음대로 올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진료는 열 시가 채 되지 못한 시각에 끝났다.
마치 군부대 병원 같은 느낌이었다.
“자, 나오시죠.”
그렇게 일행은 다시 진료실로 나왔다.
의사는 김태평의 예상대로 아까 하다 만 얘기가 못내 궁금한지 초조한 기색이었다.
김태평은 이제 와서 더 질질 끌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곧장 얘기를 꺼냈다.
“김선태 중장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김선태…… 그분이 왜……?”
“아마 내부로는 안 풀렸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 사람, 수원에서 다른 군부대와 싸우다가 패했어요. 그거 때문에 반쯤 권한을 뺏겼는데, 불만을 품었을 겁니다. 사실 김선태 파벌이 정부군의 핵심이었기도 하고요.”
“패했다고요? 방송에서는 전혀…….”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전쟁 중에 우리 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습니까?”
“그건…… 그렇군요.”
의사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대학 교수이지 않았나.
그저 그런 의사였다면 아무리 각별했던 부하의 형이라 해도 이 안에 낑겨 넣기란 쉽지 않았을 터였다.
다 합이 맞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김선태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세브란스, 서대문 경찰서 그리고 다리 여러 곳이 완전히 파괴되었어요.”
“아……. 그럼 여기…….”
“무너질 겁니다.”
“아.”
의사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당연할 터였다.
종로는 견고한 성이었으니까.
이 안에서는, 적어도 이 안에서는 전과 비슷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으니까.
그에 비해 방송국에서 틀어 주는 바깥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했으니까.
거기로 나가야 된다고?.
그건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대통령께서 이 사태가 곧 끝날 거라고……. 라드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네, 그 바이러스……. 아니지. 균이지. 정유현 교수님.”
김태평은 잘됐다는 얼굴로 슬쩍 몸을 뒤로 물렀다.
어차피 다 비슷한 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현이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감염내과 정유현입니다. 외과 교수님 같은데…… 오며 가며 봤으려나요?”
“네? 태화…… 감염내과 정유현 교수님이십니까?”
“네.”
“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알고 있습니다.”
의사의 반응은 애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 차원에서 프로파간다를 위해 정유현을 매도했던 적이 있어서 그랬다.
사태의 숨겨진 뒷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태반을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유현이니만큼 어마어마한 공격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그런다고 다 넘어가겠나?
특히 사태 이전의 정유현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의사는 후자에 속했다.
“팬데믹 사태 때 고생 많으셨죠.”
“아아.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무튼……. 그 정부가 말하는 세균에 대해 말씀을 드리죠.”
“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세균은…… 사람도 죽입니다.”
“네?”
물론 지금의 유현의 이전의 유현이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처럼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훨씬 자극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말하자면, 선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