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309화 (309/323)

309화 종로 (3)

박기태의 탈원.

거기에 김선태의 관여.

2차 감염자 발생과 이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형사들의 죽음 그리고 김효상 국장, 박태식 의원의 죽음까지…….

사태의 발생까지 지속된 정부의 은폐 노력은 가상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일개 의사와 휴직 상태의 형사 둘이 여기까지라도 따라붙었다는 게…….

어마어마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종범 전 의무사령관이야 그렇게까지 감명받지 못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상당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가…….”

국민배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인기 있던 배우인 강한나는 숫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히 있던 일입니다. 그 후로도 비슷했습니다. 그건 우리 김태평 요원님이 더 잘 아시겠죠.”

사실 유현이나 오예리 형사는 배우고 나발이고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이들은 부역자다.

정부의 부역자.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유현이 만든 사이트 그리고 그가 나갔던 개인 방송은 대한민국 인터넷 세상을 들었다 놨다 했었으니,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네, 사태는…… 분명히 말씀드리면 라드가 풀려나게 된 것은 정부의 의도는 아닙니다. 당시 정부는……. 지구 병원에서 남산 지하실에 위치한 새 연구실로 라드 검체를 이동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습격을 당했죠.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되어 있긴 했습니다만…….”

둘이 입을 다물자, 곧 김태평이 말을 이었다.

바로 이곳 근처, 서촌에서 있었던 테러에 대한 언급이었다.

“지구 병원은 사실 말이 지구 병원이지, 상당히 요새화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지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어요. 기껏해야 개인 화기로 무장한 요원이나 군인들이…… 제아무리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는 놈들이라고 해도 뚫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사보타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 너무 놀란 나머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자는 말이 나왔고.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아무리 요새화가 되어 있었다 한들, 그곳은 삼청동.

시민들이 오가는 곳이었으니.

다만 김태평은 말렸다.

“하지만 뒤가 구리니 어쩌겠습니까? 거기서 이루어지던 실험들……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습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김태평의 시선이 이종범에게서 한참 머물렀다.

나무라는 기색은 아니었다.

다만 공범끼리의 눈 맞춤이었다.

“도저히 용납받을 수 없는 범죄였습니다. 뭐……. 이를 기점으로 해서 핵과는 다른 비대칭 전력을 중국과 북한, 러시아……. 더 나아가 미국도 모르게 확보하겠다는 취지는 좋았습니다만 과정은…… 아무튼, 그게 새어 나갔다가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시 여당이 다시는 정권을 잡지 못하게 될 만큼 커다란 스캔들이었죠. 그렇다 보니 제 의견은 묵살되었고 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다들 아시다시피 서촌에서 탈취가 있었죠.”

김태평의 입에서 우둑 소리가 났다.

이를 깨물어서일 터였다.

결과야 어찌 되었건 간에 나름 애국자라 자평하는 김태평으로서는 뼈아픈 사고였을 터였다.

“당연히 미리 대비를 했지만……. 저는 당시 반대했다는 이유로 계획에서 배제되었고 김선태를 필두로…… 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당시 상정한 적의 무장은 개인 화기, 그중에서도 권총 위주의 무장이었죠. 그러나 테러 단체의 무장은 그 수준을 압도했습니다. 뭐,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잘못입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대체 어떻게 다 틀어막겠습니까?”

김태평은 한숨을 쉬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위구르……. 독립 무장 단체는 그 호전성이 어마어마합니다. 같은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여러 단체의 후원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 보니 무장도 훌륭했죠. 그렇게 빼앗긴 다음……. 정부는 바로 은폐에 들어갑니다. 그때 기억나실 겁니다.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 단순한 변종이 도는 거다…….”

이어지는 말에는 나머지 인원들도 한숨을 피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뻔히 기억이 나는 일이니까.

돌이켜보면 그때 이미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던 건데…….

“그렇게 깔아뭉개다 보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우리가 만든 바이러스 변종……. 라드가 생각보다 너무 강했던 것이죠. 그래도 육군만 몇십만이 있는 나라다 보니 제때 계엄령을 내리고 대응했다면 막을 수 있었겠지만, 정부에서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혹 전말이 밝혀지게 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정부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더 망가뜨려 버렸다.

단순히 골든아워를 놓치게끔 한 것만이 아니라 방해를 했다.

일선 군부대에서 출동 시 총도 두고 가게끔 하지 않았나.

이미 라드의 공격성과 그 물리적인 우월성을 다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윗대가리들의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일반 국민과 죄 없는 군인들은 끝도 없이 희생되었다.

“그 후에라고 다르지 않았죠. 지금 이 종로가 만들어진 근간이 되는 물자, 그거 다 각 역에 도망쳐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의 물품을 약탈해서 가져온 겁니다.”

김태평의 시선은 이제 이종범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나머지 인원들, 그러니까 강한나 배우와 신중섭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비난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공범끼리의 눈 맞춤을 시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둘은 양심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게끔 위장하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정보는 통제되었다, 분명히.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있나?

바깥 경비를 맡고 있는 군인들은 종로로 휴가를 온다.

지금은 아니지만, 허용되어 있을 때는 온갖 소문이 다 돌았다.

그 소문 중에는 충정로역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

한 병사는 우리는 지옥에 갈 거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하기도 했다.

“다른 생존자들……. 다른 지역의 군부대들에는 폭격 지시까지 내려졌습니다. 대통령의 명을 듣지 않는단 이유로요. 왜 수도원 인근의 기갑사단이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겠습니까? 권력 다툼 때문입니다. 정유현 교수님의 사이트와 개인 방송 등으로 인해 생긴 의문을 질문을 던졌을 때 정부는 탄압으로 답했어요.”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권력.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민 의식이 성숙해져 갈수록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권력자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전쟁도 아닌 미증유의 사태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획득했다.

시민들의 의문? 아니, 같은 권력자들의 의문도 뭉개 버릴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숙청이 있었습니다. 이종범 사령관님. 사령관님도…… 피해자 중 하나죠?”

“저야 뭐……. 살아남았죠. 다행히. 병신으로.”

이종범은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청와대에서 불러 생각 없이 나간 날 이후 단 한 번도 두 발로 설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지 않았단 점이었다.

영영 입을 다물고, 부역자로 살아가는 것은 대가로 그는 추한 목숨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 사태 속에서도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렸어요. 또 다른 세균을 만들어서……. 지금 이 대통령의 머릿속엔 자기 권력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완전히 미쳐 버렸어요.”

김태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기 시작했다.

사태를 겪어 나가면서 배운 것이었다.

말하는 방식에 따라 설득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았나.

“네, 미쳐 버렸습니다. 수원 공군 기지. 제가 거기 출신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대통령은…… 라드를 생산해서 저희 기지를 공격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발언권을 넘겨받은 것은 조영상이었다.

그는 연기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정말 수원에 애착이 있었으니.

죽어 버린 박중, 황 대령을 아끼고 또 존경했으니까.

거기에 더해 그들의 명령을 묵묵히 따라 준 병사들 그리고 보호라는 미명하에 얼마간 희생을 강요해야만 했던 시민들까지…….

모조리 죽었다.

“간신히 막았습니다. 그때 김선태가 실각한 거죠. 그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우리의 적이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협조가 가능한 단체였는데, 라드를…….”

“잠시만, 생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강한나의 말에 조영상은 차마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답을 해 준 것은 의외로 이종범이었다.

그는 참담한 얼굴이었다.

“알아듣겠는 내가 싫군그래.”

그는 한숨 비슷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구 병원에서도 밖에 있는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합니다. 라드로 감염도 시키고……. 세브란스에서는 훨씬 대량으로 그 짓을 해요.”

“아니……. 그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처음 듣는 거처럼 말하지 마세요.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생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 근방이 이토록 깔끔하게 유지가 될 수 있겠어요.”

“그래도…… 어디서 일을 시킨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끌려가는 사람들도 있지. 아무튼, 그걸 생각해 보면 생존자들을 라드로 만들어서 한 단체를 공격하는 거…….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군.”

이종범의 말에 조영상이 말을 보태었다.

“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도 막았죠.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고속터미널 인근의 집단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식들이 물에…….”

“저도 죽을 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선 것은 구급대원이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치겠노라, 목숨을 걸겠노라 맹세한 이의 말의 무게가 가벼울 수 있겠나.

자세한 연유를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어쩐지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제 동료들은 다 죽었고요. 라드에게도 죽지 않은 제 동료들이…… 정부의 손에 죽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근처 주민들을 구조하고 살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거기에 더해 이어지는 나지막한 울음.

묵묵히 있던 신중섭 경찰서장조차 참지 못하고 입을 열게 되었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군요. 김선태의 반란도 있고…….”

물론 여기까지 온 사람이 무슨 감정의 흔들림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조금의 망설임 정도는 소거할 수 있을지언정, 그를 움직이고 있는 건 눈앞의 위기였다.

위장된 위기긴 했지만 실감은 났다.

실제로 눈앞에 있는 놈들이 그 증거이지 않나?

이렇게 다섯이나 되는 놈들이 제집 안방 드나들듯 할 수 있다는 건, 통제가 어떤 식으로든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해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그가 외면한 무수한 다른 무고한 생명들에게 미안할 테니.

“다행히 이 안에 경찰 인력들 중 일부는 아직도 제 통제하에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움직일 겁니다.”

“저는 지구 병원이요.”

“저는 매일 파티가 있어요. 유력 인사들이 많이 오니……. 제가 움직이면 도움이 어떤 식으로든 될 겁니다.”

그렇게, 각기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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