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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323화 (323/323)

323화 종장 (4)

“죽어 버렸네.”

병사들 중 하나가 대통령을 알아보았다.

보다 명확히 말하면 대통령이었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드가 죽인 건가?”

“모르겠네.”

총알 자국도 있긴 했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발생한 듯한 멍 자국이 대단히 많았다.

그래도 일국의, 그것도 선진국의 대통령이었는데 이토록 비참하게 죽어 있다니.

병사들은 탄내를 맡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이대로 버려 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나.

일단 지휘관에게 보여 주려면 이것보다는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헐벗은, 딱히 보기 좋은 몰골은 아닌 이 몸뚱어리는 가리는 게 좋을 터였다.

“이 안에 들어가 있다, 이거지.”

병사들이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긴 했지만, 놀랍게도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절반가량은 건물 하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 안으로 고지능체 몇몇이 도망갔기에 그랬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셋이었다.

박기태, 구우준 그리고 연구원이었던 이.

김민수?

그는 눈먼 총알에 맞아 죽었다, 이미.

뭐……. 김태평이나 유현이 자세히 훑어보다 보면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만한 사안은 아니지 않나.

그저 짐승의 사체처럼 방치되어 있을 따름이었다.

“네.”

“어쩌죠?”

“어쩌긴 다 죽여야지.”

“하지만 이대로 진입하면 병사들의 피해가 있긴 할 겁니다.”

놀랍게도 방금의 전투로 인해 무려 열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제아무리 의사는 있다지만, 설비가 없는 이상 크게 다쳤다는 건 죽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지 않은가.

뭐…….

그 대가를 라드들도 혹독히 치르긴 했더랬다.

셋 말곤 다 죽었으니까.

놈들 중에 치명상만 입은 놈들도 있긴 했지만…….

놈들에게는 의사도 없으니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굳이 놈들 시신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말은…… 그냥 무너뜨리자, 이 말인가?”

“네. 지금이야 병사들이지만.”

최동호 대장의 말에 유현이 답을 이어 나갔다.

“이거 끝나면 다 일꾼입니다.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은 쫄딱 망했습니다. 이걸 어떻게든 살리려면 맨파워가 중요해요. 그 때문에 우리가 시간 죽여 가면서 이놈들 여기까지 쫓아온 거 아닙니까. 기름과 시간을 사람 목숨과 바꾼 셈이죠.”

“그렇긴 하지.”

최동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마 그 전의 정부군이었다면 기름을 병사들의 목숨보다 우위에 두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정부는 겉으로나마 다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 어…….”

최동호는 그것이 기꺼웠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남은 놈이 저번 놈보다는 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뭐 수틀리면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자신이 시민 통제가 가능한 사람인가?

정치가 가능한가?

아닐 터였다.

혹시 모를 일이긴 한데, 이미 바람 앞에 등불 수준을 넘어선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자기 손으로 수렁에 넣기는 싫었다.

해서 포격을 지시하려 하는데, 건물 옥상에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인영이었다.

“박기태…….”

유현에게는 그랬다.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김태평도 그랬다.

“뭐 들고 있는 건 없어요.”

그 찰나에 이미 총부리를 겨눈 오예리 형사가 맨손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 말에 몸을 숨기려던 인원들이 다시 허리를 세웠다.

물론 방패 든 인원 뒤에 서 있긴 했다.

라드만 인간과 싸우는 데 익숙해지겠나.

인간들도 라드 와의 전투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물자가 없으면 익숙해지건 말건 별로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이들은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였던 서울을 빨아먹던 집단이었다 보니 상황이 달랐다.

돌뿐 아니라 어지간한 총알도 막을 수 있는 방탄 방패까지 구비해 둔 참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박기태가 말했다.

보통의 라드처럼 우렁찬, 짐승 울음소리와 같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잔뜩 말라서 그런가, 쉬어 빠진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딱히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포기한 탓일까?

아마 그런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놈들의 몰골을 보아하니 더더욱 그래 보였다.

한 놈은 총에 맞아서 비틀거리고 있고, 한 놈은 그냥 굶주린 탓인지 뭔지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이 망할 새끼들……. 개새끼들아.”

박기태는 그렇게 두 라드를 좌우에 늘어세운 채 욕설부터 내뱉었다.

한국어만 있는 게 아니라 중국어도 뒤섞여 있었다.

꽤나 한참 이어졌다.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예리가 이렇게 물어 왔을 지경이었다.

“그냥 쏠까요?”

사실 저 정도로 몸을 드러낸 이상, 오예리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맞힐 수 있을 터였다.

그걸 들은 걸까.

아니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그 직후 박기태가 입을 열었다.

“정유현 교수……. 당신에겐 미안하군. 나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되다니.”

박기태는 유현을 보다가, 이내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리 높은 건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또 서울엔 여전히 높은 건물이 방치되었을지언정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딱히 지금 당장 뭐가 보이진 않을 터였다.

허나 그의 눈에는 지금껏 스쳐 지나온 서울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주마등 비슷한 것일까?

유현은 오예리 형사를 제지한 채, 묵묵히 박기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1호…….’

이 모든 일의 원흉.

하지만 그가 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터였다.

실험에 자원했을 때도, 실패작으로 규정되어 버려졌을 때도, 국정원에 의해 재활용될 때도, 다시 버려졌을 때도, 그걸 다시 수거해 가 본격적인 실혐이 진행될 때도…….

복잡한 심경이었다.

다들 그랬다.

뭐 같은 심정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박기태가 잠시 떠드는 것 정도는 용인해 줄 용의가 있어 보였다.

아무도, 오예리 형사조차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네놈들이 자초한 거야.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그렇다고 해서 답을 해 주거나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박기태도 딱히 그걸 기대한 건 아닌지 혼잣말처럼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래 봐야 시끄럽다는 느낌조차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노쇠한 박기태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중얼거림에 한없이 가까웠으니.

“이제 와서 살려 달라고 해도 살려 주지 않겠지…….”

마침 해가 비쳤다.

그 빛 아래 선 박기태는 이미 노인이었다.

머리도 하얗게 세었고……

물론 근육이나 체격을 보면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살과 짓고 있는 표정 등은 영락없는 노인의 그것이었다.

“단지 나는…… 사람답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박기태는 천천히 옥상 난관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놈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으…….”

“나는…….”

그리 내키진 않는 모양이었다.

표정은 그러했다.

하지만 발걸음만은 아주 착실히 박기태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렇게…… 이렇게 되긴 싫었는데…….”

“아, 아아아아!”

“아, 안 돼……!”

그러곤 박기태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까도 말했듯이 건물 자체가 그리 높은 건물이 아니었다 보니 그렇게 떨어졌음에도 죽지 못했다.

총에 맞았던 연구원은 죽었지만 박기태와 구우준은 다리와 갈비뼈 등이 부러진 채 그저 널브러져 있었다.

유현은 다른 군인들 그리고 오예리와 이순규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으…….”

떨어지기 전부터 몸이 정상은 아니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신음만 흘린 뿐이었다.

유현은 우선 구우준부터 날렸다.

김태평에게 들어 알고 있지 않았나.

인간일 적부터 식인종이었던 이였다.

이런 놈과는 잠시 말 섞는 것도 싫었다.

뭐…….

필요에 의해 잠시 함께 움직이긴 했지만, 다 지난 일이지 않나.

“박기태.”

“으…….”

“본명은 뭐지?”

“크…….”

다만 박기태는 좀 달랐다.

이 인간은 한때나마 유현의 환자이지 않았나.

일말의 측은지심은 남아 있다, 이 말이었다.

궁금한 것도 있었다.

이제는 죽어 버린 우식이 내내 궁금해했던 것…….

박기태의 본명.

“어렵겠는데.”

이순규는 끅끅거리고 있는 박기태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기다려 봐야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벌써 동공이 열렸으니.

끅끅대는 건 그저 본능의 발로일 뿐일 터였다.

그 말에 유현도 십분 동의하던 바였기 때문에 그대로 총을 쏴 박기태에게 죽음을 선물해 주었다.

찝찝함은 없었다.

막말로 그렇게 더 살아 뭐 하겠나.

“다 끝났군.”

최동호 대장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처럼 말했다.

그간 인간의 모든 문명이 멈춰서일까.

하늘은 맑디맑았다.

아니,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최동호는 마치 그것이 앞으로의 미래 같아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말마따나 다 끝나지 않았나?

“음.”

반면 유현은 침울한 얼굴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 봐야 가까운 이들 외에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미미한 변화였지만.

적어도 최동호나 그의 말에 따라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한 어린 병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지.’

지금도 한강엔 숱하게 시신들이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하류에 가면 아마 정체 현상마저 있을 게 뻔했다.

그뿐인가?

이곳 서울 도심지 곳곳에도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을 터였다.

차라리 강을 따라 흘러오는 시신은 보기 좀 그럴지언정 그렇게 치워질 텐데 여기 있는 건…….

라드로 인해 한때 멸종에 가까워 가던 들짐승들, 그중에서도 쥐들이 창궐하게 되리라.

‘식량과 물……. 그리고…….’

이 사상 최악의 순간에 남은 인간들 또한 문제였다.

병사들?

이 사람들은 차라리 나았다.

하지만 저 종로의 시민들…….

지금은 대통령을 욕하고, 그래선 안 되었다고 자책하지만 실은 부역자들이지 않은가.

생각 같아서는 다 배제하고 싶었다.

‘그것도 안 되지.’

허나 그렇게 하기엔 남은 사람이 너무 없다.

어떻게든…… 이들을 데리고서 살아남아야 할 터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아닙니다.”

“이 새끼, 뭔가 안 좋은 생각한 거 같은데.”

그런 유현에게 오예리와 이순규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보니 이순규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다.

이 친구에게 남은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제길.’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이 녀석이 살아 있는 동안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 위해서라도 역시 종로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죄라…….’

그의 눈이 자연스레 김태평에게로 향했다.

그는 남은 요원들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회한에 잠긴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사태에 책임이 없다 할 수는 없는 사람인데.

‘어쩔 수 없지.’

허나 이제 와 그 죄를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갈 길이 구만리였다.

그리고 그 길은 아주 좁고 험할 것이 뻔했다.

김태평과 같은 우수한 인간이 없으면 배로 힘들어질 터였고.

“종로로 가자. 이제 다 끝났어.”

유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하면서, 그에게 의지하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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