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화. 복지'는' 좋은 최하위권 팀
- 차니차니 : ㅎㅇ
- 차니차니 : 우리 팀
- 차니차니 : 정글 구함
- 차니차니 : 테스트 ㄱ?
릴리의 닦달로 LOS를 몇 판하고 있는데 메신저에서 알람이 연달아 울렸다.
방금 전 상대 팀으로 만났던 이유찬이다.
- 쉬고싶어요 : 너 팀 어딘데
- 차니차니 : ㅎㅎ대전 FWX;;
아, 8989.
항상 8위나 9위를 차지해서 붙은 별명.
성적은 좋지 않지만 파이어웍스는 덕장과 선수 복지로 유명하다.
1군, 2군간의 사정이 크게 다른 스포츠업계지만 비교적 대우도 괜찮고.
성적이 나쁜 팀에 갈 이유가 없어서 가 본 적은 없지만.
- 차니차니 : 너만 오면 고
- 차니차니 : 탑승?
- 쉬고싶어요 : 싫은데
게임 소리가 들리지 않자 뒤에 있던 릴리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본다.
아. 이런.
LOS는 잘 모르는게 눈치도 빠르네.
[ 뭔데. ]
“아니에요.”
이유찬이 계속 메시지를 보낸다.
- 차니차니 : 아 왜
- 차니차니 : 내가 있잖아
- 차니차니 : ㄱㄱ
이유찬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친구의 친구 정도다.
옆옆 반에도 LOS 잘하는 애 있대, 같은.
수없이 이어진 삶에서 이유찬과는 늘 데면데면했다.
우승이 목표였기에 대부분 가능성 높은 팀의 1군으로 직행해서 서로 얼굴 볼
일이 없었다.
대화를 거의 나눈 적이 없는 온라인 친구같은 존재다.
랭크를 돌리다보면 자주 마주치긴 했으니까.
하지만 몇 번의 삶 속에서 이유찬이 1군이었던 적도, 같은 팀이었던 적도 없다.
내가 보고 온 것은 내후년정도까지긴하지만.
- 차니차니 : 같이 우승 ㄱ
[ 우승?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너랑 우승을 하자는거야? ]
아, 귀찮게 됐다.
[ 이건.. 스카우트? ]
“아니, 그런거 아니에요. 얘도 그냥 선수고 테스트 보러 오라는 말이에요.”
[ 그래그래! 근데 어쨌든 네가 필요하다잖아! 뭘 좀 아는 친구인가본데! ]
릴리가 신이 나서 외쳤다.
- 차니차니 : 나 잘해
- 차니차니 : 다 이김
검색해본 전적에는 불이 붙어있다.
몇 연패한거야, 이거.
- 쉬고싶어요 : ?
- 차니차니 : 진짜로
- 차니차니 : 탑은 이김
- 차니차니 : 견제받아서 그래
긍정적인거야, 뻔뻔한거야.
[ 이렇게 지고도 게임을 하다니 열정이 느껴지는구나! ]
오.. 이런, 여기에도 긍정왕이.
- 쉬고싶어요 : 근데 너 이거 템퍼링 아니야?
- 차니차니 : 그게 먼데
- 차니차니 : ?
2군이 상대적으로 엉성하게 관리되긴 하지만 아직 난 성남 스톰 소속이다.
또, 계약이 곧 끝나는 것과 별개로 스토브리그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단순무식한 녀석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다른 삶들 속에서는 이유찬과 연락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여긴 FWX인데요. 복지로만 유명하고 2군이나 1군이나 항상 순위가 낮
아요.”
순위가 낮은 것은 큰 문제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체급이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고, 그럼 내 우승은 멀어
진다.
우승을 노리지 않더라도 지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 열망도 없을걸요.”
[ 순위가 낮아서 열망이 없다구? ]
“있었으면 저정도는 아니었겠죠.”
딱히 FWX에 관심을 둬 본적은 없지만, 항상 순위가 낮은 팀이었다.
나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FWX에게 져본적이 없다.
그런 팀에 간절한 마음이 있긴 할까?
[ 그건 모르는 거 아니야? ]
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차니차니 : ㄱ
- 차니차니 : ㄱㄱ
- 차니차니 : ㄱㄱㄱ 나 믿어
[ 어후~ 열망이 어쩌고~ 우승이 어쩌고 왱알왱알~ 테스트 제의도 첨인게 까불
어~]
아, 이거 쌍으로 열받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선수가 난데.
그냥 이맘 때의 내가 평가가 높은 선수는 아니었고, 최근에 좀 피곤해서..
[ 게임 공부를 안하니까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지, 어휴. 커서 뭐가 될래? ]
“그런 엄마같은 말투로.. 아니, 이번엔 좀 쉬엄쉬엄 갈거라니까요!”
악마도 나를 긁는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보자.
요 작은 악마의 의견이 어떻든 나는 중국으로 가면 우승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FWX에서 안식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적당히 해도 앞으로의 메타를 나보다 앞서갈 사람은 없다.
과장 조금 보태서 지금의 LOS는 눈 감고도 할만하니까.
돈도 벌고, 중국어 공부 시간도 갖고.
잘 지는 팀이긴 하지만 내가 있는데 계속 지진 않겠지.
귀찮은 잔소리를 덜어낼 만큼 적당히만 하면 된다, 적당히.
아직도 릴리는 노래를 부르면서 방정맞은 몸짓으로 춤을 췄고, 나는 키보드를
잡았다.
- 쉬고싶어요 : 생각해봄
- 차니차니 : 오! 역시 내 친구
서로 이름정도밖에 모르는데 무슨 친구야.
온라인 인싸인가.
#
입단 테스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FWX의 경쟁률은 타 구단에 비해서 높은 편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유망주정도의 친구들과 경쟁하는데 나를 이길만한 선수는 없었다.
고려하던 선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를 선택하지 않을 리가 없지.
성남 스톰과의 계약도 깔끔하게 종결.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FWX는 스프링 캠프를 시행한다.
대학생으로 치자면 OT, 회사로 치자면 킥오프 미팅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바뀐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 방을 정하고 뭐 그런
것들이다.
“야! 거니거니 권거니!”
이유찬이 반갑게 인사한다.
내가 아니라 옆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이지호입니다.”
척 봐도 어려보이는 동글동글한 체형에, 사투리 억양이 느껴진다.
어딜봐서 쟤가 나라는거야.
내 얼굴도 기억 못하는게 채팅에서는 그렇게 친한 척이었다고?
“안녕. 내가 권건. 이유찬 너는 내 얼굴도 모르냐?”
“아 난 너 어릴 때만 기억하는 듯. 지호 안녕, 난 이유찬.”
이를 드러내며 웃은 이유찬이 여기저기 악수를 청한다.
“반갑습니다. 정일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창민이고요. 대구 유니버스에서 왔습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사이, 2군의 매니저 업무를 겸하는 스태프가 와
서 함께 숙소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유찬이 따라와 옆에 붙는다.
“야, 건아. 난 너 진짜 올 줄 몰랐다.”
“네가 오라며.”
“그래도 너 스톰 소속이었잖아. 거기 좀 강팀 아님?”
글쎄,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저, 건님 알아요. 스톰 정글러. 경기 봤거든요. 근데 왜 스톰에서 안하고
FWX로 오신거에요?”
이지호가 끼어들고 싶었다는듯 질문을 던진다.
“그냥, 이유찬이 오라고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계약을 더 하려면 더 할 수 있었지만, 좀 설렁설렁 하려고 옮겼다고 말할 수
는 없잖아.
이유찬의 얼굴이 밝아진다.
“와.. 진짜임? 오늘부터 우리 진짜 친구하자.”
얘는 친구랬다가, 진짜 친구랬다가.
웃긴 놈이다.
“저였으면 그냥 스톰에 있었을텐데.. 스톰 진짜 강팀이잖아요. 혹시 1군 콜업
되면 돈도 많이 받고.”
이지호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스톰은 내가 대부분 선택했던 팀인 만큼 리그에서도 늘 좋은 성적을
보였다.
마지막 시즌에서도 1군은 1위, 2군은 2위의 호성적을 냈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1군 데뷔는 정말 운과 시기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하는 일이다.
스톰의 1군 선수들은 밀어내기 힘들다.
나정도가 아니라면.
그래도 FWX에서의 첫 날인데 스톰의 연봉 타령을 하는 건 좀 웃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지호에 말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이유찬이 떠드는 소리를 한귀
로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키가 멀쑥하니 크고 과묵해보이는 사람이 원거리 딜러 정일도.
그 옆에서 옷에 뭐가 묻었다느니 부산을 떠는 사람이 이적생 미드 라이너 김
창민이다.
내 옆에서 떠드는 이유찬이 탑 라이너.
그리고 아직 수염도 안 난 것 같은 스톰바라기가 이지호, 서포터다.
“이쪽에서 보안 카드를 대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숙소 앞에 도착해서 안내에 따라 각자 지급받은 보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숙소는 사옥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여기 숙소 개좋음.”
스태프가 사무소에서 뭔가 작성하는 동안 이유찬은 로비에 비치된 소파에 앉
아 옆자리를 두드렸다.
“일도랑 나는 작년부터 여기서 생활했었는데, 밥도 맛있고 진짜 쩜.”
“그래보이네.”
브랜드 건설사의 주거형 오피스텔인 것 같은데 로비부터 깔끔해보인다.
이정도면 지원이 적은 팀의 1군 숙소정도는 될 것 같다.
FWX가 신경을 많이 쓴다더니, 정말인가보네.
그런데 성적은 왜 그렇지.
“다 됐습니다. 이제 올라갈까요?”
꽤 고층까지 올라가서 멈추자 이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꼭 스톰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물질만능주의같으니.
“여기 팸플릿을 나눠드릴게요. 보안 카드, 비밀번호, 와이파이 안내 같은 것
들이 적혀있으니 잘 살펴보시고 보안을 위해 파기 부탁드립니다.”
스태프는 익숙한 몸짓으로 주요 사항들을 전달한 뒤,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들어가시면 이야기 나누실 수 있게 준비가 되어있어요. 일도 선수가 숙소 소
개를 해주실 예정이에요. 브레이킹 시간을 가지신 뒤 오후 5시에 감독님, 코
치님께서 오실 예정입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내려가세요.”
새롭게 영입된 선수나 타 팀에서 이적해온 선수 모두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전부터 팀 소속이었던 정일도가 익숙하게 문을 열어줬다.
숙소 안은 널찍했고 상상했던 것만큼 깔끔했다.
사치스럽지는 않지만 군더더기 없이 관리된 숙소.
주방, 거실, 수납 공간, 그리고 방이 3개.
“어.. 안녕하세요..? 저는 정일도입니다. 혹시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정일도가 일행을 거실로 안내하며 입을 뗐다.
정일도는 프로게이머답지않다고 해야할까.
으레 다들 하나쯤 달고 다니는 문제가 거의 없어보였다.
배가 나온다던가, 목이 굽어있다던가, 눈이 나빠 안경을 쓴다던가하는 문제들
말이다.
엄마가 입에 달고다니던 말들을 내가 말하자니 좀 웃기긴한데 생각보다 그런
친구들이 꽤 있다.
옆에 있는 김창민도 그렇고.
그렇다고 게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모두 그렇냐면 그건 아니고.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키가 크고 늘씬하냐면 또 그건 아니지만.
아마 다른 스포츠들과 비교해보자면 하염없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정일도는 어깨도 꽤 넓은데다 키도 2미터에 가까웠다.
“나는 스물.”
이유찬이 먼저 선창하며 옆 사람을 쳐다본다.
“전 열 아홉 살..”
“저는 열 여덟 살이에요.”
나이를 말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고, 김창민과 이유찬이 분위기를 리
드했다.
“그럼 나랑 건이가 20살, 창민이랑 일도가 19살, 지호가 18살. 상체 듀오가
나이가 제일 많구 아래로 갈수록 어려지네.”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그 사이 일도가 간식을 차리고 있었다.
“이거 먹으면서 해요, 우리. 그리고 중요한 할 일이 있어요.”
일도의 표정은 항상 진지해서 알기가 어렵다.
중요한 할 일?
“이제 나한테 주장 주나?”
유찬이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일도가 입을 열었다.
“방부터 고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