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23화 (24/326)

023화. 얘는 걍 LOS를 잘함

“차-니! 퓨체탑 차니가 또 한번, 시즌 몇번째죠! 벌써 7번째 솔로 킬!”

“위, 아래가 정신없이 터져나갑니다!”

“16분, 만 골드 이상 차이가 납니다! 개인기 조합으로 환상적인 플레이!”

“제가 어그로 끌게요, 하면서 들어간 르블란이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집이라

도 늦추고 싶었겠지만.. 도리어 빨려들어갑니다!”

“너네 어떡할래. 어떡할건데! 안 싸울거야? 그럼 우린 게임 끝내. 싸울거야?

그럼 죽여줄게. FWX가 선택을 강요합니다!”

“한타 붙으면 본인들이 진다는걸 알고 있어요. 백퍼센트. 점점 무너집니다,

울산 피닉스!”

“FWX는 다릅니다!”

“21분 30초! GG!”

“FWX가 피닉스를 처치하면서 다시 3연승을 달성합니다!

환호가 울려퍼진다.

- 완전 양학인데?

- 무슨 일이 일어난거임? 바뀐거 미드랑 정글밖에 없지 않음?

- 울산 피닉스 애들 실버임?ㅋㅋㅋㅋ

- 뭐지? 탑 빼고는 라인전 비슷했던 것 같은데?

- 운영 싸움 ㄹㅇ 개쩌는데

- 2군 경기력 실화냐? FWX 1군이랑 바꿔도 되겠다

조금씩 관심이 기운다.

“얘들아, 수고했다! 최고였어.”

우리의 게임은 탄력을 받았다.

“거기서 왜 공격 특성을 찍었어?”

“보통 이거 찍으면 이기니까..?”

“그럼 왜 이겼을까?”

나는 매일 이유찬과 좀 더 토론했다.

다시 느끼지만 유찬이는 천재가 맞다.

전적 검색 사이트 등에서 제공되는 룬 정보를 그대로 찍어놓고 직감적으로 플

레이하다가 최적화해서 정답을 만들어나간다.

다만 그 이유를 자기도 모른다.

분석이 아니라 체감으로 만들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건 절대 나쁜 게 아니다.

어쩌면 일반인들은 절대 할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 좀 더 발달시킨다면?

정말 무서운 선수가 될 것 같다.

“체력 게이지 옵션 바꿔봐.”

“나 그러면 게임 못하는데.”

“몇 번만.”

“네, 선생님.”

익숙해져있던 감을 떨어뜨려서 숫자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려줘야한다.

싫을만도 한데 유찬이는 그럭저럭 따라왔다.

대신 가끔 불만이 있으면 방귀를 뀐다.

아주 더럽다.

“진짜 극혐이다. 너랑 안해.”

“나도 모르게 나왔음. 제발요.”

몸도 생각하지 않고 불만을 표현하는게 자연스러운가보다.

머리로 하는 게 뭐야?

야만인같은 놈.

[ 와, 얘 진짜 화려하다. ]

릴리가 번쩍거리는 유찬이의 리플레이를 보면서 말했다.

‘잘하기는 해.’

이렇게까지 개인 역량이 뛰어난 탑솔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유찬이가.. 연구를.. 해..?”

코치님은 경악한 표정이었다.

“유찬이가.. 방어 룬을.. 찍어..?”

감독님은 더 놀란 표정이었다.

내가 조용히 손을 들어 따봉을 만들어보이자 감독님과 코치님은 고개를 끄덕

이며 우리 둘에게 시간을 내줬다.

#

다음 날도 가볍게 경기를 이겼다.

상대는 광주 미라쥬였는데 지난 시즌 6위 팀이다.

지난 시즌 후 몇 명을 말소시키고 이번 시즌은 시작부터 모두 다 삭발을 해

화제가 됐었는데 안타깝지만 경기력은 별개인 모양이다.

지금은 그냥 팬들에게 귀여운 빡빡이 팀으로 불리게 됐다.

광주 미라쥬는 여전히 연패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 1패를 더 추가해줬고.

이번에 내가 보여준 것은 정글 친 짜오였는데 이것도 제법 화제가 된 모양이다.

“이번주도.. 흐흡.. 수고했다! 너넨.. 정말 최고야.. 나.. 이제 진짜 설레도

되는걸까, 코치야?”

“형님.. 터널은 끝났어요.. 우승 한 거나 다름 없어요..”

“태양아.. 그건 아직 아니야..”

FL에서의 2번째 주차가 끝났다.

우리의 성적은 7승 1패.

다음주 월요일 경기까지 하면 라운드 1이 끝난다.

그 경기를 진다고 해도 9경기 중 7승을 챙겼으니 괜찮은 성적이었다.

FWX는 단 한번도 이런 성적으로 초반을 밀어붙인 적이 없다.

감독님과 코치님은 매일 울 것처럼 행복한 표정이다.

“형! 형! 이거봐. 또 올라왔어. 짜오 트리플 킬 영상.”

내 플레이에 관한 짤이나 내용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서 조금 알려지기도

했다.

심심할 때마다 커뮤니티에 사는 지호가 틈틈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2군 경기에도 관심이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랍지만, 생각보다 짤

이 많다는 점에도 놀랐다.

- 대화? 대화가 왜 필요해?.gif

- 함께가 아니면, 아무것도 루삥뽕.gif

- 프로 게임에서 양학하기.gif

특히 ‘찌세’라는 아이디로 상당히 많은 움짤들이 생산됐는데 누군지를 도통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열성 팬 중에는 없었던 아이디다.

언더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작년까지 하위권에서 머물던 2군 팀이 압도적인 경기를 보여준다는 건 상상력

을 자극하기 괜찮은 이야기니까.

어쨌든 기분 좋은 이야기다.

“거니거니 연습 고?”

이제 주말이지만 유찬이는 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눈치없는 녀석도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랑 같이 게임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는 걸.

우리는 듀오를 돌리지는 못했지만 보통 같은 시간에 게임을 돌렸다.

아군으로 만나기도 하고, 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는 잠시 게임을 멈추고 피드백을 거친다.

이번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 목재장난감 : 이겼네

- Roland de Medi : ?

- 목재장난감 : 적 정글 틸론만함

- 목재장난감 : 그리고 우리 정글 잘함

채팅이 툭툭 올라온다.

나는 채팅으로 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어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건아, 이거 이렇게 가면 어떨까?”

“봉인 풀린 주문책? 나쁘지 않네.”

순한 양에게 조언을 주고 돌아서니 게임이 시작됐다.

이번 판의 픽은 쟈크다.

몇 년을 해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사실 쟈크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리그에서도 많이 쓰이는 픽은 아니고.

그래도 감을 잃어버리지 않게 가끔은 색다른 픽을 한다.

- 목재장난감(잭쓰) : 정글님ㅠ 왜 나 만날때만 실험적인거 해요?

- 목재장난감(잭쓰) : 쟈크 안하시잖아여ㅠ

대답은 하지 않는다.

묵묵하게 매일같이 돌던 정글을 돌고, 또 돈다.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갱을 간다.

갱을 가지 않을 때는 열심히 정글을 돈다.

나는 지난 삶에서 몇 번정도 다른 라이너로 포지션 변경을 해보곤 했지만 결

국은 정글러로 돌아갔다.

결국 나는 정글러다.

정글러는 정해져있는 길이 없다.

내가 가고싶은대로, 적을 만나기 위해서 혹은 만나지 않기 위해서 경로를 선

택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어쩌면 내가 한 라인에 우뚝 서서 플레이 해야하는 라이너였다면 LOS에 좀 더

빨리 질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정글이라고 해서 항상 게임이 재밌기만 한 건 아니다.

솔로 랭크에서 가장 적이 많은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상대 팀도 그렇지만 이른 타이밍에 캠프를 빼먹으러 오는 우리 라이너도 적이다.

그래, 딱 지금처럼.

- 삥쀼!

귀여운 소리가 나면서 아이콘이 뜬다.

캠프를 빼먹던 미드라이너가 자기도 머쓱한지 캐릭터 아이콘을 띄우고 라인으

로 복귀한다.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솔랭이니까.

그럴 수 있지.

- 거북꼬북(아자르) : 루덴 - 구매 가능

- 거북꼬북(아자르) : 제가 원래 정글이어서

- 거북꼬북(아자르) : 헷갈렸네요 ㅈㅅㅈㅅ

괜히 뻘한 소리를 늘어놓는다.

대답은 하지 않는다.

다 알만한 사람들이다.

물론 내가 내 캠프를 안정적으로 먹는 게 제일 좋겠지만 나는 또 뺏어 먹으면

된다.

여태까지 틸론과 벌려놓은 차이가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위험을 감수해야하지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갱을 가준다.

우리 원딜의 입에 킬을 떠먹여준다.

두 사람이 서있는 바텀 라인인만큼 영향력도 커서 1순위이긴 하지만, 더 중요

한 이유가 있다.

보통 왕자님들은 기복이 심하다.

가능하면 일단 정서적으로 안심시켜드리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낫다는 내 생

각이다.

- 더블 킬!

- Roland de Medi(사미레) : 젤리! 젤리!

- 캔참치(노틸러드) : 사미레 - 생존

- 캔참치(노틸러드) : 쟈크 - 생존

- 목재장난감(잭쓰) : 쟈크 - 생존

- 목재장난감(잭쓰) : 쟈크 - 생존

상대 스펠 체크와 함께 몇몇 칭찬이 오간다.

자, 이제 기분 좋게 용을 먹고 탑으로 가주자.

우리 탑도 기분이 좋은 것 같다.

- 목재장난감(잭쓰) : 쟈사장, 탑도 와주는거지?

갑니다 핑을 하나 넣어놓고 미드에게 블루를 선물한다.

- 삥쀼!

귀여운 소리와 함께 아자르의 머리 위에 행복한 얼굴 아이콘이 떴다.

좋아, 월급 지급으로 사기 증진 완료.

자연스럽게 타이밍을 틀어 예상보다 반박자 늦게 탑으로 향한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 목재장난감(잭쓰) : 쟈크 - 생존

다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탑은 참 단순한 친구들이다.

결과만 좋으면 아무래도 다 좋다는 식이다.

아, 물론 ‘자신의’ 결과가 좋아야한다.

좋지 않았을 때와 좋았을 때가 너무 극과 극이라서 다루기가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원딜보다 섬세하게 대해야한다.

그러니까 한 턴을 더 쓴다.

정글이 말려 탑 라인이라도 받아먹으려고 했던 틸론을 끊는다.

- 더블 킬!

- 목재장난감(잭쓰) : 궁금하면 죽어야지

- 목재장난감(잭쓰) : 대나무 헬리콥터

- 목재장난감(잭쓰) : 붕붕붕붕붕 오소이

수줍게 지원 핑을 찍던 미드에서도 싸움이 열린다.

서포터까지 올라온 3대 3 싸움이다.

한타는 안정적으로 하면 된다.

각 라인이 잘 풀리고 있으니 굳이 과감하게 할 필요가 없다.

적이 걸어오면, 자연스럽게 받아주면 된다.

- 적을 처치했습니다

미드라이너의 입에 들어가야할 킬이 노틸에게 들어간다.

아쉽지만 괜찮다.

대신 적들이 물러난 미드 라인에 전령을 풀어준다.

미드에게 블루가 월급이라면 전령은 인센티브다.

라인까지 한 입에 먹기 좋게 만들어주고 자리를 뜨니 또 귀여운 이모티콘 소

리가 들린다.

일단 이정도면 합격점이다.

우리 황족 미드들에게 중요한 것은 포탑, 골드, 블루, 라인, 킬이다.

말하고보니 전부 다다.

어쨌든 완벽주의자들이라 게임을 전체적으로 푸는 데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 챔피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 거북꼬북(아자르) : 우리 팀 잘한당ㅎㅎ

게임은 충분히 기울기 시작했지만 항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내 쟈크가 모습을 드러내면 어지간하면 킬로 이어진다.

몇번의 한타가 이어지고, 킬 스코어는 25대 8이다.

그래도 꼼꼼하게 시야 작업을 한다.

노틸이 혼자 잘리지 않게 뒤를 봐주거나 시야 체크를 할 때 붙어 준다.

우리 서포터를 잘라먹으러 온 상대는 역으로 자른다.

- 캔참치(노틸러드) : 쟈크 - 생존

서포터들은 대체로 천사다.

마음 약한 왕자님들을 항상 보필할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을 고른 사람들이니

당연하다.

고작 이 정도만으로도 따봉을 치는 착한 사람들 밖에 없다.

- 거북꼬북(아자르) : ㅎㅎ저두 백정 치고는 미드 좀 치죠? 옛날 주라인임

그런데, 백정이라니?

이건 또 무슨 편견 가득한 소리야.

너랑 공감대 형성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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