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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45화 (46/326)

045화. 셧아웃

주도권을 가진 팀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리가 주어진다.

라인전을 끝낼 것인가, 더 할 것인가.

시야, 유리하다.

오브젝트, 압도적이다.

라인전 성적, 준수하다.

기세?

더할 나위 없다.

주도권을 꽉 쥔 FWX는 미드 타워를 철거하며 자연스럽게 라인전 페이즈를 끝

냈다.

“너무 무서운 조합이예요. 모든 지역이 언제든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해요. 섬세한 플레이가 필요합니다, 피닉스!”

옵저버가 시야를 바꿔가며 서로의 진영 차이를 보여준다.

답답한 시야에서는 누워서 시간을 끌기도 쉽지 않다.

“지금 녹턴은 괴물입니다. 그런데 릴리야도 괴물이거든요! 생존할 만한 수단

을 이중, 삼중으로 갖추고 있어요. 이렇게되면 아이템 선택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어요!”

피닉스의 서포터가 어떻게든 시야를 따기 위해 아군의 정글 안으로 한걸음 들

여놓는다.

시간을 쥐어 짜낸 아자르가 같이 붙어주지만.

“아아아아아아! 알고 있나요? 망원 와드가 꽂힙니다!”

알고 있었다는 듯 피닉스가 지나가던 길목이 밝아졌다.

그리고 금세 어두워지는 시야.

어둠 속에서 녹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망원 와드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달려드는 녹턴! 이제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이건, 이건 악몽입니다!”

레오니가 어떻게든 붙어서 함께 괴롭혀보지만 소용 없었다.

장거리 포격이 또다시 따라온다.

“이거 연계가 따다다닥 들어가는 거거든요!”

그리고 끝내 잠시 정글에 발을 들였던 아자르가 쓰러지고, 뒤늦게 합류한 피

닉스에서 녹턴을 추격했다.

충분히 제 몫을 해낸 김예성의 녹턴은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간 진의 네 번째 탄환이 레오니까지 마무리한다.

2 대 1의 교환.

“드디어 녹턴을 저지합니다! 거의 저승사자 같았는데요, 그래요! 피닉스! 이

렇게 물어 뜯어줘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라도! 교환을 해나가야해요!”

“아! 근데 제압골을 먹은 게 레오니인데요!”

“앗, 아아..!”

해설진이 탄식했다.

피닉스는 지금 서포터를 키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제압골이 아자르나 졔리에게 들어갔다면 좋았을텐데!”

FWX가 퍼펙트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진영을 밀고 당기는 과정 중에 타워를 내주기도 하고, 킬을 교환하기

도 했다.

하지만 전황은 뒤집히지 않았다.

궁핍한 피닉스가 원했던 교환들이 아니었다.

FWX는 하나를 내주면 둘을 내놓으라고 달려드는 악덕 사업가였다.

여전히 협곡 정글 속에는 짐승들이 돌아다닌다.

은근슬쩍 벌어지기 시작한 원딜의 밸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경기를 중계하는 데 제가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이게 이럴 수가 있나요!”

“저희가 분명히 FWX가 이 픽을 가져왔을 때 불안하다고 했었거든요!”

“이런 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를 모두 겜알못으로 만

들어버리나요, FWX?”

- 싸움 개좋은 조합인데?

- 킹론상.. 아 모르겠는데? 돈으로 때리는 거 아님? 팔 너무 짧잖아

- 경기 왜 이렇게 된거에요?

- 정글 차이

- 쟤가 신인 맞냐? 혹시 나이를 숨김 뭐 이런거 아님?

- 따끈따끈한 데뷔전 ^오^

“경기가 너무 매콤합니다. 이런 팀인 줄 몰랐어요!”

해설진의 탄식과 함께 경기는 종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 피닉스의 일격! 텐 선수의 냐르가 살짝 앞으로 나왔던 루루를 물면서!”

“과투자인 것 같은데요! 위험해요! FWX는 알고 있어요!”

“권건! 권건! 릴리야가 적의 딜러진을 동시에 궁극기로 잠재우면서 역으로 반

격 구도가 만들어졌어요!”

“위험해요, 피닉스!”

“또 다시 불이 꺼집니다, 아, 녹턴이 궁 텔 궁!”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네요! 훨씬 빠른 합류 속도를 내세워 루루를 내주

고 세 명을 가져옵니다! FWX! 게임을 끝내러 가나요!”

- 저기 다 스킬챔 아님?

- 방망이 한번 휘두르면 줄줄 녹아버리는데 스킬챔이 무슨 상관ㅋㅋㅋ

- 기억을 찾은 라온.. 이건 귀하군요..

- 진 궁 무시?

- 속박 셔틀 숟가락치고는 제법 강하군..

- “최고의 버스 기사”

- “최고의 탑승객”

“나이스!”

FWX는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이고, 한번 빨아보려다가 죽었네. 희생 인정?”

“아 괜찮. 예성이 녹턴이랑 건이 릴리야 너무 센데?”

“바론 보고 탑 뛸게요.”

“와. 이 조합 꿀인데? 쟤넨 왜 그랬대?”

“뒤집어버리니까 너무 속시원하다. 진짜 이게 얼마만인지.”

“막내가 너무 심하게 캐리해버렸는디.”

“근데 미드 녹턴도 할 줄 알아?”

“아, 나도 그거 궁금했어. 예성이한테 건이가 다 설명해주던데.”

“정글챔이라서 그런가?”

“저는 못하는 챔피언이 없어요.”

“미친. 얘 말하는 것 좀 봐.”

“개 인정.”

“버스 조타.”

“야, 근데 설마 우리가 이기는거야? 우리 게임 끝낼 수 있냐?”

누군가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보이스가 비었다.

모두 권건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타워치면 끝나요.”

#

- 신인이 나오자마자 POM 쓸어감

ㄴ 오늘 FWX가 단단하게 준비한 느낌이었음

ㄴㄴ 그래 이거지 맨날 이렇게만 준비했으면 좋겠다

ㄴ 그 픽을 준비했다고? 스크린? 때 서로 해봤나?

ㄴㄴ 아닐? 것? 같긴? 함?

ㄴ 권건 인터뷰 “좋은 조합이었다”

ㄴㄴ 근데 왜 우리 애들은 그거 못하냐고

ㄴㄴ ntr 개같네ㅋㅋㅋㅋ

ㄴㄴ 릴리야.. 못된 계집애.. FWX가 그리 좋드나..

ㄴ 야 이제 FWX 반등한다 지금 들어올 때다 탑승해라

ㄴㄴ 같이 한강 가자는 뜻이니?

ㄴㄴ 응 아니야 저점 매수야 달려

ㄴㄴ 응 그 밑에 바닥 있어요~

ㄴㄴ 이번에는 다르다

ㄴㄴ 다번에는 이르다ㅋㅋㅋ

ㄴ 근데 진짜 어떻게 된거임?

ㄴㄴ 데뷔전만 봐선 모름 상대도 9위였음

ㄴㄴ 우리도 몰라 그냥 팬티 갈아입으려고

#

그날 밤, 때아닌 분석 방송들이 여럿 열렸다.

LKL 1라운드가 거의 끝나가던 이 때 등장한 새로운 픽.

메타를 거부하는 이 픽을 들고나왔지만 패배한 피닉스.

그리고 피닉스의 픽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은 FWX가 주요 토픽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해설한 동현이는 운이 좋은거라구요.”

“기수형도 분석 데스크 로테이션이셨잖아요.”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남동현 해설과 강기수 해설의 분석 방송이었다.

두 번째로 진행된 성남 스톰과 부산 호넷의 경기가 3세트까지 갔기에 이른 시

간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오늘 경기가 끝나자마자 약속을 잡고 방송을

켰다.

“제가 말씀드렸죠. 이 선수는 좀 특별하다고.”

- 남동현의 원픽ㅋㅋㅋㅋ

- 남동현 해설님께서는 권건 선수를 2군 있을 때부터 눈여겨 보셨었죠. 기억

납니다.

- 근데 2군에서 잘한다고 1군에서도 잘 할 수 있는건가요?

- 편애? 편파 해설은 사절

“편애나 그런게 아니라요. 에이. 또 왜 이러실까. 잘 하는 선수가 있으면 좋

잖아요.”

“그리고, LKL이 계속 부흥하기 위해서는 스타 플레이어와 혜성같은 신인들이

어우러져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지금 사실 우리가 1부 리그라고 장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서 결국 월드 기준으로는 신인들도 다 우군인거잖아요.”

“아무튼 오늘 경기. 진짜 최근 3년 내에 데뷔한 신인 선수들 중에서는 최고의

데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 좀 심상치 않았고, 솔직히 FWX가 그렇게 과감하게 밴픽을 하는 팀인

줄 몰랐어. 항상 분석가들이나 해설들이 입을 모아서 말했던 게 혁신인데.”

두 사람은 잠시 박수치는 시간을 가졌다.

“근데 또 FWX 사정도 이해가 가요. 뉴메타나 의표를 찌르는 것도 한두번이고

실패하면 역풍이 너무 세니까. 그리고 예전에 한번 그, 실패 한번 크게 하고

나서.”

“아. 그치. 기억나.”

- 그 때 그거~ ㅠㅜㅠㅠ

- (이모티콘)

- 뭔데?

- ???

-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임ㅠ

“이런 건 조금 조심스러운데. 왜,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일이긴 해요. 진짜 유

망주라고 엄청 기대받던 선수가 있었거든.”

남동현 해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 힘든 일이 좀 있었죠. 여기 방에 계신 분들이 잘 못 느끼실 수도 있는

데 생각보다 처음 데뷔하는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아요.”

“관중들도 있고, 아카데미나 퓨처스 리그같은데랑 다르게 스탭, 심판진, 직

원, 방송팀.. 사람 진짜 많거든. 그리고 공기같은 것도 좀 다르고. 미세하게

는 뭐 온도 차이부터.”

- 아 무슨 온도차이로 게임을 못함ㅋㅋㅋㅋ

- 맞음 데뷔전만 치르면 줄초상

- 그 신인들은 지금 뭐하나요?

- 그럴 수도 있겠다ㅠㅠ

- 그래서 어캐 됐다는거임

“진짜 그렇다니까요. 온도가 2도만 낮아져도 몸이 막 서늘한거야. 내가 알던

게임이 아닌 것 같고. 해상도가 낮아보이고 마우스도 안 움직이고. 진짜로!

아니. 여러분, 저 프로 출신이잖아요.”

“그쵸. 동현이가 진짜 뛰어봤던 선수 아닙니까. 근데 LOS 파크에서 뛰진 않았

던 것 같은데.”

“아무튼요. 기수형.”

“네네, 그래서 그렇게 FWX에서 데뷔를 했던 선수가 그런 걸 좀 힘들어했었죠.”

“근데 FWX는 기존 주전한테도 문제가 생겨서 어떻게든 그 선수를 써야하는 상

황이었어요. 그래서 진짜 힘들게 출전했었고.. 이게 좀. 뭐라고 말하기는 힘

든데..”

“그 시즌도 FWX가 정말 힘든 시즌이 됐었지.”

“네. 그 정도가 맞을 것 같아요.”

- 결국 한 명이 트롤했다는 거 아님?ㅋㅋ 걍 겜인데

- 과도한 비난은 밴입니다

- ㅠㅠ 진짜 플레이 하는 거 보면 너무 안쓰러웠어요

- 화면에 손 벌벌 떨리는 것도 잡히고 그랬었음

- 세트 끝날 때마다 토했다던데

- 결국 은퇴했던 선수 불러오고 난리 났었죠..

“하지만 이번에 권건 선수가 콜업되고 너무 주목을 받아버리니까. 안 올릴 수

도 없는데 바로 올렸다가 큰일이라도 날까봐.”

“으. PTSD 오지.”

“근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강기수 해설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입을 열었다.

“이 선수가 FWX 전체의 어떤.. 굴레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FWX 전체의 입스라

고 해야할까. 그걸 오늘 박살을 내버린거죠.”

“그러니까요! 오늘 피닉스가 잽 한번 뻗었다가 정말 KO패 당해버렸죠.”

“이건 진짜 중요한 일인거에요. 그래서 방송을 켠거고.”

“게임에서 위닝 감각이란 게 대단한거거든. 팀원 전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 처

럼 움직이는거. 여러분들도 다들 보셨잖아요.”

- 중요하지..

- 진다고 배울 게 뭐가 있냐..

- ㅇㅇ패배에서 배우는 것보다 승리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했음

- 그럼 진짜 FWX 반등 가나요??

“인정. 빨리 다음 경기 했으면 좋겠어요, 난.”

“저도 그래요. 이번 시즌 FWX, 기대해볼 만하지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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