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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48화 (49/326)

048화. 타워 골드 먹고 갈래?

팀은 화가 났다.

그 이유가 여태까지 졌기 때문인건지.

호넷의 도발 때문인건지.

그것도 아니면 나라는 든든한 정글러를 끼고 본성이 나온 건지.

이유가 뭐가 됐든 상관은 없다.

호넷은 우리에게 싸움을 걸었고, 그럼 최선을 다해 때리는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준비해 온 밴픽은 평소와 다르다.

스크림 정보는 사내 커플과 같아서 비밀인 척 하지만 은근슬쩍 소문이 퍼진다.

하지만 그래서 더 헷갈릴거다.

항상 수비와 안정을 도모하던 팀의 스크림 매운 맛?

이건 귀하다.

그래서 믿기 어려운 정보다.

“오늘. 우린. 아칼린을 쓴다.”

박진현 감독님이 단호하게 선언한다.

“준비해온 대로 진영의 이점을 살려 선픽한다. 예성이. 너는 오늘의 키 플레

이어. 1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나!”

“네에.”

예성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미리 짜 온 내용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역시 바로 수긍하는군. 이게 뭐다? 우리 팀의 미드가 준비가 됐다는 뜻이지.”

“네네, 선장님!”

이 꽁트에 어울려주는 것은 곽지운이다.

“좋아! 우리 팬시도 준비 됐나?”

“좋심다!”

“바텀 듀오, 전투 준비 됐나!”

“네!”

“우리 팀 최강 아웃풋, 권건! 너만 준비되면 바로 출발한다!”

“준비 됐습니다.”

우스워보이지만 기합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다.

감독님이 꽤 공을 들이신 것 같다.

그래도 전보다 훨씬 기운있어보이니 좋네.

감독님은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잊기 쉬운 피드백을 다시 한번 주입시킨 뒤 기

운차게 외쳤다.

“이제 시작한다, 다들 집중하자! 매운 맛의 FWX, 아자!”

“아자!”

#

“놀랍네요. FWX가 새로운 스쿼드로 새로운 전략을 보여주네요.”

“저도 선픽으로 아칼린을 가져갈 줄은 몰랐습니다. 암살자 지옥이라고 불리는

메타가 왔다고는 하지만, 리그에서 증명하고 있는 팀은 없거든요. 초반 약점

때문이죠.”

“맞습니다. 특히나 아직 함정픽이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FWX는 아칼린을 고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탑에서 팬시 선

수가 그윈을, 정글은 리싱, 미드 아칼린 그리고 바텀 이즈 칼마 조합까지.”

“저는 아칼린 선픽도 놀랍지만 솔직히 팬시 선수의 그윈이 정말 놀라워요.

FWX가 상체를 공격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 팀이었군요?”

“여태까지 동부 최후의 성벽이라는 좋지않은 별명을 듣던 선수 아닙니까.”

몇몇 팬들이 최고의 수비수라는 글씨를 황급히 공격수로 바꿔 쓰고 피켓을 흔

들었다.

“그래도 호넷 역시 의외로 재미있는 픽을 가져왔어요. 일단 그윈과의 시너지

를 막기 위해 짜오를 뺏어 온 것도 좋구요. 빅터르, 징크시, 탐 진치로 게임

을 긴 호흡으로 챙기면서 마지막에 케낸을 뽑았죠.”

“맞아요. 우리는 안 싸워주겠다는거죠.”

“한타를 하겠다는 생각이군요. 사실 아직까지 저는 빅터르의 밸류가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호넷은 누워있다가 한 번에 일어나고 싶을 것이고. FWX는

그렇게 누워있는 상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마치 픽이 뒤바뀐 것 같은 두 팀이 어떤 경기를 보여줄 지! 지금

부터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봉구형.”

“하이고, 우리 막내 게임 할 때 목소리 변하는 것 좀 봐.”

“집중.”

“응, 오키. 알겠스.”

박 감독이 듣기에 권건은 말만 막내였지 이미 실세였다.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어찌나 깍듯한지.

그냥 말을 안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저 나이대의 선수들이 가지고 있을

만한 아집이나 유치함이 없었다.

물론, 이게 또 너무 어른스러워서 문제일 때도..

“아이고!”

박 감독은 눈을 부릅떴다.

“은호 형. 그 쪽 위험해요. 라인전 집중.”

“잠깐 시야만 잡고 올게.”

권건이 경고했지만 최은호는 시야의 이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 짜오, 아, 이게 안 피해지네. 아. 죽었네. 쏘리,.”

최은호 역시 짐작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스킬과 무빙을 과신했다.

다소 위험한 구역으로 접근하는가 싶더니 퍼블을 내주고 만다.

물론 시야를 잡는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항상 아군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쉽네요. 그래도 와드 박고 죽었으니까 괜찮아요.”

박 감독이 듣기에도 1킬을 내준 것과 비할 바 없는 하찮은 위로였다.

하지만 최은호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최은호는 여전히 고집이 있는 선수다.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계산, 자신만의 위치, 특정한 각이 있다고 믿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틀렸을 때 팀원들 앞에서 피드백을 하거나 혼을 내선 안되는

타입이었다.

‘은호가 주변 눈치를 많이 본다는 걸 아나.’

윤도형이 만약 저렇게 언질을 했는데도 들어가서 최은호가 죽었더라면 지금쯤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을 것이다.

“아! 유리했는데! 최은호 진짜! ..라고 할 뻔?”

얄밉게 한 번 최은호를 갈군 곽지운이 다시 게임에 집중한다.

다행히 곽지운의 공격만은 최은호에게 데미지가 전혀 없었다.

이 일로 잠시 바텀에 공백이 생겼다.

주도권을 잡을만한 조합으로 굴러버렸다.

하지만 권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말하자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FWX는 잔 실수가 없는 팀이 아니다.

그랬다면 벌써 서부권 자리를 차지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 팀 최고의 장점은 많이 넘어져봤기에 금방 일어날 줄도 안다는 것.

“다행이다.”

“네. 그러게요. 스크림하면서 하도 많이 겪어서 그런가.”

다시 보이스가 들린다.

“탑 쪽 볼게요. 바텀 조심. 은호형 침착하게 다시 이즈 봐줘요. 다이브 갈 수

있으니까.”

“오케이.”

태연하게 탑을 찔러 적 케낸의 스펠을 빼낸 권건이 라인 정리를 도왔다.

CS 한 톨 뺏어먹지 않고 서둘러 내려가려고 하자 문봉구가 따뜻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타워 골드 노나묵구 갈래?”

“바빠요.”

“허미, 섹시한 거.”

리그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잡은 문봉구의 그윈이었지만 제법 잘 해냈다.

숙련도가 높지는 않지만 상대 탑도 공격적이지 않은 스타일이었기에 큰 어려

움은 없어보인다.

“예성아, 아래쪽 주시하고 있어. 싸움 날 것 같아.”

“오케이.”

“조심해요, 바텀 타워 압박하러 갈거에요. 합류 중. 빅터르도 갈 듯. 지금 마

나 없어서 텔 타고 합류 할 거예요. 텔 뺄 수 있으면 빼요. 빨아들이면서.”

권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텀 방향으로 적이 쏠린다.

알고 당하는 다이브는 무섭지 않다.

“아, 호넷! 라인전이 답답했나요? 빠르게 라인전을 종결시키기 위해 바텀으로

이른 타이밍에 턴을 투자합니다! FWX도 합류 중!”

순식간에 싸움이 커졌다.

FWX가 바텀을 푸시해뒀기에 레드 진영 쪽에서 전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짝 집중한 최은호와 곽지운은 타이밍을 기다렸다.

해볼만하다고 생각한건지 상대 타워에 텔이 꽂힌다.

“빅터르는 집에 갔다가 텔을 타서 바로 합류했지만! 지금 아칼린은 일찌감치

출발해서 뛰어 내려왔거든요! 도착 직전!”

아칼린을 확인했지만 미련이 남은 듯 호넷의 친 짜오가 점멸과 함께 창 끝을

이즈에게 적중시키며 진입했다.

동시에 궁극기로 힘차게 토스를 시도한다.

하지만 상대는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롭게 양방향으로 뻗어나가 안전한 곳으

로 던져졌다.

“리싱이 합류해주며 뒤로 뺍니다! 더 이상 들어가는 건 무리겠어요.”

“피할 스킬은 피해주는 바텀 듀오의 움직임이 좋았죠?”

“아칼린은 벌써 발을 돌려 미드 라인으로 복귀하고 있어요. 손실없이 막아냅

니다, FWX! 아, 이러면 호넷은 가만히 누워있을걸, 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성공했어도 크게 이득 볼 게 없는 배팅인데요. FWX의 훌륭한 대응으로 손해

를 봤습니다.”

“방금 호넷의 궁극기와 스펠이 많이 투자됐어요. FWX에서도 스펠이 빠지긴 했

지만 이렇게되면 이득은 FWX가 본거라고 봐야겠는데요. 호넷은 전령 싸움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칼마 궁은 뺌

- 누워있기로 했으면 누워있어야지 싸움을 왜 걸어ㅡㅡ

- 초반에 퍼블 냈으니까 굴려야지ㅡㅡ

- 그런다고 바텀 구도가 변하는건아님

- 말라 죽기vs싸우다 죽기

- 킬은 안났는데요

- 겜알못이냐?

“아.. 엉덩이가 무거운 빅터르인데! 사실 빅터르 입장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

던 싸움일겁니다. 저도 저런 경험이 많죠.”

“뚜벅이 미드로서는 불편한 상황이네요. 그 틈에 용을 챙긴 FWX가 여유롭게

귀환합니다!”

“퍼블은 호넷이 먹었지만 글로벌 골드는 FWX가 앞서나가는군요?”

“네, 아무래도 탑 쪽에서도 채굴을 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이 굴러가

고 있어요. 여기서 FWX가 전령을 먹을 것도 기정사실인데, 그럼 또 게임은 점

점 더 빠르게..”

킬이 많이 나오지 않는 잠잠한 게임이었다.

대신 해설진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중계했다.

“이게 우리가 자주 보던 일종의 동부 리그, 그러니까 하위권 팀들의 경기라고

불리는 경기들과 양상이 다르거든요? 실수가 나오긴 했지만 지금까지 운영이

아주 깔끔해요.”

“FWX의 초반 실수가 오히려 호넷에게 독이 됐죠. 혹시 스노우볼을 굴려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든거에요. 그냥 누워있었어야했는데!”

“지금 FWX는 조조의 식객으로 머무는 유비처럼 힘을 기르고 있는겁니다. 밭도

가꾸고, 천둥 소리에 놀라는 연기도 하면서! 우리도 잠깐 같이 누울까? 휴전

할까? 이러는 것 같은데, 근데 진짜 소모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하하, 맞습니다. 슬쩍 같이 엎드려서 이것 저것 털어먹고 있죠.”

“지금도 계속해서 체급이 올라가고 있어요. 권건 선수가 카정보다는 아군 뒤

를 봐주는 쪽에 힘을 많이 쏟고 있죠! 특히 미드 쪽을 중심으로 계속 탑 쪽으

로 페이크 동선을 짜주면서 케낸과 짜오의 신경을 긁는 부분이.. 아?”

“아, 퍼즈가 걸렸군요.”

“지금.. 아, 그러니까 호넷의 원딜러인 헤인즈 선수의 장비에 이슈가 생긴 모

양입니다.”

“그렇군요, 금방 해결될 것으로 보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오.

오늘은 저녁 시간대라서 그런가요. 팬 분들께서 많이 오셨네요.”

“네. 아무래도 오랜만에 있는 FWX의 황금 시간대에다가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

시는 동방 라이벌 더비 아닙니까?”

“받고 있는 관심만큼이나 팬들의 응원도 뜨겁습니다!”

퍼즈 시간 동안 화면에 잡힌 팬들은 열정적으로 응원 피켓을 흔들고 있었다.

“오, 와. ‘#FWX WIN, 너만 믿는다.’”

“‘권건 슈퍼 플레이 볼 때마다 이마를 쳤더니 거북목이 나았습니다’..호재로

군요?”

“요즘들어 여성 팬분들의 숫자도 많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림을 그려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게 다 정성이죠. 선수들도 기뻐할겁니

다. 이게 행복이고, 문화죠.”

잠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벼운 이슈가 해결되고, 심판진에서 콜이 떨어졌다.

다시 경기가 재개됐다.

“아, 지금 막 경기가 재개됐습니다.”

“네, 바로 전령을 챙기러 가는 FWX인데요. 그대로 내주나요, 호넷?”

“내 줄 수밖에 없겠죠. 아쉬울 겁니다. 조금 더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

났어요. 케낸은 궁이 남아있지만 지금 짜오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하지만 뒤에서 전령을 지켜보던 호넷은 탑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눈 앞에서 전령을 내주고 난 설움을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그리고 그 옆에는 과감하게 반 라인을 버려가며 귀환을 연기한 김예성의 아칼

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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