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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 그만두고 싶습니다-132화 (133/326)

132화. 최종 병기 그녀

- (STM) 아직도 LKL을 봄?

터질.. 시발.. 터질.. 시발.. 안볼란다..

ㄴ 여기도 터진 사람 있어요..

ㄴㄴ 개 같네 스톰 이길 때까지 숨 참는다던 새낀 어디 갔냐?

ㄴㄴ (사망) ㅇ<-<

ㄴ 이제 말하기도 지친다 도대체 왜 멀쩡한 팀원들로 저렇게 꼬라박아?

ㄴㄴ 탑은 LKL 무력 최강이고 미드는 로열 로더에 피지컬 좋고 원딜은 보살 멘탈에 서포터는 존나 귀염막둥이인데

ㄴㄴ 평행 세계의 FWX냐?

ㄴㄴ 너넨 서폿이 귀염둥이가 아니잖아

ㄴㄴ 폴리 존나 귀여운데

ㄴㄴ 그 피지컬로 ㅆ 할많하않

ㄴㄴ 클래스 돌아올 거라고!!!! 정실 자리는 클래스라고!!!

ㄴ 스톰 정글도 잘함 매드 무비 존나 많이 뽑음

ㄴㄴ 아직도 붐보이 편드는 새기가?

ㄴㄴ 붐보이는 잘못한 거 없는데? 합류 지표도 좋고 적 진영 침투율도 높은데?

ㄴㄴ 지표의 함정 모르냐? 와드도 안 박고 돌아다니는 거잖아

ㄴㄴ 아직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어 씨바

ㄴㄴ 경기를 직접 보면 알게 됨 책상머리 지표도르들아

ㄴㄴ 붐보이 잘한다니까?? 감코진이 문제라니까??

ㄴ 뭐가 문제임 대체? 팀웍?

ㄴㄴ 아닌 것 같은데? 붐보이도 다른 애들이랑 맨날 어깨동무하고 있잖아

ㄴㄴ 야 그거 아니냐? 웃어라 개1새야 카메라 앞이다ㅋㅋ

ㄴㄴ 어차피 다 돈 때문에 하는 건데 뭐ㅋㅋㅋㅋ

ㄴㄴ 각설이 서커스단이야? 그냥 이기라고

#

지난 시즌의 스톰 전.

상대는 강했고.

우리는 약했다.

하지만 FWX는 예티처럼 그들을 붙잡고 늘어졌고.

보여주고야 말았다.

이번 시즌, 상황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잠시 주춤했을지언정 이미 발돋움을 한 상태고.

최악의 세대를 맞은 스톰은 오만한 모습을 잃었다.

집도 절도 잃고 동부를 떠도는 한 마리의 승냥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플레이에서 우리를 긁어버리고야 만 스톰.

“건아. 미드는 안 와도 돼.”

“웬열? 그럼 탑 와주라.”

“탑, 혼자서는 이길 자신이 없나 보지? 글로리 선수가 무력 최강이긴 해.”

1세트의 이유찬은 라인전에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탑 글로리를 상대로 초반에는 밀리는 기색이었지만.

“생각해보니까 나 상대 탑이랑 약속 있었음. 안 와도 됨. 바텀 가셈.”

“글쎄. 일단 밴픽 마치고 오더할게.”

“체크.”

상대 정글이 바텀 주변만 맴돌면서 자연스럽게 탑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당연한 일이다.

전략을 넘어 비정상적인 플레이에 가까웠으니까.

“FWX가 레드 진영입니다!”

“아하. 스톰에서는 졔리를 가져갑니다. 스톰이 오늘 바텀에 힘을 주는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받아먹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픽이죠.”

“네, 지나치게.. 기울어진 모습은 좀 그렇지만요. 이번에는 괜찮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FWX에서는 아라와 판테언을 가져갑니다. 폴리 선수의 판테언 사랑이 대단한데요!”

- 라인전만 마치면 판테언 서폿 괜찮긴 하더라

- “라인전만 마치면”

- ㅋㅋㅋ 서폿 판테언 원툴ㅋㅋ 왜 밴 안 함?

- 어차피 라인전에서 세자 고생시켜주는 픽인데 굳이 밴 할 이유가?ㅋㅋ

- 그럴 바에 리싱 두 번 밴 해ㅋ

- 요새 라온 아라 물올랐더라

- 사실 여우라는 소문이 있음

- ㄹㅇ 불여우

- 말하는 게 독이 바짝 올라가지고 아주??

- 뭐야 시발 내 새끼사슴 돌려줘요

최근 아라로 좋은 라인전부터 메이킹까지 보여주는 김예성.

“나는 있잖아.”

그리고 그 이미지에 더해.

스톰과의 트래쉬 토크로 확실히 ‘불여우’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저런 식으로 플레이하는 걸 정말 싫어해..”

김예성은 완벽주의자.

그리고 플레이 중에도 신경을 적절하게 분산시키는 시야의 마술사다.

전 세트에도 바텀 라인을 많이 주시한 만큼, 분노의 불길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건아. 부탁해.”

“그래.”

밴픽은 계속된다.

1페이즈를 스톰이 졔리와 냐르, 탈리야로 마무리하고.

우리는 아라와 판테언, 시비루를 가져간다.

“이제 또다시 픽의 순간입니다. FWX에서 레넥튼을 올려둡니다. 참 좋은 탑 챔피언인데요, 사실 손을 조금 탑니다. 특히 냐르를 상대로는요.”

“차니 선수가 리그에서 보여주는 건 처음이죠? 지난 1세트에서 자신감을 얻은 모양이에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 정말 세자 선수의 시그니처 픽이 되어가는 시비루가 나왔어요.”

그리고 미리 짜왔던 대로.

이유찬의 선택.

“짐작 못하는 것 같지?”

“그럴 것 같네요.”

밴픽이라는 건 카드 게임이다.

이런 표현이 자극적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뒤통수를 잘 때리는 놈이 승리하는 게임.

비언어적인 표현이라는 게 있다.

대화할 때, 우리는 반드시 상대의 말에 담긴 정보만 파악하지 않는다.

이유찬이 머리를 벅벅 긁는 것은 머쓱함.

김예성이 나에게 보내는 맑은 눈빛은 강력한 신뢰.

곽지운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말하는 것은 난처함.

윤도형이 좀 더 손을 많이 흔들며 말하는 것은 분노.

그러니까, 제스쳐.

여기서 우리는 더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 외에는 반언어적 표현이라는 게 있다.

이건 대화에서 대화의 속도나 고저, 어조 등을 말한다.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대화에서는 표현하기 쉽지 않은 부분인데.

“지운아.”

“네, 감독님.”

굳이 따지자면.

다음 채팅이 올라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ㅋ’의 개수나 물음표의 개수 등이 채팅에서의 반언어적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밴픽에서 그것을 다룬다.

픽이 이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

“계속 끌다가 1초에 락인하자.”

“좋습니다.”

우리는 바로 픽을 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시간을 조금 즐긴다.

이유찬의 첫 픽인 레넥튼이 과연 최고의 탑솔러 글로리의 냐르를 상대로 가능한지 토의하는 것처럼.

혹은 다음 픽을 정하지 못한 것처럼.

이처럼 밴픽이란 숨겨진 재미가 있는 싸움이다.

괜히 심리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거든.

“락인 됐습니다! 차니 선수의 레넥 출격!”

상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패를 가지고 있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입에는 꿀을 바르고 속으로는 칼을 가는 사람처럼 연기를 한다.

상대가 우리가 정해놓은 함정으로 파고드는 순간을 노린다.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경기하는 육체 스포츠도.

상대가 마주 앉아 수를 두거나 카드를 드로우하는 종류의 마인드 스포츠도 아니다.

“스톰은 이어서.. 정글 트런둘입니다! 정글은 상대 탑이 레넥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트런둘을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 탈리야는 미드로 확정됩니다!”

걸려들었다.

“네. 킹 선수가 제법 탈리야에 깊은 이해도를 가진 선수거든요. 살짝 들어간 심리전이 꽤 인상적이네요, 스톰.”

“그리고 스톰이 레나타까지 가져가면서 마무리합니다!”

온라인이기에.

어쩌면 조금은 특별하고.

“이제 FWX는 정글이 남았죠!”

여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팀’ 단위의 연기.

“후후..”

윤도형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됐다는 것처럼 비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기에서 표정 연기를 빼놓을 수 없지만.

어차피 지금은 상대에게 우리의 표정이 전해지지 않는다.

굳이 연기를 한다면 감코진만 주의하면 된다.

“흐음. 이런..”

스톰은 탑 냐르를 홀로 두고, 미드 탈리야가 서브정글인 것 마냥 돌아다닐 생각이며.

또다시 바텀에서 윤도형의 판테언을 트런둘로 압박할 생각으로 보인다.

이건 우리가 코칭 박스에서 했던 모든 예상과 일치했다.

우리는 정확한 예측을 했고, 상대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은 인게임에서 큰 차이를 불러온다.

전략을 함께 짤 수 있는 인원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니까.

“이것 참. 정말 큰일이네.”

박 감독님은 당황한 사람처럼 메소드 연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감독님, 왜요?”

“쟤들. 스톰. 진짜. 큰일 났네.”

아.

그냥 밴픽을 지배해서 만족하셨구나.

“후후.. 리그에서 비밀 무기를 꺼낼 날이 올 줄이야.”

“그래. 도형아! 가즈아아아, 도형아!”

노련한 삼십 대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박 감독님이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

“가자잇! 내 최종 병기 그녀!”

윤도형은 그전까지 마치 정글을 고를 것처럼 비예고를 띄워놨던 픽 창을.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

“허허.”

“이건! 감쪽같이 속았는데요. 오늘 좌판 접습니다. 예! 손님들, 돌아가세요!”

해설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FWX의 판테언.

반복되어 서폿으로 사용된 챔피언.

그리고 오늘의 변주, 정글 판테언.

“언젠가는 스왑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나온다면 탑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네. 차니 선수가 개성이 강하니까요. 뭐, 지금은 사용하기 어렵지만 미드에서도 종종 판테언이 기용됐던 적이 있고요.”

“그런데 탑에서 쓰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킨 다음에 정글로 돌려버린다? 이거. 이렇게 되니까 꽤 재밌어졌어요!”

완성된 결과 자체가 순간적으로는 흥미롭지 않더라도.

리그는 한 판의 랜덤 게임이 아닌 역사를 쌓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어쩌면 저는, 이렇게 되면 FWX가 미드 레넥까지도 기용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폴리 선수가 언제까지 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글쎄요, 탑인 척했던 레넥은 미드로 가고. 서폿인 척 했던 판테언은 탑으로 가고. 그리고 몰가 같은 걸 뽑아서 정글로 돌려버리고.. 모두 다 가능한 이야기잖아요!”

LKL에는 ‘돗자리를 깔아야겠다’는 밈이 있다.

처음에는 특정 팀이 준비해온 비밀 무기를 해설진이 맞췄을 때 사용되던 표현이다.

물론 정말로 점을 쳐서 맞춘 건 아니다.

그들 역시 LOS의 해설과 분석이 직업이니만큼 훨씬 더 깊은 메타 분석을 거치고, 연습 데이터 등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를 긁어모아 연구해오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밈에 익숙해진 착한 시청자들은 다음에 나올 픽을 맞추기만 해도 해설진에게 박수를 보내곤 했다.

“뭐랄까, 유럽 메타를 보는 것 같아요. 그 특유의 냄새?”

“맞습니다. 항상 독을 푸는 건 유럽이죠. 결국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은 1황, 2황이지만.”

“근데 FWX는 몇몇 픽으로 이번 메타의 유럽은 뛰어넘었잖아요!”

가벼운 웃음과 함께 해설자들이 마이크를 꽉 붙잡는다.

사실 여기에는 좀 더 디테일이 있다.

해설자 입장에서 선수의 다음 픽을 예측하고 그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긴 하다.

시청자들의 호응도 기쁘다.

그런데 그게 항상 맞아떨어지는 건 재미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메타가 정형화되고 있고.

예상을 깨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되면 보고 싶지 않았던 미래까지 엿보는 게 가능해진다.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업무 만족도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내가 밴픽을 하고 있는 감코진이 아니라면, 여기 앉아서 해설을 하는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재밌는 건 폴리 선수의 루루예요!”

“저도 동의합니다.”

“사실 폴리 선수가 라인전 단계에서 서포터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냐? 그러면 여기에 자신 있게 손드실 분들은 얼마 안 될 거거든요. 그쵸?”

“인정.”

“근데 이건 스왑을 하기 위해 루루를 한 건지. 아니면 준비된 카드였는지.. 후.”

그럼 다음에는 이렇게.

그다음에는 또 이렇게.

오랫동안 멈춰왔던 상상력에 FWX가 불을 당길 때마다.

뇌세포에서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음.. 글쎄요..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이 있는데요, 자기를 닮은 챔피언을 잘하는 건지 잘하는 챔피언을 닮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아, 그래서 해설님이..”

“...”

- 이리 와.. 안아 줄게..

- 초식형 해설ㅋㅋㅋ

- 아무리 그래도 루루랑 윤도형이 닮은 구석이 어딨어ㅋㅋㅋ

- “폴리, 루루는 못할 거다” 논란ㅋㅋㅋㅋㅋㅋ

- 국가 대표급 윤도형

- ?

- (유도)

- 편-안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로 예측해볼 수 있어요!”

핏대를 세운다.

“첫째, 잘해서 뽑았다. 그럼 좋아요! 둘째, 못하지만 정글 믿고 뽑았다!”

“그렇죠. 둘 다 가능합니다. 이미 첫 번째 세트를 승리로 가져갔으니까요.”

“근데. 이게 다 가능한 건. 권건 선수가 판테언 정글이라는 카드를 사용할 수 있냐. 아니, 사용하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픽은 세살짜리 아이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 게임은 12세 이용가이긴 합니다마는.”

“어쨌든 말입니다! 과연 권건 선수가 이 게임의 포인트를 잘 짚을 수 있을까요? 판테언이 자주 나오는 정글이라고 말하기에는 정말 무리가 있는 챔피언이에요.”

“글쎄요! 저는 왠지 즐거운 상상이 듭니다. 이 선수. 정말 여태까지 상당히 넓은 챔피언을 보여주고 있는데.. 항상 그 챔피언이 그 조합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더라구요!”

“그래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뭔가요?”

“전적 검색 사이트 같은 데에서 프로 동선이나 아이템, 시간에 따른 성장 기준 같은 게 제공이 되잖아요.”

“아. 네. 아,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알 것 같은데요.”

“권건의 플레이는 참고할 게 없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확실히. 저 선수, 항상 조합에 따라서 완벽한 핏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솔랭이나 다른 조합에서 적용하기가 쉽지가 않고, 또 작은 특성 하나하나가 미리 교전 상황을 그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가져다 쓰기가 너어어어무 어려워요! 그리고 내 손이 권건이 아니잖아요!”

- 형.. 왜 갑자기.. 모두 함께 자폭을?

- 너두? 나두..

- 어떻게 보면 모든 프로게이머와 우리는 같은 입장?

- 유토피아의 황제.. 그는 갓건..

- 아ㅋㅋㅋㅋ 씨ㅋㅋㅋㅋㅋ

해설자로서 특정 팀의 편을 들지 않고 항상 중도를 지키려고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새로움을 불어넣어 주는 팀을 만나는 것.

그것이 삶을 즐겁게 한다.

“그러니까 오늘도.. 글쎄요. 제 생각에는 FWX 팬분들은 오늘도 발 뻗고 자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벌써부터 그런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해설진, 그리고 캐스터마저도.

오늘 칼퇴근과 함께 발을 쭉 뻗고 잘 밤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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