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베테랑과 신예
- 봉구 형 : 건이
- 봉구 형 : 반갑고
- 나 : ?
문봉구가 톡을 보내온다.
- 봉구 형 : 방송 좀 치던데
- 봉구 형 : 많은 어드바이스 부탁한다잉
- 봉구 형 : 느낌 알지
- 나 : 도형이 형이 아니라요?
- 봉구 형 : 도형이 형은 뭐
- 봉구 형 : 그냥 전투 인형 같은 거지
- 봉구 형 : 내가 느낌이 딱 왔는데 니가 프로듀싱한 것 같은데
문봉구는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
전부터 그랬다.
부족한 피지컬 대신 눈치, 분석력이 없었다면 여기서 버텨내지 못했을 테니까.
이제 문봉구는 퓨처스 리그에서도 주전으로 뛰지 않는다.
대신 준 플레잉 코치 느낌.
FL 감코진은 양태진 감독님과 구태양 코치님, 두 사람으로 구성되어있기에.
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나 : 알겠어요
- 봉구 형 : 진짜?
- 나 : 이번 시즌 끝나면요
- 봉구 형 : 그럼 나 은퇴인데~
- 나 : 어차피 만날 거잖아요
- 봉구 형 : 우찌 알았지ㅋㅋㅋㅋㅋㅋ 야ㅋㅋㅋ 귀신이네ㅋㅋㅋㅋ
문봉구가 스트리머 계약을 할 것이라는 건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많은 선수가 그렇게 하거든.
특히 문봉구는 트로트, 아재 감성, 정신 승리, 보살, 형님단, 걸그룹 덕질 등 훌륭한 키워드를 많이 갖춘 스트리머 재원이다.
아마 잘 될 거다.
FWX가 성적을 잘 낼수록 더욱.
- 봉구 형 : 근데
- 봉구 형 : 다음 대진 미라쥬 아녀?
- 나 : 네
- 봉구 형 : 거 서포터가 너 이긴다 어쩐다 하지 않았나
- 봉구 형 : 왜 그랬대..
왕지우가 방송에서 신나게 떠들어댄 내용은 이미 소문이 났다.
아마 나와 인사를 나눈 게 좋아서일거라고는 생각하는데.
뭐?
정글 할애비가 와도 서포터 포지션은 힘들다?
자기가 이번 시즌 최고의 서포터이며, 서폿 챔피언은 그야말로 불가침 성역?
내가 판테언을 한 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해?
뭐, 반대로 판테언 쪽이 불법 서포터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건 미라쥬 팬들이 신나게 퍼 나른 덕이다.
각 팀의 팬들은 팀의 성향처럼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진다.
결국 방송부터 시작해서 팀의 인터뷰 매너, 콘텐츠, 운영 방향에 따라 팬 성향도 어느 정도 갈리기 마련이거든.
예를 들어 명문에 가까운 트릭스터나 유니버스의 팬덤은 크기가 거대한 만큼 이상한 사람도 섞여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미라쥬는 좀 더 난폭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거친 선수들, 그리고 훌리건 같은 팬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팀의 축구 팬처럼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온라인상에서의 폭력도 폭력이다.
시청자 하나하나가 유치한 잼민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집단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성격도 있는 법이거든.
그래서 팀도 기를 쓰고 좋은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고 노력한다.
기존 FWX의 팬은 사실 알짜배기만 남은 태초 마을 수준이라 뭐.
잘 되어가고 있다.
이래서 말조심, 방송 조심.
- 나 : 글쎄요. 제가 서포터로 정글링을 하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르죠.
- 봉구 형 : 되나? 유마 정글 진짜로 가나?
- 나 : 그건 좀
- 봉구 형 : ㅋㅋㅋㅋ 맞지? 이건 선 넘었지
- 봉구 형 : 마오는? 이건 좀 가능하지 않나
유행은 돌고 도는 거라지만 지금 메타는 아니다.
- 나 : 감사합니다
- 봉구 형 : 몰가는. 아 그챠 고만 말할게.
역시 눈치가 빠르다.
- 봉구 형 : 근데 그 뭐냐 그 미라쥬
- 봉구 형 : 거 그 행님 있지 않나? 머 최강의 방패 싸..싸..싸우르스인지 먼지
인제야 본론이 나온다.
- 나 : 사우전드 선수?
- 봉구 형 : 맞지ㅎ 큰일 났네 그 행님ㅎ
- 나 : 친해졌어요?
- 봉구 형 : 어 그냥 머ㅋㅋ 쫌ㅋㅋ
- 봉구 형 : 그 햄 완전 시발데레던데
- 나 : 도형이 형보다요?
- 봉구 형 : 그 형은 속 빈 강정 아녀? 시발은 없고 기냥 착각계여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충분히 알겠다.
- 봉구 형 : 근데 싸우르스 햄이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든데ㅋㅋㅋㅋ
- 봉구 형 : 늙은 몸 끌고 왔다고 생색 오지게 내드라
- 봉구 형 : 머 우째 받아줬지 머ㅋㅋㅋㅋ
미라쥬의 탑 김진승.
김진승은 문봉구를 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뭐, 김진승이 문봉구에게 사과한 것이.
진짜로 문봉구의 마지막 모습에 감탄했던 것인지, 아니면 미라쥬가 FWX와 척지기 싫어서 그런 것일지는 모른다.
아마 이 사실은 문봉구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 봉구 형 : 다 상관없다ㅋㅋㅋ
- 봉구 형 : 어차피 내가 다 발랏자너ㅋㅋㅋ
- 봉구 형 : 마지막에 이긴 놈이 더 쎈 거 아니여?
- 봉구 형 : 이제 그 행님은 나랑 리그에서 못 만난다ㅋㅋㅋㅋㅋ
- 봉구 형 : 억울하면 현피 뜨겠지ㅉㅉㅉㅉㅉ
현피?
두 사람은 액상 과당을 섭취하며 게임만 했을 것 같은 체형을 가지고 있다.
피지컬이 뛰어난 타입은 아니기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것 같다.
- 봉구 형 : 근데 모
- 봉구 형 : 쫌 더 기죽여놔도 머.. 이번에는 꼭ㅎ
- 봉구 형 : 형은ㅎ 기다리고ㅎ 있을게ㅎ 좋은ㅎ 소식을ㅎ
그리고 연달아 치킨 교환권이 도착한다.
일단.
보살 계열 문봉구도 결국 ‘탑’이라는 건 잘 알겠다.
#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어느덧 2025 LKL 서머 두 번째 라운드. 7주차 경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LKL이 진행되는 LOS 파크에도 황금 시간대가 있다.
“오늘 두 번째 경기는 광주 미라쥬 대 대전 FWX, 대전 FWX 대 광주 미라쥬의 경기입니다.”
오후 5시 경기와 오후 8시 경기.
앞 경기의 지연에 따라 두 번째 경기가 밀리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두 번째 경기를 선호하는 팀도 많았다.
“조금 전 경기에서는 울산 피닉스가 수원 해머스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쳐내면서, 올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챙겨갔습니다.”
그 이유는 활동 시간이 늦은 편인 게이머들의 특징에도 있었고.
- 테러 덩치 진짜 크네? 근데 그거 암? 폴리가 상완근 더 큼
- 땀과 근육은 배반하지 않는다
- 미라쥬, “탑의 황제 문봉구”를 떠올려라
일과를 마치거나 퇴근한 팬들에게도 경기를 관람하기 좋은 시간대이기에 그렇다.
수많은 치어풀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 경기 한 경기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기다.
1년의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이때, 상대적으로 예매 경쟁률도 올라간다.
게다가 두 팀의 대결은 말할 것도 없는 매치 오브 더 위크.
“9위와 10위의 대결이었죠. 반대로 지금은! 2위와 3위의 경기입니다. 과거는 잊어달라! FWX가 현재 2위를 달리고 있어요. FWX는 트릭스터에게 매치를 내줬지만 F.L.E를 상대로는 승리를 챙기면서, 이번 경기까지 승리하게 되면 P.O 진출은 확정됩니다!”
“몇 년 만의 플옵이냐아아아악!”
“혹한기! 훈련! 돌입!”
어디선가 거대한 고함이 들려온다.
“하하. 그리고 광주 미라쥬는 선발전 확정이 코 앞입니다만, 최종적으로 3위 이내의 순위에 들어 선발전 없이 월챔 출전권을 바로 획득하는 것이 목표겠죠.”
“미라쥬! 능지처참해버려!”
“효수! 효수! 효수!”
“워! 워! 워!”
- 오늘 분위기 왤캐 남탕이냐ㅋㅋㅋ 여기 무슨 전쟁터냐?
- 현대식 vs 고대식
- 목소리 존나 크네 윤도형인줄
- 미폭도들만 모였나봄ㅋㅋㅋㅋ
- 근데 은근 미라쥬가 FWX 라이벌 아님? 전적 1승 1패
- ㅋ 미라쥬가 찢어발기지 체급 봐라ㅇㅇ
- 너 혹시 동천동 공식 미빠 멸치 박성준이냐?
- 아닌데;;
- 존나 맞는 것 같은데ㅋㅋㅋ
- 성준아 머해? 성준아 머해? 성준아 머해?
- 엄마가 부르신다~ 어서 나가봐라ㅋㅋㅋ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1위인 트릭스터가 득실 차를 크게 벌리지 못하고 있는데. LKL에 여전히 1황은 없다, 그런 개념이거든요!”
“그렇습니다! 대영웅의 시대는 언제쯤 올까요? 오늘 두 팀의 경기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지!”
이 경기가 끝나면 사실상 정규 시즌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이번에는 다르다.
1세트 서포터는 윤도형이지만, FWX는 이 경기를 반드시 이길 각오를 하고 나왔다.
미라쥬 선수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들의 무시무시한 시선에 김예성과 곽지운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이 모습을 보던 권건은 양 눈에 힘을 주고 상대를 노려봤다.
윤도형 역시 마찬가지다.
“워, 시벌, 오늘 느낌 쎄한데.”
“니가 쟤보다 먼저 눈 깜빡였냐?”
“눈에 먼지 들어가서.”
테크 체크를 마친 미라쥬 선수들은 잡담을 나눴다.
“저, 저, 어린놈이 버르장머리 없이. 눈도 안 깔고.”
“이래서 요즘 애들은..”
요즘 애들이라고 말할 만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라쥬는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다.
오늘의 평균 연령은 24세에 가깝다.
다소 드문 편이긴 해도.
프로 선수 중 이십 대 중반의 선수도 있다.
퓨처스 리그에서 스물여덟의 나이로 활동했던 군필 프로게이머도 있다.
사실 올해의 미라쥬와 그 팬들은 선수들의 연령을 보자마자 스토브 리그 실패라고 판단했지만 결과가 좋자 평가가 달라졌다.
지금의 평가는 베테랑 팀.
사회적으로 이십 대 초반과 중반은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짧은 만큼 리그에서 1년은 밀도가 다르다.
아주 재치 있는 플레이나 뇌지컬,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팀은 아니지만.
오랜 경험으로 완성된 육감이 뛰어나고 어떻게 해야 상대를 물어뜯을 수 있는지 잘 아는 상어떼.
미라쥬.
“아, 이거 근데 왜 쟤 화난 표정 같냐.”
그중 막내이긴 하지만 곽지운과 동갑인 정글러 이인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지 모를 불안감이 몸을 감싼다.
“뭐 보고 그러냐?”
“권건.”
“쟤 표정 맨날 무표정한데? 팬 보고만 웃는 새끼 아니냐?”
“아니야. 눈썹 각도가 달라.”
“니도 최정인처럼 변해가는 거임?”
“정인이 형은 그냥 권미새고.”
이미 선수들 사이에서 권건을 쫓아다니기로 유명한 유니버스 탑 최정인.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감동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누 최정인은 멀쩡하게 생긴 것 치고는 좀 많이 이상한 사람이다.
바로 다음 대진이 유니버스인데.
왠지 FWX를 이기면 복수하겠다고.
FWX에게 지면 자기들도 질 수 없다고, 유니버스가 기를 쓰고 달려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지? 시벌.”
“아, 너 모르는구나? 거북이 폼인가 보네.”
“내가 뭘 모르는데?”
“그런 게 있어.”
원딜 박화준은 피식 웃었다.
우리 정글은 서포터 왕지우의 발언이 화제된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인터넷을 최대한 줄이는 선수들도 있으니까.
근데 뭐, 정말 권건이 고작 그것 때문에 화난 표정을 지었다고?
그런 것까지는 너무 넘겨짚는 거겠지만.
“뭐냐고.”
“이이잉.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지랄하고 있네.”
물론 나이가 많다는 것이 철이 들었다는 뜻은 아니기에.
선수들은 다 같이 실실 웃으며 이인혁을 놀렸다.
아직 FWX와 눈싸움에 졌다느니, 표정이 어떻다느니 하는 건 느낌에 불과하다.
“밴픽이 완료되었습니다!”
밴픽은 무탈하게 진행됐고.
“이번 밴픽은 특별한 점 없이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으로 진행됐습니다.”
블루 진영의 미라쥬와 레드 진영의 FWX.
미라쥬는 하체에 힘을 주기보다는 상체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처음 윤도형이 서포터로 출전했을 당시 운 좋게 매치 승을 가져간 미라쥬지만, 그때도 위협은 받았었다.
최근의 FWX의 스타일은 하체에 함정을 파두는 것.
그런 머리싸움은 미라쥬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체는 밴으로 위기를 감소시키고.
상체와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것이 낫다.
“요즘 뜨고 있는 시비루나 졔리를 모두 밴했고, FWX 탑 차니 선수 쪽을 제법 의식하는 모양이었죠. 누가 뭐래도 최고의 방패라고 불리는 미라쥬의 사우전드 선수에게 그라가즈를 주며 버티는 힘을 올립니다. 이 선수는! 방패로 때리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슬슬 최은호가 출전하고 있는 흐름으로 보아, 다음 세트에는 서포터가 바뀔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은 하체를 아낄 타이밍이라는 판단이다.
“그에 맞서는 차니 선수는 레넥, 지난번에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정글은 미라쥬에서 리싱을 뺏어가고, 권건 선수가 비예고를 듭니다.”
“미드는 사일과 랴이즈의 대결인데요. 라온 선수의 랴이즈가 상대를 잘 억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라쥬의 바텀은 징크시와 탐치. FWX는 아펠 유마 조합!”
“판테언과 루루가 밴이거든요! 폴리 선수, 이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정규 라이너가 아닌데 밴을 먹다뇨!”
- 그냥 권건이 정글 빨리 가져가서 그런 거 아님?
- 판테언은 스왑 가능성 닫은거고
- 쉿 조용히 해 좋아하게 냅둬
- 폴리는 저 체급으로 유마가 말이 되냐?
- 그러게ㅋㅋㅋㅋㅋ 다들 좀 챔피언이랑 닮았네..
“하하, 아무튼 두 팀 모두 한타를 바라보는 조합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미라쥬 쪽이 좀 더 변수 창출 면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고, 아무래도 FWX에 CC가 부족하거든요. 집중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경기 시작을 위해 방송에 연출 화면이 나가는 동안.
선수들은 여느 게임과 다를 바 없는 LOS 로딩 화면을 보게 된다.
“미친 윤도형?”
“형. 유마를 왜 건이한테 스왑을 걸어? 버그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아니 순간적으로..”
“비예고 서폿? 너 신고할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면 진짜 니가 정글 가려고 했냐?”
다만, FWX는 보이스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그 서포터.. 미라쥬 서포터가 한 말 그거 생각하다가.. 아니 그리고 내 주포가 정글이니까.. 순간적으로 헷갈려가지고..”
윤도형이 권건에게 유마로 스왑을 요청한 것.
물론 권건은 거절을 눌렀지만.
중요한 시험을 앞둔 사람은 펜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이거 완전 미라쥬 첩자 아니야 이거? 최은호 불러온다?”
“제발 진짜 그건 안돼. 최은호 존나 엄마 같단 말이야.”
“패드립?”
“아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너네 엄마 아니고!”
“너네. 엄마? 너 신고.”
아까까지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미라쥬를 위협하던 윤도형은.
오늘도 팀원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