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망한 라인에 가지 마라
[ FWX의 2세트 승리.. 승부 원점으로 ]
[ 곽지운(seZa) 과거 인터뷰 조명, “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설혹 그것이 애니비야라도..” ]
[ ‘상상 속의 픽밴’, 400여일 만에 현실로 ]
[ 언제든지 어떤 역할이든 수행할 준비가 된 베테랑 원딜 ]
[ 총을 다루던 원딜이 검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
[ 출격, FWX의 “결승 무대” 새 전략, 새 카드! ]
[ LKL의 왕좌는 누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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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직후.
양 팀은 빠른 속도로 얼개를 짰다.
“레퍼런스 체크 간다. 탑 우위.”
“정글 방심 금물. 자력 압박 어려움.”
“미드 초반 우위. 중후반 변수 주의.”
“바텀 스펠 우위, 3레벨 이후 최우선 압박 부탁.”
트릭스터는 모두발언 시간을 가진다.
“일단 지운이 형 성격상.”
전 세트가 끝나자마자 받은 피드백 중 하나는 ‘바텀 주의’.
“야쓰오랑 그렇게 잘 맞지는 않아.”
“동의.”
“데이터 봤지. 수비적이거든. 라인전에서 적당히 딜교하다가 한타 볼 가능성이 있어.”
“음.”
FWX는 큰 경기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그래서 빅스와의 일전이 FWX 이번 세대 선수들의 ‘큰 경기’ 데이터.
트릭스터는 앞서 보여준 대로 강점인 탑과 미드를 중심으로 한 상체 게임을 준비해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2세트부터 방향이 급변했다.
정글 성장.
그리고 바텀 밀어주기.
그렇게 천천히 상체에서부터 내려온 닻은 바텀에 다다랐다.
이번 세트 야쓰오는 상상치도 못한 픽이었다.
실력이 비슷하거나 우위라고 평가받는 파일럿의 원거리 챔피언을 상대로, 근거리를 한다는 건.
부숴놓거나 부서지겠다는 뜻이니까.
“나쁘지 않아. 괜찮아. 바텀은 한번 잡으면, 영원히 우리가 이겨. 오미래 야쓰오처럼 070 만들어버려.”
“내 이름이 거기서 왜 나와? 미드 야쓰오랑 바텀 야쓰오가 같아?”
“하긴. 바텀 야쓰오가 더 힘들지.”
“아, 진짜. 고수호 너 못하면 뒤진다.”
“낄낄.”
“조용. 방심하지 마.”
탑 이상하가 한마디를 얹자 선수들이 다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민찬이 형. 기죽이고 시작하자.”
오랜만에 좋아하는 픽을 잡은 원딜 고수호가 눈을 빛냈다.
[왕자님 모임] 채팅방의 방장, 곽지운을 혼쭐 내 줄 좋은 기회다.
원딜도 한타에서 킬을 먹는 것보다 라인 솔킬을 내는 쪽을 선호한다.
라인 손실을 극대화할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으니까.
“확인.”
물론 ‘바텀 주의’라고 해서 FWX에게 겁을 먹고 해야 할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것은 안 될 말.
트릭스터에게 필요한 건 승리니까.
하지만 트릭스터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
“얘들아.”
곽지운은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희는 내가 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트릭스터 중 일부는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먼 과거.
데뷔 시즌, 으라차차 원딜 차력 쇼로 팀을 4위까지 올렸던 곽지운은 큰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타입이었고.
“수호의 트윗치.. 사지를 조각내서 물고기 밥으로 줘야겠다. 바텀에 아무도 오지 마! 우리 둘만의 싸움이다!”
“깍지야, 미안한데 바텀은 넷이야!”
최은호 역시.
관심을 받을 때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느끼는 타입이었다는 것.
“아무튼 오지 마!”
그리고 그 둘은 권건의 말대로 함성을 에너지로 바꿔.
“하하, 우리 팀에 탑이 둘이 됐네.”
야쓰오와 유사 원딜 셰나에게 걸맞는 격을 갖춘, FWX의 선장과 그 단짝이라는 점이다.
“아니지. 지금 탑은..”
선수들은 각자 그날의 컨디션이 다르다.
“...”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형만 믿어!”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1레벨 싸움. 바로 잡아먹으세요.”
언제나 그대로인 사람도 있다.
“오오오오케이! 나는 우리 정글 믿어!”
“우리 정글 대장 믿어!”
#
“이거 1레벨, 1레벨! 트윗치와 유마! 먼저 부쉬에서 싸움을 거는데!”
“1레벨 딜교는 트윗치 유마가 상당히 좋아하는 구도거든요!”
“유마는 따로 점멸을 들지 않기 때문에! 스펠이 하나 더 많다는 걸 믿고 들어간 건데요?”
“어? 근데 이거, 이거? 이거? FWX, 시야 없었는데도 알고 있었어요?”
“어? 안 밀립니다? 세자 클래스, 안 밀려요?”
“고구미 케비 듀오의 마음을 읽었어요!”
“완전히 읽었어요!”
“쫓아요!”
함성.
“세자, 세자! 이거! 오늘 정말 달라요! 지금! 이번 세트! 완전히 달라요!”
“독하게 물어뜯습니다! 이거 바로 달려들어요! 회오리바람! 떴어요, 트윗치!”
“정화 빠집니다! 점멸! 맞점멸! 빨라요! 힐!”
- 뭐야 시작하자마자!
- 인베야? 인베 아니잖아!
- 뭐야! 뭐야!
“다, 다 썼습니다! 스펠 다 썼습니다! 이거, 이거 아무도 스킬 없어요! 아직 유마 E 없어요!”
점점 더 커지는 함성.
“바로, 바로! 바로 쫓아갑니다! 이거! 놓치지 않아요! 탈진! 탈진 걸립니다! 트윗치! 트윗치! 고구미 선수! 고구미 선수가아아아아아아아아악!”
“칼, 마지막, 한 번 더, 회오리바람이..! 이거, 이거!”
“하세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경기장을 들어 올릴 듯 커져 버린 함성.
“야쓰오오오오오오오의!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블!”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타임 스탬프, 불과 2분!”
“이제는 자기 손으로 킬을 만들어내는 세자! FWX에서 선취점으으으으으을! 가져갑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악!”
터졌다.
“야쓰오! 야쓰오! 야쓰오! 야쓰오!”
“세자! 세자! 세자!”
“클래스! 클래스! 클래스!”
함성은 알 수 없는 소리로 뒤엉켰다.
선수들이 들을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마음껏 아무 소리나 질러댔다.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고! 바텀!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고!”
“시이이이이이이이바! 정답은! 야쓰오였어! 빛이 있으라!”
“그래! 지운아! 원딜은 그렇게 하는 거야! LOS 재밌다! 진짜 존나 재밌다! 챔피언 폭 오진다! 형 지금 지렸어! 바지 빨게 빨리 끝내줘! 곽지운! 곽지운! 곽지운!”
“동흔이 형.. 조금 전까지 비원딜 극혐하셨잖아요..”
“야, 찌세야.. 저 형 지금 제정신 아닌 것 같아..”
이 승부, 아직 모른다.
사람들은 바닥에서 올라온 이 팀이 이기는 드라마를 꿈꿨고.
그건 결국 기세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리는 라인 솔킬로 터져나왔다.
- 뭐야 ㅅㅂ 물 떠오느라고 못 봤어
- 시작하자마자 이게 머야???
- 진짜 설마 트릭스터가 져?
- 야쓰오 상대로 1렙쌈 왜 하냐 진짜?????? 존나 이해 안 돼
- 트릭스터야 어떻게 생각해 아직도 FWX가 ㅈ으로 보여?
- 어.. 그건 아니고 그냥 LKL의 미래가 밝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이거 시작부터 상당히 아쉬운 모습이 나왔는데요!”
카메라에 잡히고 있지는 않지만 표정이 잔뜩 굳은 트릭스터 객원 해설 강비오.
“바텀.. 집중을 좀 해야죠.. 하하. 못 이길 리가 없잖아요? 여기가 저희 홈인데. 홈 어드밴티지도 있고.. 하하! 이거 참.. 패작하는 것도 아니고.. 저걸..”
- 뭐야 섬뜩해 왜 웃는 소리가 들리지?
- 웃는데 말은 존나 무섭게 해
- 2세트 트릭스터가 진 거 보고ㅋㅋㅋ 존나 빡친듯
- 지면 애들 사옥 못 들어가는 거 아니야?
- 진다고? 말이 되냐? ㅅㅂ 폭동 준비 ON
- 고구미 얼른 올차단 박아라;;;
- 저 형 개인 방송할 때도 점잖은 그라데이션 분노가 특징임ㅋㅋ
“그렇군요. 비오스 선수.. 혹시 선수들이 못하면 빠따 들고 기다리는 역할이고, 뭐 그런 건 아니시죠?”
“아.. 저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죠. 빠따는 너무 폭력적이잖아요..”
“그럼 후배들에게 평소에 조언을 좀 하시는 편인가요?”
“아유.. 제가.. 무슨.. 저 같은.. 은퇴한 선수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다들 날고 기는데.. 저는 그냥 평범한 마스터일 뿐인걸요.. 근데 요샌 가끔 원딜도.. 하는데.. 원딜도.. 할 만하더라고요..”
- 형 자랑 지리네?
- 꼰대질 넘심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십ㅋㅋㅋㅋ저거 고구미 대신 지가 원딜 들어가겠다는거잖아ㅋㅋㅋㅋ
- 협박(진심)ㅋㅋㅋㅋㅋㅋ
“이거.. 오늘.. 객원 해설님들이 상당히.”
“예. 기가 아주. 강하시네요.”
“흠흠.”
“아무튼 지금 야쓰오가 아낌없이 집도 다녀왔습니다. 그러면서 상당히 불리해진 상황은 맞습니다만!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되겠죠?”
“그렇습니다. 트릭스터는 절대 이렇게 간단히 무너지는 팀이 아니에요! 늦지 않았습니다, 트릭스터! 5분 정도 미뤄진 느낌은 있지만 다시 잘 누우면 됩니다!”
“이부자리 잘 깔고, 공주님 캐노피 딱 치고! 시간 끌게 되면 결국 팔이 긴 건 트릭스터 쪽이거든요!”
경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의 텐션을 찾았다.
이것 역시 트릭스터의 장점.
잠깐 흔들렸다고 바로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양상이 있다.
다른 라인의 라인전이 좀 더 쉬워진 것.
“미드 볼게.”
“좋아.”
“아자르의.. 점멸이 아슬아슬하게 빠집니다!”
“거세게 라인전을 해주던 퓨처 선수의 아자르의 스펠이 하나 빠지면서, 라온 선수의 숨통이 조금 트였습니다!”
“이게 선순환이 되고 있거든요!”
“탑에서는 서로 적당히, 적당히 챙겨가면서 성장 중! 하지만 오드 선수의 갱플이 약간 더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오오오우! 방금 화약통! 진짜! 소름 돋는 각이었어요! 이러면 한 발 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무사 선수의 비예고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거든요!”
“오늘 차니 선수는 상당히 수비적이네요!”
- 냐르 갱플 구도상 누가 더 유리하냐?
- 냐르가 더 유리하지 않음?
- 냉정하게 반반임
- 프로 피셜 라인전 자체는 냐르가 더 유리한데 한타에서는 갱플이 더 좋음
- 프로 누구?
- ㄴㄴ 타이밍마다 다름 분노마다 다르고
- 지금 상황에서는 갱플 픽이 아쉬울 게 없음 궁때매.. 바텀이 실점한 상태라 잘 버텨야 함
- 이렇게 품격있는 대화를 한다고? 역시 결승?
- 누구 말이 진짠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중에 임포스터 있는 거 아님?
- 존나 시험 문제인 줄ㅋㅋㅋ 다음 중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을 고르시오
“결국 중요한 건 이겁니다. LOS에 정답은 없다. 이렇게 반반 구도를 가게 되면..”
“어느 쪽이, 어떻게 반반이냐가 중요하죠!”
“탑이 지고 있다면 바텀이나 미드 둘 중 하나는 주도권을 꽉 쥐어야 하고, 바텀이 밀린다면 탑이나 미드가 주도권을 꽉 잡아줘야 합니다! 모든 라인이 주도권이 없는 게임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게 팀 게임이거든요?”
“그럼 이렇게 팽팽한 게임에서 정글은 뭐냐! 균형의 수호자!”
“그래서 지금 트릭스터가 아주 훌륭한 점은! 경기를 길게 보면서 바텀 쪽에 시야를 많이 잡아 안전을 확보하고, 주도권이 있는 탑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는 점이 되겠고요.”
- 정글 법령 제1조 1항 “망한 라인에 가지 마라”
- “괜히 뒤집어쓰고 욕만 먹으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ㄱㄹㅇ
“FWX같은 경우에는 실제 초반에 주도권을 차지한 미드, 아자르와 사일 구도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바텀 쪽에 힘을 꽉 주고 있습니다!”
퍼블 이후, 양측에서 모두 날을 세우고 플레이하면서.
스펠 교환은 일어나나 위험한 조우나 큰 사건 없이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
“그런데 중요한 건. 만약 초반에 바텀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시작했더라면..”
해설진은 상황 설명에 열을 올렸다.
“그렇죠. 1레벨에서 트릭스터가 의도한 대로 트윗치 유마의 장점인 딜교환에 크게 성공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을 겁니다.”
“오늘 FWX 바텀이 큰일을 해주고 있네요!”
그리고 그때.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지 않나요? IF가 어쨌건 간에, FWX는 바텀 주도권 잡기에 성공했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전 세트의 무공수훈자, 권건 선수가..”
“고요하게.. 지금.. 점점.. 발이 풀리고 있다는 점이거든요?”
“아.. 이거.. 쎄한데요. 알겠죠? 알 겁니다. 알고 있겠죠. 아마, 알고 있는데..”
“이거.. 생각보다 트릭스터, 오래 눕지 못할 수도 있어요?”
작은 거인, 뽀비.
부웅, 부웅.
이 소인족 챔피언은 타석에서 연습 스윙이라도 하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망치를 휘두르고 있다.
자박, 자박.
작은 발걸음은 고요하지만 크게 들린다.
“침대.. 박살 내러 갑니다, 권건!”
“진짜.. 빠따 든 사람이.. 여기에..”
- 시.. 시바
- 시바.. 견
- 나 왜 눈을 못 뜨겠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 눈이 부셔서 그런 거 아니냐?
큰 한 방을 노리는 그가.
바텀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