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_경보 발령
서머 플레이오프 전 주.
날은 점점 뜨거워지고 각 팀이 더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상위권 팀의 콘텐츠가 씨가 말라갈 때쯤.
FWX는 본 채널 상단에 내기에서 진 유니버스 선수들이 춤추는 영상을 박아놨다.
그리고 일전에 촬영했던 권건의 브이로그 영상도 공개됐다.
새로운 개인 채널을 만들면서였다.
개인의 소유지만 채널의 운영과 관리는 모두 FWX가 맡는 ‘소속 채널’이었다.
독립 SNS 계정에 이어 독립 채널 생성이 유행했던 이 판에서 사실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거나 성공적인 개인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다.
홍보나 이벤트의 규모를 봤을 때 본가와 비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 채널의 메인 선수가 이적하게 된다면 계약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결국 기존 콘텐츠 등은 선수에게 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FWX는 오랜 시간 준비했던 개인 채널을 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푼 건 미드다.
얼마 전 김예성의 FWX 개인 채널이 최초로 문을 열었다.
가장 큰 원인은 당연하다.
“여동생이요? 왜 미리 말 안 했냐고요?”
- 왜 하나도 안 닮았냐고ㅋㅋㅋㅋ
- 형 유전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채팅입니다)
- “신은 공평하다”
- fact) 여기서 채팅하는 놈들보다 라온이 더 잘생김
“사실 여태까지 제가 오.. 오.. 혈육으로서.”
- 오빠라고 왜 말을 못해?
- ㄹㅇ; 내 동생이 에이린이면 내가 맨날 업고 다닌다;;
- ㄴㄴㄴㄴ 그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이야기;;
- 여동생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합니다..
- 누나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냥, 이런 얘기를 막 하고 다니면 곤란할 수도 있잖아요?”
이제 프로게이머 김예성과 연기자 에이린이 남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 공식@발표@합니다! 방장을 [형님] 혹은 [처남]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만 부를 거야 다 꺼져 리발럼들아!
- 학생 글 내려^^
- 그럼 에이린을 [아가씨]라고는 불러도 될까?>_<
- 니가 몬?데 우리 오빠 선취?
- 이건 또 뭐야ㄷㄷ
시청자 수의 폭증과 관심도 증가.
“근데 얘가 자꾸 요즘 LOS 좀 배웠다고 까부는데..”
- 이린느님 라인 ㅇㄷ?
- LOS 재밌나요?
- 너 한국인 아니니?
- 아 LOS 한국 게임이에요? 저는 게임보다 캠핑을 더 좋아해서요
- 아;; 인싸였고..;;
- 혼란하다 혼란해!
그전까지 조곤조곤하게 공략 방송을 진행하던 김예성의 시청자 풀은 급격하게 바뀌었고.
기존 시청자 풀과는 딴판인, 게임은 하지만 리그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나 아예 게임도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에이린이라는 연기자의 예능 출연에 목말랐던 팬까지 몰려들어 FWX 채널에 혼선을 빚었다.
그래서 채널의 분리는 필연적이었다.
인게임이나 공략에 관한 건 FWX 채널에서, 짤막한 에이린 떡밥은 라온 채널에서.
- 이번에 에이린님이 결승 응원하러 가신다던데
“그으래요? 걔가 온대요?”
- 온대요 ㅇㅈㄹㅋㅋㅋㅋ
- 이게 가족이다ㅋㅋㅋㅋ
- FWX가 결승 못 갈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에이린님 안 오나요?
- 왜 결승을 대전에서 하는 거예요?
- 아;; 리그 안보는 분탕 밴 좀ㅡㅡ
- 형 게임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통제 들어가니까 안심해ㅋ
“어차피 저 보러 오는 것도 아닌데.”
- ?
- ?
- ?
여전히 교통정리는 어려웠지만.
“큐 잡혔으니까 이제 혈육 이야기는 그만할게요.”
- 아!!!!!
- 왜!!!!!!
- 더 해줘! 더!!!!
어쨌든 김예성의 방송은 예린이 없는 예린이 채널로 꽤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 에이린 얼굴로 태어나기 vs 세계 1위 미드 되기
- 존나 어려운 밸런스 게임
- 다가진 남매;;;; 내가 낳았어야;;
- 근데 그 어려운 걸 권건이 해냅니다ㅋㅋㅋ
그리고 연달아 문을 연 채널.
FWX 권건.
딱히 남여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 연기자 떡밥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난 공식 채널 유동 인구가 유사 배우의 채널을 그냥 지나가기는 어렵다.
기존 팬층으로서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권건의 개인 채널은 첫날부터 꽤 큰 인기를 얻었다.
- 권건 브이로그_One Summer Day
영상은 단순했다.
경기가 없는 날은 기상, 식사, 스크림, 식사와 운동, 스크림, 식사, 개인 연습.
경기가 있는 날은 몇 가지 일정이 이동으로 대체.
이 스케줄은 학생이나 직장인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ㄴ 존나 레전드 오브 레전드 갓생;; 신이 되려면 일단 갓생을 살아야 하는 거임;
ㄴㄴ 나혼산 프로 버전;;
ㄴ 이걸 진짜 매일 똑같이 반복한다고?
ㄴㄴ 다 그런 건 아님 절대;
ㄴㄴ ㅉㅉ 설마 사람이 맨날 이러고 살겠냐? 저기가 뭐 군대야? 영상 하나만 보고 매일 그럴 거라고 믿는 능지 수준
ㄴㄴ 그래서 님 티어가?
ㄴㄴ 봐줘라ㅋㅋ 얘도 채널 뜨자마자 헐레벌떡 왔자너ㅋㅋㅋ
ㄴㄴ 수신 양호~ㅋㅋㅋ
그 사이사이 들어가 있는 촘촘함이 달랐다.
권건 특유의 무뚝뚝함, 당연한 일을 하는 것 같은 태도, 그리고 군말 없이 일정을 함께하는 팀원들까지.
비록 운동만큼은 셀프 캠이 아니라 보조 촬영자의 시각에서 촬영됐지만.
언뜻 봐도 능숙한 몸놀림으로 묵묵하게 운동하고, 샤워까지 마친 뒤 연습실로 돌아가서 다시 집중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일반인이 ‘게임’이라고 즐기는 것과는 다른 프로 같은 면모가 느껴졌다.
ㄴ 왜 Tlqkf 이런 알파메일이 겜도 잘함? 테스형! 말해!
ㄴㄴ 일단 쟤 보충제부터 뺏어라 헤으응
ㄴㄴ 건이형 보충제 안 먹어!
ㄴㄴ ㄷㄷㄷㄷ
ㄴㄴ “FWX에게 순응해라”
ㄴㄴ 벽 느껴서 겜 접습니다 템 뿌려요ㅠㅠ
어쨌든 그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좋은 호응을 불러왔다.
ㄴ 나는 그를 응원한다 그의 플레이 항상 완벽 :) 그의 삶도 안정적인 것을 바라다
ㄴㄴ 큰 동의. 굉장한 비디오! 영어 자막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3
ㄴㄴ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현대적인 그의 열렬한 팬입니다!
ㄴ 한국의 프로게이머들 매우 훌륭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ㄴㄴ 나는 이것을 너무 좋아한다! 이 전략을 내 것으로 만든다. 감사합니다.
ㄴㄴ 이거 위에 댓글 G3 공식 아니냐?
ㄴㄴ G3 선수들의 훈련 일정에 애도를
ㄴㄴ 도망친 윤도형에게 낙원은 없다ㅋㅋㅋㅋ
하지만 또 지나치게 인간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후에 쿠키 영상을 대신해 짧게 올라온 쇼츠에서.
“힘들지는 않아요?”
그 미스터리에 대해 스탭 중 누군가가 물었고.
“어떤 게요?”
“매일 똑같이 게임하고 운동하고 생활하는 거요. 습관이에요?”
“음, 글쎄요.”
권건이 대답했다.
깊은 눈동자가 화면을 향한다.
아마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은 권건이 이렇게 생활한 것이 고작 1, 2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게임보다는 운동으로 대답해드리는 게 쉬울까요? 저를 처음 보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
그래서 권건은 깊은 대답을 포기하고 웃었다.
“어느 날 그냥 운동을 하고. 다음 날 제 몸을 봤어요.”
“권건 선수에게도 운동을 처음 했던 날이 있군요.”
“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고, 하루 더 했지만 그다음 날도 똑같았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약이 올라서 일주일을 더 하고, 한 달을 더 했죠.”
“오, 그러면 습관이 되나요?”
스탭 손에 들린 카메라가 살짝 들썩인다.
“아니더라고요.”
“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근육통 때문에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저는 운동이 그렇게 잘 맞는 체질은 아닌가 봐요.”
“잘 못 들었습니다?”
“저한테 운동이 습관이 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정말로.”
“거짓말. 와. 진짜 거짓말.”
“이건 좀 너무했나요?”
“아주 많이 너무한데요..”
황망한 스탭의 말투에 권건이 아주 얇게 웃었다.
“사실은 습관이 아니라. 그냥 지기 싫어서 하는 거죠.”
“지기 싫어서요?”
“상대한테 지기 싫어서. 게임에서 지기 싫어서. 내 몸한테 지기 싫어서. 삶에 지기 싫어서. 매일매일 지기 싫으니까.”
“...”
삼십대의 스탭은 자기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젊은이를 바라봤다.
“그렇게 반복하는 것뿐이죠. 게임이나 운동이나.”
젊은이는 화면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말했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우린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선수잖아요. 승부욕.”
스탭은 생각했다.
진짜 개에바야.
내가 응원하던 야구 선수는 이번에 음주 운전 갈겨서 손절했어.
“어.. 그래도.. 보통.. 일탈.. 같은 걸.. 꿈꾸죠.”
하지만 나오는 대답은 둥글둥글하다.
FWX에서 일하는 게 행복한 이 스탭이 자신의 절대 신앙을 부정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저도 그래요.”
“권건 선수한테 일탈이 뭔데요?”
“한눈 파는 거요.”
문득 좀 불쌍하다.
권건은 개인 방송 시간에도 다른 게임을 하지 않는 편이다.
휴가 기간이나 타 게임 팀과의 콜라보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무.
프로게이머면 그냥 게임이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 선택권 없는 군만두 아님?
본인이 좋으면 그만이긴 한데..
“그러시구나..”
근데 왜 이렇게 짠내가 나고 그러냐.
진짜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는데 나도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 맞죠?”
“당연하죠. 저도 일탈을, 탈출을 꿈꿉니다.”
권건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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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분 혹시 알아?”
“응?”
운동을 마치고 나온 김예린은 매니저에게 폰을 내밀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왜?”
“아니이..”
김예린은 손등으로 제 볼을 살살 긁었다.
“저번에 마주쳤는데, 으으음. 세상은 넓구나~ 싶어서.”
매니저는 다시 한번 SNS를 훑었다.
확실히 이쪽 세계와는 좀 많이 먼 이세카이다.
“마주쳐? 어디서? 약간 서브 컬쳐 그런 거 아니야? 2D 쪽.”
“응. 게임 코스프레래.”
“우리랑은 거리가 많이 먼데. 행사 참여하고 사진 찍고, 뭐 그런 분야였던 것 같아. 나도 잘 모르겠네.”
“나도 해볼까?”
“뭐어?”
매니저는 괴상한 표정으로 웃었다.
“핫게 가긴 하겠네. 하지만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아. 연기자랑 치어리더가 다르고, 성우가 바이크 모델이랑 다른 것처럼. 본업에 집중해야지.”
배우 생활은 길었지만 매니저에게 에이린은 아직 어린 친구다.
그리고 그녀는 김예린의 친언니 같은 존재다.
“그리고 너랑 이런 분야는 전혀.. 아, 오빠 있구나. 오빠가 하래?”
“걔가 나한테 뭘 시킬만큼 미치진 않았어.”
“하긴.”
김예성은 건실해 보이는 청년이었고 평판도 좋았다.
소속사에서도 오랜 기간 관계 공표에 대한 득실을 저울질했기에 잘 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 우린 관련 프로젝트도 없잖아.”
“알았어.”
김예린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다.”
똑똑한 아이다.
매니저는 에이린의 환복을 도우며 단백질 쉐이크를 내밀었다.
내년 초에 들어갈 작품을 위해 몸을 만들어야 할 시기.
스트레스 받는 애한테 괜히 뭐라고 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른 거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야..
“근데 언니이, 권건 선수 말이야.”
“응?”
LOS는 남자친구를 통해 아는 정도가 다였던 매니저였지만.
그녀도 권건은 알았다.
광풍의 주인공이다.
김예성과 같은 소속이자 배우 계에서 놓친 인재.
“흠흠, 그 잘생. 응, 왜?”
그리고 그녀 역시 권건 개인 채널의 구독자다.
“이 사람이 권건 선수한테.. 좀..”
김예린이 흘긋, 다시 SNS를 가리킨다.
다시 보니 좀 예쁘네?
“관심이~ 많은 것 같더라?”
매니저는 김예린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뭐?”
LOS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것 같고, 최근 방송에서 본 캐릭터와 비슷한 차림새도 많고.
무엇보다도 높은 노출도 서슴지 않는 모습.
“껄떡거려?! 이러고 막 찾아가고 그런대?! 이거 완전 승부..”
김예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막았다.
“설마. 언니가 왜 그렇게 화를 내? 당연히 아니지. 평소엔 사옥 출입 금지인데.”
“아니!”
매니저는 김예린이 권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회사에서 반가워하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매니저로서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의 조합은 옳다고 생각한다.
선남선녀인 것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도 이 친구가 연예계 말고 다른 분야에서 좋은 남자를 만나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만.
그녀의 입장에서 권건은 ‘증명’이 덜 끝난 데다가 시기도 지금은 아니다.
“언니, 그래도 확실히 게임 복장이 화려하긴 하더라..?”
그래도 눈앞에서 귀한 우리 에이린이 속상해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금 잔소리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다 보니 더 그렇다.
“포샵이겠지! 내 연예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실물도 예쁘던데..”
“그거 다 화장발이야! 니가 더 이뻐!”
노발대발하는 매니저를 보며 김예린은 배시시 웃었다.
“근데 어떡해? 나랑 바로 옆자리에서 카메라에 잡힐 수도 있는데.”
“왜?!”
“이분도 선수 가족이래.”
“뭐어어어어어어어?! 저런 옷을 입고 객석에에에에?! 그런 스포츠가 있어?! 내가 이 판을 너무 얕봤나?! 다 저러고 다녀?”
“으~음. 저번에 보니까 퍼레이드 같은 분위기던데..”
다혈질 매니저는 경악한 표정으로 폰을 꺼내 들었다.
“다 뒤졌어. 어차피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야. 나 샵 시간 바로 당겨놓을게. 아니? 대전 출장 바로 불러. 이건 자존심 싸움이야.”
“응.”
“하, 씨. 의상 너드 컨셉으로 이야기 해뒀는데.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그치?”
“난 언니만 믿을게~”
계획대로다.
“진돗개 하나, 진돗개 하나. 전남친 결혼식급 작전 발령. 지금부터 전쟁이다!”
“응!”
처음부터 코스프레에 관심도 없었던 불여우의 여동생은 생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