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_상전벽해
2026 LKL 서머, FWX 우승.
[ (LKL) “뜨거웠던 올여름의 클로저” 2026 서머 우승팀 FWX ]
[ 승승패승 끝에 최초 2회 우승 달성, 역사의 시작? ]
[ 대전을 지배한 FWX, 대전의 자랑 FWX ]
[ 육각형 탑이 아니다. 그래서 강하다. 공격력 ‘최고’ 차니(Chani)의 칼 같은 플레이 ]
[ ㅈㄱㅊㅇ,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황제 권건(GwonGun)에게 정글을 묻다 ]
[ 황제의 칼, 라온(Raon). ‘카사딤’ 막지 않은 것? “실수다” ]
[ 세자(SeZa)? 아뇨.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
[ (포토) 클래스(Class)의 어김없는 오열과 사이다(Cider)의 외면 ]
FWX의 우승을 두고 무수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바로 다음 이어질 거대한 이벤트에 대한 관심 역시 마찬가지다.
[ LOS 월드 챔피언십 초읽기 돌입! 선발전 대상 팀은? ]
[ 월챔 앞두고 메타 변화 온다.. “정글” 상향 예정? ]
[ 대전 FWX, 선발전? 플레이-인? 그게 뭐죠? ]
[ 성남 스톰, “(이번 결승의) 충격은 담금질의 기회. 월챔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것” ]
단지 몇몇 팀에게는 조금 더 여유가 있다는 점이 달랐다.
서머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은 연고지와 약속했던 대전 투어 영상을 촬영한 뒤 짧은 휴가를 떠났다.
우승팀이자 월챔에 직행한 FWX에게 주어진 달콤한 특권이었다.
물론 고작 사흘에 불과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그 3일은 보기 드물게 화창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져 선수들의 컨디션 회복을 도왔다.
“야, 건아.”
“왜.”
“건아.. 형이야..”
“말씀하세요, 은호 형.”
“존나 가식적이다 너..”
“극찬 감사합니다.”
“이거 좋은 거 맞나?”
최은호는 황당한 표정으로 오랜만에 만난 정글러를 본다.
어쩌면 이게 ‘진짜’ 이 사람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됐고.”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최은호라는 불안정하고 평범한 사람은 이 사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
“넌 쉴 때 뭐 했어?”
최은호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였다.
우승한 선수들은 당연하지만 상금을 받는다.
물론 금액적으로는 자잘한 옵션 수익의 총합이나 연봉이 더 높다.
하지만 우승 상금은 말 그대로 상금.
공돈인 셈이다.
하지만 우승 직후 바로 개인 통장에 꽂히는 건 아니다.
시상식에서 상금이 적힌 우드락 따위를 들고 사진을 찍긴 하지만, 이게 현금은 아니니까.
상금의 지급 절차는 주최 측에서 세금 계산을 마친 뒤 구단에 전달하고, 구단에서 그들의 몫을 뗀 뒤 나머지를 선수들에게 입금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날짜가 미뤄지는 경우가 있지만.
구단은 예쁜 선수들을 위해 뒤따라올 복잡한 과정을 부담하며 쿨한 선지급을 택했다.
끝전을 맞춰주는 예정에 없던 인센티브까지 더해서.
그래서 선수들은 두둑한 주머니로 짧은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참이다.
“부모님과 대전 맛집도 가고, 휴양림 같은 데서 하루 쉬기도 하고 그랬죠.”
“이제 좀 제대로 쉬네?”
“누구한테 배워서.”
최은호와 권건은 짧게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근데 진짜 우승 날 부모님이랑만..”
뭔가 떠올린 최은호가 덧붙이려고 했지만.
“형은요?”
권건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나? 쇼핑갔지. 우리 할머니랑 부모님 겨울옷 사드렸다.”
물론 최은호는 자랑 찬스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
“근데 명품 옷들은 역시즌 특가 없는 거 알아? 그리고 그거 알아? 아울렛이랑 백화점이랑 엄청 다른 거.. 아니, 너네 줄 서서 들어가는 매장은 가봤..”
분명 효자인데 이상하게 추한 이 느낌은 뭐지?
권건이 입을 가리고 유상준에게 눈짓했다.
“나는. 스킨. 그리고. 게임. 삼.”
“쟤 라이브러리에 없는 게임이 없어. 하지도 않는데 그걸 왜 사냐? 기부 천사냐?”
“왜. 사냐.니. 너. 욕설. 신고.”
“얘 또 몰아가기 한다! 살려줘요!”
두 서포터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던 권건이 시선을 돌렸다.
“나는 반은 저금, 반은 투자.”
책을 보던 김예성이 대꾸하고.
“난..”
이유찬이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얘들아!”
큰 소리와 함께 벌컥 열린 연습실 문 사이로 작은 생명체가 달려온다.
“뭐, 뭐야, 뭐야, 뭐야!”
“뭐야. 생물.”
복슬복슬한 털.
“뭔데 이거 뭔데!”
촉촉한 코.
“곽지운 뭔데!”
콩자반처럼 반들거리는 두 눈.
“우리집 뽀삐 데려왔다!”
그건 여전히 탈색한 머리를 나풀나풀 날리면서 뛰어 들어오는 곽지운과 꼭 닮은 강아지였다.
사실 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이미 나이가 제법 든 것 같아 보이는 개였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이 작은 동물에게는 ‘개’보다는 강아지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연습실 한 가운데까지 달려온 통통한 체격의 강아지는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코를 먼저 갖다 댄다.
시츄는 포로롱, 하고 재채기를 한번 하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뒷발로 귀를 긁는다.
“뭐야, 강아지.. 아.. 어떡해..”
그 귀여움에 놀란 김예성이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어떡해~ 이러고 있네.”
이유찬은 능숙하게 제 손 냄새를 맡게 하며 뽀삐와 교감한다.
“헉, 헉.. 얘들아! 혹시 무섭거나 최근에 알러지 생긴 사람?”
허겁지겁 뒤따라온 박 감독이 물었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실존하는 뽀삐 공주님에게 시선을 한번 받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오늘 털 깎고 목욕했다? 만져도 돼.”
견주가 유일한 승자다.
“털 짧은 시츄 진짜 귀엽다.. 원래 길었는데 짧아진 거야?”
“뽀삐 군대 감?”
“여름이라 밀었고, 얜 면제다. 유찬아.”
“충성해 봐, 충성.”
“뽀삐 특. 앉아, 엎드려, 기다려 아무것도 못 해서 군 면제임.”
“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니 진짜 귀엽다.”
“예성아.. 제발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줘..”
“감독님, 우리도 여기서 강아지 키우면 안 돼요?”
“찬.성. 개.이름은. 응호.로. 합시다.”
“유상준 장난하냐? 응호가 무슨 뜻인데?”
“응.답하라. 호..루라기.”
“입에서 나오면 말이냐?”
“그만, 그만. 너네 이럴 때 보면 일곱살짜리 애들 같다.”
결국 선수 중 가장 늦게 복귀한 것은 곽지운이었다.
하지만 원래 휴가는 오늘까지.
모든 선수가 하나같이 일찍 복귀했을 뿐이다.
사옥까지 데려다준 가족들과 카페테리아에서 식사하고 왔다고 설명한 곽지운이 다시 강아지를 안았다.
“데려다주고 올게.”
다들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뽀삐는 퇴장했다.
그리고 강아지의 등장으로 끝내 이유찬이 어디에 돈을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건 이미 모두에게 잊힌 이야기다.
“자, 모두 복귀했으니까. 잠깐 공지 사항.”
박 감독이 손뼉을 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내일부터 선발전이다.”
“네.”
“그런데 오늘 다들 일찍 왔으니까 저녁 스크림 슬롯을 열까 하는데. 다들 의견 어때? 감 찾는다 생각하고.”
“오.”
“괜찮은 듯?”
“저도 괜찮아요~”
LKL이 쥐고 있는 시드권은 네 장.
작년 월챔과 이번 MSL에 있었던 FWX의 활약 덕분이다.
그중 세 팀은 본선에 해당하는 그룹 스테이지로, 한 팀은 플레이-인 스테이지로 간다.
일등 승선권 석 장과 이등 승선권이 한 장 있는 셈이다.
물론 일등석에는 FWX가 가장 먼저 타고 있었다.
스프링보다 서머가 더 중요했던 건 1번 시드권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니까.
스프링 시즌에 가장 포인트를 넉넉하게 땄던 FWX가 서머 시즌 우승으로 월챔에 직행하면서, 차라리 호재라고 평가하는 타 팀의 전문가들도 있었다.
강력한 라이벌이 포인트를 잡아먹지 않고 퇴장해줬으니까.
“감독님, 선발전 하는 팀이 어디 어디죠?”
성남 스톰이 이번 서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챔피언십 포인트를 170점 달성.
이러면 스톰은 자동으로 2번 시드를 가져가면서 월챔 직행이다.
“그러니까..”
그 아래로 선발전이 진행된다.
대구 유니버스.
흐름을 잘 타고 날아오르다가도 이상하게 삐끗하는 팀.
유니버스는 스프링에 20점, 서머에 80점을 가져가면서 100점을 기록했다.
광주 미라쥬.
스톰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플옵에서 FWX에게 지목받으면서 일찍 고배를 마시고만 아쉬운 팀.
미라쥬는 스프링에서도 50점, 서머에도 50점을 가져가며 100점.
인천 트릭스터.
탑이 재기불능이 되면서 앞날이 어두워진 이 팀은 최근 드디어 제대로 된 감독을 데려오는 데에 성공했다.
트릭스터는 스프링 30, 서머 30으로 60점.
이 세 팀은 선발전 확정이다.
제주 F.L.E, 유상준을 보낸 뒤 생긴 여유로 착실하게 선수를 육성하면서 제2의 FWX를 꿈꾸는 이 팀이 10점.
그리고 부산 호넷, 말 많고 탈도 많지만 하위권 뉴메타 낭만 팀이자 썰쟁이 안우진을 보유한 이 팀 역시 10점이다.
호넷과 F.L.E는 동률.
아쉽지만 포인트 동점의 경우에는 서머 때 획득한 점수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선발전은 제주 F.L.E가 나가게 됐다.
“선발전은 F.L.E, 트릭스터, 미라쥬, 유니버스.”
작년과는 꽤 다른 구도였다.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팀도 있고, 새롭게 등장한 팀도 있었다.
가장 다른 건 FWX가 모든 팀을 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상전벽해.
지난 시즌 선발전부터 출발했던 것에 비해 일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그래서..”
그렇다고 놀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박 감독은 노트를 툭툭 두들겼다.
1번 시드 FWX, 2번 시드 스톰.
그리고 남은 자리는 3, 4 시드.
당장 선발전은 내일부터 시작이지만 단 한조각의 시간이라도 있다면 FWX와 경험을 겪고 선발전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팀이 네 팀이나 된다.
예전에는 한참 위에 있었던 팀들이.
이제는 딱 한 판만이라도, 새로운 챔피언 테스트도 괜찮으니까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줄을 서 있다.
그게 지금 FWX의 위치다.
“건아.”
박 감독은 권건을 바라봤다.
이런 부분에 밝은 선수다.
“네 의견은 어때? 누구랑 스크림을 할까?”
“음..”
하지만 권건은 박 감독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분이 썩 괜찮다.
두둑한 주머니로 달콤한 사회의 맛을 봤는데도 예정 시간보다 일찍 복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데 심지어 복귀 날 오후 작업을 만들어서 하겠다고?
너넨 정말 진정한..
[ 중대장은 감동했다! ]
뿅, 갑자기 나타난 강아지가 외쳤다.
[ 중대장님, 저 외출 나가도 되겠습니까? ]
반투명한 강아지가 울부짖었다.
“그런 건 좀 알아서..”
권건이 대답했고.
“그.. 음, 험, 그치? 너무 자주 물어보지? 아직 휴가인데 내가.. 이렇게 워라밸을 모르고.. 너네가 일찍 온 게 너무 기특하고 그래서.. 너무 꼰대처럼 또 혼자 신났지 또 또..”
박 감독은 기가 죽었다.
“아, 아니, 아뇨. 그게 아니라.”
권건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악마를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 말은, 그러니까.”
딩동 누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알아.. 봐서..? 같이 정하죠. 다 같이.”
통했냐?
“그런 뜻이었어?”
통한 것 같다.
“아, 놀랐네. 하하. 미안하다.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하하, 나도 마그네슘인지 쏘팔메토인지 뭐 그런 것 좀 챙겨 먹어야 하나.. 요즘 헛것도 들리고 그래서.”
박 감독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나머지 선수들을 돌아봤다.
“그럼 오늘 오후 일정에 만날 팀을 다 같이 정해볼까?”
왠지 모두 기분이 퍽 좋아 보인다.
“하, 어이없네. 너 뭐, 이런다고. 참, 나, 참.”
“#우리건이가달라졌어요 #존중 #사랑.”
“흥.. 봄감자가 맛있구만..”
그나마 김예성이 가장 빠른 답을 내놓는다.
“미라쥬랑 유니버스, 트릭스터 다 마음에 안 드는데.”
“예성, 왜?”
“왜, 예전에 너한테 껄떡거리던..”
다만.
딱히 이성적인 대답은 아니었다.
“고수호랑 오미래.”
“그게.. 언제 이야기야?”
“써머가 누누로 똥 굴리던 시절 얘기 아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옛날 일이다.
“맞아. 그때 우정권 외치던 한명은 미라쥬에 갔고, 또 한명은 유니버스에 갔어. 그 당시 두 사람 소속이 트릭스터였고..”
하지만 김예성은 진지했다.
이 똑똑한 선수는 누구랑 관련 있는 일이기만 하면 멍청이가 된다.
“그냥 얘한테 뭐 잘못하지 말아야겠다.”
“그래. 책잡힐 말 하지 말자. 경로 추적 너무 지독하다.”
박 감독은 끝이 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자.”
그래서 권건에게 찡긋, 눈썹으로 신호를 보내고.
“그럼 일단 15분 뒤에 문 코치가 데이터 공유할 테니 그때 정하자.”
“네.”
“장비 적응 천천히 다시 하고 있어. 상세 일정표 확인하고, 그리고 건아.”
말을 마친 박 감독이 다시 권건을 봤다.
“계약. 잊지 않았으니까 제대로 가보자고.”
“좋습니다.”
권건이 씩 웃었다.
마지막 무대까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