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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낭인촌의 괴인 (3/79)

제3장 낭인촌의 괴인

호기문은 유성탄에게 돈 버는 방법을 많이는 가르쳐주지 못했다. 유성탄이 산적 같은 생김새와는 달리 따지는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가르쳐주는 방법마다 아버지가 하면 안 된다고 한 방법만 가르쳐주고 있어, 성질 나게…….”

호기문이 말하는 방법은 뒷골목 왈패답게 남들을 괴롭혀서 돈을 뺏는 방법뿐이었다. 유성탄은 호기문이 말하는 돈 버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한 대 더 맞은 호기문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에서 귀주의 낭인촌을 가르쳐주었다.

“대형 같은 분은 낭인촌에 가면 엄청 많은 돈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호기문이 설명한 낭인촌도 유성탄에게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을 죽이며 싸워야 한다지 않는가. 그러나 전쟁은 남자라면 한 번쯤은 겪어도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기억났다.

다른 것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유성탄이 아버지가 말한 것만은 꽤 많이 기억하는 것은 그만큼 유성탄이 아버지를 좋아하고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같이 되겠다고 존경했었기 때문이었다.

호기문이 자발적으로 내미는 전낭과 귀주로 가는 길을 설명 들은 유성탄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난 네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시 설명해 드릴까요?”

“필요없다. 네가 안내해라.”

“예에!”

호기문은 안색이 파래져서 벌벌 떨면서 대답했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전낭에는 제법 많은 돈이 들어 있었고 돈은 여행을 편하게 해준다. 거기다 옷까지 하나 사 입으니 유성탄은 자신이 많이 멋있어졌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산적 패거리의 일당같이 보일 뿐이었다.

호기문을 앞세운 유성탄은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귀주까지 갔다.

“야, 새끼야! 그럼 네가 거기서 대장이었단 말이냐?”

“아 예, 그런 셈이지요.”

“너같이 약한 놈이 어떻게 대장이냐?”

호기문은 솔직히 그리 약한 주먹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성탄에게는 너무 약하게 느껴졌다.

“제가 이래봬도 근동에서는 최고의 주먹이었습니다. 무려 3대 1로 싸워서도 이긴 적이 있었습니다.”

“3대 1로 이기면 센 것이냐?”

호기문은 유성탄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충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형께서는 그 몽둥이는 왜 가지고 다니십니까?”

유성탄은 허리에 찬 몽둥이를 만지며 말했다.

“이거? 멋있지? 흐흐흐, 아버지께서 언제나 허리에 몽둥이를 차고 다니셨다. 너는 모를 거다. 내 아버지가 얼마나 멋있었는지! 헤헤헤…….”

유성탄은 어릴 적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좋은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대형의 아버님께서도 대단하신 분이셨나 봅니다.”

눈치 빠른 호기문은 유성탄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 같다는 것을 즉시 눈치 채고는 비위를 맞추는 말을 했다.

“암! 아버님께서 한번 길에 나서면 전부 다 꼼짝 못했었다.”

유성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추억에 잠겨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나한테 자꾸 대형이라고 하는 거냐?”

“저희들 세계에서는 무조건 주먹이 세면 대형 대접을 받습니다.”

“그럼 대형이란 좋은 거네?”

“그렇죠! 아주 좋은 겁니다.”

호기문은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이거 바보 아냐? 이런 놈에게 내가 이게 무슨 꼴이냐.’

“너! 나 욕한 거 아니냐?”

유성탄은 그도 모르는 사이에 감각이 엄청 발달해 있었다. 호기문이 잠시 속으로 유성탄을 욕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뭐야 이거?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게 눈치는 뭐가 이렇게 빨라…….’

호기문은 깜짝 놀라서 부인한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대형을 욕하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래? 그런데 왜 그런 느낌이 갑자기 들까?”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호기문은 속으로도 욕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주는 다 와 가는데 자꾸 왜 이렇게 돌아다니십니까?”

“그거? 너한테 세상에 대해서 배우니까 이렇게 재미있는데, 뭐 하러 일찍 가냐? 왜? 너 나하고 있는 것 싫으냐?”

“아…아닙니다. 저야 대형과 다니는 게 너무 좋습니다. 절대로 좋습니다.”

“저기냐?”

“예! 바로 저깁니다.”

거의 한 달 넘게 유성탄을 따라다니며 살이 바짝 빠져버린 호기문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하지만 부하는 대장을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유성탄의 말에 호기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부하… 라니요?”

“이제부터 너는 내 부하다. 이제 돌아가서 다시 대장하고 있어라. 하지만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야 한다. 만약 말을 안 듣거나 도망가거나 한다면 그때는 너는 나한테 맞는다.”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말하는 유성탄의 얼굴을 보며 호기문의 얼굴은 흑색으로 변해갔다.

‘이 원수 같은 놈! 한 달 동안 나를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호기문이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유성탄을 욕했다.

“너 나한테 욕했냐?”

유성탄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닙니다! 평생을 대형으로 존경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호기문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크게 소리쳤다.

“그럼 가봐라!”

유성탄은 한 달 사이에 진짜 많이 배웠는지 진짜 대형이라도 된 것처럼 손을 살짝 튕기더니 낭인촌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호기문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고는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 * *

낭인촌이라는 게 완전히 나 같은 사람은 살 곳이 아니더라고. 내가 아버지하고 엄마에 대한 기억만 제대로 했다면 절대 그런 데를 갈 이유가 없었는데 호기문이라는 놈도 집을 찾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어떻게 하겠어. 먹고는 살아야 하니 돈은 벌어야겠고…….

에휴! 아주 산도적 같은 놈들만 모여 있는데 내가 딱 들어갔더니 전부 나를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같이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었을 테니 말이야.

* * *

낭인촌은 귀주 외곽의 큰 평야에 자리해 있었다. 처음 낭인들이 귀주에 도착했을 때는 귀주 성내에서 숙식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수가 많아지면서 성내에서 싸움이 잦아지자 귀주관부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남무림에 부탁을 했다. 낭인 용병들을 다른 곳에서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남무림이 천막 몇 개를 쳐서 낭인들을 그곳에서 뽑기 시작했다.

목숨을 돈으로 거래하는 낭인들답게 돈을 잘 썼다. 상인들 중에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에도 돈을 위해 위험한 곳을 마다하지 않는 상인도 많다. 결국 쓸모없던 갈대와 자갈만 있는 평야에 어느새 촌락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뭐야! 인상 더러운 놈들이 왜 이렇게 많아?”

유성탄은 남들이 자신을 보며 얼마나 인상이 더럽다고 하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남들 인상 더럽다고 툴툴거리며 걷고 있었다.

낭인촌은 이름 그대로 낭인들의 집합소답게 어지러웠다. 사방에 널브러지듯 앉아 있던 낭인들은 처음 보이는 유성탄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유성탄은 키가 컸지만 벌레만 먹고 너무 뛰기만 해서 그런지 바짝 말라 있었고 머리와 수염은 한 번도 깎은 적이 없어서 덥수룩했는데 멀리서 보면 머리만 커다란 나무젓가락같이 보였다. 거기다 정식 무공을 익힌 적이 없으니 이류만 되어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 내공의 흔적도 전혀 없었다.

“저건 또 왜 저렇게 무게를 잡고 걷는 거야!”

유성탄은 걸어가고 있는 길 양쪽에 눕거나 앉아 있던 낭인들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좌우로 물러서고 있어서 처음에는 자신이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성탄이 걸어가는 길 앞에서 유성탄만큼이나 큰 키에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는 덩치가 손에 큰 대감도를 들고는 걸어오고 있었는데, 낭인은 물론 근처에서 앉아 물건을 팔던 사람들도 그자를 보자마자 후다닥 물건을 치우기에 바빴던 것이다.

유성탄은 그자가 어깨에 힘을 주고 걸어오는 것이 본능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뭐야 이 자식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이 어르신이 가는데 재빨리 비키지 않고 얼쩡대는 거야!”

그 덩치는 유성탄이 전혀 비킬 생각을 안 하고 자기 앞으로 다가오자 대감도를 흔들며 커다랗게 외쳤다.

“이 자식? 너 지금 나보고 하는 말이야?”

호기문에게 낭인촌에 가서 기세에 지면 결국 얻어터지다가 못 견디고 나온다는 말을 들은 유성탄도 눈에 엄청 힘을 주면서 같이 커다랗게 말했다. 그러자 덩치는 유성탄이 자신에게 도전했다고 생각한 듯 자세를 잡았다.

낭인촌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나면 도전하는 놈들이 생기게 되어 있었다. 가장 간단하게 이름이 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자에게 덤비는 만큼 졌을 때는 그에 상응하여 더한 고통을 당할 준비도 해야만 했다.

보통은 어느 정도 이름이 나면 유성탄과 같이 처음 보는 자가 덤비면 경시하기도 하는데, 덩치는 경험이 많은 듯 전혀 방심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유성탄은 방금까지도 거들먹거리던 덩치가 갑자기 신중해지자 이상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덩치가 무엇인가를 보고는 표정과 행동이 변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퍽!

덩치는 유성탄이 도전을 한 주제에 주위를 둘러보며 딴 짓을 하자 그 우람한 주먹으로 그대로 유성탄의 턱을 냅다 갈겨버렸다. 아무리 낭인들이 삼류무인이 많다지만 그곳에서 제법 힘을 쓴다는 것은 최소한 약간이라도 내공이 없이는 힘들다. 덩치 역시 나름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상당한 힘을 동반한 낭인의 주먹에 맞은 유성탄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더니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가……!”

“이것도 받아봐라!”

덩치는 싸움에 경험이 상당히 많은지 유성탄이 욕하는 사이 다시 발로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이번에도 유성탄은 막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정통으로 맞는다.

“이 씨! 여기는 좀 아픈데…….”

유성탄은 사타구니를 정통으로 맞자 손으로 그곳을 잡으며 소리를 쳤다.

다른 곳과 달리 가랑이 사이의 남자의 급소는 단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수들은 싸움이 나면 그 알을 몸 안으로 숨긴다. 사타구니를 맞아도 충격을 덜 받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덩치는 분명 자신의 발에 정통으로 그것이 차인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유성탄이 끄떡없이 달려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죽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덩치는 주먹으로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손에 든 대감도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두 대를 맞은 유성탄은 화가 무척 나 있었다.

“이 벌레만도 못한 놈이!”

유성탄이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심한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덩치는 너무 놀라 대감도를 내리치려 했지만 이미 유성탄은 덩치의 몸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덩치는 눈앞이 새까매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별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유성탄은 손을 탁탁 치더니 의기양양해서 계속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를 주위의 낭인들이 놀란 얼굴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유성탄은 호기문이 낭인촌에 처음 들어가면 찾아가라는 낭인막으로 가는 중이었다.

낭인막은 남무림에서 인정한 낭인촌의 관리사무소 같은 곳이었다. 낭인촌에 들면 우선 이곳에 이름을 등재해야만 남무림에서 용병을 구하러 왔을때 연락을 받고 나갈 수가 있었다.

낭인막이 없었을 때는 용병을 구한다고 남무림의 무림인들이 나타나면 서로 보이려고 나서다가 여러 번 큰 소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예의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낭인들이다 보니 새치기를 하거나 서로 앞으로 나설려다가 싸움이 나기 일쑤였던 것이다.

하지만 낭인막이 생긴 후 용병의 수급은 낭인막에서 전담하고 있었다. 특히 낭인막에서는 낭인촌의 서열 싸움의 결과를 잘 모아서 남무림이 원하는 용병을 적절하게 소개함으로써 시간도 절약시켜 주고 있었다.

‘이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구먼. 호기문 그놈 얘기로는 금방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유성탄은 낭인막을 못 찾고 헤매다가는 큰 깃발이 세워져 있는 천막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물었다.

“이보쇼! 여기 낭인막이 어디 있소?”

깃발 앞에 서 있던 자는 유성탄이 묻자 이상한 놈 다 본다는 표정으로 유성탄을 빤히 쳐다보았다.

‘인상도 안 좋은 놈이 왜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유성탄은 대답도 없이 빤히 쳐다보는 그자의 면상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낭인막을 찾는 거요?”

그자가 물었다.

“글자는 읽을 줄 아시오?”

그자가 또 물었다.

“이 작자가 나를 어찌 보고 내가 이래봬도 네 살 때 천자문을 다 뗀 사람이오.”

유성탄은 언제 봤다고 사람을 아주 얕보듯 말하는 그자의 입을 때려주고 싶었다. 유성탄의 말을 들은 그자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그자의 손가락은 커다란 깃발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보시오, 내가 찾는 곳은 그런 깃발이 아니라 낭인막이오, 낭인막!”

유성탄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자의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어졌다.

“네 살 때 천자문을 뗀 사람이 어찌 이렇게 크게 쓰인 글도 못 읽는 거요? 여기 깃발에 써 있지 않소 낭, 인, 막! 바로 깃발 뒤가 낭인막이오.”

그자는 유성탄에게 글자를 가르치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주더니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그자의 눈에는 ‘무식한 놈이 뻥치고 있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유성탄의 주먹이 날아올랐다. 몇 대 더 때리고 손가락도 부러뜨리려 했지만 단 한 방에 그대로 기절해 버리니 그냥 봐주는 유성탄이었다.

“무식하게 생긴 놈이 바로 여기가 낭인막이면 그냥 여기라고 하면 되지 말이 많아!”

유성탄은 죄 없는 남자를 때리고 나서는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주위에는 유성탄이 아까 덩치를 쓰러뜨린 후 계속 호기심에 따라다니던 낭인들이 십여 명이 넘게 보고 있었다.

“내가 이 정도 글도 못 읽는 줄 아냐! 낭인막… 나도 다 안다 이거야!”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건만 혼자 쪽팔린 유성탄은 주위에 들리게 크게 말하고는 깃발 뒤에 서 있는 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세긴 한데… 엄청 무식한 것 맞지?”

누군가가 낭인막으로 들어가는 유성탄을 보며 말했다.

유성탄이 낭인막으로 들어가자 안에 앉아 있던 귀면호리 마효춘은 의아한 눈으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몸은 삐쩍 말라가지고 머리는 엄청 크구먼. 이상하게 생긴 놈이다.’

‘얼굴은 귀신같이 생긴 놈이 눈초리는 완전 여우같이 생겼네. 여기는 이상하게 생긴 놈들이 무척 많군.’

유성탄과 마효춘은 서로간의 첫 대면의 감상을 속으로 했다.

“새로운 낭인인가? 얼굴을 보니 이름은 없는 무명소졸 같은데 용병이 되려고 왔느냐?”

귀면호리는 상당한 고수였다. 물론 낭인 중에서다. 그가 보기에 아무런 내공의 흔적이 없이 삐쩍 마른 유성탄이 가소로웠다.

“여기가 낭인막인가? 얼굴을 보니 별 볼일 없어 보이는데 네가 여기 책임자냐?”

대뜸 반말부터 하는 마효춘에게 유성탄이 질세라 같이 맞먹는다.

‘으잉! 감히 나한테 막말을… 내가 잘못 봤나……?’

마효춘은 호리란 말이 명호에 들어갈 정도로 간사하고 머리회전이 빨랐다. 그래봐야 잔머리였지만. 유성탄이 세게 나오자 자신이 무공을 잘못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유성탄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놈 봐라! 너 내가 몇 살인 줄 알아? 세상 무서운 것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말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구나!”

마효춘은 다시 유성탄을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내공의 흔적이 없었다. 물론 자신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고수일 확률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고수가 용병이 된다고 낭인촌에 올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점쟁이냐? 말해 주지도 않은 나이를 내가 어떻게 아냐? 그래 몇 살인데?”

“우하하하! 나 귀면호리가 60년을 살아왔지만 너 같은 호래자식은 처음 보는구나. 정말 매운 맛을 봐야지 안 되겠구나! 도대체 네 정체가 뭐냐?”

귀면호리는 소리치는 척하며 자신의 나이를 알렸다. 유성탄도 알아들었다. 하지만 막상 듣고 보니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충동에서 몇 년이나 있었는지 짐작도 안 갔다.

“우하하하!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지만 너같이 말을 함부로 하는 늙은이는 처음 보는구나. 나는 영원한 대형(大兄) 유성탄이다.”

낭인막 안에서는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낭인막을 이루고 있는 천막을 세우는데 돈이 꽤 든 것이었다.

무식한 낭인들이다 보니 싸우다 보면 천막 따위는 순식간에 부서질 게 뻔했다. 그때마다 천막을 다시 세운다면 벌어들이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나갈 수 있었다. 마효춘은 성질대로 한다면 당장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이름 유성탄. 특기는 뭐냐?”

더 이상 유성탄에게서 고운 말이 나오기를 바라기 힘들다고 느낀 마효춘은 혼은 다음에 내기로 하고 우선 명부부터 작성하기로 한다.

“특기? 특기가 뭐냐? 그렇게 무식한 말 말고 좀 유식한 말로 물어봐라.”

‘뭐 이런 자식이 있어?’

마효춘은 유성탄을 쳐다보더니 다시 말했다.

“네가 제일 잘하는 게 뭐냐?”

“다음부터는 그렇게 유식한 말만 써라. 나는 무식한 놈을 싫어한다. 내가 잘하는 것은… 음…….”

유성탄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뭘 제일 잘하는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것이 너무 많다. 벌레 잡기도 잘하고, 벌레 먹기도 잘하고, 또 벌레 찾기도 잘한다.”

‘이 자식 정말 엄청 짜증나는 놈이다. 계속 얘기하다가는 내가 제풀에 열받아 죽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특기에 벌레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싸움을 해본 경험은 얼마나 되냐?”

마효춘은 유성탄과 계속 대화를 나누다가는 머리만 아파올 듯하자 우선 빨리 끝내고 나가면 그때 손을 봐줄 생각을 한다.

“경험? 내가 분명 무식한 말은 싫다고 했는데!”

‘이런 쳐 죽일 놈……!’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마효춘은 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참기로 한다.

“휴우! 참자… 경험은 싸움을 몇 번이나 해봤냐는 말이다.”

“몇 번이라… 흠!”

유성탄은 자신이 몇 번이나 싸워봤는지 세어보기 시작했다.

“장쾌를 몇 번 때린 적이 있었고…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엄청 많다.”

유성탄은 손가락 열 개를 넘는 숫자는 모두 엄청 많다고 한다. 마효춘은 새삼스럽다는 듯이 유성탄을 다시 쳐다보았다. 엄청 많이 싸웠다면 내공이 없어도 실력이 좋을 수 있었다. 어차피 용병이 투입되는 곳은 일 대 일 싸움이 아닌 거의 전쟁 수준의 싸움이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유성탄이 말하는 싸움이 일곱 살 어린애들의 싸움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얼마를 받기를 원하느냐?”

“얼마?”

“돈 말이다, 돈! 정말 짜증나는 놈이군!”

유성탄이 얼마? 하며 반문하자 마효춘은 짜증난다는 듯이 설명했다.

“나도 그건 안다. 얼마 그러면 당연히 돈이지 그것도 모르는 놈이 있냐? 이 자식은 생긴 것도 꼭 귀신같이 생겨가지고 무식하기는…….”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마효춘의 손과 볼살이 떨리고 있었다. 극도의 분노를 참는 것이었다.

‘이놈! 명부 작업만 끝나고 나가기만 해라. 아예 사지를 부러뜨려서 기어 다니게 만들어주마.’

마효춘은 억지로 참으며 다시 말했다.

“얼마나 받았으면 좋겠느냐?”

“나는… 무지 많이 받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얼마나 받기를 원하냐고!”

“정말 무식한 놈이구나. 내가 말했지 않느냐! 무지 많이라고!”

“마 대주, 놔둬 봐요!”

유성탄이 낭인막을 나가자 마효춘은 즉시 따라 나가려 했다. 도저히 유성탄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의별 군상들이 다 모이는 낭인촌이라지만 세상에 저런 호래자식은 처음 봅니다. 정말 화나게 하는 놈입니다. 그대로 놔둔다면 시끄러워질지도 모르니 약간이라도 혼을 내서 세상을 좀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호호호! 놔두세요. 재미있잖아요. 저런 식으로 생활한다면 마 대주가 아니라도 혼내 줄 사람은 낭인촌에 널려 있어요. 만약 아무도 혼을 못 낸다면 마 대주도 힘들다는 말이구요. 저런 막무가내식 무식한 행동을 가지고도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면 뭔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마효춘은 그 여인을 극히 존중하는지 공손하게 말하며 화를 참는다.

일주일이 지났다. 낭인촌은 발칵 뒤집히기 시작했다. 유성탄이 첫날 한방에 눕혀버린 자는 낭인촌에서는 서열 십위 안에 드는 적발귀였다. 당장 유성탄의 몸값이 올라간 것은 당연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유성탄의 모습에서는 그리 강하다 싶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적발귀를 우연히 이긴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고 자신의 서열을 높이고 싶은 자들의 계속적인 도전이 이어졌다.

그리고 곧 일권박살이라는 좀 무식한 별명이 붙었다. 누구도 유성탄의 권에 걸리기만 하면 그냥 뻗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의 이름은 한 달이 안 가 다시 바뀐다. 유성탄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 깐죽거리는 유성탄의 말투와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무식, 거기다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올라오는 주먹세례에 유성탄을 마질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질대형이라는 유성탄의 이름은 낭인촌 최고의 서열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아가씨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아주 무서운 놈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저도 들었어요. 마질대형이라고 한다면서요?”

“예, 그놈하고 한번 엮이면 여간해서는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답니다. 어찌나 찌질대면서 괴롭히는지 아주 천하의 악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들었는지 대형 소리 듣는 것은 되게 좋아해서 마질대형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누구한테 무공을 배웠는지는 알아내셨나요?”

“무공이 아니라는데요…….”

“무공이 아니면?”

“무조건 막싸움이랍니다. 초식도 없고 형식도 없답니다. 싸우는 방식도 치사해 가지고 최소한의 예의도 없고… 하여간 악질이랍니다.”

“아무리 그래도 막싸움 실력으로 권이나 장을 쓰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검이나 도를 쓰는 사람을 이기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몸은 무척 빠른 모양입니다. 하지만 싸우는 것을 본 낭인들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절대로 보법 따위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알았어요. 어쨌든 특이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니 본문에서 회유할 수 있다면 해보세요.”

“문에서 회유하실려고요? 제 생각으로는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익보다는 손해를 끼칠 확률이 더 많습니다.”

“호호호! 저 정도를 조종하지 못한다면 제가 어찌 만사무불통녀란 말을 듣겠어요.”

* * *

내가 낭인촌에 드니까 모두 나를 보자마자 존경하면서 대형이라고 받드는 거야, 거기다 전부 다 나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데 역시 나 유성탄은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

* * *

“아가씨! 큰일입니다. 그 악질놈 때문에 낭인촌을 떠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마질대형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여간에 어찌나 사람들을 괴롭히는지 고생에 이골이 나 있다는 낭인들이 도망을 가고 있습니다.”

“호호호! 정말 대단하군요. 도대체 어떻게 괴롭히는데요?”

“애도 아니고 그냥 이유도 없이 괴롭히는데 꼭 이유를 댄답니다.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게 잘생긴 사람은 못생겼다고 때리고, 못생긴 사람은 잘생겼다고 때리고, 하여간에 비위를 맞출 수가 없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동전 한 문만 줘도 얼마간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서 전부 다 동전 열 문 정도는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닌다는군요.

거기다 그놈만 나타나면 식당도 안 된답니다. 아예 근처에 사람들이 얼씬거리지를 않는답니다. 공짜로 밥을 주면 그때서야 나간다는군요.”

“호호호! 정말 치사하군요. 호호호!”

하후란은 정말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더니 귀면호리에게 말했다.

“철검보에 연락해서 진짜 싸움을 잘하는 용병이 나타났다고 전하세요.”

“철검보예요? 아가씨께서 그놈을 본문에 끌어들인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철검보에 보내면 안 됩니다. 철검보는 굉장히 거친 곳입니다. 그놈 성격에 거기가면 십중팔구 용병생활도 하지 못하고 철검보의 무사들에게 맞아 죽거나 병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보내려고 하는 겁니다. 가서 죽거나 병신이 될 정도라면 본문에 필요하겠어요?”

* * *

“얼마 줄 건데?”

삐딱하게 반말을 지껄이는 유성탄을 보며 귀면호리는 귀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참고 있었다.

‘무식한 놈! 어른한테 하는 행동하고는… 에이! 아가씨만 아니면 그냥……!’

“매일 은 한 냥씩 받을 것이다. 그리고 싸움이 벌어지면 하루에 은자 다섯 냥이다.”

“겨우 그거냐? 그럼 안 한다. 내가 여기서 하루에 얼마나 버는지 아냐? 하루에 열 냥도 더 번다.”

“네가 버는 돈은 동전이고 거기서 주는 돈은 은전이다, 은전! 도대체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귀면호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너 내가 동전과 은전도 구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금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은전이 동전보다는 엄청 좋은 거다.”

“나도 은전이 동전보다 엄청 좋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어떻게 은전 한 냥을 하루에 준다는데 그깟 동전 몇 개 여기서 번다고 일을 안 하려고 한다는 말이냐?”

‘이것 봐라. 은전 한 냥이 그럼 동전 열 냥보다 좋다는 말인가 본데.’

유성탄은 속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너는 은전 한 냥이 동전 몇 냥과 같은지 아냐?”

“당연히 나야 알지!”

“그럼 몇 냥이냐?”

귀면호리는 유성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네가 모르니까 그러지?”

“난 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은 안 한다. 그리고 너는 지금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네가 먼저 말해야 한다.”

“코웃음하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다른 사람은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나는 코웃음이 상관있다. 네가 먼저 말해야 한다.”

유성탄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부하가 치미는 귀면호리였지만 하후란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동전 백 냥이 은전 한 냥이다.”

‘뭐라고! 그렇다면 매일 동전 백 냥을 받는다는 말이 아닌가. 거기다 싸움이 나면 은전 다섯 냥이라고 했으니까… 우와! 동전 삼백 냥이다.’

유성탄은 속으로 맞지도 않는 엉터리 계산을 하더니 용병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겠다.”

‘무식한 놈! 그래도 동전 백 냥이 열 냥보다 크다는 것은 아는가 보구나.’

귀면호리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가는 곳은 남무림의 대파인 철검보다. 가서 말 안 듣고 그러면 돈을 못 받게 되니 처신을 잘해야 한다. 알았냐!”

“알았다. 언제 출발하냐?”

“내일 아침이다.”

* * *

“잘 떠났나요?”

“그놈이 돈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말 안 들으면 돈을 안 줄 거라고 했더니 조용히 따라가더군요.”

“돈을 좋아한다… 부려먹기에는 정말 좋은 조건이군요.”

하후란의 얼굴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 * *

“뭐야! 또 용병이야?”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힘도 못쓰고 죽는 놈들을 뭐 한다고 자꾸 사오는지 모르겠군.”

유성탄을 포함해 열 명의 용병을 산 철검보의 총관이 용병들을 데리고 철검보에 도착하자 철검보의 무사들은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이 인상을 구기며 한마디씩 했다.

철검보는 안남의 비월문이 쳐들어오자 가장 먼저 싸움을 주장했던 무척 패도적인 문파였다. 사파는 아니었지만 누구도 정파라고는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들의 행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정파들보다 더 정직한 문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이 문제였다.

좋은 일을 해도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만드는 그 과격함이 문제였다. 당연히 무림인들로부터는 경원시되고 있었는데 비월문과의 싸움이 벌어지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 어느 싸움에서든지 가장 용감하게 싸우는 철검보를 무시하는 문파는 남무림에는 더 이상 없었다. 당연히 철검보의 무사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했고 돈에 팔려 싸우는 낭인들은 그들에게 개만도 못한 종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저 새끼들… 그냥 가서 한 대씩 먹여, 말아?’

귀가 너무 밝은 유성탄이 그들의 말을 못 들을 리 없었다. 평상시의 성격대로라면 당장 달려가 치도곤을 놓았겠지만 요즘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답지 않게 참고 만다.

“자! 우선 자네들 이름을 여기에 적고 가족이 있으면 그 주소도 적도록 하게.”

철검보 총관 배장손은 철검보에서는 가장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말만이었다. 말하는 것만 듣고 우습게보고 함부로 했다가는 순식간에 다리 하나 부러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당연히 유성탄을 제외한 모두는 아무 말 없이 각자가 받은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자네는 왜 안 적는가?”

배장손이 팔짱을 끼고 꿈쩍도 안 하는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이런 것을 적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개인정보는 모두의 비밀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유성탄이 오랜만에 무척 유식한 말을 한다.

‘개인정보? 뭔 말 하는 거야? 이름하고 지인 주소를 적으라는데, 들은 대로 짜증나는 놈이로군.’

이미 귀면호리에게 유성탄이 싸움은 잘하지만 말하는 게 무척 싹수없고 짜증나는 놈이니 말하는 것은 귀로 흘려들으라는 언질을 들은 그였지만 저절로 치미는 화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자네를 부르려면 이름을 알아야 부르지 않겠나, 거기다 여기는 전쟁터나 마찬가지라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자네가 죽기라도 하면 자네가 번 돈이랑 자네의 개인물품을 보내줄 곳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배장손의 말인즉슨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자기 부모가 어디에 사는지 이름이 뭔지 모른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기 싫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 조금 익혔던 천자문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나의 정보를 남이 아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저는 쓸 수 없습니다.”

버티는 유성탄을 같이 온 낭인들이 쳐다보며 한마디씩 속으로 한다.

‘뻔하구나. 무식한 놈!’

‘저거 자기 이름자도 쓸 줄 모르는구나. 저런 놈한테 매일 맞았으니…….’

배장손도 수많은 낭인을 상대하며 는 것은 눈치뿐이었다. 배장손은 자신이 직접 붓을 들며 말했다.

“이름이 뭔가? 내가 쓰겠네.”

“나도 쓸 줄은 아오. 내가 쓸 줄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한다면 안 됩니다.”

‘진짜 짜증나는 놈이로군. 귀면호리가 부탁해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어째 기분이 안 좋군.’

“알았으니 말해 보게.”

그제서야 유성탄이 입을 열었다.

“유성탄이오.”

“유 자는 무슨 유 자를 쓰는가?”

“유 자가 유 자지 무슨 말을 그렇게 무식하게 하는 거요? 혹시 유 자 못 쓰는 거요?”

배장손은 어이가 없는지 유성탄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가장 흔한 유 자로 썼다.

“그럼 성 자와 탄 자는 무슨 자인가?”

배장손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딱하다는 얼굴로 배장손을 쳐다보며 말했다.

“성 자는 성이고 탄 자는 탄 자요. 그렇게 무식해서 총관하려면 무척 힘들겠소.”

“킥킥!”

옆에 서 있던 낭인 중 하나가 결국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가는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주소를 말해 보게.”

배장손은 더 이상 입씨름을 하기 싫은지 그냥 다음으로 넘어갔다.

“장쾌 집 앞집이오.”

“……?”

배장손은 멍하니 유성탄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쾌가 누군가?”

“내가 어렸을 때 친구요.”

배장손은 짐작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장쾌 집 주소를 말해 보게.”

“우리집 앞집이오.”

“하하하하!”

배장손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글을 써 나갔다.

주소 모름.

진짜 무식한 놈이니 지시를 내릴 때 알아들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함.

“오삼!”

배장손은 전부 다 쓴 종이를 받더니 밖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제법 덩치가 있는 젊은 무사 하나가 들어왔다.

“여기 새로운 용병이니 용병 숙소로 옮기고 은자 한 냥씩 지급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저 새끼가 왜 마지막에 크게 웃었을까? 이상하게 성질나게 만드는데 돈이고 뭐고 두들겨버리고 왜 웃었는지 물어볼까?’

유성탄은 배장손의 마지막 웃음이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배장손이 은자 한 냥씩 지급하라는 소리에 참고 만다. 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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