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유룡제검 남궁무
“야! 아무래도 나는 무림은 체질에 안 맞는 것 같다. 뭐가 이렇게 무서운 집단이 사방에 있는 거냐? 어디 무서워서 누구랑 말이나 함부로 하겠냐?”
고을을 빠져나온 유성탄은 가까운 산 한적한 곳의 그늘이 진 나무 밑에 앉더니 한탄하듯이 말했다.
“아직은 우리가 세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곧 세력을 모으고 힘을 갖게 되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강태웅, 너는 만날 세력이 어쩌구 의리가 어쩌구 그러는데 이런 식으로 어느 세월에 세력을 만들겠냐? 내 말대로 야바위단을 만들어서 돈이나 벌자니까!”
“대형 같은 영웅이 그런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데에 전 정말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형의 아우로서 대형의 앞길을 열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야 언제 죽어도 좋고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대형께서는 안 됩니다. 대형은 존경을 받으며 사셔야 합니다.”
비장하게 말하는 강태웅의 말에 유성탄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아이… 정말! 얘 때문에 내가 마른다니까. 어르고 뺨 치는 것도 유분수지. 도대체 난 그런 거 필요 없다는데 뭔 책임과 의무까지 나오는 거야!’
하지만 유성탄은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한다.
강태웅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머지 아우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유성탄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재미있군요.”
갑작스런 목소리에 모두는 벌떡 일어서더니 무기를 빼 들었다.
“누구냐!”
“아까 봤지요?”
그가 그토록 가까이 올 때까지 아무런 기척도 못 챈 강태웅과 아우들은 바짝 긴장하여 쳐다보았다. 하얀 마의에 준수한 얼굴을 가진 남궁무가 섭선을 펴고 살랑살랑 부치면서 다가왔다.
강태웅은 급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는 강태웅이라고 합니다. 남궁 공자님과 대형 사이의 일은 이미 일단락된 줄 알았는데 어찌 이곳까지 찾아오셨는지요?”
강태웅의 점잖은 말에 남궁무는 약간 놀라며 아직도 앉아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성탄과 강태웅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대형이 바뀐 것 같구려.”
남궁무는 강태웅의 말을 듣더니 앉아 있는 유성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희 대형께서는 그만한 자격을 가지셨습니다. 저 같은 것은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남궁무는 강태웅이 비록 낭인이고 모습이 무척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대단히 반듯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막돼먹은 자들은 아닌 듯하니 쉽게 말하겠소이다. 원래는 저자의 말투와 행동이 지저분해서 좀 혼 좀 내주려고 왔었소. 하지만 그대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소. 당신 대형이라는 저자에게 내게 욕을 한 것에 대해 공손히 사과하고 다시는 여자를 희롱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하면 이 정도에서 모든 것을 잊겠소.”
모두는 남궁무의 말을 들으며 ‘역시!’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강호의 소문대로 공명정대한 대협의 풍모를 젊은 나이에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뭐! 나보고 공손히 뭘 하고 무엇을 약조하라고? 이게 남궁가라고 해서 좀 봐주려고 했더니 아예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려고 드네!”
그러나 유성탄은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양아치였다. 그렇지 않아도 백리빙 앞에서 좋은 역을 남궁무에게 빼앗긴 것이 두고두고 마음 아프던 중인데 사과를 하라는 남궁무의 발언은 유성탄의 꼭지를 돌게 만들었다.
“남궁파 너! 흑혈신마라고 들어는 봤냐?”
남궁무는 유성탄이 자기를 남궁파라고 부르자 피식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유성탄이 아예 오늘 죽으려고 그런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눈이 커진다.
“흑혈신마를 아냐?”
아무리 남궁세가라 해도 흑혈신마와 관계가 있는 자를 건드린다는 것은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는 본 모양이구나. 좋다, 내가 비밀을 가르쳐주마! 한 달 전 항산에서 나와 흑혈신마가 만나 공전절후의 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내게 턱이 돌아간 흑혈신마는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쳤다.”
유성탄의 말에 남궁무보다 아우들이 더 놀란다. 뻥을 쳐도 너무 심하게 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성탄은 남궁가가 대단하다는 말에 보통 뻥은 안 먹힐 것으로 보고 치려면 왕창 칠 생각으로 말한 것이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군요. 하지만 세상에 뻥을 치려면 그래도 좀 그럴듯해야 하는 법입니다. 흑혈신마가 그대에게 맞고 눈물을 흘리며 도망을 쳤다니… 잘못해서 흑혈신마가 듣게 되면 그대의 목숨이 백 개가 있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씨! 너무 심했구나. 그냥 싸웠다 정도로 끝내는 건데…….’
유성탄도 남궁무의 말에 자신의 뻥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금세 눈치 챘다. 그렇다면 다음은…….
“너 내 팔뚝 볼래? 너 같은 샌님은 내 팔에 걸리면 그냥 죽는다.”
유성탄이 다른 걸로 겁을 주기 위해 팔을 걷어 올리더니 알통을 만들어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던 남궁무는 빙긋 웃더니 자신의 팔을 걷어 올렸다.
‘이 씨! 얼굴은 샌님 같은 것이… 뭔가 일이 안 풀리네.’
놀랍게도 남궁무의 팔은 삐쩍 마른 유성탄의 팔뚝보다 더 두꺼웠다.
“그래 좋다. 니 팔뚝 굵다.”
유성탄은 그동안 본 자들과는 달리 준수한 얼굴에 유식이 철철 흐르는 풍모 거기다 귀티가 흐르는 남궁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팔뚝까지 자기보다 더 두껍자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런, 잔수까지 쓰시는군.”
유성탄이 말도 없이 선방에 들어가자 남궁무는 가볍게 놀리듯 한마디 하더니 섭선을 들어 유성탄의 주먹을 흘려보내고는 그대로 남궁가의 제왕각으로 유성탄의 낭심을 올려 쳤다.
“으아악!”
낭심을 정통으로 차인 유성탄은 자신의 남자를 잡더니 떼굴떼굴 굴렀다. 진짜 고통이 심한 듯했다.
“대형!”
그러자 아우들이 소리를 크게 지르며 모두 무기를 빼 들고는 유성탄의 앞을 가로막고는 남궁무를 향해 섰다.
유성탄이 크게 당했다고 생각한 그들로서는 상대가 되건 안 되건 죽기 살기로 싸워볼 요량이었다.
‘일개 낭인들인 줄 알았는데 그 의리가 대단하지 않은가?’
남궁무는 생각 외로 그들의 사이가 진정으로 뭉쳐 있는 듯 하자 의외라는 듯이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았다.
‘하여간에 얘들 때문에 될 일도 안 된다니까… 에이!’
죽은 척을 하거나 크게 다친 척을 하다가 적이 가까이 오면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기습으로 몇 번 재미를 본 적이 있었던 유성탄은 이번에도 그 방법을 쓰기 위해 온갖 연극을 다 한 것이었는데 아우들의 충정으로 그대로 무산되어 버리자 구시렁거리며 일어섰다.
“저리 비켜라, 이놈들아! 하여간에 니들 때문에 내 비장의 초식이 허무하게 무산되어 버렸잖아!”
이미 틀렸다고 생각한 유성탄이 일어나자 아우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쳤다.
‘뭐야? 그럼 방금 그게 연극? 하여간에 대형 잔머리 쓰는 거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헤헤헤!’
마동파가 여전히 존경한다는 눈으로 유성탄을 쳐다보며 속으로 웃는다. 그리고 나머지 아우들도 유성탄의 속셈을 눈치 채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섰다.
“야 이 치사한 놈아! 남자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거기를 차냐? 하여간에 배웠다는 놈들이 더 무섭다더니!”
거기를 발로 찬 것과 배운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이 떠들며 멀쩡하게 앞에 서자 이번에는 남궁무가 놀란다.
‘아니 분명 제왕각에 제대로 걸렸는데… 어떻게 저리 빨리……?’
남자의 낭심이란 단련이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로 누구나 거기를 맞는 즉시 고꾸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성탄은 분명 발에 제대로 걸린 것을 느꼈는데 전혀 이상 없다는 듯이 서 있는 것이었다.
“제법 몸이 단단한 친구로군. 하지만 아무리 몸이 단단해도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오.”
남궁무는 말을 마치자마자 남궁가의 대연신법으로 유성탄의 몸 가까이 다가서더니 섭선으로 그대로 요혈을 찔러왔다.
하지만 흑혈신마와의 싸움 이후 몸이 각성한 유성탄도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아니! 이게……?’
간단히 제압해서 다시는 여인들에게 함부로 구는 버릇이나 고쳐주고 떠나려고 했던 남궁무는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 유성탄에게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섭선이 분명 요혈을 찔렀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이 섭선이 튕겨져 나오고 육합권이 분명한데 갑자기 주먹의 방향이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날아오는 등 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처음에는 제법 피한다고는 해도 각이고 권이고 제법 적중을 시킬 수 있었는데 갈수록 그것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분명 보법은 아닌데 몸이 어찌나 유연한지 아슬아슬하게 그의 공격을 피하면서도 이제는 한 대도 안 맞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이제 알겠지!”
유성탄은 싸우면서 이상할 정도로 신이 나고 있었다.
몸이 자신이 생각하자마자 반응을 하고 손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그 힘이 느껴지니 싸움이 점점 재미있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유성탄은 완전 무방비 상태의 남궁무의 턱을 보게 된다.
“드디어 걸렸구나, 이놈!”
유성탄이 좋아라 하고는 가까이 다가서며 턱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그의 권이 턱에 닿기도 전에 유성탄은 자신의 가슴이 후끈한 것을 느끼며 뒤로 급히 물러섰다.
남궁무가 턱을 보인 것은 바로 함정이었다.
남궁가의 절기는 검이었다. 남궁무 역시 섭선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검이 주 무기였다.
유성탄이 급히 뒤로 물러나서 보자 어느새 남궁무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검도 차고 있지 않던데 어디서 검이 나온 거야?’
유성탄은 손으로 가슴을 만지며 생각했다.
남궁무의 손에 들린 검은 허리에 차고 다니는 연검이었다. 겉보기에는 요대와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예리한 검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구나. 분명 검이 몸을 벤 것 같았는데…….’
남궁무는 분명 자신의 검이 유성탄의 가슴을 훑었다는 것을 감촉으로 확실히 느꼈었다.
하지만 유성탄의 갈라진 가슴팍의 옷에서는 피 한 방울 비치지 않았다.
“이 씨! 한 벌밖에 안 남았는데…….”
유성탄은 검에 의해 갈라진 자신의 옷을 쳐다보며 뭐라고 구시렁거린다.
남궁무는 유성탄의 가슴을 보며 숨을 한번 길게 들이마셨다.
“사술을 쓰는 자들인지는 몰랐소!”
남궁무의 외침에 유성탄은 강태웅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강태웅이 그때다 하고는 그들 사이로 뛰어들며 외쳤다.
“대형, 싸움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남궁 공자님께서도 잠시만 손을 거두어주십시오. 대형께서 강호의 경험이 적어 이따금 사람들에게 결례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절대로 우리는 나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형께서 특이한 외공을 익히셔서 그런 것이지 사술은 절대로 아닙니다.”
강태웅은 절대로라는 말을 연달아 사용하며 둘의 싸움을 말렸다.
남궁무도 이미 오십 초를 넘게 사용하면서 약간은 지쳐오고 있는 터였고 끝까지 덤벼드는 유성탄에게 은근히 질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강태웅, 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내가 조금만 더 싸우면 저놈을 아주 곤죽을 만들어 놓을 텐데 왜 여기서 싸움을 멈추라는 거야?”
아직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유성탄은 기세등등해서 소리쳤다. 다행히 흑혈신마와 같은 위력을 지니지 못한 남궁무의 공격이 전혀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형! 죄송합니다만 남궁 공자님께서는 이미 소협 소리를 듣는 강호의 후기지수 중 협의가 가장 많은 분이십니다. 그런 분과 대형이 싸우실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낭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강호의 정의를 지키는 사람은 존경해야 한다고 봅니다.”
“뭐야! 그럼 나보고 저놈을 존경하라는 말이냐? 난 그렇게 못 한다.”
“존경은 하지 않으신다 해도 친분은 가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태웅은 전혀 자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유성탄을 달래며 어떻게든 남궁무와 인연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강태웅은 그들의 싸움을 보면서 남궁무가 강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유성탄에게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남궁무가 져서 유성탄에게 구타라도 당한다면 그들은 남궁세가와 철천지원수가 될 것이고 그것은 중원에서는 생활하기 불가능해진다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결국 유성탄이 지거나 아니면 서로 간에 우의를 돈독히 하는 방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남궁무도 이미 유성탄이 하는 짓이나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고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공자가 그대를 오해한 것 같소. 맞소. 당신 말대로 희롱을 할지 아니면 그녀들에게 친절하게 도움을 주려고 했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든 나의 실수가 큰 것 같소이다. 내 사과하겠소.”
남궁무는 통이 큰 사내대장부였다. 유성탄과 싸워보자 어쩌면 자신이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현재 유성탄의 실력으로 희롱을 할 생각이었다면 경험상 그냥 그렇게 돌아갈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 유성탄 대형은 지금까지 싸우다…가도 친해진 적이 많다.”
절대 화해 불가를 외치려던 유성탄은 아우들이 초조하게 자신을 쳐다보자 더 이상 자신의 고집만 우길 수는 없었다.
결국 말하는 도중 뜻이 바뀌었고 그 덕에 말이 이상하게 됐다.
* * *
“분명하냐?”
“예! 틀림없습니다. 그놈들은 산길을 통해 안휘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안휘로 들어간다.”
마룡방 청룡대 대주 창평추는 산중턱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살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대주님, 안휘에는 남궁세가가 있습니다. 우선 방의 허락을 얻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청룡대 조장 부대성은 창평추의 결정에 불안한 듯이 말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감히 마룡방의 황룡대를 몰살시킨 놈이다. 이미 무림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다른 지역으로 도망쳤다고 우리가 그냥 놔둔다면 아마 얼마 안 가 어중이떠중이 전부 다 본 방을 쉽게 건드려도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천하에 마룡방을 건드리고 도망칠 곳은 세상에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부대성은 창평추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쉬고 있는 대원들 쪽으로 다가가더니 소리쳤다.
“우리도 안휘로 들어간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황룡대를 몰살시킨 놈을 잡으러 온 것이지 안휘의 무림세력과 전쟁을 하기 위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각별히 행동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황실에서 무림세력이 삼백 명 이상의 무사를 거느리지 못하도록 제어를 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키는 문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천 명이 넘는 문파가 수두룩했지만 관에서도 모른 척할 뿐이었다.
특히 큰 문파일수록 더 지켜지지 않았는데 모든 문파가 삼백 명을 지킨다면 큰 문파로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뭐라고! 수상한 자 수십 명이 우리 세력권에 들어왔다는 말이냐?”
안휘에는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가 없었다. 가장 큰 세력이 무림오대세가니 팔대세가니 무림의 호사가들이 말하는 무림의 가문을 얘기할 때 꼭 들어가는 남궁세가였고 그 이외에는 남궁세가와 연을 맺고 있는 무관들이 각 지역에서 힘을 쓰고 있었다.
가능의 영천무관은 제자가 무려 백여 명을 상회하는 무관 중에서는 상당히 큰 곳이었다.
“흑도인이더냐?”
영천무관의 관주인 양규는 마룡방의 청룡대가 가능에 들어서자 곧 보고를 받았다.
“저희들도 흑도인이면 그냥 손을 좀 봐서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보통 고수가 아닌 듯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방파의 인물이란 말인데… 감히 누가 이곳을 침범한다는 말인가?”
패황(覇皇) 영락제가 황제가 된 후 천하는 급속도로 안정을 찾았다.
여러 차례의 북벌로 국경도 안정을 찾았고 힘을 바탕으로 한 내치에 치안도 대단히 좋아지면서 무림인들끼리의 싸움도 함부로 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 있었다.
관과 무림의 불간섭 원칙까지 무시하며 무림 방파의 제자들을 삼백 명이 넘지 못하는 칙령까지 내릴 정도로 현재는 관이 무림을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안휘는 중원 중의 중원이라고 할 정도로 문물의 생산이 풍부했고 각 지역의 산물이 모였다 퍼지는 상업도시도 무척 발달해 있었다.
당연히 무림인들이 함부로 싸움을 했다가는 당장 관의 철퇴를 맞을 수도 있었다.
“제자들을 모이라고 해라. 내가 직접 나가봐야 할 것 같다.”
“알아봤느냐?”
“이 각 전에 완전 거지꼴을 한 흉악하게 생긴 놈들이 객점에 들러 음식을 먹고는 돈도 안 내고 갔다고 합니다.”
“치사한 놈들이군. 어디로 갔는지는 알았느냐?”
“저쪽으로 갔다는 것만 알아냈습니다.”
부하가 가리키는 쪽을 보며 창평추의 얼굴에는 다시 살기가 짙게 퍼져 나왔다.
“가자! 거의 다 온 것 같다.”
창평추와 청룡대원 사십여 명이 움직이자 주위에 있던 상인들은 모두 허겁지겁 몸을 피하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 대단한 자들 같은데… 왜 그 허접스런 낭인들을 쫓고 있을까요?”
때마침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던 정자운과 백리빙은 청룡대원 중 하나가 들어와 식당주인과 하는 말을 듣고는 흥미가 동했는지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은근슬쩍 돈도 안 내고 사라진 유성탄 일행 때문에 식당주인은 열이 받아 있었는지 청룡대원이 묻는 말에 침까지 튀기며 흥분해서 떠들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이 누구를 찾는지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림이 조용했었는데… 저들은 무림 오대사파 중 하나인 마룡방의 인물들이다. 그런데 어찌 안휘까지 들어왔을까?”
정자운은 견문이 많은지 청룡대의 복장만 보고도 마룡방인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보았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쫓아가 볼까요? 저들 하는 행동을 보니 그대로 놔두면 아까 그 웃기는 작자도 목이 날아갈 것 같은데…….”
백리빙은 자신을 엄청 웃긴 유성탄이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듯 말했다.
“글쎄……?”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정자운이 결정했는지 일어서며 말했다.
“가보자.”
“예!”
정자운이 결정하자 백리빙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듯이 좋아서 대답을 하더니 앞장을 서서 청룡대가 사라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아니! 그렇다면 당신들이 낭인칠웅이란 말이오?”
남궁무는 유성탄 등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다가는 그들이 낭인칠웅이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저희들은 일개 낭인들이고 낭인칠웅이라는 이름도 우리끼리 만든 것인데 남궁 공자께서 들으신 적이 있으신 것같이 말하시는군요.”
입이 부어서 말도 안 하고 돌아누워 있는 유성탄을 대신하여 강태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태웅으로서는 남궁무와 친분을 맺는다면 손해날 것이 없었다.
“지금 낭인칠웅의 이름이 짜하니 강호에 퍼지고 있지요.”
“예?”
강태웅을 비롯한 모두는 남궁무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돌아누워 있던 유성탄도 흥미가 생겼는지 자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하하하! 정작 본인들은 알지도 못하는 모양이구려. 낭인칠웅이 항산에서 마룡방의 광견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견준구가 이끌던 황룡대를 전멸시켰다고 소문이 쫘악 퍼졌지요.”
“싸웠다가 아니고 전멸이라고 소문이 났단 말입니까?”
마동파가 참지 못하고 나서며 물었다. 모두의 눈에는 의아한 빛이 가득 차서 서로 쳐다보았다.
“소문이 잘못되었습니까?”
남궁무도 그들의 행동에서 뭔가를 느끼고는 물었다.
“저희가 마룡방의 황룡대와 싸운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요? 분명 견준구와 황룡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남궁무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얼굴이 확 변했다. 싸운 것과 전멸시킨 것은 그 사안이 현저하게 달랐다. 싸운 것은 언젠가 그들이 세력을 모아 힘을 기르면 유야무야될 수도 있었지만 전멸시켰다면 마룡방과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것이나 다름이 아닌 것이다.
‘큰일 났구나. 이렇게 되면 계획이 완전히 어긋날 텐데.’
마룡방과 원수가 되었다면 누구도 그들이 세운 세력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했다.
낭인칠웅과 관계를 맺으면 마룡방과 원수가 되는 것인데 누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그들의 밑으로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태웅 형님! 이건 분명 무슨 음모가 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이 대형에게 맞아 모두 기절하거나 힘을 못 쓰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장면을 보다가 그들을 모두 죽이고 우리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분명합니다.”
표도행이 즉시 상황을 파악한 듯이 추리해 냈다.
남궁무는 음모라는 말보다 유성탄이 황룡대원들을 모두 기절시키거나 무력화 시켰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더욱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유성탄 혼자서 그런 것 같지 않은가.
“남궁 공자님 덕에 중요한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겠습니다.”
강태웅은 포권을 하며 남궁무에게 다시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마룡방은 강호의 오대사파 중 하나이고 황룡대는 그 악행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시원한 소식을 듣고는 기분이 좋았었습니다.”
“그렇다면 남궁 공자님께서 우리가 한 짓이 아니라고 좀 얘기를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황대산이 남궁무의 말을 듣자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도움을 청해본다.
“야! 황대산, 너 누구 맘대로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냐? 이게 빠져가지고! 우리는 낭인칠웅이야! 모든 일은 우리가 처리한다.”
자는 척하며 듣고 있던 유성탄이 몸을 일으키더니 황대산을 타박했다.
“유 소협께서는 아직도 저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남궁무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남궁세가의 차자(次子)로 후기지수 중 수위를 다투는 남궁무로서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궁무가 그만큼 통이 크고 신분만으로 사람을 따지지 않는 성격 탓이었다. 거기다 그는 젊은 사람답지 않게 자신이 실수한 것은 즉시 사과하는 예의도 갖춘 청년이었다.
‘자식이 사람은 괜찮아 보이는데… 하여간 난 나보다 잘생긴 사람은 무조건 싫어.’
역시 쪼잔한 유성탄다운 이유였지만 그도 그 말만큼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제가 사정을 알았으니 세가에 돌아가면 한번 알아보라 시키고 만약 음모라면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남궁무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무림의 다음을 짊어질 대협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남들과는 다르신 대인이십니다. 저희들 낭인칠웅도 그러실 일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강태웅이 다시 한 번 포권을 하며 말했다.
* * *
“누구냐!”
창평추는 갑자기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무사들을 보며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저는 이곳 가능을 책임지고 있는 영천무관의 관주인 양규라 하오. 어디서 오신 영웅들이신지 알고 싶소만?”
양규는 첫눈에 창평추를 비롯한 모든 무사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는 공손하게 물었다.
“가능의 영천무관의 관주라…….”
창평추는 입으로 조그맣게 읊조렸다.
절강의 마룡방의 세력권이었다면 일개 무관 정도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면 벌써 검이 날아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마룡방의 세력권이 아니었고 안휘에는 남궁세가가 있었다.
마룡방이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지만 일부러 시비를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는 절강의 마룡방의 청룡대 대주인 창평추요. 사람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소이다. 굳이 시비를 벌이고 싶지는 않으니 관주께서 눈감아 주시기를 바라겠소.”
창평추의 말은 공손한 듯했지만 말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나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본 영천무관은 남궁세가에서 인정한 무관이오. 즉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남궁세가에 그대로 보고가 된다는 말이오. 마룡방의 이름은 본인도 많이는 들어봤소. 하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렇듯 많은 인원이 남의 세력권에 들어온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신 모양이외다.”
양규는 은근히 자신의 뒤에 남궁세가가 있음을 나타내며 그들이 다짜고짜 자신의 구역에 들어온 것을 성토했다.
창평추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고 손이 슬그머니 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양규도 손이 검으로 움직였다. 무림 오대사파 중 하나인 마룡방의 청룡대에게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창평추도 시시한 무관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한 듯 다시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본방의 원수를 잡으러 왔소. 같은 강호의 동도로서 사정을 좀 봐주시오. 대신 우리가 안휘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마룡방의 이름으로 남궁세가에 정식으로 사과를 하겠소.”
창평추의 성격으로는 파격적인 양보였다.
양규 역시 그들의 명성을 들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만약 시비가 붙는다면 자신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 그런 소문이 나면 다른 무관에서 그들을 우습게보고 은근히 집적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가능을 책임지고 있는 무관으로서 가능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 하에 있소. 창 대주께서 그리 말하니 나도 우선은 그리 보고를 하겠소. 하지만 가능 안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어떤 싸움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그대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양규는 옆에 서 있는 자신의 의제(義弟)이자 부관주인 하송구와 잠시 귓속말을 하더니 우선은 양보하기로 했다.
“우리도 시끄러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소.”
“가소로운 놈들! 여기가 절강이었다면 당장 한 놈도 빼놓지 않고 도륙을 냈을 것이다.”
창평추는 물러나는 양규와 무관의 제자들을 보며 살기 띤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가씨, 살벌한 게 한 판 붙을 것 같더니 쉽게 끝나네요?”
백리빙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들의 실랑이를 보다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자 실망한 듯이 말하자 정자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로 간에 굳이 피를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거겠지. 마룡방으로서는 남의 구역에 들어왔으니 조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저 무관 사람들도 한번 가로막았으니 체면은 차린 게 아니겠니? 마룡방의 창평추는 대단한 고수다. 무관의 무사들로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저 관주란 자도 그 정도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정자운은 마치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이 막힘없이 설명해 나갔다.
“아가씨! 가네요.”
백리빙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는 청룡대가 다시 걸음을 옮기자 급히 말했다.
* * *
“태웅 형님! 남궁 공자의 말대로 우리가 황룡대를 전멸시켰다는 소문이 났다면 중원에서 살기는 이제 틀린 것 아닙니까?”
황대산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천하 어디를 가도 우리가 숨을 곳은 없을 것이다.”
장우왕도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남궁 공자께서 알아보고 만약 음모가 있다면 우리의 누명을 벗겨준다고 하셨으니 한번 믿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마동파가 남궁무가 떠나면서 한 말에 희망을 가진다는 듯이 말하자 표도행이 뒤를 이었다.
“동파 형님, 그건 순진하신 생각입니다. 남궁 공자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룡방은 남궁세가라 해도 함부로 하기 힘든 문파입니다. 남궁 공자가 아무리 우리를 돕고 싶어도 세가에서 승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 아닙니까?”
유성탄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끼어들지는 못하고 끙끙대고 있었다.
‘엄마하고 아버지를 찾아야 하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에이, 도박장은 들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도박장에 들어가면 패가망신한다더니 이거 내가 패가망신하게 생겼구나.’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신이 도박장에서 난동을 부리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유성탄도 알고 있었다.
“야! 걱정 마! 내가 누구냐? 유성탄 대형이다. 내가 책임질 테니 너희들은 나만 믿어라.”
유성탄이 드디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한 듯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유성탄으로서는 정말 대단한 결심이었다.
“대형께서 우리를 책임지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대형이 이렇게 나오시는데 우리가 겁날 게 뭐가 있겠느냐? 우리 능력이 되는 데까지 버틴다. 안 되면 죽으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우리는 낭인이고 남자다!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 게 아니다.”
강태웅이 유성탄의 말을 듣자 주먹을 쥐며 용기를 내자는 듯이 말하자 모두의 얼굴에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한번 해보자는 투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태웅 저거 바보 아냐? 사람이 한 번 죽으니까 더 죽지 말아야지. 두 번 죽으면 나도 한 번 정도는 죽어줄 수 있다 이거야!’
“저놈들 같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낭인칠웅을 드디어 찾아낸 창평추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견준구와 황룡대가 저런 놈들에게 전멸을 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창평추의 말에 추적을 맡았던 무사도 이해가 안 되는지 다시 한 번 낭인칠웅을 보더니 대답했다.
“정말 이상하군요. 하지만 흔적은 정확히 따라왔습니다.”
잠시 말없이 낭인칠웅을 쳐다보던 창평추의 입이 열렸다.
“상관없다. 다 죽여라!”
창평추의 명이 떨어지자 사십여 명의 청룡대는 검을 빼 들더니 그대로 낭인칠웅을 향하여 짓쳐 들어갔다.
* * *
“아가씨, 어떻게 할까요?”
청룡대가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빼 들고 그들에게 달려들자 백리빙이 의외라는 듯이 정자운을 보고 물었다.
“글쎄다… 사부님께서는 절대로 무림의 일에 끼어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끼어들 수도 없고…….”
정자운의 말이 끝나자 백리빙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래도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 * *
“야, 저기 지랄하듯이 달려오는 저 자식들은 뭐냐?”
유성탄이 검을 들고 달려드는 청룡대를 보며 별 미친놈들 다 본다는 듯이 말하자 유성탄을 보며 얘기를 나누던 아우들이 깜짝 놀라며 몸을 돌리더니 급히 몸을 일으키며 무기들을 빼 들었다.
“적입니다, 대형!”
강태웅의 외침에 유성탄도 그때서야 눈치를 채고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니들은 모두 방어만 해라. 저놈들은 내가 다 때려눕히겠다.”
유성탄은 아우들이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닙니다. 우리도 근 한 달 동안 지옥 같은 수련을 산속에서 해왔습니다. 대형께서 어느 정도만 막아주시면 우리도 힘껏 싸워보겠습니다.”
산을 타고 절강을 빠져나오기까지 그들은 정말 대단한 수련을 해왔었다. 특히 죽음을 도외시한 비무는 그들을 전보다 열 배는 더 강하게 만들어놓았다.
그렇다고 해봐야 아직은 일류에도 못 미치는 정도였지만 생사를 건 싸움에서는 경험은 무시하지 못할 실력이 되곤 한다.
“뭐야! 저놈은……?”
아직 싸움에 끼어들지 않은 창평추는 청룡대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게 본 낭인들에게 고전을 하자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다가는 검을 빼 들었다.
특히 키만 큰 삐쩍 마른 놈이 대단한 활약을 하자 그놈부터 직접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야!”
유성탄은 무려 삼십여 명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꿀리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피하면 아우들이 죽는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생각지도 않던 검이 자신의 등을 찌르자 짤막한 소리를 지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찌른 창평추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야, 이 비겁한 놈아! 말도 없이 뒤통수를 쳐! 에라, 이거나 한 대 맞아라!”
유성탄이 순식간에 달려들며 주먹을 날리자 창평추가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분명 검으로 등을 찔렀는데 아야! 소리 한마디 하고는 멀쩡히 덤벼드는 유성탄에게 순간 당황한 것이었다.
“이놈이 몸속에 보호구를 입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목까지 보호구가 너를 보호하지는 못할 것이다.”
잠깐 뒤로 물러났던 창평추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유성탄의 목을 겨냥하며 검을 휘둘러왔다.
창평추와 견준구는 거의 비슷한 실력이었지만 견준구는 유성탄을 얕보다가는 허를 찔려 어이없이 쉽게 당했었다.
하지만 창평추는 유성탄을 전혀 얕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상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유성탄으로서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거… 이놈은 왜 이렇게 센 거야? 큰일 났네. 이러다가 아우들이 다칠지도 모르는데…….’
창평추에게 가로막힌 유성탄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강태웅을 비롯한 아우들이 걱정이 되어 제대로 싸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그가 맡아 싸우던 놈들까지 모두 아우들에게 가서 합공을 하자 당장에 곤경에 빠진 그들이었다.
“안 되겠다.”
유성탄은 짤막하게 소리치더니 다짜고짜 창평추에게 달려들었다.
완전 무방비 상태로 달려드는 유성탄을 보며 창평추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유성탄의 목이 훤히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창평추의 검은 정확히 유성탄의 목젖을 찔렀다.
“으아악!”
창평추는 자신의 검이 유성탄의 목을 찌르자 다 끝났다는 생각에 잠시 방비를 허술하게 했다.
그러나 유성탄은 목에 검이 박힌 상태로 그대로 달려들더니 창평추의 면상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그리고 창평추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완전히 코가 주저앉은 것이 충격이 대단할 것 같았다.
그때서야 유성탄의 목에 박혔던 검이 뚝 떨어졌다. 동시에 유성탄은 아우들을 공격하다가는 창평추의 비명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린 청룡대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청룡대원들은 모두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유성탄에게 맞은 자들은 여전히 끙끙대거나 기절해 있었지만 아우들에게 당한 자들은 거의가 다 절명한 상태였다.
유성탄은 그들을 보며 한마디 던졌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까불고 있어!”
그런 유성탄을 피를 철철 흘리며 아우들이 웃으며 보고 있었다.
유성탄이 창평추에게 사용한 수법은 남궁무에게 배운 것이었다.
조급한 상황에서 유성탄은 아까 남궁무가 싸울 때 자신에게 턱을 내주었고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볐다가 남궁무의 검에 가슴을 베인 생각이 난 것이다.
남궁무와 같이 빠른 수법을 구사하지 못하는 유성탄으로서는 자신의 몸을 믿기로 하고는 검을 목으로 받아낸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은 그의 목을 관통은 하지 못했지만 반은 목을 파고들었었다.
그러나 살가죽을 뚫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고 유성탄은 자신의 피부를 이용하여 상대의 무기를 잡아내는 방법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 * *
“아가씨! 이상한 수법이지요?”
백리빙은 자신이 고수이기 때문에 상황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유성탄의 목에 창천규의 검이 박힐 때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기까지 했었다.
“특이한 무공을 익힌 자로구나.”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한 정자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빙아, 아무래도 저 사람을 좀더 관찰해 봐야 할 것 같구나.”
“왜요?”
“저 사람, 어쩌면 대단한 고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니?”
* * *
“성우야, 밥은 먹고 가야지.”
강추화는 유성우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나가려 하자 따라 나오며 물었다.
“어머니도 참! 그냥 주무시지 왜 나오세요? 전 가서 먹으면 됩니다.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서 좀더 눈을 붙이세요.”
“피곤은 네가 더 하지……. 나야 너하고 네 아버지 나가고 나면 잠시 눈 붙일 시간이 있으니까 내 걱정은 말고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가 곧 밥 차려 오마.”
“아니에요. 오늘은 현감님께서 일이 많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이미 좀 늦었어요. 그러니 그냥 가겠습니다. 그리고 현청에 가면 먹을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유성우는 강추화가 걱정하는 것이 염려가 되는지 현청에 가면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아직 어두운 새벽길을 바삐 걸어 사라졌다.
“에그 착한 놈… 현청에서 밥을 안 주는 것을 내가 다 아는데…….”
왠지 모르게 찡한 마음에 유성우가 걸어간 길을 잠시 더 쳐다보던 강추화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성우 갔소?”
유정삼도 잠에서 깬 듯 강추화가 들어오자 물었다.
“예, 갔어요. 그런데 성우가 하는 일이 뭔데 이 새벽부터 부르신데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분명 현청 일은 아닌 것 같아. 내가 넌지시 알아봤는데 성우가 하는 일이 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
“위험한 일은 아니겠지요?”
“성우는 문사인데 위험한 일이 뭐가 있겠소. 현청에 일 시킬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성우에게 험한 일을 시킬 이유가 없지 않겠소.”
“그렇겠지요. 그런데 자꾸 마음이 불안해요.”
“걱정 마요. 내가 이래봬도 한주현의 포장이오. 나를 봐서라도 성우에게 나쁜 짓을 저지를 사람은 없어요.”
유정삼도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을 큰소리로 덮고 있었다.
“그래 일은 재미있느냐?”
한주현 현령 갈추산은 유성우가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아직은 확실히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굳이 알려고 들 필요는 없다. 너는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될 것이다.”
유성우가 갈추산을 만나고 일을 시작한 지 이미 한 달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갈추산은 유성우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유성우가 하는 일이 나라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니 가족들에게까지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하지만 유성우는 일을 시작한 후 점점 의문이 들고 있었다.
우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관부인이 아닌 무림인들이라는 점이었고 창고로 들어가고 나가는 물품들이 하나같이 속을 알아볼 수 없도록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물품이 무엇인지 표시되어 있지가 않았다.
거기다 그가 보기에 분명 돈으로 보이는 상자들도 수시로 창고에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유성우가 하는 일은 물품들이 나가고 들어가는 일을 표시하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암호로 되어 있어서 머리가 나쁜 사람은 하기가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럼 그만 가보거라.”
“예.”
갈추산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나가는 유성우를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는 입을 열었다.
“일하는 것이 어떻던가?”
“상당히 똑똑한 아입니다. 가르치기만 하면 척척 알아서 일을 하더군요.”
갈추산의 뒤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하다… 너무 똑똑한 것은 흥미도 많다는 얘기가 되지.”
“걱정 마십시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일 년 안에 모든 것을 끝내고 우리는 사라질 것이고 모든 것은 저들 부자가 덤터기를 쓰게 될 것입니다.”
“착한 친구인데… 좀 안됐군.”
갈추산은 사람 좋은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유정삼의 얼굴을 생각하며 안됐다는 듯이 혀를 찼다.
‘도대체 이게 뭘까?’
은밀하게 창고로 모였다가 사라지는 물건들을 보며 유성우는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갈추산은 나랏일이라고 했지만 유성우가 보기에는 절대로 나랏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보이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무림인들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현령님께서 이렇게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유성우는 유정삼과 의논을 해볼까도 여러 차례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사실 유정삼의 힘으로는 현령의 일을 조사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잘못하면 아버지인 유정삼만 쫓겨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유성우는 우선 물건이 무엇이고 어디에 쓰는 것인지부터 천천히 알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