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다시 만난 하후란
“저 산만 넘으면 호북입니다. 거기만 들어가면 우선은 안심을 해도 될 것입니다.”
강태웅이 바로 앞에 보이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서운 것이 없는데 안심할 것이 뭐가 있겠냐? 나는 그냥 호북이란 곳이 어떤가 하고 가보는 것뿐이다.”
“맞습니다. 대형께서는 무서운 것이 없어야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무서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포구마을에서도 대형께서 옆에 계신 덕에 겁 없이 행동했지 우리만 있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너희들도 잘 싸우던데 뭘 갑자기 그러냐?”
“점박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서 그들을 봐주는 자들이 무서운 것이지요.”
“토룡방 말이냐? 그놈들 우리가 낭인칠웅이라니까 겁먹고 그냥 갔잖냐?”
“그때 아우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우리를 사람취급도 안 하던 무림방파가 단지 이름만 듣고 물러났습니다. 정말 저도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모두 다 대형 덕입니다.”
‘태웅 이게 또 나를 헷갈리게 하려고 나를 막 띄우는 것 같은데… 어쨌든 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데.’
“대형, 그리고 제가 일찍 사과를 드려야 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사과? 너 나한테 잘못한 것 있었냐?”
“포구마을에서 제 마음대로 돈을 고을 사람들에게 나눠 줬지 않습니까? 당연히 대형께 허락을 구하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 당시 상황이 시간을 끌면 효과가 반감이 될 것 같아서 제 자의로 일을 처리하고 말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나눠 주려고 했었다.”
“역시 대형은 대인이십니다.”
‘이 씨! 또 넘어갔어. 에이!’
결국 강태웅에게 그 문제로 더 이상은 말을 할 수 없게 된 유성탄은 속으로 구시렁대며 그늘로 가서는 누워버렸다.
“아! 구름도 멋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등에 업혀 구름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유성탄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다 보니 어렴풋이 잊었던 어릴 적 기억이 소록소록 나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뭐 하고 계셨더라. 에이!”
가만히 생각하던 유성탄은 그때 엄마가 회초리를 들고 자신을 때리려고 했었던 것이 기억나자 ‘에이!’ 소리를 내더니 몸을 돌렸다.
* * *
“허허! 재미있는 자들이 아니냐?”
포구마을에 남궁무와 같이 도착한 남궁후기는 낭인칠웅이 고을 사람들을 위해 점박이와 부하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마을에서 쫓아내고는 모든 재산을 몰수해서는 다 나눠 주고 떠났다는 말을 듣자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남궁무를 보며 말했다.
“그러네요. 우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군요.”
“우리야 못 하지. 솔직히 나도 그것이 불만인 적이 있었다.”
“숙부님께서도 그러신 적이 계셨습니까?”
“그럼! 나도 젊은 청년시절이 있었는데 어찌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겠느냐? 그 당시는 왜 세가에서 사방에 널려 있는 흑도파들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이제는 이해하십니까?”
“글쎄다… 흠! 이해를 한다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알았다고 할 수 있겠지.”
“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니다 보면 별의별 악한 짓을 다하는 자들이 사방에 있는데도 정파를 표방하는 세가에서 그냥 놔두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남궁무는 말하면서 흥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안다. 하지만 무림세가의 존속 이유를 알면 그들을 그대로 보고 있는 이유가 저절로 나온다.”
“저도 설명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파는 준동을 하면 모두 합심해서 싸우지 않습니까? 그런데 흑도파들은 세가의 무사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저 혼자라도 없앨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말리시니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림 사파는 커지게 그냥 놔둔다면 우리의 기반까지도 위협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커지지 못하도록 견제를 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이상 커지면 정파끼리 합심해서 없애버리기도 하지. 하지만 조그만 흑도파들은 우리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으니 그냥 놔두는 것이다.”
“그래도 실질적으로 양민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그들입니다.”
“양민을 괴롭히는 자들이 있어야 사람들은 정파를 찾게 된다. 만약 세상이 전부 다 정의롭고 악한 자들이 없다면 무림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전 그런 생각을 하는 정파가 이해가 안 갑니다.’
남궁무는 남궁후기의 말에 직접적인 불만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속으로까지 침묵을 할 수는 없었다.
* * *
“아직 찾지 못했어요?”
하후란은 마효춘이 방으로 들어서자 뾰쪽하게 물었다. 한 달이 넘게 유성탄과 그 아우들을 찾지 못하자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찾았습니다.”
“어디예요?”
“장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가다가 수적들과 싸움이 있었답니다. 그 바람에 중간 포구에 들렀는데 거기서 배를 포기하고는 다시 산을 타고 사라졌답니다.”
“또? 산을 타고 사라졌다고요? 하여간에 진득하지 못하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기는……!”
하후란은 능글거리는 유성탄의 얼굴을 생각하자 이상하게 화가 더 나는 것을 느꼈다.
“지도 가져와 봐요!”
“여기서 사라졌다가 여기서 나타나서 마룡방의 청룡대와 싸웠고 그리고 여기서 배를 타고…….”
한참 지도를 짚어가면서 중얼거리던 하후란이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준비해요. 떠나야겠어요.”
“어디로 가시려고요?”
“목적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를 거쳐 갈 것인지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네요. 먼저 가서 기다려야겠어요.”
하후란은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급한지 알 수가 없었다.
* * *
“왜 그래?”
나야종은 고화월이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상한 듯이 물었다.
“저기, 키 크고 머리는 산발해서 머리통만 커 보이는 놈 말이야.”
“누구? 아, 저놈! 멍청하게 생겼는데… 그놈이 왜?”
“자꾸 우리 쪽을 쳐다봐.”
나야종은 고화월의 말에 유성탄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쳐다보았다.
“저 거리면 우리가 은잠술을 쓰지 않아도 알아내기 힘든 거리다. 더욱이 우리가 은잠술을 쓰고 있는 지금 저기서 우리를 알아본다는 것은 무림의 십대고수라 해도 어려울걸?”
“그지?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 저놈이 쳐다보는 눈초리가 마치 우리의 존재를 아는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야.”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어떡할 건지나 결정해라. 나도 이제 좀 지겨워온다.”
고화월은 나야종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흥미롭다는 듯이 낭인칠웅을 보고 있었다.
“대형, 왜 그러십니까?”
황대산은 유성탄이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이상한 듯이 물었다.
“저기 오른쪽에 나무하고 바위하고 모여 있는 곳 말이다.”
“예, 보입니다.”
“아무래도 누군가 저기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저기예요? 아이구! 여기에서 저기까지 거리가 얼만데요. 저기에 누가 숨어 있다 해도 여기서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마 대형께서 신경이 좀 날카로워지신 모양입니다.”
황대산은 대충 거리를 짐작해 보더니 어림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지!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 누군가가 자꾸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대형, 이왕 쉬는 김에 비무나 한번 하면 어떻겠습니까?”
강태웅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비무? 나야 상관없지만 너희들이 죽겠다며?”
“아우들은 더 쉬라고 놔두고 저만 해보지요.”
“이얍!”
강태웅은 기합을 커다랗게 지르더니 검을 그대로 유성탄의 심장을 향해 찔러갔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수법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검이 눈앞에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살짝 몸을 틀었다. 그러자 검은 간발의 차이로 유성탄의 몸을 스쳐갔다. 그리고는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강태웅의 허리를 찍어갔다. 그러자 강태웅은 허리를 비틀며 몸을 한 바퀴 돌리더니 그대로 검으로 유성탄의 목을 베어나갔다.
“햐! 태웅 형님 엄청 느셨네……!”
마동파가 부럽다는 듯이 탄성을 지르자 철패가 말을 이었다.
“전에는 태웅 형님과 그래도 한판 붙을 수 있었는데, 이제 저는 상대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걱정 마라. 우리는 전부 다 사용하는 무기가 다르다. 어차피 우리가 아무리 는다 해도 혼자서 까불다가는 까마귀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언제나 한 몸처럼 붙어다녀야 하고 그렇다면 우리의 각자 다른 무기와 특기는 우리의 힘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수련해.”
장우왕은 말하면서도 유성탄과 강태웅의 비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놈들은 도대체 쉬지를 않는군?”
“아무리 봐도 우리가 미친놈들을 쫓고 있는 것 같은데, 저것 좀 봐. 저게 비무야, 생사지결이야? 마치 원수끼리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것 같잖아?”
전화생과 조황이 유성탄과 강태웅의 비무 장면을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거였구나. 실지로 가진 무공은 별거 없고 그렇다고 내공이 강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마룡방의 무력집단을 이겼다는 건지 의아했는데 바로 저거였어! 실전무공이야.’
고화월은 비무를 보며 낭인칠웅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결정을 내렸다.
“오늘 밤 죽인다.”
고화월의 말에 모두 놀라 쳐다보았다.
“왜 별 볼일 없다고 결론이 나왔냐?”
지정우가 빈정거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저자들이 강한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집단전투에서는 위력을 발휘할지 몰라도 일대일 대결에서는 절대로 고수를 당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부하가 되어준다면 쓸모는 있겠지만 우리의 밑으로 들어올 자들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동업자로 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고화월은 차분하게 말을 하고는 품에서 가느다란 침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수행을 할 때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였다.
코를 골며 자던 유성탄은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 유성탄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가 유심히 쳐다본 것은 모두 다섯 군데였다.
“거참 이상하네……. 저렇게 큰 벌레가 있는 건가, 아니면 짐승인가?”
유성탄은 벌레로 보기에는 너무 크고 동물로 보기에는 너무 움직이는 소리가 미약한 기척을 느낀 것이다.
유성탄은 일어서더니 갑자기 일어났다 앉았다를 연거푸 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은 뭐야! 몽유병 환자인가? 갑자기 일어나서 뭐 하는 짓이야?’
혈문오살 중 가장 가까이 다가온 전화생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숨을 멈췄다. 은잠술에 귀식대법을 사용하면 누구도 발견할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목 운동까지 마친 유성탄은 가장 가까이 있는 전화생부터 잡기로 했다. 정말 벌레면 씹어 먹을 생각이었고 짐승이면 구워먹을 생각이었다.
“확실히 벌레야! 내가 움직이니까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어.”
충동에서 유성탄이 움직이면 모든 벌레들은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 지금 혈문오살이 하는 행동은 벌레들이 하는 행동과 똑같았다. 벌레는 느린 듯하면서도 잡으려고 하면 무지 빨랐다. 유성탄이 갑자기 한 달밤의 체조는 벌레를 잡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이런 들켰구나!”
전화생은 유성탄이 엄청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직감적으로 들켰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무기인 독지주(毒蜘蛛)를 한 움큼 유성탄에게 뿌리고는 후다닥 바닥을 기어 후퇴했다. 보통은 가까이 다가가서 주위에 뿌려놓으면 상대는 눈치도 못 채고 독지주의 독에 중독되어 죽는다. 하지만 급할 때는 지금같이 암기로도 사용이 가능했다.
“뭐야! 겨우 거미였어?”
유성탄은 독지주가 자신의 몸에 달라붙자 한 마리 떼어서는 입에 넣어보고는 꿀떡 삼켰다.
“맛도 되게 없네. 에이, 괜히 힘만 뺐잖아.”
충동에서도 큰 거미 중에 이따금 지금같이 독을 뿌리거나 작은 새끼 거미를 던져서 반항을 하는 놈들이 있었다. 유성탄은 전화생이 바닥을 기어 달아나자 그런 거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유성탄의 몸에 붙었던 독지주들은 지룡봉의 향기를 견디지 못하고 전부 다 기절해서는 땅에 떨어졌다.
“대형, 무슨 일이 있습니까?”
강태웅은 유성탄이 움직이는 소리에 깨었는지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집채만 한 거미가 나타나서는 너희를 잡아먹으려고 그래서 내가 쫓아버리고 왔다.”
잠자다 일어나서도 뻥을 치는 것은 잊지 않는 유성탄이었다.
‘놀라운 놈이다. 우리의 움직임을 그렇게 빨리 눈치 채다니……. 우습게봤다가는 큰코다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계획을 잘 짜서 다시 시도해야겠다.’
전화생이 도망치자 나머지도 급히 후퇴를 했다. 살수의 제일 수칙은 은밀한 살행의 성공이지 떠들썩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우습게보고 계획도 없이 다짜고짜 죽이려 했던 지정우는 유성탄의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완벽한 계획을 짜서 다시 시도하기로 한다.
“우선은 우리도 잔다. 그리고 살행은 마을에 들어가서 다시 시도한다.”
지정우의 말에 유성탄 일행을 감시할 한 명만 남고 나머지는 말없이 자리에 앉더니 잠이 들었다. 이런 경우는 이미 여러 번 겪은 그들이었기에 누가 감시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물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유성탄과 아우들이 도착한 곳은 호북의 동쪽 끝에서는 제일 번화한 청평이라는 곳이었다.
“야! 어디를 가든 여자가 보여야 좀 사람 사는 곳 같아. 그지?”
유성탄이 지나가는 여인들을 보며 역시 좋다는 얼굴로 말했다.
“우선 좀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먹성 좋은 철패가 배가 고픈지 먹는 타령부터 했다.
“저기로 가자!”
철패의 말이 나오자마자 유성탄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청평에서는 가장 큰 월화루라는 주점이었다. 객잔을 겸하고 있는 월화루는 보통 사람이 먹는 주루와 기녀와 같이 놀 수 있는 기루가 같이 있었다. 유성탄이 본 것은 삼 층 누각 창가에 앉아 그들에게 눈웃음을 치고 있는 기녀들이었다.
“엄청 사람 많네!”
월화루의 주루에는 마침 점심이라서 그런지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 있었다.
“아무래도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곳으로 가지요.”
표도행이 아무래도 빨리 자리가 날 것 같지 않자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낭인칠웅이시지요?”
유성탄 일행을 본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 나오더니 물었다.
‘우리 이름이 벌써 점소이들까지 알 정도로 유명해졌나?’
모두는 의아한 얼굴로 점소이를 쳐다보았다.
“맞기는 한데… 어떻게 알았느냐?”
강태웅이 물었다.
“손님께서 산적같이 아주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 일곱이 오면 모시라고 자리를 예약해 놓으셨습니다.”
“뭐! 산적같이? 이게! 에이, 봐준다.”
유성탄이 점소이의 말에 손을 올렸다가는 참는다. 그의 감각에 너무 약한 사람은 그는 건드리지 않았다. 점소이는 당연히 유성탄의 관점에서 너무 약했다.
“누가 우리를 위해 예약을 했다는 말인가?”
“저도 누구신지는 모릅니다. 다만 여자 분이셨습니다.”
“여자?”
모두 여자라는 말에 생각에 잠겼다.
“니들 뭘 생각하냐?”
유성탄이 물었다.
“여자라니까 누굴까 하고 생각한 겁니다.”
“그건 아는데 니들이 왜 생각하냐고?”
“우리를 위해 예약을 했다니까요.”
“우리 중에 여자가 예약을 하면서까지 반가이 맞을 사람이 누구겠냐? 당연히 생각을 하면 나만 하면 되지 왜 너희들까지 생각하냔 말이다.”
“에이, 대형도 참! 솔직히 대형보다는 우리가 여자들에게는 더 인기가 있습니다.”
황대산의 말에 유성탄이 충격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그 말이 농담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더구나 황대산 네가 그 얼굴로……?”
“하여간에 어딜 가나 엄청 시끄럽구나.”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리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낭인막의 마효춘이 서 있었다.
“뭐야! 그럼 예약을 한 게 만사무불통년이었어?”
유성탄이 실망한 듯이 말하자 마효춘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가 분명 녀와 년은 다르다고 말했다. 이제 그놈의 무식에서 좀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
‘이놈의 늙은이가 또 개기네.’
‘이 자식은 오나가나 만날 때마다 복장부터 긁는단 말이야.’
서로 속으로 중얼거린 둘은 참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께서 기다리시네, 들어가세.”
마효춘은 유성탄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은지 강태웅을 보며 말했다.
“정말 빨빨거리고 잘도 돌아다니시네요.”
하후란이 예약한 곳은 객잔에 따로 준비된 독채였다. 하루에 적어도 은자 다섯 냥은 줘야 잘 수 있는 대단히 비싼 곳이었지만 하후란에게 그 정도는 푼돈이었다.
“너! 하루면 우리를 찾아온다고 해놓고 한 달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분명 약속위반인 것은 알 거다.”
유성탄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하후란이 약속위반을 했다고 밀어붙이려 했다.
“전 분명 대로를 따라간다면 하루면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산속으로만 다녔으니 약속위반은 우리가 아니라 유성탄 대형이에요.”
“나는 하루면 찾는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나지만 대로를 따라간다면이라는 말은 기억에 없다.”
“그거야 유 대형께서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거니 더 이상 어찌할 수는 없겠지요. 머리가 나쁜 것은 타고난다는데 그것까지 제가 타박하고 싶지는 않군요.”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말은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들어본다.”
“그동안 사람하고 살지 않고 벌레랑 살았나 보네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그 머리로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했을까요?”
유성탄은 하후란의 말에 아우들을 노려봤다. 자신이 벌레랑 살았다는 말을 누가 하후란에게 말했는지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우들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벌레랑 살았는지 아니면 천재랑 살았는지 네가 어떻게 아냐?”
“흥! 말하는 것을 보니 진짜로 벌레랑 산 거 아니에요?”
하후란은 자신이 그냥 한 말에 유성탄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유성탄을 보며 물었다.
‘씨! 저 계집애 표정을 보니 벌레랑 살았다고 하면 한번 달라는 것은 완전히 물 건너갈지도 모르겠구나. 아니라고 무조건 우겨야겠다.’
유성탄이 우기려고 입을 열려는데…….
“지저분한 얘기는 이제 그만 하고 칠우도에 대해서 얘기해요.”
하후란의 입에서 지저분이라는 말이 나오자 유성탄의 입이 딱 닫혔다.
“제가 알아본 결과 태웅 장사께서 가지고 계시던 장보도는 칠우도가 확실했어요. 물론 그림만으로는 아직까지는 어느 산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산을 찾기만 하면 장소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여기 써놓은 문구(文句)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강태웅에게 대형이라는 칭호를 쓰지 못하자 하후란은 보편적인 호걸들의 호칭인 장사라는 말을 붙였다.
“그렇다면 산은 우리가 알아서 찾을 터이니 그 문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요. 가르쳐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산을 보아야만 확실히 문구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후란의 말에 강태웅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후란의 말은 자신이 직접 그림이 가리키는 곳에 가야만 알 수 있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사무불통녀께서 직접 우리와 같이 행동하실 수는 없을 것 아닙니까?”
“왜요? 제가 같이 다니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강태웅은 하후란의 반문에 놀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곳까지 저희들과 같이 가 주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못 할 것은 없다고 보는데요.”
하후란의 말에 강태웅은 다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같이 가서 도와주겠다니 반갑고 고맙기까지 한 것은 틀림없었지만 하후란이 그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감사하기는 합니다만… 굳이 그런 친절을 베푸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전에 이미 제가 속마음을 비친 걸로 아는데요. 벌써 잊으셨나요?”
하후란은 전에 강태웅에게 유성탄을 포섭하고 싶다는 말을 비춘 적이 있었다.
“단지 그 이유뿐이라면 저는 확실하게 된다 안 된다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모든 것은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다만 만약 생각대로 안 된다면 제가 한 번 도움을 청할 때 저를 도와주신다는 약조나 좀 해주시지요.”
“어떤 도움을 말하시는 겁니까?”
“호호호! 정색을 하시기는……. 저도 어떤 도움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떤 일을 해 달라는 식의 부탁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위험하니 좀 보호해 달라는 부탁 정도는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드리겠습니다.”
“호호호! 그 말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칠우도라는 게 일 갑자 전 무림칠괴라고 불리던 분들이 만든 것이라는 말입니까?”
“그래요. 그 당시 무림칠괴라는 분들은 무공보다는 기행(奇行)으로 더 유명했던 분들이었어요. 모두 한 분야에서만은 대단한 실력을 자랑했지만 무림에서의 평판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무공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요.”
하후란의 말을 들으며 모두는 약간 실망한 얼굴들이었다. 대단한 기연일 것으로 생각했다가 무림인들이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그저 그런 물건이라는 하후란의 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 가볼 만은 하겠다.”
뜬금없는 유성탄의 말에 모두 무슨 말이냐는 듯이 쳐다본다.
“솔직히 우리한테 대단한 기연이 온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고 또 왔다 해도 뭘 어떡하겠냐? 니들 글이나 제대로 아냐?”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 노인네들 이미 다 죽었다며?”
“그렇지요.”
“그렇다면 뭘 남겨도 글로 남겨놨을 거 아니냐? 만약 대단한 절기라면 우리가 이해나 했겠냐고? 시시한 절기라면 그래도 조금은 우리가 알지도 모르지.”
역시 특이한 관점을 내보이는 유성탄의 말에 강태웅이 말을 받았다.
“대형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 우리 능력으로 천하의 절기는 있다 해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분들은 한 가지 분야에서만은 대가 소리를 듣던 분들이라 하고 또한 우리와 같은 일곱 분이니 어쩌면 우리에게는 딱 맞는 기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분야라는 게 뭡니까?”
표도행이 물었다.
“여러 가지예요. 도박, 도둑질, 모조품 만들기, 변장술, 소매치기, 사기치기, 그리고 또 뭐라고 그러더라……?”
“뭐야! 전부 다 이상한 것밖에 없잖아.”
하후란의 말을 듣던 유성탄이 그 분야라는 것이 이상한 것만 읊어대자 볼멘소리를 한다.
“듣기에는 이상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도둑질이라고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의 물건을 훔친 적은 없고 더 중요한 것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무림세가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친 적도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를 못 챘다고 하니 어느 정도로 감쪽 같았는지 알 만할 거예요. 비록 무림인들에게는 천시받는 조예들이기는 했지만 당대 최고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거지요.”
“만사무불통녀님의 말은 우리도 배울 것이 있을 거라는 말입니까?”
“그냥 하후 낭자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당연히 배울 것이 있겠지요.”
* * *
“누군가와 접선을 하고 있는데…….”
전화생이 유성탄 일행이 들어간 객잔엘 들어갔다 나와서는 보고했다.
“누군지는 알겠더냐?”
지정우의 말에 전화생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전혀 우리 정보에 없는 자들이야. 그런데 실력이 만만치 않아.”
전화생의 말에 모두는 약간 긴장된 얼굴을 한다. 전화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대단한 실력자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만만치 않다고 말할 정도의 인물인데 정체는 불분명하다?”
지정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고화월을 쳐다보았다. 어찌했으면 좋겠냐는 물음이었다.
“전화생, 오늘 밤 네가 들어가서 독살을 해라. 다른 놈들보다는 유성탄이라는 놈부터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어젯밤 일도 그렇고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
고화월은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단번에 끊어버리는 아주 차가운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혈문오살은 각기 다른 살인기예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화생은 독물(毒物)과 독약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낭인칠웅은 한 방에 세 명씩 들어가서 잤다. 하지만 유성탄만은 독방을 사용했다. 유성탄만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와 같이 자려고를 하지 않았다. 유성탄은 충동에서 계속 달라붙는 벌레들을 자면서도 때려잡는 버릇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수시로 손으로 좌우를 때렸고 발로 차기도 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잠결에 하는 손짓 발짓조차도 무척 아팠기 때문에 아무도 그와 자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생은 시끄럽지 않도록 점소이로 변장해서는 독채로 들어갔다. 커다란 주루답게 점소이도 상당히 많아서 아무도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놈이 눈치가 보통이 아니던데…….’
전화생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장 위를 기어나갔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천장을 사람 몸무게를 가지고 소리 없이 기어간다는 것은 여간한 무림고수라 할지라도 살수교육을 받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기예였다.
그러나 전화생이 그렇게 조심했지만 유성탄의 감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거참 이쪽 지방은 벌레들이 엄청 크군.”
이미 불을 끄고 잠을 청하던 유성탄은 천장을 기고 있는 전화생의 기척을 금방 눈치 챘지만 그냥 커다란 벌레로 생각하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천장에 조그만 구멍을 낸 전화생은 가느다란 실을 늘어뜨렸다. 실을 늘어뜨려 진기를 이용하여 실의 끝이 상대의 입에 향하게 하고는 독액을 실에 흘리면 자연스럽게 독은 상대의 입으로 들어간다. 상대는 순식간에 중독되어 죽지만 침입의 흔적도 전혀 안 남기는 살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전화생은 이미 열 번 이상을 이 수법을 이용하여 살행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생각 외로 잠버릇이 고약한 유성탄이 계속 움직여대는 바람에 정확히 입을 겨냥하기가 힘들었다.
‘거지 같은 놈! 세상에 자면서 저렇게 움직여대는 놈은 처음 보는군.’
땀을 뻘뻘 흘리며 실의 끝을 유성탄의 입으로 향하게 하던 전화생이 독액 몇 방울을 유성탄의 입에 떨어뜨린 것은 거의 한 시진이 지나서였다.
‘짜증나는 놈. 죽을지도 모르고 맛있게도 먹는군.’
엄청 애를 먹이던 유성탄이 자신이 흘린 독액을 아주 맛있게 쩝쩝 입맛까지 다시며 먹자 그때서야 좀 마음을 놓이는지 땀을 닦는 전화생이었다. 그가 흘린 독액은 정말 독한 것이었다. 단 한 방울로 황소도 순식간에 죽여버리는 것으로 무림고수라 할지라도 준비 없이 먹는다면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그런 것이었다.
‘아니 저놈이!’
슬슬 물러나려고 하던 전화생은 유성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자 깜짝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당연히 몸을 뒤틀며 죽어야 할 자가 갑자기 일어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가 입에 들어갔지? 아주 맛있는데…….”
유성탄은 입맛을 다시더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뭔가 맛있는 게 입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천장밖에 없었다.
“에이, 그만두자!”
아무리 막무가내인 유성탄이지만 남의 장사하는 방의 천장을 벌레를 잡는다고 부술 수는 없었다. 유성탄은 아쉬운 듯 중얼거린 후 다시 눕더니 잠에 빠져들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전화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 중에서 가장 독한 것을 흘렸는데도 유성탄이 오히려 맛있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다.
‘좋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전화생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더니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빠져나온 그의 손에는 아주 작은 실뱀이 여러 마리가 잡혀 나왔다.
‘네놈이 혈관사가 몸속으로 들어가도 견딜 수 있나 보자!’
혈관사는 전화생도 몇 마리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아주 작은 뱀으로 그것에 물리면 우선 몸이 마비된다. 아주 은밀하게 사람 몸으로 다가간 혈관사는 우선 입이나 코 또는 귀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 혈관사는 온몸을 헤집고 다니며 물어대는데 완전히 몸이 마비된 상대는 저항을 못한다. 사방을 물어대던 혈관사는 상대가 죽고 나면 다시 기어 나온다. 그동안 혈관사에 당한 자는 대단한 고통에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확실하게 살해대상을 죽이는 데는 좋았지만 다시 회수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잘 사용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화생은 이나 빈대가 기어 다니는 감촉도 느끼는 유성탄의 놀라운 감각을 생각 못 했다. 혈관사가 아무리 은밀해도 빈대의 움직임보다는 못했다. 그리고 잠결에 뭔가 기어 다니는 감촉을 느낀 유성탄은 당연히 충동에서의 행동대로 손을 움직여 간단히 혈관사를 잡았다. 그리고 역시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가져가서는 그대로 씹어 먹었다.
‘괴물이다! 안 되겠다. 다른 방법을 세워서 다시 공격해야겠다.’
귀한 혈관사들이 아무 힘도 못 쓰고 유성탄의 입에서 사라지자 전화생은 놀라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저놈은 잡아야겠다.’
전화생이 물러나는 소리에 유성탄은 다시 눈을 떴다. 순식간에 잠들고 순식간에 잠에서 깨는 유성탄이었다.
‘아까부터 이상하단 말이야. 벌레로 보기에도 너무 크고 쥐새끼로 보기에도 역시 크고… 저게 뭘까?’
유성탄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만큼 전화생의 움직임은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 은밀했기 때문이었다.
천장으로 침입하기 위해 뚫어놨던 지붕을 빠져나온 전화생은 주위를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살피더니 신법을 이용하여 몸을 날렸다.
“뭐야? 사람이잖아!”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전화생은 자신의 몸을 향해 날아드는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급히 허리를 돌렸다. 이미 허공에 뜬 몸을 돌리는 것은 신법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기법에 속하지만 전화생은 일급살수답게 신법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 날아오는 또 다른 돌멩이까지 피하기에는 그라 해도 불가항력이었다.
“으윽!”
살수답게 엄청난 충격에도 짧은 신음만 내지른 전화생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몸을 굴리더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미를 급히 유성탄에게 뿌렸다. 그러고는 결과도 보지 않고 급히 몸을 날렸다.
“으악!”
대단한 임기응변을 구사한 전화생이었지만 암기나 독물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성탄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도 안 하고 그대로 달려들더니 전화생의 허리를 주먹으로 쳐버렸다. 그리고 전화생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만다.
“무슨 일이지요?”
갑작스런 소란에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하후란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무공이 높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효춘과 아우들이 뛰어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뭐야! 이놈은?”
강태웅이 묻고 마동파가 꿈틀대는 전화생을 보고는 달려들며 소리쳤다.
“조심하세요!”
마동파를 보며 하후란이 소리치자 경험이 많은 마동파는 뭔가를 느꼈는지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동파의 가슴을 스치듯이 전화생의 검이 지나갔다. 엄청난 충격에 잠시 정신을 놓쳤던 전화생은 역시 일급살수답게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달려드는 마동파를 향해 자신의 품에 있던 중검을 휘두른 것이다.
“아쭈, 이 자식 봐라! 남자 자식이 치사하게 죽은 척하다가 기습을 해!”
마동파는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을 알자 안색이 확 변했다. 그리고는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리고 나머지 아우들도 무기를 빼 들고는 전화생을 포위했다.
‘저 자식은 꼭 말을 해도 나보고 하는 것같이 하냐?’
마동파의 외침을 들은 유성탄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격으로 괜히 찝찝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마동파를 흘깃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