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장 세력을 만드는 낭인칠웅 (25/79)

제7장 세력을 만드는 낭인칠웅

“아니! 대형!”

낭인칠웅의 아우들은 유성탄이 혈문오살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 무기를 빼 들며 일어섰다.

“아아! 걱정 마라. 얘들하고 얘기를 나눠보다 보니까 아는 사이더라고. 그래도 너희들보다는 나이가 어릴 테니까 나는 상관 말고 그냥 맞먹으면 된다.”

은근히 자신을 혈문오살보다 높은 곳으로 올리는 유성탄이었다.

“지금 그러니까… 당신들 일곱이서 문파를 만든다는 말인가요?”

고화월과 지정우는 전음으로 우선은 유성탄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을 따라다니기로 했다. 기회는 가까울수록 더 많아지는 법이었다. 그런데 강태웅을 만나서 그들의 계획을 듣자 고화월의 눈이 커다래졌다. 솔직히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었다. 혈문이 아무리 살수문에서는 최고라 하지만 결국 무림인들에게는 삼류문파 취급과 천대만 받았다. 그들이 혈문을 찾는 경우는 오로지 누군가를 몰래 죽이고 싶을 때뿐이었다. 고화월은 거기서 벗어나서 양지에서 남들처럼 강호의 기남들도 사귀고 대접을 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강태웅의 계획은 무모했다. 겨우 일곱 명의 낭인이 방을 세우기에는 무림세력의 배타성은 대단했다. 만약 방을 세워서 독립을 하는 것이 쉬웠다면 그녀가 이미 몇 명의 살수를 데리고 나와서 방을 세웠을 것이다.

“우리 나름대로 계획을 짜놓은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크게 시작했다가는 어떤 꼴을 당할지는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바닥부터 조금씩 세력을 넓혀가다가 어느 정도 힘을 비축한 후에 이름을 나타낸다면 그들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우리에게는 대형이 계십니다. 안남에서는 척지경을 죽이는데 최고의 공을 세우셨고 흑혈신마의 흑혈탈혼기를 부러뜨리고도 살아 계신 분입니다.”

“흑혈탈혼기를 부러뜨리고도 살아 있어요? 흑혈신마가 잃어버린 것이었나 보군요.”

고화월은 유성탄이 흑혈신마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하,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형께서는 흑혈신마와 무려 이백여 초를 싸우셨습니다. 물론 이기시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면 천하의 누구와 싸워도 큰소리쳐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냐? 흑혈인지 뭔지 하는 그 장의사 닮은 영감이 도망가지 않았다면 나한테 죽었어!”

흑혈신마가 떠나자마자 고꾸라져서는 거의 반나절을 정신을 못 차린 것을 모두 본 아우들이 여섯이나 있는데도 큰소리를 잊지 않는 유성탄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혈문오살의 얼굴이 변해갔다. 흑혈신마라면 혈문 전체가 덤빈다 해도 못 당할 자였다. 아니 아예 청부조차 받지 못할 최고의 기피대상 몇 명 중의 한 명이 그였다. 만약 유성탄의 큰소리가 사실이라면 그들로서는 감히 덤빈다는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저희들을 도와주신다면 여러분은 본방의 창립공신이자 중요인물로 본방의 핵심에 있게 되실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방이 다 자리를 잡은 다음에 돕는 것은 그 공이 좀 떨어지게 되는 법이지요.”

고화월은 전부를 쳐다보았다. 일개 낭인들이었지만 이제는 어엿한 낭인칠웅이라는 이름을 무림에 올린 무림인이 된 자들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다닌다는 것보다 더 떳떳한 일은 없는 법이었다.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지금은 잠시 떠나겠어요. 그러나 곧 마음을 정하면 다시 오겠습니다.”

원래는 유성탄을 쫓아다니다가 기회를 보아 죽일 생각이었던 고화월은 강태웅에게 그들의 계획을 듣자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우선 떠나겠다고 말했다.

“기대하겠습니다.”

강태웅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선선히 대답했다.

“참 한 가지! 저희 대형을 사람들은 마질대형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한번 원한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괴롭힌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저희들은 그분과 죽음으로 맺어진 형제들입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대형과 원한을 맺는 우는 범하지 마십시오.”

강태웅은 나가는 혈문오살에게 잊었다는 듯이 부언해서 말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자신들의 편이 되거나 다시 살행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이번같이 유성탄을 먼저 노리지 않고 자신들을 노렸다면 분명 그들의 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강태웅이 경고를 한 것이다.

* * *

“성우야, 나도 여러모로 알아봤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있기는 하더구나.”

유정삼은 유성우의 말을 들은 후 나름대로 은밀하게 여러 가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능하다는 말을 듣기는 해도 평생을 포쾌로 지낸 그였다. 뭔가를 조사하는 데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던 그였고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이상한 점이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님, 직접 알아보시는 것은 위험합니다.”

유성우는 유정삼의 말에 놀라서 말했다.

“아니다. 그래도 할아버지 대부터 삼대를 포쾌를 한 명문이 우리 집안이다. 네 말대로 아무리 나의 직속상관이신 현령이라 해도 뭔가 불법적인 일을 벌이고 있다면 파헤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명문이라고 알아주지 않는 집안이었지만 유정삼은 대단히 자부심을 가지고 포쾌 일을 했었다.

“휴우!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걱정 마라. 나도 포쾌 일만 삼십 년 가까이 한 사람이다. 그 정도는 안다.”

“그런데 알아내신 것이 무엇이십니까?”

“우선 현령님의 가족들이 너무 화려하게 산다. 겉으로는 검소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현령부인께서 그동안 패물 집에서 산 패물만 해도 금자 삼백 냥은 넘는 액수였다. 거기다 그 자식들은 모두 연경에 유학을 보내서 이름난 학사들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현 황도인 연경에서 이름난 학사에게 공부를 하려면 여간한 돈으로는 감당을 할 수 없는 법이었다.

“현령님의 봉급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군요?”

“내가 아는 현령의 봉급으로는 평생을 모아봐야 금자 백 냥도 모으기 힘들다. 거기다 현령님께서 아무도 모르게 장원을 하나 구입했는데 거기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중앙집권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한 주원장은 사병(私兵) 키우는 것을 금지시켰었다. 그리고 당금 영락제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반역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지켜지지는 않지만 무림문파조차도 삼백여 명 이상의 문도는 두지 못하게 법으로 막고 있는 지금, 사적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걸리는 때였다.

“아마… 제가 가는 창고에서 보는 무림인들일 것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절대로 그 근처에도 가시면 안 됩니다.”

“물론이다! 그런데 물품이 오가는 흔적은 아직 찾지를 못하고 있다.”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매일 창고에 가서 오고 가는 물품을 적는 저조차도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창고가 어디에 있느냐?”

현령 갈추산은 유성우에게 일하는 곳을 유정삼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했었다. 그리고 유정삼도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이제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유정삼은 유성우가 일하는 곳이 어딘지 알고 싶었다.

“아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확실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어떤 증거를 찾으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유성우는 말할 수 없었다. 무림인인 그들을 유정삼이 당해낼 수는 없다. 현령이 낀 사건에 일개 작은 현의 포장 정도를 대우해 줄 자들이 아니다.

* * *

“엄마! 누가 자꾸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유정삼과 유성우가 건넌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시각, 유성화는 강추화에게 은근히 좌소백의 일을 말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어떤 미친놈이 너를 좋다고 따라 다닌다더냐? 헛공상 하지 말고 네 오라비 옷이나 꿰매라! 너는 오늘 네 오빠가 다 닳아서 구멍 난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안 아프더냐?”

강추화는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엄마, 나도 엄마 자식이고 오빠도 엄마 자식인데 왜 내 말은 잘 안 듣고 뭔 말만 하면 오빠 옷만 꿰매라고 하는 거예요?”

유성화의 볼멘소리에 강추화는 꿰매던 옷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성화야, 여자 나이 열일곱이면 이제 철도 좀 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지금 네가 밖에서 쓸데없는 남자 놈들이나 만나고 다니다가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나면 어떻게 시집이나 가겠니?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라면 뻔할 뻔 잔데 이 엄마가 그래 ‘아이구! 남자가 쫓아다니고… 정말 우리 딸 장하다!’ 그럴 줄 알았니? 이 엄마가 언제나 말하지만 여자가 조신하게 있어야 좋은 남자가 생기는 거다. 너같이 천방지축 까불다가 이상한 놈 만나면 신세 조진다는 것만 알아둬!”

강추화는 따끔하게 말했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이상한 놈 아닌데… 엄마, 진짜 괜찮은 남자야! 한주현에서만이 아니라 감숙성 전체로 따져도 엄청 부자 축에 낀다니까.”

유성화는 강추화가 제일 좋아하는 부자 얘기부터 꺼냈다. 그래야 얘기가 잘 풀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적중했다.

“부자?”

강추화는 부자라는 소리에 고개를 들더니 바느질감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어느 집 누구냐?”

‘하여간에 엄마는 부자라면… 히히히!’

“성내에 있는 청무관 집 아들인데, 얼마나 잘생겼다고!”

“청무관?”

강추화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눈이 커다래졌다.

“너 솔직히 말해라! 그놈하고 어디까지 간 거냐?”

“응? 제일 멀리 간 게 치우산까지 같이 가봤는데!”

“그걸 말하는 게 아니고! 그놈이 니 몸의 어디까지 만졌냐고?”

“만진 거로는 손도 만졌고 얼굴도 만졌고… 뭐 그 정돈데… 왜?”

“정말 그 이상으로는 다른 짓 한 거 없지?”

“엄마는 내가 뭐 바본가……. 나도 여자가 함부로 남자에게 만지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다행이구나. 그럼 이제부터는 그놈 다시는 만나지 마라!”

부자라는 말에 강추화가 좋아할 줄 알았던 유성화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강추화의 말에 펄쩍 뛴다.

“왜에! 난 한주현 남자들 싫어! 모두 가난하고 못생겼고…….”

“얼굴 뜯어먹고 살래? 거기다 한주현 사람들이 큰 부자는 아니지만 다 열심히 산다. 그런데 왜 싫어!”

“도대체 왜 그러는데? 엄마는 부자 좋아하잖아?”

유성화의 말에 강추화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성화야, 엄마가 돈을 좋아하는 것은 너희들에게 더 좋은 옷 그리고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서이지. 내가 호강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청무관이라면 나도 들어서 안다. 아주 유명한 무림인이고 관부의 높은 사람과도 잘 알고, 거기다 엄청난 부자라는 소문도 들었다. 생각해 봐라! 그런 집에서 우리와 혼사를 할 것 같니? 내 생각이 맞다면 그놈은 분명 너를 잠시 데리고 놀려고 유혹한 것뿐일 거다.”

“아니야! 진짜 나 좋아한다고! 나랑 혼인하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다 거짓말이다. 그리고 진짜라 해도 될 수가 없어! 그런 집에서 아들이 좋다 한다 해서 너를 받아줄 리도 없고 잘못하면 니 아버지나 오빠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뱁새는 뱁새끼리 살아야지 황새를 쫓아가려고 하다 잘못하면… 그만두자. 하여간 더 이상 그놈은 만나지 마라.”

강추화는 유성화의 얼굴에서 청무관의 아들을 돈이나 보고 만난 게 아니라 진짜 좋아서 만났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집안이라면 아들이 진짜로 혼사를 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막기 위해 자기 집안 전체를 도륙 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까지 그녀에게 할 수는 없었다.

* * *

“본 방의 방주님이시다. 하지만 아직은 방의 이름도 정하지 않았고 하니 그냥 대형이라고 부르면 된다.”

강태웅의 말이 떨어지자 십여 명의 장한들은 부복을 하며 크게 외쳤다.

“대형을 뵙습니다!”

‘흠! 기분이 나쁘지는 않군.’

방의 침상에 앉아 있던 유성탄은 아우들이 단 하루 만에 끌고 온 부하들을 보며 처음에는 못마땅한 얼굴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너무 지저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부복을 하는 그들을 보며 이상하게 우쭐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 맛에 세력을 세우려고 하는가 본데… 하여간에 뽀다구는 나는군!’

“그래, 이제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 됐으니 열심히 충성하고 여기 아우들의 명을 잘 따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대형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유성탄의 말이 끝나자 다시 장한들은 커다랗게 복명했다.

“그럼 나가서 좀 씻어라. 그리고 얘네들 옷 좀 사줘라.”

“알겠습니다. 자, 나가자!”

표도행은 유성탄의 말이 떨어지자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이며 역시 커다랗게 복명하고는 장한들을 데리고 나갔다.

“도행이 갑자기 왜 저러냐?”

표도행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격식을 차리며 유성탄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 이상하다는 듯이 유성탄이 물었다.

“사적으로는 대형과 저희들이 형제지만 부하들이 있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문파의 장으로 대접을 해야 기강이 서는 법입니다. 저희들이 지금까지처럼 했던 행동을 대형에게 한다면 부하들이 대형을 우습게볼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 게 있었냐? 흠! 한마디로 무게를 잡아라 이건데… 그거야 내 특기지. 그런데 어디서 애들을 금방 데려왔냐?”

“어느 지역이나 낭인은 있습니다. 나름대로 무예를 익히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먹고 살지요. 그러다가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이동합니다. 갔다가 거기가 좋으면 그냥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나쁘면 다시 돌아오지요. 이들은 아직 실력이 용병을 가기는 어렵고 용역이나 하는 아이들인데 황대산이가 호북 출신인지라 연락이 쉽게 됐습니다.”

“황대산이 호북 출신이었냐? 그런데 걔는 왜 자기 부모도 만나러 가지 않는다냐?”

“이 근처는 아닙니다. 황대산도 기구한 생활을 했던 아이지요.”

“그럼 황대산은 어디 있냐?”

“아는 아이들을 불러 모을 겸 고향에 한 번 가겠다고 해서 마동파와 함께 같이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한 이틀 정도 걸린다고 하더군요.”

황대산은 유성탄이 그냥 떠났다면 그냥 따라서 사천으로 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부하들을 모은다는 말에 자신이 처음 낭인생활을 시작했던 곳으로 가서 아이들을 좀 모아오겠다며 떠났다. 그리고 움직인 김에 고향에 한번 들렀다 오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황대산이 왜 고향을 떠나게 됐는지 아는 강태웅은 혹시를 생각해서 마동파를 붙여준 것이다.

황대산은 고향에서 결혼까지 했었다. 힘이 좋고 얼굴도 호남형이었던 그는 말발이 좋고 어려서 우연히 마을에 정착했던 무사에게 무공까지 배워 젊은이들 중에서는 대장 노릇을 하던 그는 고향의 여자들에게 인기도 좋았었다. 그리고 미인으로 이름난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 가진 재산은 없었지만 원체 힘이 좋은 그는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서 생활은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살던 고향의 산에서 동(銅)이 발견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산은 무조건 나라의 땅이었고 당연히 거기서 나오는 산물도 나라의 것이었다. 나무를 하거나 사냥을 하는 정도는 관에서 묵인해 주었지만 구리는 달랐다. 관에서 나왔고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양의 구리가 있다는 판단이 서자 관에서는 채광을 할 대리인을 선정했다.

산에서 나오는 광물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것이었지만 나라의 기본 화폐인 금을 채광하는 금광과 무기를 만드는 철을 생산하는 철광을 제외한 나머지는 나라에서 채광을 하지 않고 불하를 해주고 이익금을 나라에 바치는 대리인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통은 광물을 발견한 사람이나 근처 마을에 권리를 주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황대산이 살던 마을은 모두 가난한 무지렁이밖에 없었다. 관에서는 마을에다가는 아예 묻지도 않고 대리인을 임의로 선정했는데, 그 이익이 크다 보니 상당히 많은 세력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대리인이 된 세력은 제일 먼저 황대산의 마을 사람을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원칙적으로는 마을이 있어야 일군을 구하기도 좋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달랐다. 캐낸 광물을 모두 나라에 그대로 보고한다면 그 이익은 적어지기 마련이었고 당연히 상당한 물품이 뒤로 사라지게 되는데 그 양이 많다 보니 사람의 눈을 속이기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들은 마음대로 물건을 빼내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기 사람들로 마을을 채우는 것이 낫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거의 반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협박과 그들이 제시하는 돈에 현혹되어 마을 떠났다. 하지만 황대산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떠나기를 거부했다. 어차피 자신의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주는 돈이 많고 적고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오랫동안 경작하던 땅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제시하는 돈은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그들을 용역을 투입했다. 문제는 그들이 흑도파를 용역에 투입한 것이다.

그들은 정말 잔인했다. 단 하루 만에 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나가는 사람이 수십이 생겼고 심지어 죽은 자만 이십여 명이나 되었다. 다행히 무공을 좀 아는 황대산이 나서서 용역들과 싸우는 바람에 그 정도에 그친 것이었다.

용역들은 그 다음날은 아예 무기를 가지고 나타나서는 황대산을 죽이려 들었지만 생각 외로 실력이 좋은 황대산에게 막혀 어쩔 수 없이 다시 물러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놈들이 황대산의 집을 습격한 것이다. 누군가가 황대산의 집을 가르쳐준 것이다. 하지만 뒷간에 갔다 오던 황대산의 아내가 그들을 발견했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그들의 칼에 맞아 죽고 만다. 아내의 비명소리를 들은 황대산은 혹시나 해서 마을의 군인 출신이었던 촌장에게 구해놓았던 커다란 도를 들고 뛰어나와서는 쳐들어온 자들을 모두 죽였다.

비록 절기는 아니지만 무관 출신의 무인에게 체계적으로 무공을 배웠고 타고난 신력을 지닌 황대산을 삼류에 불과한 십여 명의 흑도 용역들로서는 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황대산은 완전히 미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온몸에 피를 흘리며 용역들이 주둔하고 있는 마을 공터로 달려간 황대산은 닥치는 대로 용역들을 죽였고, 갑작스런 습격에 용역들은 모두 도망을 치고 말았다. 죽은 용역이 십여 명이 넘었고 팔다리가 잘린 자들도 이십여 명은 되었다. 하지만 황대산 역시 몸이 성한 곳은 한 곳도 없다시피 했다. 그의 얼굴에 난자되다시피 그어진 흉터들은 그때 입은 상처였다.

그리고 무너지듯 쓰러진 황대산은 아침이 되어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달려간 그는 아내의 주검을 안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나타난 결과, 살인자로 관의 추격을 받게 된 것이다. 용역은 사람을 수십을 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 용역에게 복수를 했다는 이유로 살인자가 된 것이다.

그 후 황대산은 낭인이 되어 용병만 나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하겠고 그렇게 싸우다 보면 누군가의 검에 맞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웃음을 찾고 삶의 의욕을 찾게 된 것은 강태웅을 만난 후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우들도 알다시피 대형께서는 세력을 만드는 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시고 계시다. 그렇다고 대형께서 방의 일에서 소외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유성탄의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에 모인 아우들을 보며 강태웅이 진중하게 말했다.

“당연하지요. 솔직히 요새는 대형이 너무 좋습니다. 좀 철이 없이 보일 때도 있지만 가만히 보면 모든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고 있습니다.”

표도행의 말에 장우왕이 웃으며 말했다.

“표 아우도 그렇게 느꼈나? 나도 그러네. 어디를 가든 사고는 일으키지만 저 성미에도 절대로 약한 양민들에게는 시비를 안 거시네. 이상한 게 말로는 분명 아니라고 하시고 내가 보기에도 아닌 것 같은데 결과는 협행을 한 게 되거든. 난 이따금 대형께서 일부러 그렇게 일을 몰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왜 그런지 아나? 내가 보기에 대형께서는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인간으로서는 차마 이겨내지 못할 일을 겪으셔서 그렇지 자신의 마음속에 내재된 살기 같은 건 없는 분이네. 혈문만 해도 죽인다 죽인다 하면서도 그다지 찾는데 열성적이시지도 않네. 타고난 심성이 착하시고 여리신 분이야. 거기다 우리보다도 더 정의감이 강하시네. 언제나 아닌 척하지만 포구마을에서도 결국은 딸을 빼앗길 뻔한 노인을 구해주었고, 양민을 괴롭히는 고리대금업자도 작살냈네. 분명 대협이 되실 걸세.”

“저도 대형이 좋습니다.”

철패가 어눌한 목소리로 간단히 말하자 표도행이 물었다.

“철패 형님께서는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어제 대형께서 요 앞에서 야바위 패를 벌였거든. 할 일도 없고 해 심심해서 봤는데 이상하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잃어주시더라고. 그래서 다 끝나고 물었지 왜 잃어주셨냐고? 그랬더니 내게 사업적인 머리가 없다고 면박을 주시는데 이렇게 한번 잃어줘야 다음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거야. 그런데 난 아무리 봐도 대형께서 진짜 그래서 잃어준 것 같지가 않더라고. 좀 돈이 있어 보이거나 왈패 같은 놈들에게는 사정없이 속임수를 썼거든.”

대화를 나누는 아우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가씨, 오늘 어디서 삼류무공을 쓰는 낭인 열 명을 영입한 모양입니다. 도대체 저런 자들을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효춘은 강태웅이 세력을 만든다고 하고는 겨우 자신이 한 번 휘두르면 다 고꾸라질 삼류 낭인 열 명을 데리고 오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하후란에게 말했다.

“호호호! 왜요? 뭐가 잘못됐나요?”

하후란이 마효춘의 말에 웃으며 물었다.

“방파란 수만 많다고 힘이 센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런 놈들은 백 명을 데리고 다닌다 해도 고수 한 명만 나타나면 전부 파리 목숨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요.”

하후란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거기다 하나같이 인상들이 더럽습니다. 어디 가면 산적으로 오인받기 딱 좋겠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어차피 고수를 영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우리도 고수를 영입 못 하는데 어떤 고수가 저런 허접한 방에 들어가겠어요.”

하후란의 말이 맞았다.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진 그녀의 문파도 고수는 끌어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유성탄을 찍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흑도파들에게는 저들의 수나 인상이 먹힐 거예요. 아무리 낭인칠웅이 강하다 해도 가는 곳마다 싸울 수는 없지 않겠어요? 하지만 쪽수가 되고 인상이 더러우면 아마 싸움은 반 이상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싸우지 않고 그들을 제압한다면 좋은 병법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아닌가요?”

“정말 저들로 하여금 흑도들을 징치하게 하실 겁니까?”

“물론이에요. 천하의 뒷골목은 예전부터 우리 문의 것이었어요. 그것이 대원 시절 우리가 반원을 했다는 이유로 풍비박산나면서 우리의 힘이 미치는 곳은 예전의 십분지 일도 안 돼요. 제가 작성한 서찰은 아버님께 들어갔겠지요?”

“아마 어제쯤 받아보셨을 겁니다.”

“그럼 됐어요. 우리의 뒤를 놓치지 말고 있다가 저들이 흑도파를 박살내면 재빨리 접수를 하라고 하세요.”

“그렇지만… 아가씨, 잘못하면 흑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뒤를 봐주던 자들과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교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접수를 하자마자 곧장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 우리도 그들이 상납한 만큼 상납을 하겠다고 하세요. 그들에게는 상납이 중요하지 누가 그곳을 잡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여간에 아가씨 명대로 하기는 하지만 걱정입니다.”

마효춘은 하후란의 말에 알겠다는 표정을 짓기는 하면서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후란의 계획의 정점에는 유성탄이 있었다. 만약 유성탄이 어디서든 계속 이기면서 승승장구한다면 하후란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어차피 무림이나 뒷골목이나 강한 자가 법이었다. 그러나 만약 어디서든 유성탄이 깨지는 순간 모든 덤터기는 그들이 쓸 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유성탄의 방의 뒤에는 그들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형! 손님이 왔습니다.”

여간해서는 흥분하지 않는 강태웅의 목소리에 가만히 누워 어디서 한 건 잡을 궁리를 하던 유성탄이 이상하다는 듯이 일어나 앉으며 소리쳤다.

“나한테 올 손님 없다!”

“귀한 손님입니다. 나와 보십시오.”

‘저건… 나한테 올 손님이 없다는데 끝까지…….’

유성탄은 솔직히 손님도 귀찮았다. 강태웅과 그 아우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꾸 무림에 얽히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다른 무림인을 사귀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누군데 귀찮게 그러는 거야! 어… 네가 웬일이냐?”

문을 열고 나간 유성탄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자신보다 잘생긴 남궁무가 어떤 중년인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유성탄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남궁무만이 자신보다 잘생겼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유 형, 오랜만입니다.”

“빨리 들어와라!”

유성탄이 급히 말했다. 언뜻 듣기에는 반가워서 그러는 것 같았지만 잘생긴 남궁무를 하후란이 보는 것을 원치 않아서 한 행동일 뿐이었다.

“하하하! 유 형께서 저를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오해를 저런 식으로 하는 거야 찝찝하게……. 이거 괜히 진짜로 내가 반가워 그런 줄 알고 툭하면 찾아오고 그러면 안 되는데…….’

유성탄은 남궁무의 말에 영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우선은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대형, 이분은 남궁후기 대협이십니다. 무림에서는 이름이 아주 높으신 분이십니다.”

강태웅은 안으로 들자 남궁후기부터 소개했다. 들어오기 전에 인사를 했어야 예의에 맞는 일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소개까지 늦었다가 유성탄이 무례라도 범했다가는 세력을 만들기도 전에 남궁세가와 척을 지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말한 것이다.

“하하하! 대단하신 분이시군요. 저는 낭인칠웅의 대형인 유성탄입니다. 하하하!”

[조금 경망스럽구나.]

유성탄의 하는 행동과 말을 들으며 남궁후기는 약간은 실망스럽다는 듯이 남궁무를 보며 전음을 날렸다.

[보기에는 저렇지만 괜찮은 분입니다.]

‘으잉! 경망? 무게에 죽고 무게에 사는 내가 저런 단어를 듣다니… 이 씨! 첫인상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반전을…….’

“하하하! 오늘 남궁파 저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제가 반가워서 경망스럽게 행동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유성탄은 인상의 반전을 위해 목소리를 깔면서 남궁후기에게 말했다. 그리고 남궁후기의 눈이 더 이상 커질래야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놀란 정도가 아니라 경악을 한 것이다. 전음을 엿들으려면 적어도 삼 갑자의 내공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내공을 지닌 사람은 무림 십대고수들 정도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이 전음을 들은 것 같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유성탄이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충동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청각이 거의 벌레 수준으로 발달한 것을 알 수 없었다. 전음도 어차피 진동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말하는 방식이었다. 진동이 생기면 유성탄의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허허허! 이 아이가 강호에 신진고수가 나타났다고 하기에 긴가민가했거늘 정말 젊은 나이에 대단한 성취구려.”

남궁후기에게서 최고의 찬사가 나오자 강태웅의 얼굴이 환해졌다. 자신의 대형이 진짜 고수에게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대단한 성취? 내가 보여준 게 뭐가 있지?’

유성탄은 남궁후기의 말을 듣자 의아하기는 했지만 대단한 대협이라더니 얼굴만 봐도 알아보나 보다 하고는 그냥 넘어간다.

* * *

남궁세가, 남궁세가 하기에 솔직히 ‘거기 사람들은 고추가 두 개 달렸나? 뭘 그렇게 대단하다고 난리야’ 그랬는데 만나보니 이유가 있었더라고! 나를 보자 단숨에 나에 대해 알아차리고는 존경의 눈빛과 찬사를 보내는 거야. 그래서 생각했지. 역시 나 유성탄은 다르구나!

* * *

“그렇다면 마룡방과의 시비는 전혀 계획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남궁후기는 강태웅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절대 아닙니다. 대형께서 소호의 도박장에서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듣고는 양민들을 위해 도박장을 부순 것입니다. 저희도 일이 커져봐야 도박장을 운영하는 흑사파하고나 싸움이 벌어질 줄 알았지 설마하니 마룡방까지 나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강태웅의 말을 들으며 남궁후기는 무척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유성탄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허허! 정말 대단한 젊은이로군! 요새 누가 그렇게 힘없는 양민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쓰려고 하겠는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하하하!”

유성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게를 잡으며 말하고는 역시 무겁다고 생각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 행동은 칭찬할 만한데 역시 가벼워 보인단 말이야…….’

남궁후기는 유성탄의 말투나 웃음이 너무 가벼운 것이 흠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우리가 아는 마룡방은 절대로 자네들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네.”

“대형의 생각은 한결같으십니다. 남자로 태어나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죽을 때 죽더라도 좋은 일을 하다 죽겠다는 것입니다.”

‘태웅이 얘 때문에 정말 미치겠네. 왜 자꾸 나보고 죽는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에이… 맞장구치기도 힘드네.’

강태웅은 자신의 말에 남궁무와 남궁후기 둘 다 모두 감탄하는 듯하자 잘하면 아주 든든한 조력자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

“대형께서는 그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서 번 돈까지 모두 양민을 위해서 쓰셨습니다. 아마 그것은 조사해 보면 곧 아실 것입니다. 어차피 남궁세가 같은 무림 대파는 천하의 큰 정의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힘을 쏟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흑도파는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우리가 해볼까 합니다.”

“숙부님!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장 보이지 않는 강호의 정의보다는 눈앞에서 고통 받는 양민을 돕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유 형을 돕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남궁무의 말에 남궁후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야! 네 의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남궁가의 자손은 자신이 돕고 싶다고 해서 가문의 허락 없이 돕거나 할 수는 없다.”

“남궁가의 일원으로가 아니라 그냥 유 형의 친우로서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게! 왜 나한테 곱사리 끼려고 그러는 거야?’

쪼잔한 유성탄, 오로지 남궁무가 잘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무조건 같이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남궁 공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정말 큰 힘이 되겠지만 그것은 아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누구라도 공자님이 나타난다면 남궁세가가 나타났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무림세력이 끼어들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자네 이름이 강태웅이라고 했나?”

남궁후기는 태웅의 한마디 한마디가 진중하고 사리에 밝자 호기심이 동하는 듯 물었다.

“예, 강태웅입니다.”

“내 기억하지! 그리고 자네들을 눈앞에서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알게 모르게 도울 것이네. 자네도 아마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짐작할 것이지만 그래도 얘기는 해야겠지.”

남궁후기는 유성탄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마룡방이 안휘에 들어왔네. 물론 지나가는 정도라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들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우리 구역까지 들어왔으니 문제가 되네. 자네들 낭인칠웅이 그들을 거의 전멸시키는 바람에 지금은 유야무야로 끝내가고 있지만 사실 마룡방의 행동은 상당히 무례해서 우리 남궁세가에서는 마룡방과의 전쟁까지 생각했었네. 물론 거기까지는 우리 남궁세가와 마룡방의 일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자네들이 왜 마룡방과 싸우고는 안휘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자네들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아야겠기에 우리가 직접 온 것이네.”

“당연히 그러셨겠지요. 모든 것은 전부 대형의 의협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마룡방의 공격에 너무 다급했고 대남궁세가가 있는 안휘로 피한다면 당연히 그들이 더 이상 추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본의 아니게 귀찮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됐네! 그게 어찌 자네들 잘못이겠나? 세상에 지나지 못할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

“현재로서는 사천으로 갈 생각입니다.”

“거기라면 마룡방으로서도 어찌하기는 힘들겠군. 아주 좋은 만남이었네. 언제든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얘기하게.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도와주겠네.”

남궁후기는 아주 가까이 하기에는 아직은 이르지만 다독거려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강태웅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고 유성탄에게서는 순진함을 느꼈다. 나쁜 마음을 먹을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가 유성탄 일행과 척을 질 필요가 없다고 느낀 첫째 이유는 역시 유성탄이 자신의 전음을 들은 것 때문이었다. 무림은 강한 자를 친구로 삼아야 하는 법이었다.

“대형! 남궁세가에서 우리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갔습니다. 남궁후기 대협이라면 무공도 무공이지만 현가주의 친아우로 남궁세가에서는 아주 큰 발언권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좋은 일이 생기는군요.”

남궁후기와 남궁무가 떠난 후 아우들과 함께 유성탄의 방에 모인 강태웅은 아주 고무적인 얼굴로 말했다.

“정말입니다. 남궁세가는 무림의 가장 큰 세가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의 도움을 떠나서 척을 지지 않은 것만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장우왕도 잘됐다는 듯이 동감을 표시했다.

아우들이 모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유성탄은 얼굴이 편치 않았다.

“대형!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계십니까?”

표도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너희들 호들갑 떠는 모습이 영 보기가 안 좋다.”

유성탄의 말에 모두 쳐다본다.

“남궁 뭐시기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돈을 줬냐?”

“그거야…….”

“그럼! 대신 마룡방과 싸워주거나 아니면 막아준다고 했냐?”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가 찾아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리고 보호해 준다고 약속했냐?”

“그것도…….”

“그럼 뭐가 좋은 건데? 하여간에 너희들 보면 참! 머리가 둔하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장우왕 네가 그랬지? 정파라는 작자들,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로는 할 짓 다한다고! 난 나하고 나의 아우들만 믿는다. 남궁세가에서 무슨 말을 했건 거기에 부화뇌동하지 마라!”

유성탄이 문자까지 써가며 충고하듯이 말하자 아우들의 얼굴에는 감격의 표정이 어리고 있었다.

“맞습니다. 믿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부화뇌동이라… 좋습니다. 드디어 대형께서 문자까지 쓰시고 정말 살 맛 납니다.”

‘이 자식 또 말을 이상하게 하네? 내가 문자 쓰는데 지가 왜 살 맛이 난다는 거야 씨! 괜히 찝찝해지네…….’

“역시 대형은 영웅의 기상이 철철 넘치십니다. 맞습니다. 남궁세가에서 우리에게 해준 거라고는 말뿐인데 거기에 우리가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후란에게 들은 문자 한번 썼다고 다 따라하네. 에이, 무식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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