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장 금모전 (28/79)

제10장 금모전

“공 형,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청담 대형은 나도 압니다. 솔직히 나는 청담 대형께서 공 형에게 이런 용역 일을 부탁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그렇다면 공 형은 청담 대형이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모두 마을 밖으로 쫓아낸 후 공칠룡을 일으킨 강태웅이 설득을 시작했다.

“나는 청담 대형의 직계요. 이유가 무엇이건 나는 그분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낭인이니 드리는 말이지만 빨리 도망을 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공칠룡은 그 말을 끝으로 할 말이 더 이상 없다는 듯이 입을 꽉 닫았다. 사나이다운 기상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에이 씨! 대충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자식이 무지 건방지네! 태웅, 너는 비켜라. 이런 자식은 맞아야 얘기가 통한다.”

유성탄은 탁자에 앉아 홀짝거리며 술을 마시다가는 일어서며 말했다.

“여기 공 형은 낭인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높은 사람입니다. 같은 낭인들끼리 너무 억압적으로 대하는 것은 좀 그렇습니다.”

강태웅이 유성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강태웅, 너는 그게 문제다. 너무 재는 게 많아! 비켜라.”

강태웅에게 유성탄은 대형이었다. 유성탄의 입에서 비키라는 말이 나온 이상 더 이상의 반박은 있을 수 없었다.

강태웅이 비키자 유성탄의 발이 그대로 공칠룡의 배를 걷어찼다.

“이 자식아! 개떡 같은 낭인들의 의리는 중요하고 불쌍한 양민들의 어려움은 보이지 않냐? 이 자식은 무게는 무지 잡으면서 진짜 남자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몰라요. 너 같은 놈은 맞아야 된다.”

공칠룡은 이미 유성탄에게 맞아서 그 고통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작심하고 내지른 발차기인지라 그 아찔한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유성탄의 주먹이 무차별적으로 온몸에 떨어졌다.

“으아악! 원하시는 게 뭡니까? 제발…….”

“딴 소리 필요 없고 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해라.”

유성탄은 공칠룡의 입에서 굴복의 외침이 떨어지자 주먹을 멈추고 물었다.

“오늘이 물건이 나오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냥 이곳에 있다가 물건이 나오면 운반만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위에는 올라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여기에 고수들이 있다고 하던데 어딨냐?”

“보통은 이곳에서 쉬는데 오늘은 물건이 나오는 날이라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까부터 물건 물건 하는데 물건이 뭐냐?”

“저희도 잘 모릅니다. 저도 이번이 두 번째 온 것입니다.”

“청담이란 놈 어딨냐?”

“그건…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원체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시는 분이신지라…….”

유성탄은 공칠룡의 말에서 거짓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짜식이 주먹 몇 방에 다 불 거면서 의리 있는 척하고 있어. 더 알 거 있냐?”

유성탄이 주위를 보며 말했다.

“그거면 됐습니다.”

강태웅은 유성탄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낭인의 의리보다 양민들이 더 중요하다는 유성탄의 말은 강태웅의 생각을 완전히 바꾼다.

‘우아아! 방주님 너무 멋있다.’

영호충을 비롯한 새로 영입한 방도들은 처음으로 보는 유성탄의 신위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올라간다.”

유성탄은 강태웅의 됐다는 말이 떨어지자 당장 올라가려고 한다.

“대형, 그래도 위에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계획을 좀 짜서…….”

황대산은 한 번 겪은 게 있는지라 신중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 있어! 나 혼자 올라간다. 난 너희들이 다치는 거 더 이상 못 본다.”

말을 마치자 공칠룡이 내려왔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유성탄은 보며 아우들의 존경의 빛이 가득한 눈길이 따랐다.

“대형에게 무슨 일 있었습니까? 갑자기 너무 똑똑해지신 것 같습니다.”

“똑똑해지신 게 아니다. 원래 똑똑하신 분인데 배우지를 못하고 인간세상을 너무 몰라서 그러시는 것뿐이었다. 점점 많은 것을 아시면서 머리가 깨시는 거다. 그리고… 타고난 대형이시다.”

강태웅의 말을 들으며 모두는 숙연해졌다.

“어쨌든 우리가 아무리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대형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시게 할 수는 없다. 우리도 대형의 뒤를 따른다. 죽고 살고는 하늘에 달린 일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모두는 무기를 빼 들고는 유성탄이 올라간 길을 따라 올라갔다.

“이 자식들은 어디 간 거냐?”

무림 오대사파의 하나인 금모전의 내당 부당주 독각귀 육조린은 당연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용역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짜증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육조린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고수였고 금모전의 내당 부당주라는 녹록지 않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런 산골짜기의 광산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라는 명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밑이 소란스럽다고 잠시 내려갔다 온다고 하더니 벌써 반 시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습니다.”

“밑이 소란스럽다고? 그렇다면 니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소란스러워서는 안 될 곳이 소란스럽다면 당연히 너희들도 내려가서 조사를 해야 할 것 아니냐!”

육조린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들어가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다. 용역을 온 놈들이 낭인들이다 보니 지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일이 하루에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대답하던 조장 방여갈은 육조린의 음성이 사납자 겁에 질린 목소리 급히 변명을 했다.

“이 자식아! 오늘이 평상시와 같으냐! 앙! 당장 내려가서 알아보고 와라. 곧 물건이 나올 텐데 물건을 운반할 놈들도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알겠습니다.”

방여갈은 급히 자신의 조원들 다섯 명과 급히 산을 내려갔다.

“에이, 바보 같은 놈들!”

육조린은 욕을 한마디 내뱉고는 다시 굉도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멈춰라!”

길을 따라 올라가던 유성탄은 방여갈과 그 부하 다섯 명이 뛰어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용역을 나온 낭인 중 한 명이겠지 하며 내려오던 방여갈은 유성탄이 앞을 가로막자 물었다.

“도대체 너희들은 뭐 하는 거냐? 돈을 받았으면 성실하게 일을 해야지 그런 식으로 자꾸 농땡이만 친다면 우리로서는 약속된 금액을 지불할 수 없다.”

“오늘 너무 사람들을 많이 때리는 것 같아서 슬슬 하려고 했는데 농땡이를 부리지 말고 열심히 때려달라고 부탁까지 하고 참 착한 놈이로구나.”

유성탄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느낀 방여갈은 잠시 유성탄의 얼굴을 쳐다보다가는 소리쳤다.

“이제 보니 용역이 아니었구나. 네놈은 누구냐?”

방여갈은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는 기색 없이 검을 뽑으며 물었다. 그 역시 무림에서는 일류소리를 듣는 고수였다. 겉보기부터 껄렁해 보이는 유성탄 같은 낭인을 무서워할 그가 아니었다. 거기다 유성탄은 혼자였고 자신은 다섯 명의 부하와 같이 있었다.

“이 길을 지키는 하늘에서 별을 타고 내려온 유성방의 방주인 마질대형 유성탄이다.”

방여갈은 유성탄의 말을 듣더니 옆에 있는 부하를 보며 들은 적이 있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눈길은 전혀 모르겠다는 빛이었다.

“이놈이 미치려면 곱게 미칠 것이지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감히…….”

하지만 방여갈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유성탄이 어깨에 메고 있던 몽둥이로 그의 어깨를 그대로 쳐왔기 때문이었다. 방여갈이 비록 일류라고는 하지만 마룡방의 견준구나 창평추보다는 손색이 있었다. 그리고 견준구와 싸울 때보다 더욱 강해진 유성탄의 몽둥이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 만다.

“이놈이!”

유성탄의 몽둥이에 맞은 방여갈의 어깨는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하지만 방여갈은 극심한 아픔 속에서도 검을 빼 들며 유성탄을 베어갔다. 대단한 수련과 오랜 싸움의 경험이 주는 임기응변이었고 발달된 반사운동의 덕이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방여갈의 부하들도 급히 무기를 빼 들고는 유성탄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초식도 없이 무조건 휘두르는 듯한 유성탄의 몽둥이에 모두는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어느 무공이나 공격만 하거나 방어만 하는 일방적인 초식은 있을 수 없었다. 방어가 되어야 공격을 할 수 있고 공격을 해야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법인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은 방어가 아예 없었다. 검이 자신의 가슴을 찔러오건 도가 머리를 내리쳐도 유성탄은 꿋꿋하게 맞아가며 상대를 때렸다. 방어가 없는 공격은 방어가 가미된 초식보다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짜식들… 까불어!”

손을 탁탁 친 유성탄은 완전히 늘어진 적들을 뒤로하고는 계속 올라갔다.

낭인 용역들이 마을을 완전히 점거하고 있었고 원체 비밀스럽게 진행되던 일인지라 그동안 육조린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시끄럽게 굴던 용역들이 너무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물건만 들고 가면 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 거지?’

사문에 대한 투철한 충성을 바치는 정파와는 달리 사파에게 운영자금이란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다. 정파는 사부가 죽고 사문이 거의 멸망해도 사문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열정을 간직한 채 자신의 인생을 거는 제자들이 많았다. 한마디로 사문이 첫째인 것이다. 하지만 사파는 물질과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속성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문파의 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원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대사파 중 마룡방은 절강성에 자리잡고 있어서 소금의 밀매라는 엄청난 자금원과 주위에 많은 큰 도시의 흑도로부터 거둬들이는 상납금이 대단했다. 구룡회 역시 절강성에 있었고 아예 상가의 연합체였으니 당연히 자금이 풍부했다. 하지만 나머지 삼 파는 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나쁜 일을 다 하고 있었다.

금모전은 강서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오대사파 중 하나라 해도 무당이 있는 호북까지 넘어와서 일을 벌인다는 것은 부담이 많은 일이었다. 금모전에서 육조린과 방여갈 그리고 열 명의 부하만 데리고 온 것도 바로 그 이유였다.

그들은 정체를 숨긴 채 숨어서 지시만 하고 모든 일은 용역들이 맡아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그들이 가져갈 물건은 무려 다섯 차에 달하는 동이었다. 동은 은이나 금에 비할 수는 없어도 절대로 싼 금속이 아니었다. 그 정도면 적어도 금자 오천 냥의 값어치는 되는 것이다. 금모전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자금원이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이 잘 해먹었다. 이 광산에 금모전이 간여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야! 이놈아! 빨리 안 오고 뭐 하는 거냐!”

남은 다섯 명의 부하와 끙끙대며 동을 밖으로 옮기던 육조린은 화가 엄청 나 있었다. 오대사파의 하나인 금모전의 내당 부당주인 자기가 직접 동을 옮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던 낭인이 겨우 한 명이 나타났는데 무슨 산보라도 하듯이 천천히 놀면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지금 나보고 한 말이냐?”

유성탄은 육조린의 말을 듣자 멈춰 서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물었다.

“저런 미친놈이 있나! 이놈아!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말을 놓는 거냐!”

“저런 육시랄 놈이 있나!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냐!”

육조린은 유성탄의 큰 소리에 잠시 멈칫했다. 혹시 자신도 모르는 전의 높은 사람이 나온 것은 아닌가 했던 것이다. 용역으로 나온 낭인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큰 소리였다.

“어디서 오셨소?”

육조린이 먼저 숙이고 말았다.

“나는 하늘에서 유성을 타고 내려온 유성방의 방주 마질대형 유성탄이다.”

유성탄이 길게 자기소개를 하자 인상을 찌푸리고 듣던 육조린이 소리쳤다.

“진짜 미친놈인 것 같다. 시간 없으니 그냥 죽여버려라.”

유성탄의 말에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는 놈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용역들 대신 동을 나르느라 화가 나 있던 다섯 명의 부하들이 검을 뽑아 들고는 달려들었다.

“으악!”

육조린은 다시 굉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는 비명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비명이 부하의 것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유성탄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부하들은 이미 사지를 널브러뜨리고는 자빠져 있었고 유성탄은 웃는 얼굴로 방망이를 돌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낭인이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용역들이 안 나타나는 것도 네놈 짓이냐?”

육조린은 알 것 같다는 듯이 등에 매어놓았던 도를 풀어 손에 잡으면서 물었다.

“그놈의 자식 진짜 듣기 거북하구나. 이분은 유성방의 방주이자 우리 낭인칠웅의 대형이시다. 너 따위가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속 유성탄의 뒤를 따라왔지만 생각 외로 산 위는 경계가 무척 허술했고 나오는 족족 유성탄의 주먹에 뻗는 바람에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온 아우들 중 마동파가 나서며 말했다.

육조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기 시작했다. 나타난 낭인칠웅도 그 몰골이 무림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풍기는 기세도 낭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감히 마룡방의 내당 부당주인 자신에게 욕을 하며 개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놈들이 감히!”

육조린의 몸에서 살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역시 오대사파인 금모전의 간부답게 대단했다.

“니들이 싸워봐라.”

유성탄이 갑자기 뒤로 빠지며 아우들을 보고 말했다. 한 명 한 명은 분명 안 될 것이었지만 여섯이서 합공을 한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후란에게 배운 검진 잊지 말고.”

유성탄의 말에 약간 당황하던 아우들은 모두 각자의 무기를 빼 들더니 육조린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나 독각귀 육조린이 살다 살다 별 이상한 놈들에게 모욕을 당하는구나. 좋다 이놈들 전부 덤벼라! 단칼에 목을 날려주겠다.”

육조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지만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오랜 싸움의 경험은 느낄 수 있었는지 신중하게 도식을 잡아갔다.

유성탄은 아까부터 자꾸 굉도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충동의 기억 때문인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그의 너무 좋은 귀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계속 안에서 들리고 있었다.

‘뭐야! 사람이 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에이 씨! 들어갔다가 또 어디에 빠지기라도 하면… 안 돼! 다시는 동굴에는 안 들어간다고 맹세했는데…….’

“야! 너희들 이리 와봐!”

유성탄은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영호충을 비롯한 방도들을 불렀다. 지금 아우들은 죽을 둥 살 둥 싸우는데 유성탄은 전혀 걱정 안 하는 듯했다. 그들은 급히 유성탄의 앞에 와서는 섰다.

“이 안에 들어가 봐라. 사람들 소리가 자꾸 나는데 나는 눈이 나빠서 어두운 데는 잘 못 들어간다.”

‘자식들… 동굴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잘도 들어가는군.’

굉도 안으로 들어가는 영호충과 부하들을 보던 유성탄은 그때서야 강태웅 등이 싸우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유성탄의 느낌으로는 아우들이 상처 없이 이길 수 있다고 보았는데 막상 보고 있자니 그 기세가 생각 외로 흉흉한 것이 만만치 않았다.

‘저런! 아이구 바보들, 그럴 때는 머리로 칼을 받아버리고 가슴을 치면 되는데…….’

자기나 되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방법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는 유성탄이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육조린은 분명 별 볼일 없는 무공을 지닌 것 같던 강태웅과 그 아우들이 막상 싸우는 모습을 보다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님에 놀라 크게 물었다.

“알 필요 없다!”

마동파가 검으로 육조린의 허리를 찔러가며 소리쳤다. 같이 합공을 해보니 상당한 자신감이 붙고 있었다.

“건방진 놈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육조린이 마동파의 검을 살짝 피하며 도로 마동파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니까 누군데? 말을 해줘야 알 것 아니냐?”

표도행이 면검으로 육조린의 등을 그어가며 물었다. 육조린은 마동파의 머리를 내리치던 도를 회수하며 등 뒤의 표도행을 막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놈들, 내가 바로……!”

순간 자신이 누군지 말하려 했던 육조린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금모전이 이 광산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은 전의 극비였기 때문이었다.

“왜 말을 못 하는 거냐? 별 볼일 없는 놈!”

황대산이 육조린의 말을 잇지 않자 빈정대는 말투로 도로 육조린의 어깨를 베어갔다. 한 명 한 명의 무공은 분명 육조린에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합공은 정말 대단했다. 하후란이 검진을 가르쳐주기는 했지만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다지 절기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검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정말 성질나서 못 견디겠구나!”

육조린은 황대산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는 우선 자신이 좀 다치더라도 한 명씩 확실하게 제거해 나갈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당장 실행에 옮겼다. 육조린은 황대산의 도를 최대한 피하면서 자신의 앞을 맡고 있는 놈부터 처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노린 자가 하필이면 강태웅이었다. 강태웅은 육조린이 최대의 힘을 뽑아내서 공격을 한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으윽! 내가 너무 서둘렀구나.”

생각대로 황대산의 도를 간발의 차이로 피하는 데는 성공한 그였지만 단번에 처치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강태웅이 자신의 도를 받아치면서 그는 몸을 피할 수 있는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마동파의 검이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서는 그의 팔을 찔렀다. 순간 그의 신형이 눈에 보일 정도로 움찔했다. 그리고 표도행의 면검이 다시 그의 다리를 스쳐갔다.

육조린은 자신도 모르게 도를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가 물러나는 곳에는 장우왕의 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너희들은 늘지를 않냐! 앙! 겨우 이 정도 자식을 데리고 헤매기는… 에이!”

피로 온몸을 덮어쓰고 쓰러져 있는 육조린을 보며 유성탄은 아우들을 타박하더니 육조린의 목을 발로 찼다. 어느새 손이 아닌 발로 혈도를 누르게 된 유성탄이었다. 다만 목밖에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짜식들 많이 늘었어. 이제 어딜 가도 큰소리 좀 칠 수 있겠다.’

유성탄은 말로는 타박했지만 솔직히 좀 놀라고 있었다. 육조린은 그가 느끼기에 철검보의 외당 당주인 정두호보다도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를 너무 쉽게 제압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자신은 떡 버티고 앉아서 큰소리치고 아우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생각을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나쁜 놈들! 비켜, 이 자식들은 좀더 맞아야겠다.”

굉도 안에 들어갔던 영호충이 급히 나오더니 보고를 했고 강태웅과 황대산이 역시 급히 굉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적어도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는데 모두 채광 일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반수 이상이 황대산과 같이 살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말해! 누구의 명이냐!”

유성탄은 말을 듣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육조린과 방여갈을 무차별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 시진을 버티던 그들도 결국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형! 더 이상 파고들기는 힘듭니다.”

얘기를 다 들은 강태웅은 고심하더니 결국 여기서 끝내자고 건의했다. 육조린은 금모전의 간부였고 생각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간단히 어떤 부자 하나가 끼어들었고 그가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용역을 쓴 정도로만 생각했던 일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맞습니다. 저도 생각대로라면 무조건 다 죽이고 싶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제 아내도 제 마음을 알아줄 것입니다.”

황대산도 더 이상 나가다가는 일이 엄청 커질 것 같자 그만 멈추자고 말했다. 그의 일이니 그가 말리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육조린의 말에 따르면 황대산의 마을 산에서 발견된 동광은 대단히 양질의 광산이었다. 문제는 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위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시시한 광산으로 보고가 되었고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이 모여 이익분배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나온 것이 마을 사람들을 쫓아내고 대리인으로 호북의 최고 상단 중 하나인 만류장을 선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용역부터 시작해서 빼돌려지는 물품의 처리는 금모전에서 맡게 된 것이다.

호북의 특성상 큰 사파가 없었고 작은 사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 광산에서 나오는 이익이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용역을 쓰다 보니 황대산 마을 사람들의 저항이 보통이 아니었고 황대산에 의해 상당히 많은 용역들이 죽으면서 이들이 마을 사람들을 쫓아내는 대신에 아예 감금해 놓고는 광산의 일꾼으로 부린 것이다. 거기에는 돈을 절약한다는 이유가 가미되었다. 그리고 오 년 사이 상당히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고통을 참다못해 죽었고 지금은 겨우 오십여 명만 남은 것이다.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납치한 사람들로 밝혀졌다.

“관까지 얽혀 있습니다. 거기다 호북제일 상단 중 하나라면 무당과도 분명 끈이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금모전이면 마룡방과 맞먹는 무림 오대사파 중 하나입니다. 더 이상 파고든다면 우리 계획과는 달리 무림세력과 정면대결이 됩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강태웅이 다시 말했다.

“니들 내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뜬금없는 유성탄의 말에 모두는 잠시 침묵을 했다. 그리고는 강태웅을 필두로 유성탄의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형으로 모신 이상 대형의 명은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입니다. 죽으시라면 당장 죽겠습니다.”

“저희들의 목숨은 대형 것입니다.”

크게 소리친 아우들은 머리를 조아렸다. 목을 치려면 치라는 말이었다.

“누가 죽인다고 그랬냐! 왜 이래? 하여간에 뭔 말만 하면 이상하게 앞서간단 말이야…….”

유성탄은 아우들이 갑자기 머리까지 조아리며 죽이시려면 죽이십시오 하는 행동을 취하자 찝찝한 얼굴로 말하더니 손으로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이 씨! 이놈들이 갑자기 저러는 바람에 할 얘기를 까먹었잖아. 내가 뭔 얘기를 하려고 했지… 에이, 머리를 너무 맞았나?’

유성탄이 생각보다 한참 생각하자 마동파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대형께서 니들 내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눈치 빠른 마동파가 유성탄이 할 말을 잊은 것을 눈치 채고는 살짝 일러준다.

“나도 알아, 인마! 이게 누구를 바보로 아나? 내가 말하려고 하는 요지는 내가 말만 해도 죽을 수 있는 놈들이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벌벌 떠느냔 말이다. 그놈들이 마룡방과 맞먹건 말건 무당이 얽혀 있건 말건 관부가 끼어 있건 말건 난 나쁜 놈들은 때려주지 않으면 못 견딘다.”

유성탄이 마동파 덕에 할 얘기를 생각해 냈다.

“대형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아우들이 모두 일어서더니 크게 외쳤다. 그리고 영호충을 비롯한 새로 영입한 방도들도 눈에 감격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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