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산적들의 수난 (34/79)

제5장 산적들의 수난

“저거 뭐지?”

청호산은 유성탄이 전에 보았던 왕태산의 산채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산채는 대단히 튼튼한 나무로 주위를 둘러 대단한 방어막을 만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적어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 산적들이 망을 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이 나타난 것이다.

“가서 채주님께 보고해라.”

경비를 서던 산적들의 지휘자인 듯한 자가 급히 한 명에게 말했다.

조장인 염상국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의 목에 커다란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당연히 염상국은 너무 힘이 들어 땀을 질질 흐리고 있었다. 염상국은 산채에서 수뇌급에 드는 상당한 무공의 소유자였다. 그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야아! 문 열어라.”

염상국은 힘에 겨운 듯 끙끙거리며 성곽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자는 누구입니까?”

성곽의 경비책임자가 소리쳤다. 그로서는 백 명이나 부하를 끌고 나간 염상국이 뜬금없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를 목말을 태우고 나타난 것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 니 부하냐?”

목말을 타고 있던 유성탄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산적들은 위계질서가 엉망이라니까! 야 이놈아, 윗사람이 문을 열라면 당장 열지 뭔 말이 그렇게 많냐?”

유성탄이 위를 보며 소리치자 경비 책임자는 곤혹스런 얼굴을 했다. 단신으로 나타나 너무 큰소리치는 유성탄이 적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자를 무조건 들어오게 할 수도 없었다.

“누구시오?”

“나? 나는 유성방의 방주인 마질대형 유성탄이다.”

경비책임자는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내가 이까짓 나무쪼가리를 못 부셔서 문을 열라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좋게 말할 때 빨리 문 열어라!”

“웬 놈인데 감히 청호채에 와서 큰소리냐?”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자 경비책임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급히 인사를 했다.

“염상국, 미쳤느냐? 감히 외인을 산채로 데려오다니… 데려간 부하들은 어떡했느냐?”

성곽 위에 모습을 나타낸 자는 거의 철패 정도의 덩치에 머리가 벗겨진 자였다. 말하는 투가 염상국보다 높은 자인 듯했다.

“저놈은 너보다 높지?”

“오달추라고 산채의 다섯 명의 소채주 중의 한 분입니다.”

“난 말하는 것만 들어도 딱 안다.”

‘이런 죽일 놈! 그걸 자랑이라고…….’

“너 나 욕했냐?”

“아닙니다.”

“그래? 그런데 왜 꼭 욕한 것 같은 느낌이 들까?”

말을 마친 유성탄은 염상국의 목에서 내려오더니 그대로 염상국의 발을 걷어찼다.

“우아악!”

염상국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다가간 유성탄은 염상국의 다리를 그대로 밟았다.

“자식이! 나쁜 짓만 하더니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야! 너는 한 다리만으로 부족해!”

말을 마친 유성탄의 발이 이번에는 염상국의 한 팔을 밟았다. 그리고 팔의 뼈가 부서지며 염상국의 비명이 다시 산채를 울렸다.

“저놈이 감히……! 니들은 뭘 보고 있냐? 당장 활을 쏴라!”

유성탄이 순식간에 염상국의 발과 팔을 하나씩 부셔버리는 것을 본 오달추가 눈에 살기를 띠며 경비를 서는 산적들에게 소리쳤다.

유성탄은 산적들이 활을 꺼내들자 놀랐다. 아직 활을 상대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이 씨! 진짜 치사한 놈들이네…….’

혼자 중얼거린 유성탄은 나무 성곽에 바짝 붙더니 나무를 만져보았다.

“엄청 단단한데… 이거 주먹으로 쳤다가는 주먹이 아프게 되는 거 아니야?”

아픈 것은 무지 싫어하는 유성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화살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많은 벌레들 사이에서도 다 빠져나가던 유성탄에게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별거 아니네!”

잠깐 활 공격에 겁을 먹었던 유성탄은 생각 외로 화살공격이 자신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자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면 니들 전부 죽는다. 그러니까 죽기 전에 스스로 문을 열고 살려줍쇼 하고 비는 게 어떠냐?”

“대단한 고수다!”

그 많은 화살 공격을 피해 요리조리 빠지는 유성탄을 보며 오달추는 유성탄이 엄청난 고수라고 잘못 생각하고 말았다.

“계속 화살을 날려 안으로 들지 못하게 해라. 나는 채주님께 갔다 와야겠다.”

오달추는 경비책임자에게 말하고는 급히 성곽을 뛰어내렸다.

청호채의 채주 냉약원은 산적으로는 드물게 무림에 적발귀(赤髮鬼)라는 명호까지 붙여진 인물이었다. 그가 익힌 무공이 극양의 무공이라 내공을 일으킬 때면 머리카락이 벌겋게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내가 지금은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냉약원은 어디선가 잡아온 여자 하나를 옷을 벗겨놓고는 희롱을 하다가는 갑자기 뛰어 들어온 오달추의 모습에 살기 띤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오달추는 냉약원의 살기 띤 목소리를 듣자 깜짝 놀라 그대로 부복을 하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채주님. 하지만 지금 밖에 이상한 놈이 나타나 산채로 침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대단한 고수 같습니다.”

“뭐야? 고수? 몇 명이나 왔는데?”

냉약원도 고수라는 말에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고 물었다.

“한 명입니다.”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오달추의 말을 들은 냉약원의 발이 부복을 하고 있는 오달추의 가슴팍을 그대로 차버렸다.

“지금 한 놈 때문에 감히 나의 오락을 방해했다는 말이냐!”

“그냥 한 놈이 아닙니다. 염상국이 그놈에게 당하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오달추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급히 말했다.

“염상국은 만류장에서 옮기는 표물을 노리기 위해 애들을 백 명이나 데리고 나가지 않았냐?”

“맞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부하들은 모두 어떻게 했는지 혼자 돌아왔습니다.”

“바보 같은 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당장 부채주와 소채주들을 모두 집합시켜라. 누구건 상관없다. 감히 청호채를 건드린 놈의 말로가 어떤 건지 보여줄 것이다.”

‘이것도 이제 재미없군.’

유성탄은 화살들을 피하면서 자신만의 보법을 반추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움직임을 무림의 고수들이 본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었다. 보법이란 규칙적인 발의 움직임을 말한다. 가장 간단한 동작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 보법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하던 보법이 작금에 이르러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를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국은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의 움직임은 분명 보법은 아니었다. 보보에 어떤 규칙이란 보이지 않았고 그 빠르기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름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의 움직임은 인간이 움직일 수 없는 행동양태를 보이고 있었다. 분명 앞으로 달렸는데 몸을 멈추지도 않고 같은 속도로 뒤로 물러나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던진 돌이 날아가다가 뒤로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인간의 움직임으로 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유성탄이다 보니 어떤 보법보다도 그 효율성이 좋았다.

유성탄은 처음에는 날아오는 화살이 자신의 눈에는 너무 느려 보이는 것이 신기해서 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공격도 이런 식으로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는 화살을 적의 공격이라 생각하며 피하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원리를 알 것 같자 화살을 피하는 놀이가 시들해진 것이다.

“이얍!”

성곽으로 가까이 다가선 유성탄은 온 힘을 다해 성곽을 후려쳤다. 나무가 너무 단단하자 자신도 모르게 온 힘을 다 쓴 것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큰 성곽의 일부가 유성탄의 주먹에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냥 조그만 구멍이라도 하나 만들려고 주먹을 휘두른 유성탄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엄청 단단해 보이더니 별거 아니군!”

성곽의 일부가 부서지며 위에서 화살을 쏘던 산적들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유성탄을 맞추기 위해 유성탄이 있는 쪽으로 모두 몰린 탓에 피해는 더 컸다.

유성탄은 중얼거리며 손을 탁탁 털었다. 먼지가 약간 가시자 냉약원의 명으로 이미 준비하고 있던 산채의 산적들이 놀란 눈으로 유성탄을 쳐다보다가는 무기를 빼 들고는 덤벼들었다.

“저놈이 누군지 아냐?”

냉약원이 그의 뒤에 죽 늘어선 부하들에게 물었다. 성채를 이룬 나무는 철나무라고 불리는 매우 단단한 나무로 여간한 고수들도 부수려면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냉약원의 눈에 비친 유성탄의 모습은 그리 힘을 쓴 것 같지 않았다.

“처음 보는 자입니다. 헌데 보기에는 우리와 같은 부류인 듯한데요…….”

부채주인 우동강이 말했다.

“우리와 같은 부류인 것 같다고?”

냉약원은 우동강의 말을 듣고는 유성탄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이미 달려든 산적들과 싸움이 붙은 유성탄의 모습은 우동강의 말대로 산적 같았다. 큰 키에 삐쩍 마른 몸매,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덥수룩하게 헝클어진 머리와 온 얼굴을 덮은 장비 수염까지 태생적으로 산적의 피를 타고난 자같이 보였다.

“녹림끼리는 서로에 구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데……?”

냉약원은 유성탄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때 같으면 같은 녹림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자신의 비위를 거스른 놈은 그대로 잡아 가죽을 벗길 그였지만 유성탄의 싸우는 모습은 똥배짱으로 소문난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게 무공이 맞긴 맞는 겁니까?”

소채주 중 한 명이 유성탄의 싸우는 모습이 마치 뒷골목의 막싸움 같아 보이자 이상한 듯이 물었다.

유성탄에게 무기는 오른손에 든 육모방망이가 다였다. 거기다 현란한 보법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조건 방망이를 휘두르고 주먹도 아무렇게나 뻗을 뿐이었다. 간간이 발로 차기는 했지만 그것도 어떤 각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예전에 근접무공으로 이름이 높았던 고수가 있었다. 하지만 저건 그것과도 쾌를 달리하는 것 같다. 어쨌든 저 놈에게 특별한 무공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포승대와 창기대를 이용해서 저놈을 잡으라고 해라.”

“하하하! 이제야 본 마질대형께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겠냐!”

유성탄은 싸우던 산적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자 무서워서 도망을 친다고 생각하고는 커다랗게 웃으며 큰소리를 쳤다.

“감히 청호채를 침범했으니 오늘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부채주인 우동강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치자 십여 명의 산적들이 몸을 날리더니 유성탄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는 그들은 포승줄을 꺼내더니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다시 십여 명의 산적들이 긴 창을 들고는 그들의 배후에 섰다. 방금까지 싸우던 산적들과는 달리 상당한 무공을 지닌 자들이 분명했다.

“자식들 곡마단 출신들인가? 잘 돌리네!”

유성탄은 그들이 빙빙 줄을 돌리자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소리쳤다.

“저놈이 하는 짓을 보니까 경험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저렇게 멍하니 쳐다볼 때 묶어버리지요?”

소채주 중 한 명이 우동강에게 말하자 우동강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리쳤다.

“묶어라!”

우동강의 외침이 떨어지자 줄을 돌리던 자들이 유성탄을 향해 줄을 던졌다. 그리고 줄은 순식간에 유성탄의 몸을 감았다.

“걸렸다. 돌려라!”

생각보다 너무 간단히 유성탄이 걸리자 우동강이 흥분한 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줄을 던진 자들이 유성탄의 유성탄의 몸에 걸린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더니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줄은 유성탄의 몸을 꽁꽁 묶어버렸다. 그것을 본 창을 든 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줄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유성탄의 몸에 창을 찔러갔다.

“이것들이 이제 봤더니 치사하게!”

유성탄은 창이 자신을 찔러오자 그때서야 상황이 심각한다고 생각했는지 소리를 치더니 그대로 몸을 빙 돌렸다.

“우아악! 아악!”

유성탄의 몸을 묶은 줄을 꼭 잡고는 창기병의 공격을 기다리던 자들은 유성탄의 몸이 돌자 속절없이 그대로 딸려갔다. 그리고 유성탄을 향해 찔러가던 창에 오히려 그들이 찔리고 말았다.

투둑!

혼자서 십여 명의 포승대를 돌려버린 유성탄이 그때서야 힘을 주자 포승줄은 마치 거미줄처럼 끊어져버렸다. 놀라운 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짜식들이 썩은 줄 가지고 까불기는…….”

유성탄은 말을 마치자마자 창기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생각지도 않게 자기 편을 찌른 창기대의 산적들은 순간 당황해하고 있다가는 갑자기 달려든 유성탄의 방망이에 머리를 맞고는 피를 흘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이미 주위에 쓰러진 산적이 오십 명을 상회하고 있었다.

“우아악! 악! 아아악!”

유성탄은 창을 든 산적들을 두들기면서 그 와중에 쓰러진 산적들의 발을 하나씩 밟고 있었고 발을 밟힌 산적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다 덤벼라!”

냉약원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부채주와 소채주들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극도로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이제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의 지위를 노릴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내 이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청호채의 수뇌부들이 수하들을 이끌고 유성탄에게 덤벼들자 살기 띤 음성으로 중얼거리던 냉약원의 머리가 적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녹림십팔채에 속한 산채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산적들의 특성상 아무리 강대하다 해도 관에서 토벌이 나오면 순식간에 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수삼 년에 한 번씩 사라지는 산채도 있고 다시 십팔채에 들어오는 산채도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십팔채에 들어 있건 예전에 십팔채에 들었던 적이 있건 십팔채에 든 적이 있는 산채는 그 대우가 달랐다. 표국들도 지날 때마다 주는 통행세가 거의 두 배 차이가 났고 여간한 무림문파도 녹림십팔채에 속한 산채는 건드리지 않았다.

냉약원은 몇 년간 세력을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이유는 명년에 있을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를 뽑는 대회 때문이었다. 단지 일원이라는 점만으로도 많은 이점이 있는데 총표파자라면 그 이득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총표파자가 되려면 우선 산채의 세력이 최소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야 나도 한 번 총표파자가 되어보겠다며 이름이라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겨우 다섯 손가락 안에 낄 정도로 세력을 구축한 것이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유성탄에 의해 백여 명이나 부상을 입거나 병신이 되었으니 순식간에 세력의 오분지 일을 잃은 셈이 된 것이다. 만약 냉약원이 염상국과 같이 나간 백여 명도 병신이 된 것을 알았다면 적발이 아니라 머리에 불이 났을지도 몰랐다.

* * *

“흑혈신마가 유성탄에게 자신의 흑혈탈혼기가 전해졌으니 유성탄을 더 이상 쫓지 말라고 했다는 말이냐?”

구룡회의 회주 저만우는 내당당주 심제림과 순찰영주 임기만이 급히 들어와 올리는 보고를 듣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오대사파 중 하나의 수장이며 무림백대고수 중 상위 열 명에 드는 그가 흑혈신마를 두려워할 리는 만무했다. 실지로 무림백대고수 중 상위 열 명은 무림 십대고수와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싸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흑혈신마같이 혼자 다니는 무림인은 아무리 고수라 해도 그 영향력이 저만우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고 실지로 구룡회와 흑혈신마가 싸운다면 흑혈신마가 십 중 십 질 것이 분명했지만 그 와중에 구룡회가 입을 피해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될 자가 흑혈신마 같은 고수였다.

“흑혈신마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입니다. 유성탄이라는 놈은 우선은 그냥 두고 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마룡방과 흑혈신마가 싸우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성탄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마룡방의 사군도 그놈은 아직 유성탄이라는 애송이와 흑혈신마와의 관계는 모르겠지?”

“안다면 그런 행동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심제림의 말을 들은 저만우가 결정을 내린 듯 말했다.

“수하들에게 유성탄과의 시비는 절대불가라고 명을 내려라.”

“알겠습니다.”

* * *

“흑혈신마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으냐?”

상관세가의 가주인 상관노룡은 상관무웅과 상관무청이 유성탄에게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돌아오자 실망한 듯이 물었다.

“아직은 어떤 관계인지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성탄이라는 놈이 흑혈신마와 친분이 있다면 우리가 그를 포섭한다는 것은 불가합니다.”

상관무웅이 말했다.

“흑혈신마는 누구나 다 아는 무림의 대마두입니다. 그런 자와 아는 자를 우리가 친하게 지낸다면 정파로부터 경원시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성탄은 우선 관망하는 것으로 하고 구룡회에서 마룡방의 황룡대와 대주인 견준구를 죽인 사실을 소문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증거도 없이 될까?”

“죽였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 당시 구룡회의 순찰영주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사람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의심 많은 마룡장의 방주 사군도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증명할 사람? 누가 감히 구룡회의 일을 증명하겠느냐?”

“우리에게는 일이 잘될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개방의 부운신개가 구룡회의 순찰영주가 거기에 있는 것을 보았답니다.”

“부운신개? 그건 어찌 알았느냐?”

“황 노가 우연히 부운신개를 그 근처에서 만났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알아보라 했더니 역시나 보았다더군요.”

“개방의 부운신개가 보았다면 구룡회에서도 발뺌은 못하겠구나. 하하하! 수고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천하제일방인 개방은 누구와 시비를 벌이는 것은 무척 자제하는 편이지만 누군가가 건드린다면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는 문파였다. 아무리 오대사파라 해도 구파일방의 하나인 개방에게 시비를 걸기는 어려웠다.

* * *

“유성방 방주 마질대형 유성탄! 네놈은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 내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피하지만 반드시 나를 건드린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냉약원은 청호채가 보이는 산등에 서서 이미 완전 망해버린 자신의 터전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구든 원한을 맺으면 백배로 갚는다는 악질이 바로 냉약원이었다. 그는 유성탄이 아는 모든 사람을 다 죽이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아이 씨! 재수 없는 놈은 앞으로 쓰러져도 뒤통수가 터진다더니…….’

반나절에 가까운 싸움의 결말은 청호채의 처참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아무리 해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유성탄을 무림백대고수 정도의 실력이 있지 않은 이상 아무리 수가 많아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수백 명의 산적들이 유성탄에 의해 병신이 되었고 냉약원과 우동강 등 몇 명 청호채의 수뇌부들만이 간신히 도망을 쳤다.

산적들의 울부짖는 듯한 신음을 뒤로하고 청호채의 창고를 연 유성탄은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역시 하늘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이 딱 맞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흐흐흐! 잘하면 본전은 챙길 것도 같은데…….”

창고 안에는 양식과 옷감 등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물건이 있었다.

“에이! 금자 같은 것은 얼마 없잖아! 그런 게 필요한 건데. 이런 것들은 부피가 너무 커서 가지고 가기가 좀 그런데…….”

유성탄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는 후다닥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숨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 참! 아직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던데…….”

유성탄은 산채에 아직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오두막들의 문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누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남은 산적이 있으면 다리를 부셔놓기 위해서였다.

산채에는 더 이상의 산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뒤져보니 놀랍게도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여자가 거의 다였는데 잡혀와서는 산적들의 뒷바라지와 성적 노리개로 정신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이놈들 정말 그냥 둬서는 안 되겠는데…….”

유성탄은 여인들을 전부다 모아놓고는 창고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나눠주었다. 여인들의 모습이 그냥 보냈다가는 살지 못하고 다 죽을 것만 같아서였다.

유성탄은 물건을 나눠주면서 고개를 돌려 나무가 가득한 산속을 쳐다보았다. 그곳은 바로 냉약원이 유성탄을 저주하고 있던 곳이었다.

‘너 죽었어!’

“채주님! 그 괴물이 쫓아옵니다.”

망을 보던 오달추가 급히 달려오더니 소리쳤다.

“뭐라고? 그놈이 쫓아온다고! 아니 어떻게?”

냉약원을 비롯하여 잠시 쉬고 있던 청호채의 수뇌들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녹림이라는 말을 듣는 그들인 만큼 산에 대해서 그들만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거기다 이곳은 그들의 터전이었던 청호산이었다. 분명 그들이 떠날 때 유성탄이 자신들의 창고를 터는 모습을 보았던 터였다. 그런데 산에서 자신들을 이렇게 빨리 추적한다는 것은 추적의 달인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성탄은 모든 재물을 여자들에게 나눠주자 괜히 심통이 났다. 아예 창고에 물건들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속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다 내 것이라고 믿었다가 결국 하나도 건지지 못했으니 더욱 기분이 안 좋았다. 유성탄은 냉약원을 잡아서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내가 마질대형이다, 이놈들아! 나한테 한번 찍히면 절대로 못 도망간다. 특히 너같이 냄새가 지독한 놈은 백리 밖에서도 내가 찾아낸다.’

유성탄은 지금 도망간 산적들의 냄새를 맡아가며 추격을 하고 있었다. 충동에서 발달한 오감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었다. 냉약원으로서는 설마하니 개도 아닌 인간이 자신들을 냄새로 쫓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지독한 놈! 너희 둘은 이곳에 숨어 있다가 저놈이 다가오면 기습을 해라. 그리고 우리는 우선 피한다.”

냉약원의 머리가 다시 적발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성탄과 싸워보았던 그로서는 다시 싸우고 싶은 생각이 지금은 없었다. 유성탄은 싸우면서 부하들의 검은 물론 냉약원의 청양장에도 열 번 넘게 맞았다.

처음에 냉약원도 유성탄과 싸웠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성탄이 몸을 단단하게 하는 금종조나 철포삼을 익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떤 외공도 유성탄과 같은 현상을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냉약원은 거기다 유성탄이 지치지도 않자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수뇌부들에게만 전음을 날려 부하들과 유성탄이 싸우는 동안 싸움판을 빠져나온 것이다.

부채주와 소채주들만 있으면 언젠가는 다시 산채를 만들고 세력을 구축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이 자신들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조금 전까지 생각했던 악랄한 복수의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빨리 피할 생각만 났다. 하지만 분노는 어쩔 수 없는지 머리는 점점 빨개지고 있었다.

하지만 떠나는 냉약원을 보는 두 명의 소채주의 얼굴은 겁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아악!”

냉약원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유성탄이 쫓아오는 것을 알고는 소채주 둘에게 암습을 명하고는 우동강과 남은 세 명의 소채주와 같이 피한 지 이 각도 안 되어 소채주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정말 지겨운 놈입니다. 지 입으로 말한 대로 마질이 따로 없군요.”

우동강도 안색이 하얘져서 말했다.

“그런데 저 놈이 우리 청호채와 무슨 원한이 있어서 저렇게 지독하게 구는 걸까요?”

소채주 중 한 명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모두 서로를 쳐다보았다. 산속을 벌써 수십 리를 쫓아오고 있다면 무슨 철천지 원한이 있다는 말인데 누구도 유성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라! 냄새가 사방으로 나누어졌네? 가만있자… 아쭈! 이놈들이 머리를 쓴단 이거지. 그래봐야 손바닥 안의 부처님이다.”

냉약원은 추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자 모두에게 우선 흩어져 피하고 팔달채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유성탄은 그들이 흩어진 곳에 도착하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사방을 돌더니 어디서 들은 것은 있는지 손오공을 부처님으로 바꾸더니 급히 한쪽을 먼저 겨냥하여 달려갔다.

.

유성탄은 언제나와 똑같이 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놀랍도록 빨라져서 무림의 유명한 신법을 사용하는 고수와 비교해도 전혀 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도망가는 산적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겠다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냄새로 쫓고 있는 유성탄은 거의 직진으로 달리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계속 유성탄에게 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었다.

“아악!”

달려가던 냉약원은 다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가슴이 철렁해지고 있었다. 또 한 명이 잡힌 것이다.

“귀신은 뭐 하는 거야? 저런 악질 안 잡아가고!”

냉약원은 자신이 한 짓은 생각하지 못하고 유성탄을 욕하고는 최고의 속력으로 급히 달려갔다.

“에이 씨! 엄청 멀리도 갔네! 이거 대충할 걸 괜히 힘빼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부채주 우동강의 다리를 박살낸 것을 끝으로 냉약원을 쫓기 시작한 유성탄은 벌써 산을 두 개를 넘었는데도 냉약원이 잡히지 않자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야! 아버지가 남자는 한번 마음먹으면 중간에 마음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그랬어. 필히 이 머리카락 빨간 놈을 잡아서 내 손해를 보충해야 해.”

* * *

“대형께서 너무 늦으시는데요. 제가 한번 갔다 오면 어떨까요?”

마동파는 삼 일이 지나도록 유성탄에게서 소식이 없자 불안한 듯이 강태웅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대형께서는 절대로 안전하게 돌아오실 것이다. 우리는 대형께서 명하신 대로 근처의 산적들에게 고통을 당한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양식을 나눠주고 그들이 다시 살 터전을 만들어주는 데에만 신경을 쓰자.”

강태웅이라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호채라면 자신들이 가는 것이 유성탄에게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행동을 방해나 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거기다 주위를 살피다 보니 산적들에게 피해를 입은 마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니 거의 반경 백 리 안의 마을은 청호채에 의해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냉약원이 총표파자가 되기 위해 세력을 키우면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통행세와 지나가는 행인을 약탈하는 것만으로는 자금이 달리자 화전마을까지 턴 것이었다. 물론 산적들의 인원이 늘어나자 여자가 더 많이 필요해진 것도 한 이유였다.

“태웅 형님! 마을에서 청호채에 잡혀갔던 대산 형님의 아우의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표도행이 전하는 소식에 모두는 반가워서 황대산의 아우가 사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니까 청호채의 산적들을 모두 병신을 만들어놨다는 말입니까?”

초췌한 몰골로 돌아온 도중명의 아내는 청호채를 쳐들어온 사람이 자신의 남편과 아는 사람의 대형이라는 말에 놀라 청호채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거기다 청호채에서 발견한 재물을 여인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도망간 자들을 잡는다고 사라졌다는 말을 듣자 모두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돈 좋아하는 대형께서 연달아 이런 일을 당하셨으니 무지 약올라 하실 것 같은데요.”

마동파가 마치 유성탄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이 말하자 장우왕이 말을 받았다.

“이제 화전민 마을에는 절대로 안 가시겠다고 할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대형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패가 안됐다는 얼굴로 말하자 표도행이 받았다.

“저도 그러네요. 거지한테도 한 푼 줄 때마다 손을 발발 떠시는 분인데…….”

“그 많은 돈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고 온몸에 두르고 다니시는 분이 대형이시다. 그런데 그 아끼는 돈을 전부 날리셨으니… 난 눈물이 나려고 한다.”

황대산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그런데 대산 형님 얼굴이 절대로 눈물이 나려는 얼굴이 아니시네요.”

“속으로 날려고 한다는 말이다.”

“하하하하!”

말로는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통쾌한지 커다랗게 웃어대는 낭인칠웅의 아우들이었다.

* * *

“저건 또 뭐야?”

냉약원의 뒤를 쫓던 유성탄은 청호채와 비슷하게 나무로 성채를 만든 산채를 보자 멈칫했다.

놀랍게도 유성탄은 호북을 대표하는 두 개의 산적 중 또 하나인 팔달채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며칠을 쫓다보니 무려 삼백 리를 산길로 뛴 것이다. 팔달채의 채주는 냉약원과는 의형제를 맺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친했다. 이미 냉약원에게 들은 것이 있는지 산채는 밤인데도 불구하고 불을 환하게 밝혀 놓았고 그 경계가 보통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산적들의 소굴인가본데… 자식이 하필 도망갈 데가 없어서 산적 놈이 산적소굴로 도망을 가?”

유성탄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청호채야 도중명의 화전 마을에서 한 짓이 있어서 화가 난 김에 다 때려 부수고 병신을 만들어 놓았지만 팔달채는 그가 모르는 곳이었다. 거기다 며칠째 냉약원과 그 부하들을 쫓다보니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너무 허기진 상태였다.

선적들의 눈에 안 띄게 으슥한 나무 뒤에 앉은 유성탄은 자꾸 귀에 들리는 벌레들의 움직임에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더 이상 벌레는 안 먹으려고 했는데… 자식들이 잠이나 자지 왜 밤중에 돌아다니면서 내 귀를 괴롭히는 거야?’

당연히 벌레는 밤에 더 돌아다니지만 유성탄은 엄한 벌레들을 탓했다. 그리고 드디어 팔달채를 칠 이유를 찾아낸다.

“그래 들어가서 밥 좀 먹으러 왔다고 하자. 만약 안 주면 때려 부순다.”

유성탄은 밥이나 달라고 할 생각을 했지만 모든 것은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팔달채의 산적들은 유성탄이 나타나자 말을 들을 생각도 안 하고 공격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자식들이 사람 말도 들어보지 않고! 하여간에 산적 놈들은 무식해 가지고 예의를 모른다니까!”

소리 친 유성탄은 육모방망이를 꺼내 달려드는 산적들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청호채에서는 아주 병신들을 만들기 위해 다리뼈를 부서뜨렸지만 팔달채의 산적에게는 자비를 베풀기로 한 것이다. 유성탄은 아예 처음부터 팔이나 가슴을 노려 뼈 하나씩만 부러뜨려 나갔다.

아픔은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부러진 뼈는 몇 달 지나면 다시 붙는다. 그러나 부서진 뼈는 다시 재생을 못하니 유성탄에게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어! 이것들이 이상한 짓을 하네?”

싸우던 유성탄이 산채의 입구에 가까이 다가서자 갑자기 산적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발을 무는 무엇인가를 느끼고는 유성탄은 발밑을 쳐다보았다. 유성탄의 발에는 큰 동물을 잡는 덫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성탄은 아픔은 느끼지 않았지만 순간 움직이기가 무척 불편해졌다. 그리고 그런 유성탄의 머리 위로 철망이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그물에 걸린 물고기 꼴이 된 유성탄 위로 산적들의 무기가 떨어졌다. 누구라도 당장 피떡으로 변할 상황이었다.

“보시오, 냉 형. 내가 아무리 고수라 해도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했지 않소.”

유성탄이 그물에 잡히고 수십 개의 무기가 유성탄의 몸을 찌르고 때려대자 성곽 위로 냉약원과 덩치가 커다란 남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크게 말했다. 바로 팔달채의 채주였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미 유성탄은 피떡으로 변한 고기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만해라!”

철그물에 갇힌 유성탄을 도끼와 몽둥이 그리고 도로 무차별하게 갈겨대는 부하들을 보며 팔달채의 채주 황달무는 느긋하게 말했다. 그 정도면 최소한 죽지는 않았다 해도 회생하기 어려운 중상은 입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부하들이 물러나자 황달무와 냉약원은 성채 위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높은 성채에서 뛰어내렸지만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황달무의 무공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 형! 저놈은 진짜 괴물이오.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냉약원은 아직 걱정이 가시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성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찌익! 투둑!

“에이 씨! 이것들이 정말 귀찮게 만드네!”

그 질긴 철망이 마치 종잇장 찢어지듯이 찢어지더니 당연히 최소한 기절은 했어야 하는 유성탄이 멀쩡하게 나오고 있었다.

“정말 괴물이군!”

황달무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부하들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뭐 하냐 너희들은! 당장 쳐라!”

“와아!”

산적들이 그들만의 특성을 발휘하며 달려들었다.

“산적 놈들은 왜 달려들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거야? 시끄럽게!”

그물을 다 찢고 나온 유성탄은 덤벼드는 산적들을 보자 그대로 방망이를 마구 휘두르며 맞받아쳤다.

황달무는 순식간에 수십 명의 수하들이 쓰러지자 손을 들었다. 그러자 공격하던 산적들이 모두 뒤로 물러나더니 유성탄의 주위를 포위했다.

“도대체 누구신데 팔달채와 무슨 원한이 있어 습격을 하신 거요?”

황달무의 말투가 달라졌다.

“나? 나는 유성방의 방주이며 낭인들의 최고 대형이며 낭인칠웅의 대형이기도 한 마질대형 유성탄이다.”

유성탄은 말하면서 자신의 지위가 상당히 많아진 것을 느끼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흠! 충동에서 나와서 몇 달 만에… 이 정도면 출세한 셈이군.”

“당신이 마룡방과 싸우고 있다는 낭인칠웅의 대형이시란 말이오?”

황달무도 이미 낭인칠웅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

“그런데 우리 산채에는 왜 쳐들어오신 거요? 우리와 낭인칠웅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지 않소?”

“내가 언제 쳐들어왔냐? 내가 저 놈을 추격하다 보니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밥이나 얻어먹을까 해서 왔는데 너희들이 갑자기 먼저 공격한 것 아니냐?”

유성탄이 냉약원을 가리키며 말하자 황달무의 인상이 구겨지며 냉약원을 쳐다보았다. 가까운 산채의 두목들로 사이가 좋지 않으면 사사건건 시비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산채가 위험해지는 상황까지 감수할 생각은 전혀 없는 그였다.

“그럼 청호채와는 무슨 원한이 있었단 말이냐?”

냉약원은 황달무의 눈치가 이상함을 느끼자 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유성탄을 향해 소리쳤다.

“너는 내가 용서 못한다!”

“우리가 너와 무슨 원한이 있다는 말이냐?”

“첫째! 너 지금 내게 계속 말을 짧게 하고 있다. 둘째! 너의 산채의 산적들이 감히 내 아우의 아우를 병신을 만들어놨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네놈 때문에 나의 피 같은 돈 금자 천 냥이 사라졌다.”

냉약원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산채를 풍비박산하고 수하들을 다 병신을 만들어버린 원수에게 누가 존댓말을 할 것이며 아우의 아우까지 원한으로 삼는다면 무림인들은 매일 복수를 한답시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거기다 자기는 보지도 못한 금자 천 냥이 사라진 것이 왜 자신 때문이란 말인가.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법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아 그 자식 얼굴을 보니 나이도 있어 보이는구먼. 말하는 건 어찌 그 모양이냐! 산적들 데리고 산사람의 살가죽을 벗기던 놈이 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하여간에 산적같이 생긴 놈들치고 사람 같은 놈들이 없다니까!”

‘저놈이! 지 얼굴은 무지 잘난 줄 아는 모양인데? 이놈아, 너는 산적들보다 더 하다.’

황달무는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은근히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너 나한테 지금 욕했지?”

유성탄의 육감이 황달무가 속으로 욕하는 것을 느꼈는지 황달무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황달무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정말 사람 엄청 짜증나게 만드는 놈이구나! 내가 이 정도로 예의를 지켰으면 너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마땅하거늘!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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