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한주현에 부는 바람
감숙성은 오 개 부(府)로 나누어져 있었고 한주현은 북창부에 속해 있었다. 지금 북창부는 정신없이 바빴다.
“청소는 다 끝났냐?”
북창부의 이목(吏目)인 양달은 황궁에서 검찰관이 도착한다는 말에 아침부터 정신없이 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실질적인 검찰관의 지위는 부주보다 낮았다. 하지만 이번에 온 검찰관은 성주조차도 벌을 줄 수 있는 대단한 권한을 가지고 나온다고 알려져 있었으니 모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나으리! 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양달은 부주의 부름에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서 와라. 검찰관이 어디쯤 왔는지는 알아보았느냐?”
“아직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서하부의 부주님께서 삭탈관직을 당하시고는 연경으로 호송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아니 무슨 죄로?”
“그게… 좀…….”
“말해봐라!”
“검찰관에게 뇌물을 바친 모양입니다.”
“뇌물이 안 통하는 놈이었나 보구나?”
“그게 아니라 뇌물의 액수가 적다고…….”
북창부주는 그 말에 더 떨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누군가 나올 때 가장 편한 자가 바로 뇌물을 좋아하는 자다. 문제는 이런 경우였다. 뇌물을 줬는데 그 액수가 적어서 벌을 줬다면 그 다음부터의 선택은 정말 어려운 법이었다.
말하는 양달이나 듣는 부주나 곤혹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부주면 정삼품의 최고위직으로 검찰관보다 무려 품계가 네 단계나 높았다. 그런데 그런 부주를 약간의 주의나 경질이 아닌 삭탈관직에 황도로의 호송을 시킬 정도의 권한이라면 그냥 검찰관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번 검찰관이 황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기다 황제폐하의 어명을 받았다 하니 엄청난 권한을 가진 듯싶습니다. 하지만 이곳 감숙은 생기는 것도 없고 해서 황도에서 전혀 사람을 보낸 적이 없었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게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내가 듣기로는 성주님도 지금 안절부절못하고 계시다 한다.”
“엄청 다투시는데 주먹이 안 올라가는 거 보면 참 신기하지요?”
북창부에 도착하는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싸우는 유성탄과 연소주를 보며 표도행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연 공자의 몸에서는 뭔지 모르게 범인이 범접하기 힘든 귀티가 난다. 대형께서도 그것을 느끼시기 때문에 함부로 하시지 않으시는 걸 게다.”
강태웅의 말에 마동파가 손가락으로 유성탄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웅 형님, 그건 형님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
“하여간에 난 네가 싫다니까.”
“왜 싫은데?”
“이유를 말하라면 적어도 백 가지는 일 각 안에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를 자학하다가 죽을까봐 말을 못하겠다.”
“안 죽을 테니까 말해봐!”
“너 죽어!”
“안 죽는다니까!”
“난 못생긴 사람이 정말 싫다.”
백 가지를 말한다던 유성탄은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아우들 쪽으로 걸어갔다. 누가 봐도 막 대하는 것이 티가 났다. 그리고 유성탄은 언제나 잘생긴 남자를 싫어했다.
[신타! 황지용에게 말해서 곧 북창부를 칠 거니까 준비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어떤 잘못도 나타난 것이 없는데 무조건 벌을 주면 관리들의 반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라고 그러는 겁니다. 우리가 굳이 우리의 행적을 알리며 이곳에 온 이유가 뭡니까? 빠른 시간 안에 꼬리를 잡으려면 우선 분탕질을 쳐서 고기들이 나오게 만들어야지요.]
[공자님은 어쩌시려고요?]
[마질대형을 따라가 보려고요.]
[아직 그자는 정체가 불분명합니다. 사문도 모르고 사부가 누구인지도 알려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위험합니다.]
[걱정 마세요.]
팔지신타와 연소주가 전음으로 얘기를 나누는 보습을 유성탄은 멍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것들이 미쳤나? 유성방의 방주이자 낭인칠웅의 대형인 마질대형 유성탄보고 정체가 불분명하다니… 내가 보기에는 니들의 정체가 더 의심스럽다 씨!’
연소주는 유성탄이 자신들의 전음을 다 듣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 * *
“엄마! 밥도 안 하고 왜 그래요?”
“넌 니 아버지 어젯밤 안 들어왔는데 불안하지도 않니?”
“아빠가 안 들어온 게 한두 번인가 뭐!”
“니 오라비도 어제 안 들어왔어!”
“오빠같이 똑 부러지는 사람을 왜 걱정해요?”
유성화의 말에 강추화는 주먹이 올라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에그! 철딱서니 없는 계집!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사람들이 큰오빠 닮았다고 그러던데?”
“큰오빠 얘기는 하지 말랬지!”
“피!”
강추화는 유성화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간신히 다독이고 있었다.
유성화의 말대로 유정삼은 툭하면 외박을 하곤 했다. 포장이라는 지위가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은 기분이 달랐다. 우선 며칠간 계속 유정삼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 역시 포쾌의 아내가 된지 삼십 년 가까이 되다 보니 눈치는 나름대로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심각한 일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유성우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유성우는 지금까지 말없이 외박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착한 아들이었다. 그동안 현령의 일을 도와준다며 몇번 외박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에도 언제나 떠나기 전 외박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갔었던 것이다.
‘성우가 말없이 외박할 아이가 아닌데…….’
강추화의 근심 어린 한숨이 다시 흘러나왔다.
* * *
“어떻게 됐느냐?”
“조그만 놈이 엄청 악종인데요? 아직도 말을 안 듣습니다.”
“시간 없다. 빨리 처리하고 떠나야 한다. 검찰관이란 자가 이미 근처에 왔다는 소식이다.”
“그냥 죽여버리고 가면 깨끗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관군의 추격을 받게 된다. 이놈에게 뒤집어씌워야 어느 정도 시간을 끌 수 있다. 모든 증거는 갈추산이 만들어놨으니 이놈들만 스스로 자복하면 이놈들을 조사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모든 것이 밝혀질 때쯤이면 이미 물건은 중원 전체에 퍼져 있을 것이니 더 이상은 우리가 상관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영주님!”
“뭐냐!”
“유성방의 낭인칠웅이라는 자들이 북창부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태상호법이신 패존께서 직접 없애시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패존께서 마질대형이라는 유성방의 방주 놈에게 당하셨답니다.”
“뭐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우진은 벌떡 일어나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더니 급히 말했다.
“우선 물건을 제이장원으로 옮겨라. 아무래도 기분이 안 좋다.”
“알겠습니다.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대답을 한 수하는 피를 흘리고 기절해 있는 유성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더 이상 시간 끌 수는 없다. 갈추산에게 가서 이놈의 아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아보고 만약 거기도 계속 말을 안 듣고 있다면 목을 잘라서 갖다 묻어버려라.”
“알겠습니다.”
‘몇 년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기분이 영 나쁘군…….’
* * *
“유 포장, 네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니 어쩔 수 없구나. 난 정말 네가 이렇게 나라에 충성을 하는 줄은 몰랐다.”
“나라에 충성보다 내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기 위해서요.”
입과 코에서는 계속 피를 줄줄 흘리고, 얼굴은 꺼멓게 부어오른 유정삼이 갈추산의 말에 겨우 답을 했다.
“그렇게 아끼는 아들이 너 때문에 지금 죽게 되었으니 안됐구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곧 네 아들인 유성우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물론 시체도 찾지 못하겠지. 그리고 또 한 무리는 너의 집으로 갔다. 아마 한 시진 정도 지나면 네 아내와 딸년의 목을 들고 이리 올 것이다.”
“현령,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저하고 무슨 원한이 있다고. 으흐흑!”
유정삼의 입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내 말에 따르면 네 식구들의 목숨만은 내가 보존해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 아들은 아직 어리니 네 말만 따른 것으로 하면 큰 죄는 받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네 가족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하면 별 일 없을 것이다.”
* * *
주루의 이층에 앉아 북창부의 길거리를 쳐다보던 유성탄은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북창부란 이름이 귀에 익숙해서 왔는데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으니…….’
“뭘 그렇게 생각하냐?”
유성탄이 말이 없자 연소주는 무척 심심한 듯이 물었다.
“넌 할 일도 없다. 나는 한 방의 방주다. 난 너같이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머리 복잡하니까 저리 가라!”
‘내가 왜 이런 푸대접을 받으면서 이 친구를 쫓아다니는지 모르겠군…….’
쳐다보지도 않고 저리 가라며 마치 파리 쫓듯 하는 유성탄을 보며 연소주는 은근히 비윗장이 거슬렸다. 천하의 누구도 자신만 보면 벌벌 떨고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고 했는데 유성탄만은 초지일관 자신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대형! 의심 가는 지역을 몇 군데 발견했습니다.”
표도행이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이미 북창부에 들어온 지 사흘째였지만 아직도 물건이 있다는 곳을 찾지 못한 유성방도들은 지금도 열심히 사방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어디 어디냐?”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대발현하고 추자현, 그리고 한…….”
“저리 가라! 공자님은 너 같은 계집을 만나시지 않겠다고 한다.”
표도행이 한주현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말을 멈추고 말았다.
“왜 그러는 것 같냐?”
유성탄은 어린 여자 하나가 커다란 무관 앞에서 울고 있자 표도행의 말보다 더 흥미가 생겼는지 그 쪽으로 신경을 옮겼다.
“알아올까요?”
표도행이 보고하던 것은 미루고 말했다.
“알아와 봐!”
“그러니까 저 여자아이가 저 무관의 주인 아들과 아는 사이라 이거지?”
“그렇지요!”
“그런데 왜 여기 와서 우는 거야?”
“여자아이의 집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좀 도와달라고 왔는데 저 집안에서는 자기 아들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모양입니다.”
“거 참 요새 여자애들은 왜 그렇게 찌질거리는 거냐? 남자가 그러면 그냥 시원하게 네가 그랬어! 흥 좋아! 이 세상에 남자가 너밖에 없냐 하고 손 탁탁 털면 되지. 뭘 저렇게 울고 불고 한다냐? 뉘 집 딸인지 부모 속 좀 썩이겠다.”
유성화는 절대로 오고 싶지 않은 곳이 좌소백의 청무관이었다. 그러나 이틀 전 갑자기 들어온 소식은 그녀로 하여금 이곳에 오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오빠가 외박을 하고도 하루 종일 소식이 없자 유성화도 점점 불안해져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마 하고 있는데 유정삼과 가장 친했던 포쾌 하나가 은밀히 집에 와서는 이상한 말을 하고 갔다. 유정삼과 유성우가 작당을 해서 관의 공금을 횡령하고 흑도와 짜고는 나라에서 금하는 마약을 유통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언하기를, 증거가 확실해서 유정삼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강추화는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유성우의 소식을 물었지만 그도 유성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강추화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청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전혀 힘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두 몸을 사렸다. 유정삼과 유성우의 죄가 너무 커서 괜히 관여했다가는 자신들도 위험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강추화와 유성화는 급히 한주현 관부로 달려갔다. 우선 유정삼을 만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유정삼을 만날 수 없었다. 관부의 포졸들은 강추화와 아는 처지인지라 심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냉정했다.
집에 돌아온 강추화는 유성탄을 잃어버린 후 처음으로 밤새도록 통곡을 하다가는 지쳐 쓰러져버렸다. 결국 유성화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청무관을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좌소백은 이미 좌무성에 의해 방에 감금되다시피 한 지 며칠째였고 유성화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난 것이다.
유성화는 자신의 집안에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아버지와 그녀가 언제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오빠 유성우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녀를 미쳐버리게 하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던 엄마 강추화의 통곡은 그녀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울어대던 유성화가 지친 듯 멍하니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보던 유성탄은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안 좋았다.
“가자! 수상하다는 곳이 대발현이라고?”
“예, 여기서 가깝습니다.”
“넌 따라오지 말고 여기 밥값이나 내고 기다려라.”
유성탄이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연소주에게 밥값을 내라고 하자 연소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다녀오십시오, 쪼잔한 대형!”
‘저게! 에이, 봐준다.’
표도행이 앞장서고 호법인 지정우와 고화월이 뒤를 따르는 모습으로 밖으로 나선 유성탄은 다시 한 번 유성화가 울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주루를 내려오는 동안 유성화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신경 쓰이는 계집애네…….’
“뭔가 알아낸 게 있습니까?”
유성탄이 대발현으로 떠나고 주루에 남아 있던 연소주에게 아주 날카롭게 생긴 중년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연소주의 물음에 답을 했다.
“북창부의 부주에게서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고을 사람들에게도 잘한다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그리 욕을 먹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몸보신이나 하다가 떠날 생각을 하는 전형적으로 복지부동하는 관리군요.”
중년인은 연소주의 말을 듣자 미소를 살짝 짓더니 말을 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한주현이라는 곳의 포장이 흑도인들과 작당을 해서는 상당한 양의 마약을 거래했다는 죄로 북창부로 압송되어 왔습니다.”
“포장이요? 죽일 놈이군요. 포장이면 그래도 고을 치안을 담당하는 고위직인데 그걸 이용하여 마약을 유통시키다니. 그래서 마약은 찾았나요?”
“자신이 했다는 것은 토설했고 증거도 확실한데 마약의 행방은 이미 다 팔았다고만 하고 말을 하지 않고 있답니다.”
잠시 생각하던 연소주가 갑자기 뭔가를 생각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유성방에서 여기에 온 이유가 마약 때문이라고 했는데… 우선 유정삼이라는 자를 죽이지는 말라고 하세요. 이상하게 냄새가 나네요.”
“알겠습니다.”
유성방의 방도들은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를 연소주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아직도 연소주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책 없이 튀어나오는 유성탄의 말 속에서 이유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반역의 기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 마약이라면 대단한 돈이다. 그 돈이라면 반역도들의 군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연소주는 드디어 뭔가 꼬리를 잡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욱!”
옥에 갇힌 유정삼의 몸은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었다. 한주현에서 이미 심한 고문을 당한 판에 북창부에서 다시 또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목에 칼을 쓰고 앉아 있는 유정삼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신음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아아! 내 한 몸 이대로 죽는 것은 아쉬울 것 없지만… 우리 성탄이를 결국 못 보고 죽나 보구나……. 성우와 성화는 안전하겠지……. 여보, 미안하오. 결국 호강 한 번 못 시켜주고…….’
유정삼은 가족들을 생각하며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고집을 피워서…….’
죽을 뻔했던 유성우는 유정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뒤집어쓴다는 결정을 하면서 잠시 생명이 연장이 되었다. 마지막에 유정삼의 마음이 변했을 경우 볼모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유정삼의 처지를 잘 모르는 유성우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불의를 보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모른 척한다면 세상은 절대로 정의로워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그였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으로 자신의 가족이 모두 위험해진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가슴이 다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들의 고문으로 인해 생긴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욱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밖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적으로 몸부림을 쳐보고는 있었지만 무공을 모르는 그로서는 그의 몸을 옥죄고 있는 밧줄을 끊을 수는 없었다. 유성우는 학문만이 세상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지금은 힘이 없는 것이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엄마, 이럴 때일수록 엄마가 힘을 내야지요. 엄마가 이러면 난 어떡해요. 흐흐흑!”
우는 것도 지친 듯 완전히 넋이 나가 멍하니 누워 있는 강추화를 보며 유성화가 소리 내어 울며 말했다. 언제나 철없이 행동해온 그녀였지만 막상 집에 일이 생기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좌소백 이 바보 같은 놈, 자신만 믿으라더니 씨!”
유성화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좌소백을 원망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 * *
“자식들아, 도대체 왜 이렇게 못 찾는 거야?”
아침이 되자 괜히 짜증이 난 유성탄이 방도들을 타박했다.
“분명 이곳에서 계속 마약이 나갔는데 못 찾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완벽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보호해 준 세력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그 세력을 찾아야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표도행의 말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문?”
“이곳에 한주현이라고 있답니다. 그곳 관의 포장이라는 자가 마약을 유통시키다가 잡혔답니다.”
“가만! 어디라고?”
“한주현이요.”
“한주…현!”
* * *
“혈문십사까지 행방이 불명입니다.”
혈문사자는 뜻밖의 보고에 안색이 변한 채 말을 못했다. 혈문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살과 십사의 행방이 불명이란 것은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그것은 죽음과 배신이었다.
“문주님께 갔다 오겠다.”
혈문사자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살수의 제왕으로 불리던 혈문 문주의 목소리는 생각 외로 시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오살과 십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혈문사자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문주의 목소리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유는?”
“아직 자세한 상황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두 가지밖에는…….”
“죽거나 배신을 했다는 말이냐?”
“용서하십시오.”
“혈문사자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죽었다면 네가 청부를 잘못 받은 것이고, 배신을 했다면 네가 문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니 죽을죄를 지기는 졌구나.”
문주의 목소리는 너무 부드러워 전혀 살기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혈문사자의 이마에서는 더 많은 땀이 물 흐르듯이 흐르고 있었다. 웃으면서 절대로 죽이지 않을 것같이 하면서 죽이는 사람이 혈문의 문주였다. 그의 입에서 용서한다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는 나갈 때까지 살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번 청부를 맡은 자들이 낭인칠웅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조사는 해 보았느냐?”
“낭인 출신들로 마룡방의 황룡대와 청룡대를 이겼다는 정도였습니다. 그 이외에는 전혀 무림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전혀 이름도 없는 자들이 마룡방의 두 개 무력집단을 무력화 시켰다? 그런데도 이상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냐?”
“청부액이 컸습니다. 그리고 낭인들이 아무리 강해봐야 무림백대고수에 미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방금 감숙에서 연락이 왔다. 사망회의 사망패존이 낭인칠웅의 대형이라는 유성탄에게 크게 당하고 간신히 도망쳤다는 소식이다.”
“그게… 죽여주십시오.”
혈문사자는 문주가 이미 모든 것을 뚫어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자 그대로 부복을 하며 목을 길게 늘어뜨렸다.
“아니다. 이번 일은 나라 해도 짐작치 못할 일이었다. 용서한다. 하지만 혈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다. 혈점사를 보낸다.”
“사망회의 패존까지 이겼다면 혈점사로서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혈점사까지 일이 생기면 당장 혈문은 오 년 이상 문을 닫아야 합니다.”
“혈문은 무림최고의 살수집단이다. 하지만 여기서 손을 놓고 포기한다면 당장 살수집단으로서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이다. 혈점사를 보내라. 대신 이번에는 혈문 이노(二老)를 같이 보낸다.”
“그분들은 이미 은퇴를 하셨는데 가겠습니까?”
혈문사자는 문주의 용서한다는 말에 살았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자신의 의견까지 개진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명했다고 해라. 그리고 직접 살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혈점사의 살행을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 도와줄 것이다.”
“존명!”
조그만 오두막이었다. 산속에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오두막 앞에는 조그만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학창의를 입은 청년이 화사한 미소를 짓고는 꽃들을 가꾸고 있었다. 학창의를 입고 꽃을 가꾸는 것도 이상했지만 놀랍게도 그의 옷에는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휘익!
쪼그리고 앉아 꽃을 돌보던 청년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몸을 일으키고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전서구 한 마리가 청년의 손으로 내려앉았다.
“후후후! 수고했구나.”
청년은 전서구의 발에 묶인 서찰을 풀어 읽더니 다시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오살과 십사가 모두 실패한 것 같다. 후후, 재미있겠군…….”
청년은 흥미롭다는 웃음을 짓더니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간단한 봇짐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는 다시 나왔다. 청년은 잠시 꽃밭을 둘러보더니 중얼거렸다.
“예쁘게 됐는데 또 갔다 오면 일이 많아지겠군…….”
* * *
“이곳이 한주현입니다.”
표도행에게서 한주현이라는 말을 들은 유성탄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뭔가가 팍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마약을 찾건 못 찾건 그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북창부에 온 후에도 계속적으로 그의 머리를 헷갈리게 하는 뭔가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었다. 그가 납치된 것이 일곱 살 때였다. 너무 심한 고생에 기억을 잃기는 했지만 그래도 약간은 머리에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계속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툭툭 털어버렸을 텐데 이번만은 그러지도 못했다. 그런데 한주현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머리가 확 뚫리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주현의 입구에 도착한 유성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슴이 뛰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언제나 유성탄이 아버지 유정삼이 오기를 기다리던 곳이었고 혈문에 의해 납치되었던 곳이기도 했다.
“가자!”
유성탄은 앞에 쭉 뚫린 길을 보며 마치 아는 길을 걷듯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 유성탄의 모습을 보는 유성방의 방도들은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본 유성탄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우하하하! 여기다!”
“대형, 여기가 마약이 있는 곳입니까?”
“이 자식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하하, 여기가 장쾌네 집이다. 그리고 우리집은 장쾌네 집 앞집. 으잉? 집이 어디 갔지?”
유성탄의 기억으로는 장쾌네 집 앞집이 자신의 집이었지만 그곳은 그냥 밭이었다.
“대형! 여기가 대형의 고향입니까?”
강태웅도 감동한 듯이 외쳤다.
“대형, 축하합니다.”
“방주님, 축하합니다.”
“가만가만… 그런데 집이 없어졌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동네는 여간해서는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좌우를 둘러보던 유성탄의 눈에 너무 익은 집이 나타났다.
“저 집이다. 드디어 찾았다.”
유성탄이 달려가자 아우들과 방도들이 급히 뒤를 쫓았다. 그런데 그 집은 초상이 났는지 온통 울음바다였다.
“이거 왜 이래? 여보시오? 무슨 일 있소?”
“여기 주인이 곧 돌아가시려 한답니다.”
“뭐라고요? 안 돼……!”
그대로 방안으로 뛰어 들어간 유성탄은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노인을 보고는 자신의 아버지인 유정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유성탄은 그대로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아버지! 아버지! 저 유성탄이 왔습니다. 아버지! 죽으면 안 돼요!”
엄청나게 큰 유성탄의 통곡에 죽어가는 노인의 옆에 서 있거나 앉아 있던 노인의 가족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당에서는 완전 산적같이 생긴 수십 명의 남자들이 그대로 부복을 하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유성방의 방도들과 아우들이었다. 대형의 아버지는 자신들의 아버지였고 방주의 아버지는 방주와 같았다. 그들은 최소한 우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동네가 떠나갈 듯이 시끄러워지자 죽어가는 노인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누구시오……?”
“아버지, 저 유성탄이에요.”
다행히 유정삼의 집안에 대해 잘 아는 장 영감은 유성탄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성탄? 오! 유 포장이 십칠 년 전에 잃어버린 큰 아들? 여기가 아닌데… 얘야, 유 포장 집이 어딘지 가르쳐주거라. 너무 시끄러워서 죽기도 어렵구나.”
노인은 마지막 힘을 다해 말하고는 숨이 넘어가고 말았다.
‘에이 씨! 여기가 아니었어. 피 같은 눈물만 버렸네…….’
유성탄이 멋쩍게 일어서자 마당에서 통곡하던 아우들과 방도들도 주섬주섬 일어서기 시작했다. 통곡소리는 컸지만 눈물을 흘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고향을 찾은 첫날부터 쪽팔림으로 시작하는 유성방이었지만 그들의 험악한 모습에 누구도 웃거나 하지는 못했다.
“이상하네……?”
“뭐가 잘못됐습니까?”
“여기가 그 노인의 아들이 가르쳐준 집이 맞지?”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내 집이 다른 집보다 더 눈에 안 익을까?”
“혹시 대형께서 이 마을을 돌아다니던 거지였는데 대형 집에서 거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동네는 눈에 익고 집은 눈에 안 익고요.”
쾅!
“아이구!”
“철패 이놈은 매를 벌어요. 내가 얼마나 뼈대 있는 집안 자식인데 거지 운운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뼈대 있는 집안 같아 보이지는 않는구먼…….’
모두는 유성탄의 말에 다시 한 번 유성탄의 집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누구 있냐?”
유성탄이 소리치자 문이 덜컥 열리며 소녀 하나가 나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머리도 산발을 하고 있었다.
“넌 누구냐?”
“그러는 아저씨는 누군데요!”
이미 악에 받혀 있는 유성화의 목소리는 곱지 않았다.
“조그만 계집애가 웬 목소리가 그리 크냐?”
“큰오빠를 닮아서 그런데요. 그러는 아저씨는 누구신데요?”
“니 큰오빠란 놈도 얼마나 시끄러운 놈인지 알 것 같다.”
“누구냐니까요!”
“나 이집 큰아들인데…….”
‘이 씨! 말하고 보니 왜 내가 나를 욕한 것 같은 느낌이 드냐. 에이!’
“큰오빠는 오래전에 집을 나갔는데요.”
“뭐? 집을 나가? 누가 그러더냐?”
“마을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아마 까불짝대고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고 어디론가 갔을 거라고요.”
유성탄은 뒤에서 들리는 킥 소리에 눈에 살기를 띠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누가 웃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바로 유성탄이다. 그런데 너는 누구냐?”
“당신이 성탄 오빠라고요?”
유성화는 놀란 눈으로 유성탄의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큰 키에 덥수룩한 머리 거기에 거칠게 자란 장비수염은 유성탄을 완전히 산적같이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집안이 복잡해 죽겠는데! 왜 와서 귀찮게 구는 거예요!”
유성화는 유성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잉! 잃어버린 아들이 찾아왔는데… 어째 대접이 이상하네……?’
“나 유성탄이라니까? 넌 누구냐?”
“난 이 집 딸인 유성화예요. 지금 우리집에 큰일이 있거든요. 당신 같은 사람 장난 받아 줄 마음이 아니라고요!”
유성화는 소리를 빽 지르고는 돌아서려고 했다.
“가만있자… 너 그러고 보니 어제 길거리에서 통곡하던 애잖아?”
“뭐라고요! 이 씨! 그러고 보니 그때부터 저를 쫓아다닌 거예요!”
“대형! 대형 동생이 맞습니다. 말투가 똑같은데요.”
뒤에 서서 추이를 살피던 마동파가 유성화의 말투를 듣고는 끼어들었다.
“그렇지? 어떤 놈이 감히 나 유성탄의 동생을 울게 한 거야! 야! 당장 그놈들 잡아와라!”
유성화가 자신의 동생이 맞다는 생각이 들자 유성탄은 유성화를 울린 놈들이 누군지 작살을 내줄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소리에 유성화의 생각이 바뀌었다. 진짜 잃어버린 큰오빠면 좋았고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녀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유성화는 말투와는 달리 자신을 너무 자상하게 쳐다보는 유성탄의 눈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따뜻함을 느껴 유성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오빠! 아아앙…….”
대화를 할 때와는 달리 품안에 뛰어들어 울음을 터트리는 유성화를 보며 유성탄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유성화의 어깨를 꽉 껴안아준 유성탄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아버지하고 엄마는?”
“으흐흐흑!”
“엄마!”
문을 부수듯이 뛰어 들어간 유성탄은 멍하니 누워 있는 강추화의 모습을 보자 그녀가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
강추화는 완전히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도 엄마라는 소리에 반응을 했다.
“누구십니까?”
“엄마, 저 유성탄이에요! 엄마의 착한 아들 유성탄!”
정신이 없는 중에도 강추화는 유성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제 아들 유성탄은 착한 아들이 아니었답니다. 당신은 성탄이가 아닙니다.”
‘에이 씨! 반응들이 어째 내 생각하고 전혀 다르냐…….’
* * *
강추화의 상태를 본 강태웅은 우선 혈도를 눌러 잠을 자게 만들었다. 강추화가 너무 기진맥진하여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낭인칠웅과 오살은 유성화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듣고는 심각한 얼굴로 유성탄을 보았다. 아직 진상은 모르지만 유성탄의 아버지와 동생이 마약사건에 연루된 것은 확실해 보였다.
“너희들, 내 말해두는데 지금이라도 내 곁을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라. 난 아버지하고 동생을 구해야겠다. 만약 진짜로 아버지가 마약과 연관이 있다 해도 나는 아버지를 구한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너희들도 짐작할 것이다.”
“대형! 대형의 아버님은 우리의 아버님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합니다.”
황대산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나 마동파, 대형을 떠나서는 이제 못 삽니다. 저는 죽어도 대형 옆에서 죽을 겁니다.”
“대형, 나 표도행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나보고 떠나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유성탄은 아직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장우왕과 철패를 쳐다보았다.
“저…….”
둘은 동시에 입을 열려고 했다.
“됐다, 자식들아! 어떻게 된 게 니 둘은 한 번도 빠른 적이 없냐? 에그!”
말한 유성탄은 오살을 쳐다보았다.
“방주! 우리는 방주의 호법이오. 방주는 우리가 죽은 후에나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유성방의 방도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영호충을 비롯한 유성방도들도 질세라 크게 소리쳤다.
“좋다! 그러면 지금 당장 북창부로 쳐들어간다.”
“지금 당장이요?”
“왜 겁나냐?”
“대형, 이것은 겁이 나고 안 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버님의 누명을 벗겨드리는 것이 급선무이지 옥에서 빼내는 것은 그 다음 일입니다. 만약 힘으로 아버님을 빼내 온다면 지금이야 잠시 편하겠지만 평생을 도망 다녀야 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효도가 아닐 것입니다.”
강태웅의 말을 들은 유성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화월을 보며 물었다.
“고화월, 평소 네가 제일 똑똑한 것 같더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봐라.”
고화월은 유성탄이 자신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하자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떤 것보다 방주님의 아버님과 아우님의 안전 확보가 먼저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아버님께 정확한 진상을 알아내는 것도 필요하고요.”
말을 마친 고화월은 조황을 쳐다보았다.
“조황의 특기가 숨어 들어가서 암습을 하는 것이에요. 당연히 숨어 들어가서 보호하는 것도 할 수 있지요. 조황 너는 지금 당장 북창부로 숨어 들어가서 방주님의 아버님을 보호해라. 만약 누군가 그분을 해하려들면 어쩔 수 없이 모시고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보호만 해드려라. 우리는 빨리 진상을 알아서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고화월의 말이 끝나자 유성탄이 소리쳤다.
“고화월, 너 정말 똑똑하다. 유성방의 군사 해라.”
그들이 의논하는 장면을 보고 있던 유성화는 유성탄이 상당히 대단한 사람이 되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하늘이 내 기도를 들어줬어…….’
많이 편해진 유성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성탄이 말했다.
“성화야, 이 오빠가 온 이상 아무런 걱정도 마라. 누구라도 나 유성탄의 가족을 건드린 놈들은 용서 안 한다.”
유성탄은 커다랗게 말하고는 자신이 참 멋있게 말했다고 생각했다.
「포천망쾌」 5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