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청무관 (43/79)

제4장 청무관

“내가 화나면 진짜 무섭거든!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좌소백이라는 친구를 데려와라. 그냥 간단한 조사만 끝나면 그냥 갈 거니까.”

유성탄은 처음 청무관에 올 때 마음먹었던 다 때려 부순다는 것은 우선 마음을 접었다. 자신을 화나게 만든 사범부터 시작해서 무공을 익히고 있는 수련생들까지 거의 다가 몸에 살기가 없었다. 유성탄은 그런 자들은 아직까지 때린 적이 별로 없었다.

유성탄은 다른 자들은 그냥 용서해도 좌소백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남자가 뭔가? 여자에게 잘해주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좌소백은 그의 동생인 유성화를 울렸다. 그는 그런 남자를 제일 경멸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여자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는 유성탄이었다.

“웬 놈이냐!”

유성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당한 경지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공력이 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웬 놈? 이제 아주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 아예 욕을 하는구나. 좋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너 죽고 나 살자로 나갈 수 있어. 명심해!”

“닥쳐라! 감히 포쾌 주제에 어딜 와서 큰소리냐!”

나온 자는 청무관의 관주이자 좌소백의 아버지인 좌무성과 성화용을 비롯한 그의 다섯 명의 제자들이었다.

“포쾌 주제……? 이 양반이 포쾌한테 맞은 적이 있나? 왜 이렇게 포쾌를 우습게 보는 거야! 당신 누구야?”

“이런 괘씸한! 내가 바로 청무관의 관주인 좌무성이다. 감숙성의 성주도 내게는 함부로 하지 못하거늘 감히……!”

“오호! 여기 주인이시군요? 그렇다면 지금 엄청난 죄를 지은 것으로 되어 있는 좌소백의 아버님? 맞지요?”

“무엇이라고! 좌소백이 어쨌다고……?”

“감숙성의 성주는 당신을 못 건드려도 나는 건드릴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쇼? 난 특수포쾌거든! 성주라 해도 죄를 지었으면 나한테 맞소. 그러니 성주 가지고 나를 겁 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딴 소리 말고 좌소백이 어쨌다고 그러는 거냐!”

“당신, 아버지가 돼 가지고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아들이 반역에 준하는 죄를 지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좌무성의 얼굴색이 변했다. 성주를 우습게 보는 포쾌라는 것도 꺼림칙한 판에 반역에 준하는 죄라면 아무리 청무관의 위세가 감숙성에서 대단하다 해도 순식간에 멸문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소백이는 전혀 바깥출입도 안 했거늘 언제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이냐?”

“데려와 보쇼! 그럼 내가 죄목이 뭐고 어쩐 죄를 저질렀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드리리다.”

좌무성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확실한 듯이 말하는 유성탄의 말이 너무 진짜 같았다.

‘잘 생각해야 한다. 잘못하면…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좌무성으로서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피신을 시키면 완전히 죄인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괜히 만나게 해 주었다가 잡아가려고 든다면 역시 죄를 옴빡 뒤집어쓸 수도 있음이었다.

“우리 아이가 지은 죄가 뭔지 먼저 말해봐라. 진짜 그 아이에게 죄가 있다면 내가 직접 그 놈의 목을 자르겠다.”

‘무슨 놈의 아버지가 지 자식 목을 저렇게 쉽게 자른다고 그러지? 성화가 이놈하고 엮이면 안 되겠구나. 자식한테도 저러는데 며느리한테는 툭하면 목을 자르겠다고 할 거 아니야…….’

“내가 이미 말했지 않소. 반역에 준하는 죄라고!”

“그러니까 그 반역에 준한다는 죄의 죄목을 정확히 말해보란 말이다.”

“너무 큰 죄라 입에 담기도 어렵소.”

‘저놈이! 도대체 입에 담기도 어려운 큰 죄가 뭐야? 이거 진짜 소백이 그 놈이 나 몰래 뭔 짓을 하긴 한 것 같은데…….’

“도대체 큰 죄 큰 죄 하면서 죄목도 말하지 못하는 죄가 뭐냔 말이다! 만약 계속 죄목을 못 댄다면 내 직접 성주님을 만나 얘기를 들을 것이니 그만 가라.”

‘이거 만만치 않은데… 좌소백인지 뭔지 이놈을 내 진탕 두들겨 패주고 가야 속이 풀릴 텐데……. 무슨 죄목을 씌운다……?’

“마약판매누명방조 반역에 준하는 죄 및 감언이설로 여인을 유혹하여 반역에 준하는 죄를 모의하다가는 그녀의 눈물만 빼게 하고 자신은 나 몰라라 방에 콕 박혀서 숨어 있으면서 반역에 준하는 죄를 미수한 죄요.”

유성탄의 말을 들은 모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한 건지 너는 이해가 되냐고 묻는 얼굴들이었다.

“내 세상에 듣다 듣다 그런 죄는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반역에 준하는 죄 및 반역에 준하는 죄를 모의하다가는 또 뭐고 반역에 준하는 죄를 미수한 죄는 또 뭐란 말이냐?”

유성탄은 반역에 준하는 죄란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되는 대로 지껄였지만 오히려 의심만 사고 말았다.

“반역에 준하는 죄를 미수했다면 반역도 아닌 죄를 하지도 않았다는 말인데 그런 게 죄가 되기나 한단 말이냐!”

“그러니까 내가 지금 잡아간다는 게 아니고 잠깐 대화를 나누면서 조사를 해 본다는 거 아닙니까!”

좌무성은 유성탄의 말이 횡설수설하는 것 같으면서도 앞과 뒤도 안 맞고 그러면서도 죄목에는 반역에 준한다는 말이 여러 번 들어가고 하자 자신까지도 어지러울 정도였다.

“안 되겠소! 이렇게 계속 버틴다면 반역에 준하는 죄를 감추기 위해 공무집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반역에 준하는 죄를 지은 것으로 황제에게 전하여 군사 수만이 당장 이곳에 쳐들어오게 할 것이오.”

“가서 소백이를 데려오너라.”

유성탄의 말이 끝나자 죄무성은 좌소백을 데려오라고 성화용에게 명했다.

‘깐깐한 늙은이네. 이제야 말이 먹힌 모양이구나. 역시 나는 말을 참 잘해. 히히.’

‘말도 안 되는 죄를 문맥도 안 맞게 붙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 가짜 포쾌이거나 소백이를 팔아서 돈이라도 좀 뜯어먹을까 해서 온 놈이 분명하다. 만약 소백이를 만나고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다면 내 직접 목을 베리라.’

좌무성은 유성탄의 마지막 말에서 유성탄이 아는 죄는 반역에 준하는 죄란 것밖에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성탄의 말대로라면 술값을 떼먹고 도망친 반역에 준하는 죄인도 만들 수 있었다.

‘흠! 저 자식인 모양인데…….’

유성탄은 성화용과 같이 나오는 어려 보이기까지 하는 청년을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백이는 듣거라. 지금 이 포쾌가 말하기를 네가 반역에 준하는 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 똑바로 말해보거라.”

좌소백은 나오면서 성화용으로부터 약간의 언질은 받았지만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은 죄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무슨 죄를 말하시는 건지 알 수가…….”

“네가 좌소백이냐?”

유성탄이 끼어들었다.

“그렇소! 내가 좌소백인데… 난 포쾌하고 원한 진 일이 없는데…….”

“포쾌하고는 원한이 없는데 나하고는 원한이 좀 있다. 너 유성화 알지?”

“유성화요? 알기는 아는데요?”

좌소백은 유성탄의 입에서 갑자기 유성화의 이름이 나오자 약간 당황했다.

“네가 한주현 현령이신 유정삼 현령님의 외동딸을 유혹하는 반역에 준하는 죄를 지었고, 천하에서 엄청난 권력을 지닌 특수포쾌의 하나밖에 여동생을 유혹하는 반역보다 더 무서운 죄를 지었으며, 한주현 제일의 귀염둥이를 유혹하는 반 인륜범죄를 지었다. 거기다 유성화가 곤경에 처해 네게 도움을 청했는데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그 가엾은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하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유성탄의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좌소백이 진짜 엄청난 죄라도 지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너 여자를 그렇게 많이 사귀었냐?”

“아버지! 아니에요. 유성화 말고는 저는 다른 사람은 몰라요.”

좌소백이 급히 좌무성에게 변명을 하고는 유성탄을 쳐다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나는 한주현 현령의 외동딸이나 특수포쾌란 사람의 여동생은 알지도 못합니다. 거기다 한주현 제일의 미인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요.”

“한주현 현령의 외동딸 이름이 유성화다.”

“예?”

“특수포쾌의 여동생의 이름도 유성화다. 한주현 제일미인의 이름 역시 유성화다.”

유성탄의 말이 이어지자 모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이제 네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 것 같으냐?”

“이런 말도 안 되는! 화용아, 저 놈 아무리 봐도 가짜다. 당장 여기에 무릎을 꿇리고 누구의 사주를 받은 놈인지 알아내라!”

“예!”

성화용이 좌무성의 명을 받자마자 유성탄에게 덤벼들었다.

“아니 어떻게……!”

성화용은 공격은 자신이 했는데 어느새 자신의 이마 바로 앞에 와 있는 유성탄의 방망이를 보고는 몸이 얼어버렸다. 마치 자신이 방망이를 향해 머리를 내민 형국이 된 것이다.

“너, 착하지 않았으면 지금 머리 깨졌다! 알았으면 얌전히 돌아가라.”

유성탄은 방망이를 치우며 손가락으로 성화용의 이마를 탁 튕겼다. 마치 장난으로 꿀밤을 때린 것 같았지만 성화용은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감싸고는 뒤로 자빠졌다.

나름 청무관에서는 대제자로 큰 소리를 쳤지만 이제 갓 일류의 경계를 넘어가는 그로서는 갈수록 완숙한 싸움 솜씨를 보이는 유성탄의 일초도 받을 수가 없었다.

좌무성은 성화용이 너무 어이없이 패하자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엄청난 고수다! 저런 자가 왜 어리숙한 척하며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지?’

좌무성은 유성탄의 모든 행동이 자신을 자극하기 위하여 일부러 행하는 연극이라고 오해를 했다. 유성화나 좌소백은 자신을 잡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 기관에서 오신 분인지 솔직하게 말해 보시오.”

좌무성의 말투가 달라졌다.

“어느 기관? 나는 기관 같은 거 모르는데…….”

“소속이 어디냐는 말이오?”

“아, 소속! 한주현 현청 소속이오.”

유성탄의 대답은 좌무성을 더욱 헷갈리게 했다.

‘무슨 소리야? 언제부터 일개 현의 현청에서 저런 고수를 포쾌로 쓴 거지?’

“괜한 내 아들을 잡지 말고 솔직하게 여기 온 이유를 말해보시오. 내게 바라는 것이 뭔지 말하면 내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리다.”

유성탄은 그가 좋아하는 성의란 말이 나오자 잠깐 갈등의 빛을 보였지만 유성화를 생각하고는 과감하게 유혹을 물리쳤다.

“내가 당신한테 볼 일이 뭐가 있단 말이오? 나는 반역 준하는 죄를 지은 좌소백에게만 볼 일이 있소이다.”

계속 이어지는 반역에 준하는 죄란 소리에 좌소백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처음에는 무슨 장난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그였지만 자신이 하늘같이 여기는 대사형인 성화용을 마치 어른이 애 가지고 놀듯이 이겨 보이는 유성탄에게서 장난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냥 놀기 좋아해서 논 죄밖에 없어요! 정말입니다. 거기다 유성화를 만나고부터는 다른 여자는 만나지도 않았다고요.”

“하지만 유성화가 어려운 일에 봉착했는데 모른 척했지 않냐? 걔가 여기 와서 너를 찾으며 계속 문을 두드리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며 내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는지 아느냐!”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점점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을 갖는 것은 좌무성이나 좌소백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청무관의 백여 명의 제자들도 혼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혹시 뭐?”

좌소백은 멍하니 유성탄을 쳐다보다가는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의원을 찾아가 보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의원? 왜에? 나 보약 지어줄라고? 하지만 네가 아무리 그래도 니 죄를 용서해 줄 생각이 난 없다.”

“그게 아니라… 정신상태가 바르신지 한번 알아보시는 게 어떨까…….”

“네가 드디어 반역을 꾀하는구나!”

유성탄도 좌소백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즉시 유성탄의 입에서 반역이라는 말이 터져나왔다. 반역에 준하는 죄와 반역은 엄연히 죄질이 다른 것이었다.

“감히 본 포쾌를 미친놈 취급을 해서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어릴 때부터 천재로 통하던 사람이다. 아무래도 너 황궁으로 압송해서 능지처참을 해야 할 것 같다.”

“저는 미쳤다고 안 했습니다. 그냥 의원을 찾아가서 어떠신가 알아보라고 한 것뿐인데요. 그리고 그게 어째서 반역이 되는데요!”

‘자식이 성화가 좋아하게 생기기는 했는데… 어떡하지? 성질대로 했다가 성화한테 원망을 들을 수도 있는데…….’

평상시 같으면 이미 다 때려 부수고 나갔을 그였지만 막상 화가 나서 쳐들어올 때하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막상 좌소백을 만나고 보니 유성화가 아직 좌소백을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유성탄은 좌소백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다가는 갑자기 좌우를 둘러보더니 담벼락 가까운 곳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자 좋은 생각이 났는지 그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너희들에게 내가 화나면 어떤 사람인지 우선 보여주마!”

유성탄은 우선 겁만 팍 주고 오늘은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유성화에게 물어보고 다시 올 생각을 한 것이다.

‘으잉! 이게… 씨! 잘못 골랐다.’

유성탄은 그 큰 바위를 두 손으로 잡았다. 당장에 들어 올려 연무장에 던져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바위가 꿈쩍도 않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다. 이미 잡았는데 여기서 다른 바위로 옮길 수도 없고… 에이, 죽기 살기로 들어야 한다.’

“으하하하합!”

유성탄이 정신일도하사불성의 예를 보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유성탄의 몸을 돌던 선천지기가 유성탄의 뜻에 부합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어어어!”

갑자기 지진이라도 울리듯이 청무관 전체가 흔들거리자 모두 비틀거리며 놀라 소리친다.

“멈추시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지만 그 바위는 엄청 큰 바위가 끝만 조금 나와 있는 것이오. 그걸 들면 청무관이 부서집니다.”

안에는 좌소백의 어머니를 비롯하여 하녀 등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청무관이 무너져 여자들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좌무성이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 역시 그랬군. 내가 전에는 산을 들어서 옮겼었는데 요새 조금 무리를 했더니 좀 피곤하구려. 하지만 이 못된 바위는 내 용서해 줄 수가 없소이다.”

유성탄은 그제서야 이유를 알았는지 몸을 세우고는 뻥을 한번 치고는 그 바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부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멋있을 것으로 느낀 것이다.

쾅!

마치 벽력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바위는 그대로 먼지와 함께 가루가 되어버렸다.

“내 다시 올 것이오. 만약 좌소백이 도망을 가거나 할 경우에는 청무관은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먼저 알려드리겠소. 좌소백 너는 내가 증거와 증인을 데리고 올 때까지 얌전히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어라!”

뿌연 먼지 속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멋있게 소리친 유성탄은 급히 청무관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청무관 사람들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상에 철암이라고 해서 없애려고 별 짓을 해도 못 부순 바위이거늘 어찌 사람의 주먹으로… 큰일이구나. 저런 고수라면 우리로서는 당할 재간이 없는데…….”

좌무성은 완전히 질린 얼굴로 유성탄이 사라진 정문을 쳐다보더니 급히 좌소백의 뒷덜미를 잡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마에 커다란 혹이 달린 성화용은 이마를 주무르며 연무장을 치우라는 명을 사제들에게 내리고는 급히 좌무성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 씨! 오늘 완전히 재수에 옴 붙은 날이다. 하필 골라도… 아파 죽을 뻔했네. 다음부터는 한번 만져보고 쳐야지.’

유성탄은 멋있게 대미를 장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위를 충동에서처럼 마음껏 힘차게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즉시 잘못 쳤다는 것을 느꼈다.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던 아픔을 주먹에서 느낀 것이다.

그 바위는 보통 바위가 아니었다. 감숙이 척박한 이유 중에 하나가 감숙 특유의 바위인 이 철암 때문이었다. 너무 단단하면서 커다란 바위가 사방에 널려 있으면서 개간을 방해했다. 망치로 내리쳐도 쇠방망이를 휘둘러도 깰 수 없는 단단한 바위가 감숙에는 많았다.

깨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성탄은 손을 떨 정도로 극심한 아픔을 느꼈다. 엄살이 심한 유성탄으로서는 소리도 못 치고 참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말을 끝내자마자 곧장 튀어 나온 것이다. 만약 선천지기가 보호해주지 않았다면 손이 부러졌을지도 몰랐다.

* * *

“성화야, 오빠랑 얘기 좀 할까?”

청무관에서 돌아온 유성탄은 유성화의 방으로 가서는 목소리를 깔면서 유성화를 불렀다.

유성화는 유성탄이 오자 좋아서는 뛰어나왔다.

“오빠, 요새 바빴어요? 나 보러 오지도 않고!”

“하하하! 이 오빠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를 않으니 어떡하겠냐? 나도 성화와 노는 게 제일 재미있는데 사방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너무 많다.”

“와아! 오빠, 정말 존경하고 싶어요.”

유성탄은 어떤 말을 하건 진짜로 믿고 감탄해주는 유성화와의 대화가 제일 즐거웠다.

“그런데 성화야, 그 청무관 말이다. 좌소백이란 놈…….”

“좌 공자요? 왜요?”

“니가 원하면 내가 당장 잡아 옥에 집어넣고 아주 병신을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해줄까?”

“안 돼요! 좌 공자는 건드리면 안 돼요.”

“좋아하냐?”

“몰라요. 하지만 좌 공자가 다치는 것은 싫어요.”

‘휴유! 안 때리기를 잘했구나…….’

유성화에게만은 언제나 좋은 오빠이고 싶은 유성탄으로서는 간담이 서늘해 오고 있었다.

* * *

오늘도 동지육은 저녁이 되자 십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한주현의 번화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가난한 한주현에 무슨 왈짜 흑도패냐 하겠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다른 흑도가 전혀 얼씬을 안 하니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적게 먹고 편하게 살자가 그의 주의였다.

큰 주루 하나에 가게 삼십여 개, 그래도 열 명의 부하와 자기가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돈이 나왔다.

“형님, 저놈들 뭐지요?”

동지육의 옆에 바짝 붙어 걷던 여우같이 생긴 놈이 길을 막고 있는 덩치들을 보며 말했다. 동지육이 보니 제법 큰 덩치들 대여섯 명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동지육은 수적으로 그가 유리하다는 것을 알자 약간 안심이 된 듯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이곳 한주현에 나 동지육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을 텐데?”

“그래, 들었다. 그래서 오늘 귀찮음을 무릅쓰고 내가 여기까지 온 거다.”

철패는 영호충을 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나까지 손댈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니들이 알아서 설설 기게 만들어놔라.”

* * *

“어서 오십시오, 유 현령님.”

유정삼과 유성우는 갑작스런 부름에 급히 북창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소연이 아주 반갑다는 듯이 맞았다.

“무슨 일이신지……?”

아직 정확한 주소연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유정삼이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겨우 삼 일이 지났는데 한주현과 북창부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유성탄 포쾌께서 북창부와 한주현의 흑도패들을 완전히 장악을 하셨더군요.”

“예에! 아니 그놈이 포쾌를 시켜놨더니 흑도들과 작당이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흑도들을 전부 병신을 만들어서는 쫓아내 버렸다는 말입니다. 거기다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받던 관의 인물들까지 모두 잡아 족쳤더군요.”

유정삼이나 유성우가 처음 듣는다는 듯이 어리둥절해하자 주소연이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두 분께도 어느 정도 정보망을 구축해 드렸어야 했는데… 자, 그럼 이제 두 분의 힘이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유정삼과 유성우가 긴장한 눈으로 주소연을 쳐다보았다.

* * *

“아이 씨! 난 안 가고 싶다니까요.”

유성탄은 요즘 한창 엄마인 강추화와 동생인 유성화와 노는 데에 재미를 붙인 상태였다. 충동에서 있으면서 그렇게 그리워했던 가족 간의 사랑을 즐기고 있는 지금 유정삼이 갑자기 파견근무를 가라고 한 것이었다.

“이놈아! 나라의 녹을 먹은 포쾌가 위에서 가라고 하면 가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냐?”

“그럼 포쾌 그만둘게요.”

그렇지 않아도 때려잡을 것 다 잡고 나서는 슬슬 포쾌 생활에 재미를 잃고 있던 유성탄이었다.

“형님, 이번 일은 정말 나라에 중요한 일입니다. 형님밖에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여간에 사람이 너무 잘나도 문제라니까… 에이!”

“와아! 큰오빠 정말 멋있다. 오빠밖에 할 사람이 없다면 정말 오빠가 대단하다는 걸 세상이 알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유성화의 말은 유성탄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유성화를 유성탄은 정말 귀여워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서 뭘 하라는 건데요?”

“지금 마약을 운반한 세력이 사망회라는 것은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사망회는 관이라고 해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뭐야! 설마 나보고 사망회에 가라고? 안 가! 거기 무지 무섭다는데, 넌 오랜만에 만난 형님을 죽일 생각이냐?”

“설마 그러겠습니까? 그래서 사망회는 우선 놔두고 마약을 재배한 곳과 마약을 유통시킨 자들을 잡으라는 명입니다. 그중 마약을 재배한 곳은 이곳 감숙의 관에서 할 것이니 형님은 마약을 유통한 자를 잡아들이면 됩니다.”

“마약을 유통한 자…라?”

‘가만있어… 그놈이 바로 청담이잖아? 그래 금자 삼천 냥도 받고 나간 김에 엄마 좋아하는 돈도 좀 더 벌어오고? 흐흐흐, 이런 걸 보고… 에이 모르겠다.’

“알겠다. 내가 하마.”

생각 외로 유성탄이 순순하게 허락하자 유성우가 약간 틈을 두었다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연 공자님의 명을 받아야 하셔야 합니다.”

“뭐! 그 재수 없는 놈의 명을… 내가 왜?”

“연 공자님은 대단히 지위가 높으신 분입니다. 형님께서 함부로 대하실 분이 아닙니다.”

“큰오빠는 왜 그 연 공자라는 사람이 싫어요?”

유성화도 보지는 못했지만 연 공자에 대해서 듣기는 했다. 자신의 집안이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한 것도 다 그의 덕이라고 들었다. 물론 유성탄과 친구라는 말도 들었다.

“그게… 얼굴이 너무 예쁘게 생겼어. 난 남자 놈이 그렇게 생긴 걸 제일 싫어한다.”

“큰오빠도 잘생겼는데, 왜요?”

“그게… 에이, 알았다.”

아무리 유성탄이라도 유성화에게 연 소주의 얼굴이 자신보다 잘생겨서 자신이 빛을 잃을까봐 그런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성탄아, 우리가 다 죽을 상황까지 갔다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네 덕이라는 것을 안다. 연 공자님께서 너와 아주 절친한 친구라고 하시더구나. 그런데 네가 좀 말을 안 들으니 그걸 좀 설득을 해 달라고 하더라. 이 아비의 부탁이니 이번에 연 공자와 같이 나가면 모든 지시를 연 공자의 말에 따르도록 하거라.”

“아버지, 내가 이래봬도…….”

“성탄아~”

갑작스런 강추화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유성탄이 말을 멈췄다. 어릴 때 많이 당하던 그 목소리였다.

“너 연 공자님 한마디면 우리 집안이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니?”

“그놈이 그랬다가는 나한테 죽어요.”

“그럼 네 생각에 우리가 다 죽고 연 공자가 죽는 게 좋겠니, 아니면 우리도 다 살고 연 공자도 사는 게 좋겠니?”

“연 소주 그놈을 먼저 죽여버릴까요?”

* * *

“어이, 친구! 인상이 왜 그래?”

“너 치사하게 그러는 거 아니다.”

“뭘?”

“너 아버지와 성우에게 무슨 말을 했냐?”

“아 그거? 너하고 아주 친한 친구라고 했지.”

“맞고 잡냐?”

주소연과 만난 유성탄이 시작부터 시비를 걸자 주소연도 능청맞게 받아주고 있었다.

‘사람이 수염 좀 깎고 머리 좀 다듬었다고 저렇게 변하나?’

주소연은 솔직히 유성탄의 변한 모습에 약간 놀라고 있었다. 산도적 같았던 얼굴이 무척 남자다운 잘생긴 얼굴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같이 다니면서는 절대로 유성방의 유 자, 낭인칠웅의 낭 자, 그리고 마질대형의 마 자는 꺼낼 생각도 하면 안 된다.”

“뭐야! 그럼 뭐라고 하란 말이냐?”

주소연은 잠시 유성탄의 모습을 보더니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포천망쾌(捕天網快)라고 하자. 하늘까지 덮는 그물을 가진 포쾌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네게 걸리면 누구도 도망을 못 친다는 거지. 어떠냐?”

“포천망쾌? 흠… 괜찮군!”

유성탄은 입으로는 그랬지만 포천망쾌라는 이름이 마질대형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그건 그렇고 나도 네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줘야겠다.”

‘들어줘야겠다? 호호,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군.’

“말해봐라.”

“유성방에 내 아우들이 있다. 내가 어디 좀 갔다 오라고 시켰는데, 걔들이 싸움은 무지하게들 잘하는데 무공이 약하다. 나는 잘 모르는데 그 아이들 말이 무슨 내공심법을 익히거나 내공을 올리는 약을 구하면 된다고 하던데, 너는 재주가 좀 좋은 것 같던데 그런 것 좀 구해줄 수 없겠냐?”

‘하여간에 말도 되게 못해요. 호호! 어쩔 수 없지. 내가 알아서 새겨들어야지…….’

주소연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말했다.

“허허… 어이가 없다. 그런 약이 있으면 내가 먹겠다. 세상에 내공을 올리는 약이 어디 있냐? 아니 그래 무산신녀궁에는 그런 약이 있다는 말이 있기는 하더라. 하지만 나는 안 믿는다.”

주소연은 황궁에도 없는 그런 약이 무림의 한 방파에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무산신녀궁? 거기는… 히히히, 그래 정자운하고 백리빙이 있는 곳이 거기라고 했는데… 한번 가봐야겠다.’

“갑자기 혼자 왜 히죽대고 왜 그러냐?”

유성탄이 이상한 상상을 하며 히죽대자 주소연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나 같은 남자는 거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너는 이해 못할 거니 그냥 그런 줄 알고 살아라.”

‘저게… 그냥 정체를 밝히고 혼을 내줘? 아니야, 저 자식 하는 꼴이 내가 누군 줄 알아도 개길 확률이 있어. 그럼 더 골치 아파져.’

주소연이 억지로 참을 때!

“공자님, 준비 다 됐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신타, 유성방 사람들에게 각기 신체에 맞는 심법을 하나씩 가르쳐주세요. 여기 유 대형이 아우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갸륵하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 여행길에 유성방의 방도들은 남기로 했다. 우선 유성탄의 정체가 밝혀지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고 실질적으로 아우들의 무공이 너무 약했다.

유성탄은 그들에게 하후란과 함께 칠우도인지 뭔지 기연을 한번 찾아가보라고 했다. 하후란이 말한 산 중 사천의 아미산은 다음에 가더라도 감숙의 북천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하후란 역시 감숙에서는 실리를 충분하게 취하고 있었다. 그녀가 속한 문에서의 겉으로 나타난 주 수입은 주루와 기루 운영이었다. 그러다 보니 흑도의 왈짜패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조직이 대원시절 다 망가져버린 것이다.

감숙은 가난한 곳인 것만은 틀림없었는데, 이상하게 기루는 잘되는 편이었다. 물론 고급기루는 아니었지만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조사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유성탄 덕에 감숙의 곳곳에 기루를 세울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것이다. 주소연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 관에서 흑도를 막아주기로 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흑도를 직접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사를 하면 기루의 수입의 반은 흑도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하후란은 우선 자리만 잡으면 흑도를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유성방이 정식으로 개파를 할 경우였다. 유성방의 총단은 한주현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결국은 감숙을 잡고 있는 사망회와의 일전을 피할 길은 없는데, 그것을 어찌 막아낼지도 그녀가 궁리해야 할 일이었다. 유성탄이 사망회에 진다면 자신들 역시 감숙에서 철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니, 철수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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