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5장 포천망쾌 (44/79)

제5장 포천망쾌

포쾌 복장을 한 유성탄은 육모방망이를 계속 돌리며 길을 걸었다. 그의 뒤를 오살이 숨어서 따르고 있었고, 주소연은 유성탄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만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연 소주, 그놈 은근히 얄밉단 말이야. 아버지 말만 아니었으면 그냥 한 대 때려가지고 부하를 만들면 딱인데… 에이!”

그가 가고 있는 곳은 호북의 만류장이었다.

주소연은 강태웅으로부터 유성방이 감숙까지 오게 된 이유를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사건의 시발점을 만류장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관을 동원해 만류장의 모든 재산을 압수하고 만류장의 이름으로 산 장원이나 가게 등을 모두 조사한다면 더 쉽게 상황파악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동창에서 곧 모든 것을 알아낼 것이 뻔했다. 거기다 만류장이 단지 소모품에 불과하다면 괜한 짓으로 타초경사(打草警蛇)를 한 것이 될 수도 있음이었다.

“야 고화월!”

유성탄은 산길에 접어들자 심심한지 고화월을 불렀다.

“왜요?”

“너 방주한테 하는 대답이 너무 무례하다.”

“그러니까 왜요?”

“심심한데 무림 얘기나 좀 해주라. 아무래도 좀 알아놔야 할 것 같다.”

“뭐가 알고 싶으신데요?”

“무림에서 가장 강한 방파나 강한 사람들 얘기를 해주라.”

“현 무림은 크게 정파와 사파로 나누어져 있어요. 정파는 구파일방이라는 큰 문파와 오대세가라고 일컫는 무림 명문세가가 수백 년을 주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현재는 천무성이 가장 영향력이 큰 정파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다야? 모두 열네 개잖아?”

“열여섯이에요.”

“그래 열여섯!”

“금방 열넷이라고 했잖아요?”

“니가 잘못 들었어. 난 분명 열여섯이라고 했어.”

“그만둬요. 하여간에 수로는 열여섯이지만 그들이 배출해 낸 제자들이 무림 곳곳에 세운 무관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힘이 됩니다. 단적인 예로 개방 하나만 해도 그들 말로는 십만이라고 하니까요.”

“이 씨! 무지 많네.”

“그리고 사파는 현재 오대사파라고 일컫는 사망회(死亡會)와 마룡방(魔龍幇), 금모전(金募殿), 구룡회(九龍會) 그리고 백마성(白魔城)과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세력을 펼치는 군소방파로 이루어져 있어요. 군소방파들은 오대사파와 수하에 가까운 연맹을 맺고 언제든지 오대사파에서 부르면 부하들을 이끌고 모여들지요. 웃기는 것은 같은 사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들끼리는 머리가 터지도록 싸운다는 거지요.”

“그게 웃기는 거냐? 그런 것은 미친놈이라고 하는 거야.”

유성탄이 좋은 거 하나 가르쳐주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고화월은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림에는 십대고수와 백대고수가 있어요. 무림인이 수십만을 헤아리는데 그중에 백위 안에라도 든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지요.”

“십대고수가 세냐? 백대고수가 세냐?”

“당연히 십대고수가 세지요! 좀 물을 걸 물으세요!”

‘씨! 궁금한 것도 함부로 못 묻겠구먼…….’

“십대고수는 마치 짠 것처럼 정파인과 사파인이 다섯씩 딱 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소림의 대하선사, 무당의 무허진인, 화산의 영화진인 그리고 십절지존이라고 불리는 대무신 그리고 마지막이 천무성주인 천무제예요.”

“누가 제일 세냐?”

“아무도 몰라요. 그렇다고 함부로 누가 세다고 떠벌이고 다녀도 안 돼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으니까요.”

“정파래매?”

“정파가 명예는 더 따져요. 만약 대하선사가 영화진인보다 더 세더라 하는데 화산 사람이 들으면 허위사실 유포로 동굴에 평생 가두어둘지도 모르지요.”

유성탄은 동굴에 가둔다는 말에 바짝 쫀다.

“정말 무섭구나.”

“그리고 사파는 사망지존(死亡至尊), 철립마륜(鐵笠魔輪), 파천마종(破天魔宗), 흑혈신마(黑血神魔) 그리고 무영존(無影尊)이 있어요. 그중 사망지존은 사망회의 회주이고, 철립마륜은 백마성의 성주예요. 파천마종은 파천마교라는 교의 교주인데 세는 적어서 오대사파에는 들지 못하지만 고수들이 많아서 아무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해요. 그리고 흑혈신마는…….”

“그 영감은 그냥 지나가도 돼.”

유성탄의 말에 고화월은 눈을 살짝 흘기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영존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그를 만난 사람 중 살아난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엄청 무서운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것이 정설이에요. 이들을 무림에서는 무림오마(武林五魔)라고도 하고 무영존을 빼고 사마(四魔)라고도 하곤 해요.”

잠시 숨을 고른 고화월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자 유성탄이 막는다.

“백대고수 얘기하려고 그러지?”

“해 달래면서요?”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들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 다른 얘기나 하자. 무림에서 제일 예쁜 여자가 누구냐?”

유성탄은 듣다보니 기억도 잘 안 되고 살벌한 것이 안 듣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림에는 미인으로 불리는 여자들이 참 많아요. 하지만 사람마다 눈이 다른데 꼭 집어서 누가 제일 미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봐야지요. 실지로 무림오미에 든다는 여자를 한 명 내가 본 적이 있는데, 저보다 못하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주관적인 얘기는 하지 말고 그냥 객관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미인이 누구인지나 말해봐라.”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살짝 내비쳤던 고화월은 유성탄의 말에 쌜쭉해가지고 말을 이어갔다.

“무림의 호사가들이 하는 얘기로는 무산신녀(巫山神女) 정자운하고 천요색화(天妖色花) 화설군, 화월지용(花月知鳳) 남궁혜미와 천상공주(天上公主) 주소연, 그리고 사천독화(泗川毒花) 당혜미를 무림오미(武林五美)라고 해요.”

“정자운이 거기에 낀단 말이야? 그런데 천요색화 화설군은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는 거냐?’

고화월의 눈이 찡그려졌다.

“하필 왜 그 여자한테 관심을 갖는 거죠?”

“이름이 마음에 들잖아. 천요색화… 꼭 뭔가 한 번 줄 것 같은 이름인데…….”

유성탄이 공상에 잠겨들자 고화월이 커다랗게 “흥!” 소리를 내뱉고는 사라졌다. 다시 은잠술로 모습을 감춘 것이다.

‘히히히, 뭔지 모르지만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가 찡하게 왔단 말이야. 분명 건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히히히!’

유성탄이 행복한 표정으로 히죽거리며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 * *

“어이, 젊은 포쾌! 이리 와보시게!”

호북의 대정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유성탄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 말이오?”

“그럼 자네 말고 포쾌가 여기 어디 있나?”

“왜 그러시오?”

“내가 허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대정현까지 좀 업어줄 수 있겠나?”

‘으잉? 업어달라고?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노인장, 뭔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난 보통 포쾌가 아니오. 좀 더 기다리다 보면 보통 포쾌가 올 거니 그들에게 부탁해보시구랴.”

유성탄이 웃기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고는 몸을 돌리려고 하자 노인이 다시 말했다.

“포쾌란 양민의 공복(公僕)으로 양민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야 하는 것이 본업이거늘 자네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 아닌가?”

‘어라, 엄청 유식한 노인인데… 뭐라고 하는 거야?’

“보아하니 내 말을 이해 못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설명해 줄까?”

노인이 유성탄의 표정을 보더니 슬쩍 물었다.

“무슨 말이오? 내가 얼마나 유식한데…….”

“그래 유식하면 내 말을 알아들었을 테니 그럼 업게나.”

유성탄의 얼굴이 요상하게 변했다. 말이 이상하게 업지 않으면 무식한 거고 업으면 유식한 것같이 변한 것이다.

‘이 씨! 말이 좀 이상해졌네. 에이, 내가 불쌍해서 봐준다.’

“업히시오.”

“조금 더 앉아! 너무 높아서 업힐 수가 없잖아!”

“노인장, 너무 바라는 게 많으면 욕먹어요.”

“욕은 먹을 만큼 먹어서 이제는 더 먹어봐야 상관없다.”

“노인장, 엄청 무거운 걸 보니 엄청 먹어대게 생겼는데 꼴상을 보니 돈은 없어 보이고 참 안됐수다.”

“니가 돈 좀 줄래?”

“난 청렴결백한 포쾌요. 나 같은 청백리가 돈이 어디 있겠소?”

“니 품에서 금 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 늙은이가 내 코보다도 더 냄새를 잘 맡네. 큰일 나겠다.’

“내가 이래봬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자란 몸이오. 그러다 보니 금 냄새가 몸에 좀 배어 있는 것뿐이오.”

“그걸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 한 거냐?”

“자꾸 그렇게 말 뒤를 점점 짧게 잘라먹으면 확 던져버릴지도 모르오!”

“그 놈 참 성미도… 알았다.”

“윽!”

유성탄은 갑자기 노인의 무게가 엄청 무거워지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젊은 놈이 이렇게 허약해서 밤일이나 제대로 하겠냐?”

“내가 이래봬도 하룻밤에 백번을 뛴 사람이오.”

“예끼 이놈아! 네가 무슨 물개도 아니고 무슨 뻥을 쳐도! 그리고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질이 중요한 거다.”

노인은 장난처럼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속으로 무척 놀라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내공 중 무려 사 성을 사용하여 천근추(千斤墜)의 수법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유성탄은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자신을 업고 가는 것이었다.

‘어디 보자……!’

노인은 일성의 공력을 더 올렸다.

‘이 씨! 진짜 내가 허약해졌나? 왜 갈수록 무거워지는 거야?’

유성탄은 점점 무거워지는 노인의 무게에 짜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좀 더 빨리 가라. 그래야 목적지에 도착할 것 아니냐!”

“말 걸지 마시오. 힘들어 죽겠소.”

유성탄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면서도 걸음을 빨리 옮겼다.

‘거참, 신기한 놈일세…….’

노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번에는 이 성을 올려보았다. 무려 칠 성의 공력이었다. 노인의 정체를 안다면 그 칠 성의 공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겠지만 유성탄은 그 노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고화월, 어떡하지?]

[뭘?]

[만약 저 노인이 방주님을 해하려 한다면 막을 길이 없을 것 같다.]

오살은 노인을 보는 즉시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유성탄의 가까이 가려고 하면 마치 검날이 자신의 가슴을 찔러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방주님만 믿자. 그리고 저 노인이 방주님을 해하려 했다면 이미 손을 썼을 것이다.]

고화월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상대의 처분만 기다리기는 처음이었다.

‘이놈 이거 정말 괴상한 놈일세?’

무당검신으로 불리는 무허 진인은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육갑(六甲)을 짚으며 점을 치곤 했다. 물론 전부 다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도통했다는 말을 듣는 무당의 도인 중 최고의 배분을 자랑하는 그답게 상당히 잘 맞추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는 하산을 하면 귀인을 만날 것이라는 점괘가 나온 것이다.

어차피 할 일도 없던 그는 심심풀이 삼아 산을 천천히 내려왔다. 하지만 무당산을 내려온 후 무려 백 리 가까이를 걸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한 명도 만나지를 못했다.

결국 그는 점괘가 틀렸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본산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쉬려고 그늘에 앉아 있다가 유성탄을 만난 것이다.

아무리 봐도 귀인같이 보이지 않는 유성탄의 몸에서 뭔가 신비한 힘이 나오는 것을 느낀 무허 진인은 장난을 한 번 칠 생각으로 업어달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유성탄은 깐죽깐죽 말대꾸를 하면서도 그를 업었다.

우선 보기와는 달리 심성은 곱다는 생각을 한 무허 진인은 시험 삼아 자신의 몸무게를 늘려본 것이 칠 성까지 올린 것이다.

‘우욱! 이게…….’

무허 진인이 다시 일 성을 더 올렸다. 순간 유성탄은 다리가 땅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에 깜짝 놀랐다. 충동에서 나온 이후 이렇게 다리가 풀린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창피냐. 삐쩍 마른 늙은이 하나 업고 끙끙댔다는 소문이 퍼지면 진짜 쪽인데… 에이 씨! 돈도 좋지만 보약 하나 지어 먹어야 할 것 같구나.’

유성탄이 헛생각을 하며 걸어가는 동안 무허 진인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자신이 팔 성의 공력으로 눌러댄다면 누구라도 땅속으로 박혀 들어갈 정도의 압력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성탄은 끙끙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땅속으로 박히지 않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더 올리면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어디 우선 한번 시험 좀 해보고…….’

“젊은 놈이 어째 이리 비실거리는 거냐? 내가 젊었을 적에는 산을 지고도 뛰어다녔었다.”

“나는 왕년에 한 손에 산 하나씩 들고 뛰었었소.”

“그놈 참 입심 하나는 좋구나!”

무허 진인은 유성탄의 뻥에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일 성을 올렸다. 그리고 그 무게는 유성탄의 튼튼한 몸으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압력이 되어 유성탄의 몸을 짓눌렀다.

순간!

유성탄의 몸에 흐르던 선천지기가 위험신호를 느꼈는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허 진인의 몸이 갑자기 튕겨나갔다.

공중으로 날아가던 무허 진인은 갑자기 몸을 회전시키더니 유성탄 앞으로 다시 떨어졌다. 무당의 제운종에서 파생된 회절신(回折身)이라는 무공으로 일 갑자 이상의 공력이 없으면 펼칠 엄두도 못 낸다는 절기였다.

유성탄의 강력한 반탄지기에 순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갔던 무허 진인은 전혀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란 기색은 역력했다.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유성탄도 갑작스런 현상에 잠시 어리둥절하다가는 무허 진인이 전혀 이상이 없자 안심한 듯이 조용히 대답했다.

“내가… 지금 무지 중요한 특수임무를 띠고 어디를 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지금 정체를 감춰야 하는 판에 어떻게 이름을 가르쳐줍니까?”

“그래도 나한테는 살짝 가르쳐줘도 될 것 같은데…….”

유성탄은 무허 진인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그럼 절대 비밀입니다.”

“걱정 말라니까!”

“제가 포천망쾌입니다.”

“포천망쾌? 성이 포천이고 이름이 망쾌인가? 생전 처음 듣는 성이로군.”

“이름이 아니고 명호입니다. 누구든 내게 걸리면 그 즉시 작살을 낸다는 이름이지요.”

“하늘까지 덮는 그물을 가진 포쾌라 이거군. 흠! 흥미로운 명호로군. 나는 무당의 무허라고 하네. 무림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이름인데…….”

“난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모양인데 괜히 뻥치지 마시오.”

“허허허허! 미안하네. 내가 좀 유명해지고 싶어서 뻥을 좀 쳤네. 하지만 나이는 상당히 많아서 무당에서는 제법 큰소리를 친다네. 혹시 무당에 올 일이 있거든 무허 진인을 만나러 왔다고 하게. 내 자네라면 열 일을 제쳐두고 반가이 맞을 것이네.”

‘이 늙은이가 돈 냄새를 맡았군. 내가 미쳤어! 거기를 왜 가!’

무허 진인은 유성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사라져버렸다.

“엄청 빠르네? 장의사 영감보다도 빠른 것 같아.”

유성탄은 무허 진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엄청 센 노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무허 진인을 업어주고 최대한 예의를 지킨 것도 사실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유성탄의 육감은 무허 진인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겁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절대로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고화월에게 들었던 십대고수의 이름은 이미 잊어버린 후였다. 하지만 오미(五美)의 이름은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 참 편리한 머리라고 할 수 있었다.

* * *

“야! 니들 얼굴에 수염을 붙이고, 뭐 그런 방법 아냐?”

대정현에 도착한 유성탄은 객방을 얻고는 오살을 부르더니 이상한 것을 물었다.

“왜요? 변장하시게요?”

“연 소주 말이 마질대형이란 것을 절대로 들키지 않게 하라고 했는데 만류장에 가서 청담이란 놈의 행방을 알려면 아무래도 나를 알려줘야 할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이 모습으로 들어가서 내가 유성탄이다 하고 가르쳐주면, 당장에 포천망쾌가 마질대형이다 하고 소문이 날지도 모르잖냐? 그때처럼 수염만 잔뜩 붙이면 될 것 같은데…….”

“그런 이유라면 간단합니다. 우리 살수교육에는 변장도 굉장히 중요한 목록이지요.”

전화생이 그 정도는 간단하다는 듯이 말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아우 분들은 어떻게 하시고 유 대형 혼자 오셨습니까?”

사도진철은 유성탄이 왔다는 말에 깜짝 놀라 뛰어나왔다.

“아우들은 내가 중요한 임무를 맡겼소이다. 하여간에 시간이 별로 없으니 장주님 좀 빨리 나오라고 하십시오.”

“얘기는 들었습니다. 청담이 불같이 화가 났더군요. 우리보고 기밀을 누설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는 통에 간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시도진용은 유성탄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며 말했다. 유성탄의 모습이 뭔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청담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내가 알기로는 금모전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은 만류장에서 청담에게 사주었다는 장원들의 위치를 모두 알려주시오.”

“그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는 죽습니다. 청담은 진짜 무서운 자입니다.”

“아이 참! 내가 지금 청담을 잡으러 가는데, 청담이 어떻게 여기를 와요? 그런 걱정 말고 여비나 충분히 챙겨주시오.”

“저번에 금자로 오백 냥이나 드린 걸로…….”

“천하의 만류장주님의 통이 그렇게 작아서야. 금자 오백 냥이면 나한테는 당과 하나 값밖에 안 되는 걸 모르십니까?”

‘이거 늑대 쫓으려다가 호랑이를 불러들인 거 아니야? 금자 오백 냥을 어떻게 당과하고 비교를…….’

사도진용과 사도진철은 불안한 눈으로 서로 쳐다보더니 사도진철이 조용히 일어났다.

‘연 소주가 알아내라고 한 장원들도 모두 알아냈고… 흐흐흐, 부수입도 챙기고… 이것도 재미있네…….’

계획에 없던 수입에 유성탄의 입은 커다랗게 벌어졌다.

“그런데 이놈은 도대체 어디서 털을 구해왔는데 이렇게 따가운 거야?”

유성탄은 얼굴에 마구 붙인 말 털을 뜯어내며 중얼거렸다.

“정말 금모전으로 갈 거예요?”

“그럼.”

“우리끼리만 가면 죽어요!”

대정현을 떠나 강서의 경계에 갈수록 불안해진 고화월이 소리쳤다.

“난 안 죽어.”

“방주님만 안 죽으면 다예요! 우리가 죽는단 말이에요!”

“너희도 안 죽어.”

“어떻게요?”

“너희들은 안 들어갈 거니까.”

“예?”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과 다른 몸을 가진 것을 나도 이제 알아. 좀 아프기는 하겠지만 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죽어. 아우들도 따라온다는 거 억지로 막은 이유가 그래서야.

너희들은 그래도 몸이라도 숨기는 재주가 있으니까 데리고 온 거야. 대신에 내가 금모전에 들어가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동안 청담의 장원 중의 몇 개가 근처에 있더라. 거기를 좀 자세히 조사해 놓고 있어라. 위험한 짓은 하지 말고.”

오살은 유성탄을 쳐다보며 그들이 진정한 주군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 * *

금모전은 강서의 용유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름만 현이었지 거의 부에 가까운 커다란 고을이었다.

무림오대사파 중 하나인 금모전이 자리 잡고 있으니 당연히 고을의 치안이 나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느 고을보다도 더 치안이 확실한 곳이 그곳이었다.

“웃기네. 오대사파라고 하더니 어떻게 다른 고을보다도 더 조용한 거야!”

육모방망이를 건들거리며 용유현에 들어선 유성탄은 여느 마을과 같이 활발한 상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보쇼, 여기 금모전이 어디요?”

유성탄이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 잡더니 물었다.

“금모전을 왜 찾는 거요?”

“날 보면 모르겠소? 내가 포쾌요! 포쾌가 금모전을 찾을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소.”

“뭐래?”

유성탄이 남자가 가르쳐준 금모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의 친구가 물었다.

“미친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한 것 같아.”

대로를 따라가던 유성탄은 금모전의 위용을 보자 눈이 커다래지더니 놀라기는커녕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흐흐흐! 봉을 잡았구나. 이 정도면 생기는 것도 많을 것 같은데…….’

“뭐냐!”

금모전의 정문을 지키던 문지기는 껄렁하게 걸어오는 유성탄을 보더니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금모전에 감히 가까이 오는 포쾌는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용유현의 관아가 동쪽에 있었고, 금모전은 서쪽에 자리잡은 후로 서쪽으로는 아예 포쾌가 나타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감숙 한주현의 특별포쾌인 포천망쾌다. 감숙현에서 생긴 마약사건에 금모전이 연루되었다는 정황이 나타나 조사하러 왔다. 만약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를 한다면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가 직접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금모전을 반역으로 다스리기로 했으니 가서 금모전주에게 당장 나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전해라!”

유성탄이 연 소주에게서 배운 대로 크게 소리쳤다.

“이 자식 뭐라고 헛소리하는 거야?”

문지기는 어이가 없는지 동료 문지기를 보며 물었다.

“글쎄? 나도 뭔 말인지 이해는 안 되는데… 어쨌든 총관께 연락은 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것은 몰라도 도지휘사사가 수천의 병력을 이끌고 와서 반역으로 다스린다는 말은 상당히 거슬려서 당장 유성탄을 내치지는 못했다.

“누구냐?”

총관 장주팔은 문지기의 보고를 받고는 약간은 꺼림칙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왔다. 청담과의 관계를 아는 고위직의 하나인 그로서는 마약사건이라는 말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나와 보니 일개 포쾌 복장을 한 젊은 놈이 건들거리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 놈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말이 짧은 거야?”

장주팔은 유성탄의 말에 순간 살기를 뿜어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유성탄에게 세상에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 많은지 알려줄 생각이었다.

“살기 거둬라. 까불다가 맞는다.”

하지만 유성탄의 이어지는 말에 장주팔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이상하군. 분명 사기꾼이거나, 높은 놈들이 죽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놈을 보낸 건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장주팔은 살기를 거두고는 약간 정중한 투로 말을 했다.

“나는 금모전의 총관 장주팔이라고 한다. 무림과 관은 서로 간섭을 안 하기로 되어 있거늘 무슨 일로 이곳에 나타나서 소란을 떠는 거냐?”

“무림과 관이 서로 간섭을 하건 안 하건 그건 난 모르고, 반역사건에는 조사에 예외가 없다는 것은 안다.”

“아까부터 반역 반역 그러는데 도대체 금모전이 무슨 반역을 했다고 와서 시답잖은 시비를 거는 것이냐?”

“지금 이걸 시비로 보셨어? 진짜 시비가 뭔지 보여줄까?”

‘이놈이 정말 뭘 몰라서 그러나, 아니면 보기와는 달리 뭔가 있는 건가?’

장주팔은 유성탄의 행동과 말투에서 우선 잠깐 참기로 한다.

“우선 들어오시게.”

장주팔은 죽이더라도 우선 아무도 안 보는 데서 죽이기로 하고는 유성탄에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권했다.

“조사를 해야 하니 들어는 가지만! 들어가서 죽이자 이런 생각했다가는 큰일 날 줄 아쇼? 내가 내일 아침까지 돌아가서 보고를 안 하면 당장에 도지휘사사가 병력을 끌고 오기로 되어 있으니까. 알았소?”

거짓말을 술술 하는 유성탄의 말이 이상하게 장주팔에게는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정청 안에 들어선 유성탄은 크기와 화려함에 놀란다.

‘뭐야 이거? 나쁜 놈들이 잘산다더니… 씨! 나도 그냥 나쁜 놈으로 노선을 변경해 버릴까? 아니지. 그래도 삼대를 포쾌를 한 뼈대 있는 가문인데… 대신에 나쁜 놈들이 잘사는 것은 내 두 눈 뜨고 못 보지.’

“앉게!”

총관은 유성탄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런데 어느새 들어왔는지 십여 명의 흉측하게 생긴 놈들이 그 뒤에 병풍같이 늘어서는 것이 아닌가!

‘반말 찍찍 갈기는 것까지는 봐줬는데… 이제 겁을 주시겠다? 흥! 이것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이보시오! 나는 나라의 일을 하는 포쾌요. 지금 당신들은 용의자고 예의 같은 거 차릴 생각 없으니까 금년도 회계장부나 가져오시오.”

장주팔은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어이없는 얼굴을 하더니 으스스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포쾌 된 지 얼마나 됐나?”

“삼대가 포쾌인 뼈대 있는 집안이오.”

“그렇다면 세상물정도 좀 알고 그럴 것 같은데…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건가, 알면서도 이러는 건가?”

“뭘 말이오?”

“여기는 금모전이다. 무림 오대사파 중 하나인 금모전이란 말이다. 강서성의 성주조차도 우리에게 함부로 굴지 못하는데 일개 포쾌가 감히 장부를 내놔라 마라 하니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금모전이 아니라 황궁이 있는 자금성이라 해도 나한테 용의자로 걸리면 조사를 받아야 하외다. 나한테는 어떤 외압이나 적은 뇌물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는 바요.”

‘적은 뇌물? 이 자식이 뇌물을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여간에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로군.’

“자네는 금모전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아나?”

장주팔은 아무래도 유성탄이 금모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나쁜 짓만 하는 놈들 중 제일 대가리 중의 하나 아니요?”

“쉭!”

장주팔의 손에 들린 섭선이 순식간에 유성탄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주팔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것이다.

장주팔은 자신의 섭선이 분명 유성탄의 목을 스친 것을 느꼈다. 너무 빨라서 지금은 멀쩡한 것 같지만 잠시 후면 목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용솟음칠 것이었다.

“지저분해지기 전에 갖다버려라!”

장주팔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뒷짐을 지며 돌아서며 부하들에게 명했다.

“여기에서 지저분한 것은 저놈들 상판대기밖에 없는데, 정말 갖다버려도 괜찮은 거요?”

장주팔은 유성탄의 목소리를 듣자 놀라 몸을 돌렸다. 그러자 유성탄이 멀쩡한 얼굴로 뒤에 서 있는 부하들을 가리키며 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어떻게……?”

장주팔은 금모전의 최고수 중 열 번째 안에 드는 고수였다. 특히 그의 섬광선(閃光扇)은 무림의 절기로 불리는 그의 성명절학이었다. 공격을 하는 순간 부채에 붙어 있는 보석들 때문에 한줄기 빛이 나타나고 그 빠르기 역시 빛과 같이 빠르다 하여 섬광선이라고 불렸다.

“죄목이 하나 더 추가되셨소. 업무수행 중인 관인에 대한 살인미수! 이거 엄청난 죄요. 적어도 금자 백 냥은 갈 걸…….”

죄에 가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유성탄은 자신의 가격을 슬쩍 가르쳐주고 있었다.

“뭐 하냐? 죽여라. 짜증난다.”

장주팔은 더 이상 일개 포쾌와 말싸움하기가 싫었다. 포쾌 하나 죽였다고 도지휘사사가 군을 이끌고 온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온다 해도 얼마든지 무마할 자신이 있었다.

“단체로 폭력행사라… 금자 오십 냥짜리 죄목 추가요.”

장주팔의 뒤에 서 있던 무사들이 장주팔의 명에 따라 유성탄에게 덤벼들자 유성탄은 한마디 소리치더니 육모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이었다.

“아니!”

장주팔의 입에서 놀람의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들 열 명은 내전의 무사들로 거의 다 일류고수였다. 자신이라 할지라도 유성탄 같이 쉽게 제압하기는 힘든 자들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힘을 아직은 마음대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유성탄의 싸움 실력은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다.

물론 무공이 아닌 싸움실력이란 것이 문제였다. 근접전으로 싸울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고수와 싸울 때는 실력발휘가 잘 안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유성탄은 자신보다 약한 자들은 열 명이나 백 명이나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열 명 백 명에게 이기지 못하는 고수라도 유성탄보다 강하면 유성탄은 그에게 지지는 않아도 이길 수 없었다. 무공을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이제 보니 숨겨놓은 실력이 있는 놈이었구나. 어쩐지 천방지축 까불어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 실력으로 감히 금모전 안에 들어와 큰소리치다니 미련한 놈이구나.”

“난 포쾌거든! 포쾌는 좀 실력이 약해도 큰소리칠 수 있거든.”

유성탄이 방망이로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장주팔에게 다가섰다.

“멈춰라!”

갑작스런 외침에 유성탄이 고개를 돌렸다.

“가만 보아하니 보통 포쾌가 아닌 듯한데 누가 보내서 왔나?”

들어온 자는 대머리에 흑발의 수염을 기른 자로 상당히 위맹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장주팔이 급히 예를 갖춘다.

“누구요? 당신이 전주요?”

“하늘같은 전주님께서 이런 곳에 나설 리가 있겠나! 나는 금모전의 장로인 기명우네. 그래, 말을 듣자니 반역의 무리를 찾는다고?”

“그렇소이다. 감히 반역의 무리가 마약을 유통시켜 혼란을 획책함과 동시에 그 마약을 판 돈으로 반역도들을 키워왔다는 것이 밝혀졌소이다.”

‘맞긴 맞나……?’

솔직히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는 마당에 큰소리를 치는 유성탄은 자신이 말하고도 약간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기명우는 슬쩍 장주팔을 쳐다보았다. 그런 정보가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금모전의 정보망에는 전혀 그런 낌새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금시초문입니다.”

“어디 소속인가?”

기명우는 유성탄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조용하게 물었다.

“감숙성… 특수현 소속이오!”

유성탄은 한주현이라고 하려다가 살짝 바꿨다.

“감숙성? 동창도 아니고 일개 성의 포쾌가 감히 자신의 구역도 아닌 곳에 있는 금모전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

그가 알기로는 아직까지는 강서성에서는 이번 마약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호남성 쪽은 우선 그쪽에 뿌린 마약 때문에 제갈세가에서 조사를 진행 중이었고, 점차 그 조사의 범위가 강서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기명우의 생각으로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유성탄이 마약의 유통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일개 포쾌가 금모전에 위협이 될 것은 없었지만 문제는 자꾸 시끄럽게 굴면 그렇지 않아도 사방의 눈초리가 매서운 상태에서 금모전이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기명우는 아무래도 시끄럽게 될 소지는 깨끗하게 처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대로 유성탄의 가슴을 후려쳤다.

콰앙!

“우엑!”

방비할 새도 없이 가슴을 맞은 유성탄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는 벽을 향해 그대로 날아갔다.

쾅! 우지직!

벽에 그대로 부딪친 유성탄은 떨어지며 벽 밑에 놓여 있던 탁자까지 부수며 떨어졌다.

기명우의 성명절기인 절멸장(絶滅掌)에 무방비 상태로 맞은 유성탄이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시체는 갖다버리고, 이놈이 이곳에 온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해라!”

기명우는 간단히 말하고는 돌아섰다.

“이놈들이 늙으나 젊으나 기습에는 도사들이구나! 이 씨! 내가 포쾌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나름 예의를 지켰는데, 니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좋다!”

갑작스런 유성탄의 목소리에 돌아서던 기명우나 대답을 하려던 장주팔과 부하들 모두가 놀란 얼굴로 유성탄을 쳐다보았다.

이미 유성탄은 방망이를 곧추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 빠르기가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기명우는 금모전의 최고 수뇌 중 하나였고 백대고수에도 상위에 올라 있는 자였다. 거기다 장주팔 역시 초절정고수였으니 간단히 당할 그들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유성탄의 방망이를 피한 기명우의 장이 다시 유성탄의 가슴을 쳐왔다.

‘이크! 이 늙은이의 손은 아픈데…….’

유성탄이 가슴에 장을 맞는 순간 가슴을 뒤로 물리며 힘을 약화시켰다. 동시에 확 몸을 돌리며 기명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쳐갔다.

‘이놈이 무공 같지도 않은 무공으로……?’

기명우가 뒤로 살짝 몸을 물리며 간단히 유성탄의 주먹을 피한 후, 유성탄을 무척 신기한 듯이 쳐다보더니 다시 장주팔을 보고 눈짓을 했다. 그리고는 동시에 모두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놈들이 도망을 가! 하하하, 감히 내게서 도망칠 놈은 없……. 어?”

모두 도망을 치는 줄 알고는 기승이 나서 큰 소리를 치며 밖으로 뛰어나오던 유성탄의 입이 딱 벌어졌다. 밖에는 무려 백여 명이 넘는 무사들이 무기를 들고는 뛰어나오는 유성탄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것 봐라. 산적들하고는 기세 자체가 다른데…….’

백대고수인 기명우에 초절정인 장주팔, 거기다 장주팔과 거의 맞먹을 정도의 고수가 무려 십여 명 그리고 나머지도 최소한 일류에 가까운 무공을 지닌 수십 명의 무사들.

유성탄은 쫄고 만다.

“하하하! 내가 원래는 굉장히 부드럽게 수사를 하는 편인데 오늘은 너무 의욕이 앞서다 보니 여러분을 좀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분들이 안 좋으신 듯하니 조사는 다음에 하고 오늘은 그냥 인사나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성탄이 기명우의 눈치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려 정문 쪽으로 발을 옮기려 했다.

“죽여라!”

유성탄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어이없이 쳐다보던 기명우는 코웃음을 치더니 손을 들며 소리쳤다.

“대화로 풀자니까… 말도 되게 안 듣네. 씨!”

순식간에 앞까지 닥친 금모전 무사들의 공격에 유성탄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방망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덤벼라!”

생각 외로 유성탄이 잘 버티자 기명우가 신경질적으로 장주팔과 주위에 있던 무사들에게 같이 싸우라고 명을 내렸다.

‘저런 수법은 본 적이 없는데… 아주 실전적인 무공이야. 그렇다고 쳐도 저런 무공 실력한테 금모전의 안마당에서 이게 무슨 망신인고?’

놀랍게도 나름 정예라고 하던 무사들이 이미 삼십여 명이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교묘하게 검을 피하며 한 대씩 날리는 몽둥이에 이상할 정도로 대단한 수련을 쌓은 금모전의 무사들이 그대로 고꾸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으악!”

고수들이 끼어들자 상황은 확 바뀌고 있었다. 순식간에 어깨에 도를 한 대 맞은 유성탄이 비명을 질렀다.

“이씨! 되게 아프네!”

소리를 지른 유성탄이 자신에게 도를 먹인 자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허리를 찔러오는 다른 자의 검에 공격을 포기하고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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