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인간시장을 찾아서
“나보고 저 여아를 보호하라는 말이오?”
“그럼! 내가 하랴?”
정일호는 언제나처럼 유성탄을 공격할 기회를 엿보기 위해 아침부터 유성탄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다가온 유성탄이 그를 부르더니 진수진의 호위를 맡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당신을 죽이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자객이오. 당신의 부하가 아니란 말이오.”
“알아! 알아! 그러니까 이 애를 보호하면서 나를 노리라니까? 야! 저 구석에 박혀서 아무리 나를 노려봐 봐야 기회 안 나와! 그것보다는 이 애를 보호하면서 내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 더 기회가 자주 올걸?”
유성탄의 말을 들으며 정일호는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은밀하게 숨어도 쉽게 찾아내는 그의 감각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자객에게 가까이서 기회를 잡으라고 하는 자신감까지 그로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여아를 납치하면 어쩌실 작정이시오?”
유성탄은 정일호의 말을 듣자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정일호의 귀에 대고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저애 마음에 드냐? 부탁인데 제발 저애 좀 납치해 가라. 내가 지금 저애 만난 걸 엄청 후회하고 있는 중이거든. 제발 니가 그래준다면 내가 통 크게 은자 한 냥 주마.”
‘말이 안 통하는 건지 너무 대범해서 모든 것을 장난같이 여기는 건지? 휴우…….’
정일호는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한마디 했다.
“은자 한 냥 주는 것이 진짜 통이 크다고 생각하시는 거요?”
‘어라? 이 놈 봐라. 은근히 욕심이 많네.’
“땅을 백 장을 파봐라. 동전 하나 나오나? 은자 한 냥을 우습게 보는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봐라. 돈 알기를 황금같이 아니까 지금 이렇게 출세한 거! 너무 은자 한 냥을 우습게 보지 말고 은자 한 냥이 공짜로 생겼다는 데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나도 돈이라면 꽤 있소.”
“그래? 잘 됐네. 그럼 은자 한 냥 안 받고도 진수진을 봐 줘도 되겠다. 하여간에 나는 인복도 많고 재복도 많아.”
그리고 정일호는 어쩔 수 없이 진수진을 맡았다.
정일호에게 진수진을 맡긴 유성탄은 우선 진수진이 살았다는 호창현이라는 곳부터 가보기로 했다. 정일호에게 왕부란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들은 유성탄은 아무래도 그의 특기인 막무가내가 통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솔직히 일개 노예 하녀의 진술만으로 왕자의 호칭을 허락받은 자를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유성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저기가 진수진이 살던 집이란 말인데… 에이 씨! 이럴 때 표도행이 있어야 하는 건데……”
진수진이 살던 집이 보이는 주루에 앉아 진수진의 집을 쳐다보며 코를 후비고 있던 유성탄은 건더기가 걸려 나오자 희색이 만면해서는 손가락에 걸린 내용물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놈이 그렇게 나를 괴롭혔다 이 말이지. 에이, 사라져라!”
유성탄은 아까부터 코 속에서 자신을 귀찮게 하던 코딱지가 드디어 나오자 속이 다 시원한지 좋아가지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니! 이게 어떤 놈이야?”
상당히 커다란 코딱지는 이층 주루의 여러 개의 탁자를 지나더니 구석에 앉아 술잔을 홀짝거리던 장한의 잔 속에 빠져버렸다.
잔 속에 흉측한 모양의 코딱지 떨어지자 장한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어라! 어떻게 거기까지 날라 간 거지?”
유성탄은 장한이 서서 눈을 부라리며 사방을 둘러보자 미안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더니 다시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시 이쪽으로 던져주시겠소?”
이미 술잔 속에 빠져 흐물거리는 코딱지를 다시 던져달라는 유성탄을 본 장한은 급히 얼굴을 숙이더니 말했다.
“아니 됐소이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말을 마친 장한은 그대로 주루를 떠나려고 한다.
“아아! 이보쇼! 남의 물건을 취득했으면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그걸 그렇게 꼴딱 먹어치우려고 하면 안 되지!”
그러나 장한은 어느새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유성탄에 의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남의 물건을 취득하다니요? 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방금 나의 귀한 코딱지를 취득했지 않소? 그런데 이대로 가려고 하면 그건 큰 죈데?”
장한은 말도 안 되는 유성탄의 말에 급히 자신의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의 코딱지는 저기 내 술잔 안에 있으니 가져가시오.”
“술잔 안에? 그럼 같이 가서 봅시다. 언제나 사건에는 현장검증이 먼저인 법이니까.”
‘코딱지 하나 가지고 현장검증은 무슨…….’
장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탁자로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흠… 나의 귀중한 코딱지를 술 속에 넣어 아주 심하게 훼손을 시키셨군.”
“그게 무슨? 코딱지는 저절로 날아온 거요. 난 거기에 손 하나 댄 적이 없소이다.”
“코딱지가 발이 달렸냐, 날개가 달렸냐? 어떻게 코딱지 혼자 날아왔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유성탄의 말투가 어느새 반말로 변해 있었다.
“코딱지는 당신이 날렸지 않소이까? 시비를 걸어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는 걸로 걸어야지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지저분하게 뭐요?”
“시비를 걸려면 지저분한 이유를 대지 말고 깨끗한 이유를 대라? 그럼 깨끗한 이유를 대지 뭐!”
말을 마친 유성탄의 주먹이 그대로 그자의 배를 강타했다.
“깨끗하게! 야 자식아, 왜 자꾸 지저분하게 내 뒤는 따라다니는 거야? 이유를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이 코딱지가 들어 있는 술잔을 마셔야 할 거다.”
“으악!”
장한은 단 한 대에 숨이 턱 막히고 곧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자신을 엄습하자 고통을 참지 못하는 것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서는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자신이 뒤를 밟는 것이 들킨 이상 왜 때리냐고 항변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니 도망이라도 칠 심산이었다.
“아쭈! 잔꾀 부리지 마라. 그렇게 아픈 척하다가 도망가는 것이 옛날 내 특기였거든! 그래서 너 같은 놈들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
어느새 굴러가는 장한의 앞을 막은 유성탄은 한마디 더 하더니 발로 그대로 엉덩이를 찼다.
“으아악!”
“자식이 비명도 멋있게 지르네? 몇 대 더 때려야겠다. 비명소리 듣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심산으로 커다랗게 비명을 지르던 장한은 유성탄의 말을 듣자 비명을 멈췄다. 너무 아파서 더는 맞고 싶지가 않았다.
“자, 이제 우리 지저분한 코딱지 얘기는 그만하고 건설적으로 왜 나를 따라다녔는지 그 문제에 대해서 심층 있게 얘기해보자.”
“저는 나으리를 따라다닌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가는 방향이 같았던 모양인데 정말 오해십니다.”
장한이 죽어가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유성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렇다면 오해인지 아닌지 심층 있게 얘기해보지 뭐!”
‘이 놈은 무슨 심층을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장한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우선은 주먹보다는 대화로 진행될 것 같자 안심한다.
“으악! 왜 이러십니까? 심층 있게 얘기를 하자고 하시더니…….”
“난 이게 심층 있게 얘기하는 거다.”
“으흑! 맞습니다. 제가 나으리를 미행했습니다.”
장한은 겨우 세 대를 더 맞고는 불기 시작했다.
“누가 시켰는데?”
“시킨 사람은 없습니다. 으악! 아이구 나 죽네!”
“시킨 사람이 없다면 너 혼자 그랬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더 맞아야지 니가 주범이라는 말이잖아. 그치?”
“아닙니다. 기… 으윽!”
말하던 장한이 갑자기 눈이 뒤집히더니 입으로 피를 뿜으며 그대로 엎어졌다.
“어떤 새끼야!”
유성탄은 즉시 창가로 다가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미 자객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놈들 봐라. 감히 나 유성탄이 취조를 하고 있는 범인을 내 앞에서 죽였다 이거지. 이제 니들 죽었어. 씨!”
유성탄은 이미 숨이 넘어간 장한을 보더니 자신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분명 살기를 띤 물체가 날아오는 곳이 그의 감각에 잡혔었다. 그리고 그게 장한의 입막음용으로 날린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성탄은 그게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꼬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한다? 에이 씨! 아우 놈들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 * *
“생각보다 빨리들 나오셨네요.”
“아우들이 모두 대형이 보고 싶어서 더 못 견디겠다고 해서 우선 나왔습니다. 다행히 모두 어느 정도 내공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맛은 보았으니 이제부터 누가 열심히 수련하냐에 따라서 대성하느냐 마느냐 하겠지요. 그건 그렇고 대형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태웅 장사께서 빨리 가서 유 대형 좀 말려주셔야겠어요. 어찌나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건을 만드는지… 이제는 치정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까지 받고 있다니까요.”
“치정살인사건이요? 그럴 리가 있나요! 대형은 그렇게 많은 싸움 중에도 절대로 사람의 생명은 빼앗지 않는 분이십니다. 뭔가 잘못되었을 겁니다.”
“그거야 저도 알지요. 하지만 그 분이 하는 행동을 보면 사람들이 의심할 만도 하다니까요. 하여간에 지금 유 대형께서는 복건성 경계에 있는 기룡왕부의 영지 근처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 성격에 기룡왕부와 시비가 붙으면 큰일입니다. 그러니 태웅 장사께서 아우들을 데리고 가서 유 대형을 말려주셔야겠다는 거지요.”
“제가 대형을 말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만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대형께서 왜 그곳에 가신 겁니까?”
“그걸 낸들 알겠어요!”
* * *
“역시 대단하시군요.”
‘뭐야 이 자식 또……?’
“너 어떻게 여기 왔냐?”
어떻게 죽였는지를 보기 위해 자신을 미행하던 장한의 시체를 뒤집어 보던 유성탄은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다가는 진짜 똥 씹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저는 한번 용의자를 찍으면 증거를 찾을 때까지 끝까지 쫓아갑니다. 열심히 도망을 치시기는 하셨지만 제 눈을 빠져나가시지는 못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는 아예 백주대낮에 양민을 죽이시는군요?”
“도망? 얘가 미쳤나? 야 내가 뭐가 무서워서 도망을 가! 거기다 반교련이 죽을 때 나는 거기에 있지도 않았는데 증거는 무슨 증거!”
유성탄의 말을 들은 고남보는 씩 웃더니 다시 말했다.
“언제나 범인들은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똑같은 소리를 하지요. 하지만 누구도 나 고남보의 예리한 눈을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이 자식이 진짜… 아이구, 죽겠네 정말. 몸이라도 튼튼하면 한 대 때리기라도 하지 한 대 치면 개구리 뻗듯이 죽을 것 같아서 치지도 못하고…….”
“저를 쳐서 죽이고 싶으시다? 흠, 살인미수의 죄까지 더해지겠군요. 살인에 살인미수라… 흠!”
“야 때리면 죽을 것 같아서 안 때린다는 게 왜 살인미수냐?”
“때려서 죽이면 폭행치사가 됩니다. 하지만 죽이고 싶은데 아직은 안 때렸다. 당연히 살인미수지요.”
“가라, 가! 너랑 얘기하면 머리가 아프다.”
“지금 제게 명령하신 겁니까? 나으리께서 특수포쾌이시니 저보다 높기는 합니다만… 이런 식의 명령은 부당한 압력에 해당됩니다. 만약 죄가 드러났을 때 이것도 다 가중처벌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는 분명 살인이기는 하지만 무림인인 것 같으니 저의 직무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해서 더 이상 이 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선량한 양민인 반교련 루주와 착한 송 총관을 죽인 범인은 내 꼭 잡아 옥에 가둘 것이니 명심하십시오.”
“그래 제발 부탁이니까 그 범인 좀 잡아라.”
말을 마친 유성탄은 고남보가 지겹다는 듯이 째려보더니 자기가 먼저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성탄이 진수진이 말한 고을에서 돌아다닌 지 이미 삼 일이 흘렀다. 하지만 건진 것은 시체 하나와 지겨운 고남보 수사포쾌 하나뿐이었다.
유성탄의 생각으로도 인간시장을 어디서 하냐고 대놓고 묻는다면 찾기도 전에 모두 숨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누구든 한 명이라도 잡는다면 때려서라도 알아내겠지만 누가 인간시장과 관계가 있는 놈인지 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성질 나네. 지금 무산에 가서 예쁜 자운이하고 귀여운 빙아의 엉덩이를 두들기고 있어야 할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절강의 접경이라고는 하나 거기도 복건성이었고 복건성은 더운 곳이었다. 유성탄은 포쾌 모자를 벗어 얼굴을 부채 부치듯이 부치더니 나무그늘에 앉아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저 포쾌님…….”
유성탄은 열다섯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소년이 다가와 부르자 인상을 콱 쓰며 말했다.
“왜!”
다가오는 소년의 얼굴에 뭔가 부탁을 하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소년은 유성탄의 대답에 주눅이 들었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돌아섰다.
‘에이 씨! 또 귀찮은 일이 분명한데…….’
유성탄은 더 이상 다른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불쌍한 것을 보면 생각과는 달리 반응하는 그의 마음이 문제였다.
“야! 이리 와봐.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유성탄이 최대한 부드러운 소리로 다시 말하자 소년은 돌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유성탄에게 삐적거리며 다가섰다.
“저…….”
“말해봐. 귀찮은 일만 아니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소년은 유성탄의 말에 다시 시무룩해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귀찮아도 해줄게. 말해봐!”
“며칠 전에 저희 누나가 나쁜 놈들에게 잡혀갔어요.”
“누나? 예쁘니?”
“예?”
“아니다. 계속 얘기해봐.”
쓸데없는 관심을 보였던 유성탄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빚을 지셨어요. 그런데 그 빚을 못 갚았다고 누나를 끌고 갔어요. 제가 막아보려고 했지만… 흐흑!”
소년은 말하다가는 울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빚을 지는 아버지와 그 빚 때문에 끌려가는 딸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언젠가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던가.
유성탄은 모자를 다시 쓰고는 끈을 매면서 말했다.
“가자! 그놈들이 어디 있는지 내가 니 누이를 구해주마.”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집이냐?”
“예, 제가 누나가 끌려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고 살살 뒤를 따라와서 봤어요.”
“니 누나 이름은 뭐냐?”
“초실입니다.”
“초실이? 뭔 이름이 강아지 이름 같냐?”
“예?”
“됐다. 여기 있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라.”
“예.”
소년이 유성탄을 안내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장원으로 유성탄도 여러 번 앞을 지나쳤던 곳이었다.
쾅쾅!
“문 열어라!”
유성탄은 장원의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몽둥이로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안에 누구 있는 거 알거든! 만약 셋 셀 때까지 문 안 열면 부수고 들어간다! 하나!”
“누구요?”
유성탄이 하나를 세자마자 안에서 반응이 나왔다.
“누군지는 문을 열어보면 알 거 아니냐! 둘!”
“셋!”
끼익!
유성탄은 셋을 세자마자 그대로 문을 향해 몸을 부딪쳐갔다. 단숨에 문을 부셔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거의 동시에 문이 열렸고 유성탄은 그대로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가더니 그대로 엎어져서는 구르고 말았다.
‘에이 씨! 멋있게 부셔가지고 시작부터 기를 죽이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쪽이냐.’
유성탄은 후다닥 몸을 일으키며 옷에 묻은 흙을 털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구시오?”
문을 열자 갑자기 튀어들더니 그대로 고꾸라지는 유성탄을 보며 장한 두 명이 웃기다는 듯이 얼굴에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야 이 자식아! 내가 빨리 문을 열라고 했는데 왜 빨리 안 연 거야!”
“셋 셀 동안에 열라고 해서 셋 세기 전에 열었는데요.”
쪽팔림을 어떻게 만회해 보려고 했지만 장한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이 씨!’
“그런데 포쾌 나으리께서 무슨 일로?”
유성탄은 장한의 말을 듣자 자신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다시 생각났다.
“지금 이곳에서 반역에 준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래서 우선 안을 조사해 보려고 한다. 그러니 걸려서 터지기 전에 불 것 있으면 먼저 불어라.”
“이곳은 문 학사님이라는 한림학사를 역임하신 분이 사시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반역에 준하는 죄라니요? 거기다 포쾌 나으리가 무슨 자격으로 이곳을 뒤진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니들이 따질 일이 아니고… 문 학사라? 잠깐 나오라고 해라.”
“아니 이 양반이 정말! 포쾌라서 대우를 좀 해줬더니… 학사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인데 당신이 오라 가라 하는 거요!”
“까불지 마라. 난 니들이 무공 익힌 거 다 알거든. 어느 학사집에서 일개 종복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더냐? 좋게 말할 때 학산지 검산지 나오라고 하란 말이야!”
유성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장한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닫았다.
“포쾌라서 그냥 가면 살려주려고 했는데 그에 죽기를 이렇게 원하니… 쯧쯧! 아악!”
문을 닫자마자 얼굴에 살기를 띠우며 말하던 장한의 입에서 비명이 나오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만다. 유성탄의 몽둥이가 머리에 작렬한 것이다.
“자식이 말이 많아! 너!”
자신의 동료가 어떻게 손을 쓸 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지자 또 한 장한의 얼굴색이 변했다. 처음 유성탄을 보고는 별 볼일 없는 포쾌로 오해한 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혹시? 포천망쾌 나으리…….”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나. 그래, 내가 바로 특수한 일을 하시는 포천망쾌님이시다. 자,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장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오고 있었다. 포천망쾌가 떴으니 전부 납작 엎드려 조용히 있으라는 명이 떨어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유성탄이 어떻게 정확히 이곳에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곳은 정말 학사님 댁입니다. 수상한 곳이 아닙니다.”
“알아. 알았으니까 빨리 불란 말이야!”
유성탄의 주먹이 장한의 배를 치자 장한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아셨다면서 뭘 불라고 하시는 건지?”
장한은 안색이 노랗게 변해가지고는 발발 기면서 사정조로 말했다.
“그래, 알았다고! 그러니까 불란 말이야.”
다시 유성탄의 발이 장한의 가슴을 치자 장한은 다시 바닥을 구르며 이미 기절해 쓰러져 있는 자신의 동료를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기다려주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유성탄의 주먹에 장한은 완전히 넋을 놓고 만다.
“이것들 봐라. 오늘 밤 인간시장이 열리는데… 그게 관청에서 열린단 말이지.”
무조건 대고 불라는 유성탄의 말과 떨어지는 주먹에 장한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비밀을 모두 불기 시작했다.
“관청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고요. 팔 사람들이 지금 관청의 옥에 있다는 겁니다.”
아이의 말대로 이곳은 인간시장에서 팔 사람들을 잠시 모아두는 곳이었다. 이미 사람들은 모두 관청의 옥으로 옮긴 후였다. 잡아야 할 관청에 팔 사람들을 숨겨놓았으니 유성탄이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사방을 돌아다녀도 어떤 낌새도 눈치 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이거 뭔지 알지?”
유성탄이 황룡패를 눈앞에서 흔들대자 현령은 허리를 숙인 채 손바닥을 비빈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황상과 친구 먹고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네놈이 나를 속이고 인간시장을 여는 놈들과 한통속이 돼서 나를 물먹여! 이게 현령이라고 봐줬더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내가 천하에 정보망이 쫙 깔려 있는데 당신이 인간을 팔아먹는 놈들과 짜고 그 놈들을 도와준다는 것을 다 알고 왔어. 솔직히 말하면 덜 맞을 거고 또 나를 속이려고 하면 엄청 맞을 거야.”
“저…….”
“그래, 그렇게 솔직히 말해야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아이구!”
현령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을 하다가는 갑작스런 유성탄의 주먹에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초절정의 무인들도 견디지 못하는 유성탄의 주먹에 아무리 강도를 낮추었다고는 하지만 문사 출신인 현령이 견디기는 힘들었다.
“정말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단 한 대에 현령은 다 불기 시작했다.
현령이 그들과 관계가 없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흠! 그러니까… 누군가의 외압에 그냥 그들을 옥에 집어넣은 것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자식아! 그러니까 네게 외압을 넣은 놈들이 누구냐구!”
“그게… 아이구!”
말이 늘어지자 다시 유성탄의 주먹이 날아갔고 다시 바닥을 구르는 현령이었다.
“정말이지, 그것만은… 말하면 정말 저만이 아니라 제 가족까지 구족이 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만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현령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누구의 외압이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절박한 심정이 유성탄에게 느껴졌다.
‘씨! 가족까지 다 죽는다면 말하라고 하기도 뭐한데…….’
유성탄에게 가족이라는 말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단어였다.
“좋소, 그럼 그건 내가 직접 알아낼 거고 인간시장을 여는 놈들은 어디 있소?”
유성탄의 말투가 바뀌었다. 가족을 위해서 사력을 다하며 고통을 견디는 현령에게서 약간은 감동을 먹은 것 같았다.
“인간시장이 어디서 열리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 * *
“도대체 포천망쾌인지 하는 놈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에 나타났다는 거냐?”
인간 시장이란 일개 흑도조직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장사였다. 당연히 여러 무림조직과 관, 거기다 상인조직까지 관여가 되어 있는 대단히 큰 이익이 걸려 있는 사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번 인간시장이 열리기로 공표한 날은 어떤 상황이 되어도 열어야 했다. 문제는 이미 인간시장이 열릴 날이 확정된 이후 포천망쾌가 그곳에 갈 것 같으니 주의하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아직 이유는 모릅니다.”
“조심하라고 편지를 보낸 자는 누구냐?”
“관례상 우리의 고객인 것은 틀림없는데 누군지는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포천망쾌가 이곳에 오는 이유도 안 적혀 있더냐?”
“예. 다만 장가의 주루에서 포천망쾌로 보이는 자가 누군가를 잡아 족치다가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물건들은 잘 옮겨놨겠지?”
“예, 관청으로 보냈다가 다시 이쪽으로 옮겼으니 누가 추적을 했다 해도 고리가 끊어질 것입니다.”
굳이 팔 사람들을 관청의 옥으로 보냈다가 다시 빼오는 귀찮은 짓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납치를 당한 자의 가족들 중에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추적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럴 경우 관으로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해지기 마련이었다.
“이번 시장은 그 규모가 크다. 우선 마룡방에 연락해서 시장을 보호할 인원을 좀 보내달라고 해라. 그리고 우리도 애들을 사방에 포진시켜 그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죽이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 * *
현령에게 듣고 그가 찾아 간 곳은 상당한 크기의 도박장이었다.
“이 씨! 어떻게 나쁜 놈들은 모두 도박장하고 연관이 있는 거지?”
도박장 앞에 도착한 유성탄은 화려한 도박장의 전면을 한번 노려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포쾌 나으리가 오실 곳이 아닙니다.”
앞에 서 있던 건장한 자들이 유성탄 앞을 막았다.
“거참 이상하단 말이야? 어째서 도박장 앞에 가면 너같이 살만 뒤룩뒤룩 찐 놈들이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으악!”
말을 마친 유성탄은 그대로 몽둥이로 그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두 명의 거구들은 그대로 뻗어버렸다.
“짜식들이 사람을 보고 막아야지. 하여간에 세상에는 미련한 놈들이 너무 많다니까. 쯧쯧…….”
도박장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하여간에 요지경이야. 밖에는 굶는 사람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이 안에 어떻게 이렇게 돈을 버리려는 놈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하여간에 마음에 안 들어!”
갈수록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있는 유성탄이었다.
“전부 다 꼼짝 마라! 너희들을 모두 반역에 준하는 도박을 한 죄로 체포한다.”
도박을 하던 자들은 포쾌 복장을 한 자가 나타나서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를 하자 한 번 멍하니 쳐다보더니 별 볼일 없다는 듯이 다시 자신들의 패로 고개를 돌렸다.
“어쭈, 이 자식들이 감히 본 포쾌님의 말을 씹어!”
“이 사람이 미쳤나?”
“이게 뭐 하는 짓이오?”
유성탄이 돌아다니며 패를 뒤엎자 딴 사람은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쳤고 잃고 있던 자들은 슬며시 고개를 숙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놈 잡아라!”
그리고 곧 도박장을 지키는 자들이 몰려들었다.
“아이 씨! 숨바꼭질도 아니고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거야.”
도박장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고 도박장의 주인을 때려잡았지만 그 역시 몸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알아낸 곳이 바로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이 장원이었다.
자신이 간다는 연락을 못 하도록 전부 수혈을 찔러 창고에 집어넣은 유성탄은 되도록 빠른 걸음으로 인간시장이 열린다는 장원으로 달려갔다.
“어쭈구리… 뭐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흠, 이 정도면 뭔가 잡힐 것 같은데?”
유성탄이 장원에 도착한 시각은 벌써 날이 어둑해지는 저녁 때였다.
‘가만있자. 이럴 때 증거를 잡으려면 무조건 때려잡는 것보다는 숨어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드디어 무대뽀 유성탄이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숨어 들어갈 생각을 한 유성탄은 우선 몸을 납작 엎드리고는 기어가기 시작했다. 신법이나 잠행술 따위를 익힌 적이 없는 그로서는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이 기어가는 그의 모습은 놀랍게도 거의 신법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그 속도가 엄청 빨랐다.
‘하여간에 구린 놈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깐…….’
담장까지 기어 올라간 유성탄은 이미 상당히 어두워졌는데도 불을 전혀 밝히지 않는 장원 안을 주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공이 상당히 높은 놈들이 열 명 정도… 그저 그런 놈들이 스무 명… 다 때려 눕혀 아니면 그냥 숨어 들어가? 에이, 어차피 지금까지 기어왔는데, 남자가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유성탄은 다시 기어서 중앙의 커다란 전각으로 움직였다. 그가 느끼기에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자식들이 자지도 않고…….’
전각의 정문을 지키는 자들은 모두 대감도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 경계하는 모습이 사뭇 살벌했다. 유성탄으로서도 아무런 소란 없이 모두를 제압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유성탄이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화복을 입은 중년인이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어깨에 힘을 주고 한 번 헛기침을 한 중년인은 팔을 크게 휘두르며 전각의 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나는 뭔가 하려고만 하면 하늘이 돕는단 말야.’
유성탄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중년인의 뒤를 쫓아 기어가기 시작했다.
중년인은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는데 갑자기 누가 변소의 문을 두드리자 가볍게 기침을 했다. 사람이 있다는 신호였다.
“시원하시지요?”
갑자기 문이 열리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의 중년인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미 어두워진 사위에 구석에 박힌 변소에서 누군지 보일 리 만무였다.
“아직 시원하게 일을 보지 못했네.”
중년인은 자신도 모르게 아직 일을 다 보지 못했음을 알렸다.
“안됐습니다. 맞아도 시원하게 일을 다 보고 맞는 게 더 좋으셨을 텐데. 쯧쯧!”
중년인은 이어지는 유성탄의 말에 그때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소리도 치기 전에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만다.
“방금 들어간 사람,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정문을 지키던 장한 중 한 명이 화의를 걸치고는 떳떳하게 정문을 열고 들어가는 유성탄의 뒷모습을 보며 옆에 서 있는 동료에게 물었다.
“글쎄 자세히 안 봤는데… 지금 여기 이렇게 많이 경계를 서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어?”
“그렇겠지.”
물었던 장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 말을 동의하는지 더 이상 말없이 다시 두 눈을 부릅뜨고는 사방을 쳐다보며 경계에 임했다.
전각 안은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에 중앙에만 화롯불이 켜져 있고 주위에 수십 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어차피 유성탄에게 어둠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좌우를 둘러본 유성탄은 빈자리가 하나밖에 없자 태연하게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잠시 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거래를 시작하겠습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중앙에 서서 크게 외쳤다. 그리고 손을 들자 여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나이는 스물 정도. 얼굴은 대단히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밉상도 아니었다.
“은자 열 냥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이곳저곳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여인은 은자 열다섯 냥에 팔린다.
‘여자 한 명에 은자 열다섯 냥이면… 온 김에 나도 몇 명 사?’
유성탄이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사고파는 것은 내 적성에 안 맞아.’
거래가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 유성탄은 여인들이 나오는 문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문 옆에는 역시 덩치가 큰 장한 둘이 서 있었고 문이 잠깐 열릴 때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인간시장을 찾기는 했는데… 진수진이 말한 귀가 하나 없는 놈! 그놈을 찾아야 하는데… 그리고 꼬마가 말한 초실이란 여자도…….’
유성탄의 원래 성격대로라면 벌써 다 때려 부수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유성탄도 고남보 덕에 증거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증거가 없으면 무조건 난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었고 자신의 예로 봐도 분명 안 죽였는데 죽였다고 하면서 계속 찌질대니 그것 역시 엄청 성질나는 일이었다.
‘증건데… 증거… 그애 저놈이다! 귀 하나 없고 하관이 쪽 빨아 꼭 족제비같이 생겼다고 하더니 족제비같이 생긴 게 아니고 족제비였구나.’
유성탄은 우선 겉에 걸쳤던 화의부터 벗었다. 그리고는 옆에 매달아 놓았던 포쾌 모자를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장내는 너무 어둡기도 했지만 앞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느라 모두 정신이 없어 그런 유성탄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야이! 개 쒸끼들아! 할 짓이 없어서 사람을 팔고 사! 오늘 니들 다 죽었어.”
소리를 커다랗게 친 유성탄의 몸이 쏜살같이 족제비상에게 날아갔다. 우선 그놈부터 잡고 나머지를 때려잡을 생각이었다.
“저놈 잡아라!”
“밖에 무사들을 불러라!”
“물건들을 빨리 숨겨라!”
유성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잠시 어리둥절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사람을 흥정하던 자들은 급히 밖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고 인간시장을 운영하는 자들은 손에 흉측한 무기들을 들고는 소리친 자가 누구인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소리가 다시 들렸다.
“불을 밝혀라! 안 보인다!”
“아이고! 나 죽네!”
너무 어두워 시계를 확보하지 못한 지휘자가 불을 밝히라는 고함을 쳤고 동시에 비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비명은 족제비상이었지만 이후로는 무차별적으로 비명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유성탄이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쓰러지는 즉시 발을 밟아버리니 그 고통을 참지 못한 장한들의 비명이 전각 안을 울리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대열을 정비해라! 상대는 하나다!”
지휘하는 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상대가 하나인 것은 어떻게 알았어?”
지휘자는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라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모자를 쓴 그림자였고 곧 머리에 떨어지는 몽둥이를 맞고는 그대로 픽 쓰러지고 만다.
“별 것도 아닌 놈이 목소리만 커가지고 시끄럽게 굴고 있어!”
화롯불에 사방에는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경계하는 자들은 침입자를 찾기 위해 우왕좌왕하고 완전히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 사이 한두 명씩 계속적으로 유성탄의 몽둥이에 머리를 맞으며 쓰러지고 있었다.
쾅!
거래를 하던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바람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무사들이 전각의 벽을 뚫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어두운 전각에 먼지까지 날리게 했으니 그들의 시야는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대로 유성탄의 몽둥이 타작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