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무산을 향해
“대형이 오십니다!”
밖을 보며 유성탄이 오기를 기다리던 표도행이 급히 소리쳤다. 이미 유성탄이 기룡왕부로 들어간 지 세 시진이 넘었었다. 아우들로서는 들어가야 할지 계속 기다려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들의 실력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왕부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였고 그렇다고 유성탄의 연락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와아!”
낭인칠웅의 아우들은 표도행의 말을 듣자마자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이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는지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대형, 괜찮으십니까?”
마동파와 황대산이 가장 먼저 다가가서는 유성탄이 들고 있는 상자를 받으며 물었다.
“니들 전부 다 이리 와! 그리고 그거 열어봐!”
유성탄은 희희낙락해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상상외로 많이 생겨서 그런지 감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자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우와! 대형, 도대체 이 엄청난 것을 어디서……?”
장우왕의 입에 커다래져 가지고는 물었다.
“내가 그랬지. 니들이 대형 하나는 잘 얻었다고! 내가 왕부 안에 들어갔더니 처음에는 덤비더라고. 아마 한 이만 명 정도 몰려왔나?”
“이만 명이요?”
“그렇지! 거기다 고수급들이 약 천 명, 하여간에 완전히 개미떼같이 모여 있는데 내가 그랬지. ‘까불면 맞아!’ 그랬더니 이것들이 겁이 나서는 벌벌 떠는 거야.”
“이만 명이 대형의 까불면 맞는다는 말 한마디에 모두 벌벌 떨었다는 겁니까?”
마동파가 피식 웃으면서 되물었다.
“너? 지금 대형의 말을 못 믿는다는 거냐?”
“맞습니다. 동파 형님 감히 대형 말을 못 믿으시면 안 되지요. 저처럼 열 배 정도 작게 생각해서 들으면 되잖아요.”
“너도 말을 좀 이상하게 한다.”
“어쨌든 계속 해보세요.”
이번에는 황대산이 재미있는데 왜 방해하냐는 듯이 마동파와 표도행을 흘기며 말했다.
‘이것들이 하나같이 표정들이 수상한데… 에이 씨! 이만 명은 너무 많았나? 한 만 명 정도로 할 걸…….’
유성탄은 속으로 꿍얼대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결국 돈 받고 범인을 봐주기로 했다는 말 아닙니까? 왕부와 싸우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고 자부하는 우린데 돈 때문에 그런 것은 좀 거시기한데요?”
장우왕이 개기는 말투로 말했다.
“너 지금 개기는 거 맞지?”
“아 대형도! 이런 식으로 개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이것들이 완전히 빠져가지고… 그리고 니들은 꿩 먹고 알 먹고라는 말도 모르냐? 우선 주는 것은 다 받아먹고 그 다음에 다시 기회를 잡아서 때려잡는 거야!”
“이미 봐주겠다고 약속하셨다면서요?”
“약속? 난 나쁜 짓 한 놈하고는 약속 같은 거 안 하는데…….”
“맞습니다. 대형, 잘하셨습니다. 현실적으로 아직은 왕부를 건드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선은 안심하게 해놓고 뒤에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잡으면 됩니다. 역시 대형이십니다.”
듣고 있던 강태웅이 미소를 지으며 유성탄의 편을 들었다.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 같은 것에 결벽일 정도로 질색을 하는 강태웅이 신기할 정도로 유성탄을 옹호하자 모두 쳐다본다.
“대형이 결정하신 일이다. 더 이상 우리가 왈가왈부하면 안 된다. 거기다 대형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보시고 결정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냥 대형의 뜻에 따른다.”
“하하하! 태웅이 너! 오랜만에 옳은 말 했다. 내가 전부다 꿰뚫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냐? 하하하!”
강태웅을 제외한 다른 아우들은 꿰뚫은 것이 무엇인지 유성탄에게 묻고 싶었으나 그랬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아 그냥 참고 만다.
“진수진하고 정일호는 어디 갔냐?”
“현의 객잔에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인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우리가 나타나면 찾아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짜식이 신비한 척은…….”
“그런데 대형, 하후 소저하고 연 공자에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래? 하후 걔야 그렇다 치고 연 소주 그 놈은 어떻게 연락한 거냐?”
“하후 소저께서 연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걔들이 서로 연락해? 이거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하후 소저께서 연락을 한 모양입니다.”
“왜? 잘생겨서?”
꼭 지 같은 생각만 하는 유성탄이었다.
“이제 어찌하실 것입니까?”
“우선 진수진에게 돈 좀 주고 왕자 놈은 곧 잡아들일 테니까 좀 참아달라고 해야지. 더 이상 안 건드린다고 약속했으니까… 흠… 야! 마동파 너 돈 얼마 있냐?”
“저요? 얼마 안 되는데요. 그동안 모은 거 다해서 금자 닷 냥 정도 되나.”
“너는?”
유성탄은 아우들 모두에게 묻더니 말했다.
“그 정도면 진수진이 살아가는데 불편은 없겠다. 그 돈 다 모아서 진수진이 갖다 주고 와라.”
말을 마친 유성탄은 백 근 황금이 든 상자를 안아들었다.
“대형, 거기서 주는 거 아니었습니까?”
“어디서? 이거 황금에서? 얘들이 미쳤나? 내가 죽을 고생해서 번 돈인데 왜 내가 그걸 줘!”
“그럼 우리는 왜 주어야 합니까?”
“이 자식들 좀 봐라. 내가 전에 그랬지 불쌍한 사람을 보면 좀 도와줘야지 하는 생각 안 드냐고? 하여간에 인간미들이 없어.”
“저희도 인간미는 있습니다. 돕기 싫다는 것이 아니고 왜 우리 돈만 내야 하는 거냐 이거지요.”
“야 우리 사이에 우리 돈 니 돈 어디 있냐? 니들 좀 못 본 사이에 엄청 살벌해졌다. 대형한테 그러면 못써!”
“맞다. 대형께서 어차피 이 황금은 모두 유성방을 키우는데 쓰실 것인데 우리가 그러면 안 된다. 안 그렇습니까?”
강태웅이 모두에게 말하고는 유성탄을 쳐다보자 유성탄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한다.
‘얘 또… 은근슬쩍 물 물먹이려고 그러네…….’
“역시 대형이십니다.”
“확실히 대형은 통이 크십니다.”
“죄송합니다. 대형의 큰 뜻을 모르고 저희들이 속 좁게 굴었습니다.”
유성탄이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아우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니들은 아직 안 돼! 대붕의 뜻을 그렇게 눈치를 못 채다니.”
유성탄은 아우들의 찬사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마디 하고 만다.
‘이씨! 또 망한 것 같네…….’
“강태웅, 황금상자는 어떡했냐?”
신녀궁이 있는 무산 쪽으로 북상하던 중 주루에 들른 유성탄은 강태웅이 황금상자를 들고 나가더니 빈손으로 들어오자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대형께서 제게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하셔서 전장에 맡기고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성방의 방비로 쓴다고 해서 네게 잠깐 가지고 있으라고 한 거지 니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한 거 아닌데!”
“당연하지요. 어찌 방주님이신 대형의 명도 없이 방비를 한 푼이라도 제 자의로 사용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나한테 의논도 않고 전장에 갖다 준 거야?”
“전장에 준 게 아니고 잠시 맡긴 겁니다.”
“그러니까 전장 놈들을 어떻게 믿냐고! 그놈들이 우리는 그런 거 받은 적 없다고 그러면 끝 아니냐?”
유성탄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태웅 때문에 황금을 몽땅 방비로 넣게 된 것이 배가 아프던 차에 잘 걸렸다는 투였다.
“전장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백삼십 근이나 되는 황금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 보통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게 내가 들고 다닌다고 했잖아?”
“대형께서 그렇게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는데 아우들은 그냥 돕지도 못하고 보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대형께 계속 불충하고 있다는 괴로움에 무공정진을 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맞습니다. 대형께서 금자를 몸에 두르고 다니시는 것만 해도 우리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은 판인데 어찌 백삼십 근이나 되는 황금을 대형이 직접 들고 다니시는 것을 그냥 두고 보겠습니까?”
황대산도 동감이라는 듯이 말하자 유성탄이 멈칫한다.
‘이것들이… 금자까지 노리는 듯한 말을?’
유성탄은 손으로 가슴에 두르고 있는 금자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대형, 들고 다니면 만날 백삼십 근이지만 전장에 넣어두면 이자가 붙어요. 그 이자도 솔찮습니다.”
“이자? 돈도 맡아주면서 이자까지 준다는 말이냐?”
“그렇다니까요.”
“그래, 좋아 한 번 두고 보겠다. 하지만 만약 이자가 안 붙었으면 너희들 모두 대형에게 허위보고를 한 죄로 치도곤이 떨어질 것이니 명심해라.”
“알겠습니다! 대형!”
유성탄이 간신히 전장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듯하자 아우들이 합창하듯이 대답했다.
‘이것들이 쪽팔리게… 에이 씨 다 쳐다보네.’
유성탄은 주루에 다른 손님들이 갑작스런 큰 소리에 다 쳐다보자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렸다.
* * *
“이미 기룡왕부에 가서 한바탕한 모양입니다.”
팔지신타의 보고에 주소연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하여간에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아니면 아예 생각 자체가 없는 사람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어쨌든 동창이 다시 절강으로 들어왔다고 하던데 맞나요?”
“예, 감숙에서 뭔가 냄새를 맡았는지 다시 절강으로 들어왔습니다.”
“생각보다는 늦군요. 동창도 이제 덩치가 너무 커져서 대응시간이 무척 느려진 것 같아요.”
“청담이란 자가 기룡왕부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어떡할까요?”
“유성탄 그 바보가 이미 들어가서 한번 휘젓고 나왔는데 만약 우리가 또 건드린다면 기룡왕부에서 오해를 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반역을 밝힐 유일한 인물인 청담이란 자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하지만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청담에 대한 것도 그가 마약을 퍼뜨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뿐이고 더구나 그자가 청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동명이인이라고 한다면 괜히 황실에 분란만 일으킨 것이 된다는 말이지요. 어쩔 수 없어요. 유성탄에게 책임지고 청담을 잡아오라고 하세요. 어차피 벌집을 건드렸으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지요.”
“그런 걸 알기나 할까요?’
팔지신타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묻자 주소연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알 리가 없지요! 그러니 가르쳐주세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요?”
“벌써 북상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아니! 뜬금없이 남하를 하더니 왜 갑자기 다시 북상을 한다는 거예요?”
“그 친구 행동을 누가 있어 짐작하겠습니까?”
주소연은 보고서를 읽어보다가는 다시 물었다.
“왕부에 들어가기는 한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거기다 유성탄은 나오자마자 다시 북상을 한다. 도대체 이자는 일만 벌리고 어떻게 하나도 마무리는 안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대형, 그런데 여긴 왜 내려온 겁니까?”
북상을 하면서 황대산이 유성탄에게 물었다.
“무산을 가려고 나왔는데 어떤 바보 같은 놈이 이리로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무작정 내려왔다가 여기까지 왔고 그러다가 재수 없이 진수진을 만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지.”
“절강에는 무산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래서 무산이 있는 지명을 말해야 올바른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강태웅이 그제서야 유성탄이 여기에 온 이유를 알고는 설명을 했다.
“그럼 솔직히 우연히 이곳에 온 거란 말인데 황금이 백삼십 근이나 생겼는데 재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황금이 천 근이 생기면 뭐 하냐! 내가 쓰지를 못하게 됐는데.”
황대산은 피식 웃고는 다시 물었다.
“무산에는 왜 가시려고? 혹시 신녀궁에?”
“어떻게 알았냐?”
“아니! 거기는 왜 가시려고요?”
듣고 있던 마동파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얘 왜 이러냐? 야 내가 볼 일이 있어 가겠다는데 니가 왜 깜짝 놀라고 그래. 이상한 놈이네?”
“대형! 신녀궁은 무림에서 아주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곳입니다. 가서 무슨 짓을 하시려고요?”
“무슨 짓? 이게 대형을 뭘로 보고! 내가 신녀궁에 가는 이유는 정자운이 나보고 꼭 놀라오라고 부탁을 해서 가는 거야.”
“정자운이라면……? 신녀궁주님이시잖아요? 그런 분이 정말로 대형께 꼭 오라고 부탁을 했다는 말입니까?”
“말로 한 것은 아니지만 난 딱 알지!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오라고 말은 못하지만 다시 보고 싶어 안타까운 마음을 내게 담아서 보내는 그 눈길… 니들은 모를 거다 아마!”
“결국 대형 혼자 생각이시라는 말 아닙니까?’
표도행의 말에 유성탄의 실체를 가장 잘 아는 아우들답게 모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니들이 안 믿는 것 같은데 내가 신녀궁에 도착해서 직접 보여준다. 씨!”
* * *
“아가씨, 뭐 하고 계세요?”
“응, 이번에 들어온 환자, 독에 중독된 모양인데 아직 어떤 독인지를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야. 그래서 지금 피를 가져와서 실험 중이다.”
“그런데 실험한 흔적이 전혀 없네요?”
“응? 아! 이제 하려고…….”
“아가씨! 제발 그러지 마세요!”
백리빙의 큰 소리에 정자운은 깜짝 놀라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다.
“갑자기 왜 소리는 지르니 여자애가?”
“이번에 나갔다 온 후에 아가씨 정말 이상해지신 거 알아요?”
“내가 뭘 어쨌다고? 파파 얘기로는 네가 더 이상해졌다고 그러더라.”
“제가 뭘요! 도대체 제가 뭐가 어쨌다고 파파님들께서는 자꾸 저보고 이상하다는 거지요?”
“궁주님도 그렇고 저 빙아도 그렇고… 분명 이상하지 않아?”
백리빙과 정자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철장파파가 활인파파를 보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나도 그래서 걱정이야. 궁주님께서는 이곳 연구실에만 들어오시면 정말 다른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일에만 몰두하셨는데 요새는 멍하니 계실 때가 상당히 많거든.”
“열혈파파 얘기로는 빙아에게 남자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그러던데?”
“빙아에게? 어떤 남잔지 쟤 성질을 어떻게 견디려고… 빙아는 그렇다 치고 궁주님은 왜 그러시지? 갑자기 부군을 구하는 초청장을 보내는 것을 그만두라고 명하시더니 이미 보낸 사람들도 다 취소하라고 하시고… 혹시 남자가 생긴 건……?”
“그런 소리 마라. 궁주님께서 어떤 분이신데… 하찮은 남자 때문에 저러시겠냐?”
“하긴 고고하시기가 연못에 핀 연꽃보다 더하고 깨끗하기가 저 희디흰 백합보다도 더 하야신 분이 그깟 남자 때문에 저러신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잖아?”
“혹시 늦게 사춘기에 드신 거 아닐까?”
“저 나이에 사춘기에 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모르지. 궁주님은 그 달거리도 거의 스물이 되어서 시작하셨잖아! 어쩌면 보기보다는 성장속도가 늦을지도 모르지 않겠어?”
활인파파는 철장파파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실지로 정자운의 달거리 시작이 너무 늦어 거의 일 년 가까이 성장탕을 먹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가씨!”
“왜?”
백리빙이 약재를 찧어 독에 대어보고 있는 정자운을 보며 다시 불렀다.
“생각은 딴 데 가 있으면서 무슨 연구를 하신다고 그래요? 그러지 말고 저랑 얘기 좀 해요.”
“얘는 자꾸 무슨 얘기를 하자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에 양피장갑을 벗으면서 정자운이 일어섰다.
“뭔 얘긴데?”
밖으로 나온 정자운이 정원을 거닐며 물었다.
“제가 알아봤는데요, 그 유성탄 그 음흉한 작자가 지금 절강에서 포천망쾌라는 이름으로 아주 날리고 있더라고요.”
“포천망쾌?”
백리빙은 신녀궁에 돌아오자 곧장 신녀궁의 정보망을 가동해서 유성탄에 대해서 알아봤다. 물론 유성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알아보라고 한 지 하루도 안 되어 유성탄에 대한 정보가 한 아름이나 온 것이다.
“보낸 정보에 의하면 아주 악질 비리 관원이라고 하더라고요. 돈만 주면 뭐든 해결해주고 아무리 나쁜 범인도 돈이 걸려 있지 않으면 바로 앞에 있어도 잡지도 않고요. 거기다 흉측한 놈이 치정살인의 용의자로 의심까지 받고 있다나 봐요.”
“그런 얘기 말고 좋은 정보부터 말해봐라.”
정자운은 언제나 사람들의 신상에 대한 정보를 들을 때는 좋은 면에 대한 정보부터 듣고 나쁜 면을 들었다. 그것은 최소한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갖고 그 사람을 분석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양민들은 그 사람을 무지 좋아한데요. 그 사람 소식만 들으면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린다나 뭐라나…….”
“그것 봐라. 민심이 바로 본심인 법이다. 그 사람이 아무리 거칠게 행동해도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다 좋아하지 않니? 그리고 그 사람 그렇게 싸우면서도 아직 한 명도 죽인 적이 없으신 분이다. 그런 분이 치정살인이라니…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
“뭐예요? 그럼 아가씨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에요!”
백리빙이 갑자기 흥분해서 말하자 정자운이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언제 좋아한다고 했어? 난 양민들이 좋아한다니까…….”
“그럼 아가씨 제게 맹세해 보세요.”
“얘는… 뭘 맹세하라는 거야?”
“절대로 유성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맹세해 보세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백리빙은 정자운의 마음을 알아볼 때면 언제나 이 방법을 사용했었다. 그럴 때마다 거짓말을 못하는 정자운은 대답을 않거나 다른 데로 얘기를 돌리곤 했었다.
“어머! 파파께서 오시네! 열혈파파, 무슨 일 있나요?”
정자운은 한참 멀리서 다른 궁도와 어디론가 가고 있는 열혈파파를 보더니 크게 부르며 그 쪽으로 갔다.
‘아이! 이러면 안 되는데… 유성탄! 이 나쁜 놈! 바람둥이! 여자만 보면 다 꼬드기려고 하는 천하에서 제일 음흉한 놈! 내 이놈을 다시 보면 그냥 목을 쳐 버릴 거야,’
백리빙은 정자운이 열혈파파를 부르며 급히 저쪽으로 가버리자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는 유성탄을 욕하기 시작했다.
“대형!”
“왜!”
“귀 좀 닦으세요.”
“뭐! 이게 대형을 뭘로 보고? 내가 얼마나 자주 씻는지 알아!”
“그런데 왜 자꾸 귓속을 후비는 겁니까? 지금 우리 식사 중이잖아요!”
유성탄의 바로 옆에서 밥을 먹던 마동파가 유성탄이 자꾸 귀를 후비고 그때마다 이상한 가루가 자꾸 자신의 음식으로 떨어지자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귀를 안 닦아서 그런 게 아니고… 이상하게 무산에 가까워질수록 귓속이 자꾸 가렵네.”
유성탄은 계속 귀를 후비며 말했다.
“뭐! 그놈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라고?”
천요색화 화설군은 턱을 손에 받친 채 창밖을 쳐다보며 교미향이 가져온 유성탄에 대한 정보를 듣다가는 유성탄이 생각보다 대단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말을 듣자 팔을 풀며 교미향을 쳐다보며 물었다.
“예, 지금 절강에서는 포천망쾌 그러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빨리 잡아와!”
“궁주님, 그자가 바다를 뛰어 해적을 잡고 마룡방의 무사들과 구룡회의 무사들을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패서는 옥에 가둔다는 잡니다. 거기다 황음삼마를 순식간에 때려잡은 것을 직접 보셨잖습니까?”
“그래서 못 잡는다는 말이야?”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천요궁이 언제부터 무공으로 사람을 잡아왔어? 우리 특기 있잖아! 그리고 내 생각이 맞는다면 그 놈이야말로 우리 특기에 가장 잘 걸려들 놈이야.”
교미향은 화설군의 말을 들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천요궁의 특기라면 그녀야말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설군은 그것을 무척 싫어하지 않았던가?
“분명 얘기하지만 이단계 이상은 사용하지 마!”
“궁주님, 이단계만으로는 유혹이 불가능합니다.”
“그놈은 일단계만으로도 유혹이 될 거야. 두고 봐!”
“이제는 아예 양쪽 귀를 후비고 계시네. 에이!”
유성탄이 이제 양쪽 귀를 같이 후비자 마동파는 손으로 음식을 가리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오살은 어디 간 거냐?”
“대형도 참 빨리도 물으십니다.”
“그동안 바빴잖아! 거기다 내가 니들 움직이는 것까지 어떻게 하나하나 신경 쓰냐?”
“그래도 어디로 갔다고 하면 물어봐야 하는 것이 방주님의 의무 아닙니까?”
“아아 알았으니까 말해 봐!”
“지금 구룡회와 마룡방 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후 소저께서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조짐을 발견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후 소저의 조직망으로는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오살에게 부탁을 한 겁니다.”
“전화생은 팔까지 잘렸던데…….”
유성탄이 걱정이 되는지 물었다.
“전 호법은 아직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몸을 추스를 동안 유성방의 방도들을 수련시키기로 했습니다. 방도들이 인상만 더럽지 무공은 형편없어서 걔들 훈련 좀 시켜달라고 제가 부탁했습니다.”
강태웅의 말을 들은 유성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맞아! 우리도 이제부터는 예쁘고 잘 빠진 여자 방도도 좀 받고 그래야지 유성방의 이름 값도 못하게 너무 애들 인상이 더러워.”
“대형만 좋지 우리야 뭐 여자 방도가 없어도 아쉬운 것 없는데요.”
철패가 또 맞는 소리를 했다.
“이것들이 내가 무슨 흑심이 있어서 그런 줄 아네? 야 나는 여자 방도 없어도 사방에 여자야! 그러나 니들 좀 봐라. 니들 꼬라지에 여자 방도라도 받아야지 어떻게 여자 하나 사귀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니들 장가도 못 간다.”
“나 벌써 장가갔었는데요.”
‘에이 씨! 이것들이 없을 때는 조용했는데… 좀 세졌다고 아예 맞먹으려고 그러네.’
유성탄은 아우들이 말로는 전부터 맞먹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제야 눈치 챘다.
“그런데 저 산은 이름이 뭐냐? 멋있네!”
유성탄은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을 돌렸다. 그 곳에는 산중턱에 구름 모자를 쓴 높은 산이 신비로운 자태로 서 있었다.
“저게 무산입니다.”
“그래, 저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냐?”
“보기에는 가까워 보여도 이틀은 가야 할 겁니다.”
“저렇게 가까운데 무슨 이틀? 어쭈구리, 저 늙은이는 또 왜 여기서 배회하는 거야?”
말하던 유성탄은 창밑에 눈길을 보냈다가는 급히 얼굴을 들이면서 중얼거렸다.
“뭔데 대형께서 그렇게 겁을 먹고?”
마동파는 유성탄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끼고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밖을 쳐다보았다.
“야! 고개 집어넣어!”
“왜요? 무지 무서운 자들이라도 있나요?”
마동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미 늦었다.”
유성탄은 마동파의 물음에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헤헤헤! 멀리도 못 갔구먼!”
어느새 유성탄을 봤는지 주루에 나타난 궁상개는 누런 이를 보이며 히죽 웃더니 다짜고짜 의자 하나를 끌어와서는 유성탄의 옆에 앉더니 유성탄의 앞에 놓인 음식 하나를 손으로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에이 드러! 여긴 또 어떻게 알았소?”
“내가 이래봬도 천하에서 가장 정보망이 완벽하다는 개방의 장로다. 너 정도 찾는 거야 뒷마당에 묶인 강아지 찾는 것보다 쉽지.”
‘이 씨! 비교를 해도…….’
“그런데 왜 나를 찾은 거요? 나는 영감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데…….”
낭인칠웅의 아우들은 궁상개가 개방의 장로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예전 같으면 개방의 장로라면 그들에게는 하늘같은 존재였다. 물론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지만.
“내가 엄청난 정보를 가져다 줬는데 그냥 나왔다며? 거기다 해결한 거는 아무것도 없이 다시 북상을 하는 이유는 뭐냐?”
“영감 당신이 준 정보는 하나도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 났소이다. 즉 내가 영감에게 줄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오.”
“그럼… 설마… 너 나한테 주기로 한 돈을 주기 싫어서 청담은 찾지도 않은 거냐?”
“죽다 살아났는데 무슨 청담을 찾을 여유가 있었겠소!”
“대형, 저희에게는 군사들이 전부다 대형을 보자 얼었다고 하셨잖습니까?”
듣던 마동파가 끼어들었다.
‘하여간에 눈치 없는 놈! 에이…….’
“그리고 원래 내 행선지가 북쪽이었소이다. 길을 잘못 들어서 거기까지 간 거지,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든 영감이 뭔 상관이오?”
“그래도 하던 일은 끝내고 결과를 만들어야지 네 놈이 한 일들을 보면 하나같이 일만 벌리고 전혀 결과가 없지 않냐? 난 그게 영 거슬린단 말야.”
“영감! 내가 뭐를 어떻게 했건 영감이 무슨 상관이오? 하여간에 할 일도 없는 영감이라니까. 영감! 그럴 시간 있으면 동냥이나 더 해요. 사람이 일을 해야지 하여간에 게을러서 그러니까 거지밖에 못하는 겁니다. 이제 가쇼!”
유성탄이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내가 지금 심심해서 할 일 없이 너를 찾은 줄 아냐? 나도 바쁜 몸이다.”
“또 무슨 사기를 치려고 그러시는지는 모르지만 일 없수다.”
“진짜 중요한 정본데…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금자로 따져서 오천 냥 정도… 싫다면 가야지 뭐!”
궁상개는 미끼를 던지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그런 그를 아우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궁상개가 유성탄의 실체를 꿰뚫고 있는 것이었다.
“영감, 잠깐은 얘기해도 봐 주겠소.”
그리고 모두의 생각대로 유성탄은 미끼를 물었다.
‘헤헤헤, 요놈아! 넌 내 밥이라니까. 헤헤헤!’
궁상개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다시 앉으며 말했다.
“얼마 줄 거냐?”
‘으잉! 이건 또 무슨? 이 놈의 늙은이가 아주 맛들였구먼…….’
“일 할, 나 유성탄의 인생에 일 할 이상은 없소!”
“전에도 그랬거든! 그런데 네놈의 인생은 너무 말을 자주 바꾸더라. 이 할!”
이미 이 할 이상을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궁상개로서는 아예 처음부터 이 할을 불렀다.
“얘기나 들어 봅시다.”
“백마성의 백마들 중 무려 이십여 명이 절강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룡방에서 비밀로 유지하던 그들의 진짜 무력집단을 내보냈다고 한다.”
아우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는 가운데 유성탄은 코를 후비며 삐딱하게 듣다가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요? 설마 그 정도로 금자 오천 냥 운운했다면 그냥 가시오. 쓸데없이 시간 방해하지 말고.”
“너 정말 이 정보에서 뭐 느끼는 것 없냐?”
“내가 뭘 느껴야 하는 거요?”
“그 자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 들어왔다는 것은 생각도 않냐?”
“그 자들이 할 일도 없나! 왜 이유 없이 나같이 착한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거요? 괜히 정보 값을 올리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그런 거에 속을 내가 아니오.”
“그리고 너 아냐? 금모전에서도 절강에 무사들을 은밀히 보냈고 감숙으로 갔던 동창도 갑자기 다시 돌아와서는 너를 찾는다고 하더라.”
“금모전이야 나랑 친한 사이니까 걱정될 거 없고 동창은 나랑 같은 관인인데 찾아봐야 별 볼일 없을 거고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는지 알 수가 없네.”
유성탄이 여전히 시큰둥하자 궁상개의 안색이 변했다.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좋다! 네가 그런다면 내 더 좋은 정보를 가지고 다시 오겠다.”
궁상개는 유성탄의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 입에 넣더니 나가 버렸다. 나가는 그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어차피 정보를 파는 것이 아닌 유성탄에게 조심하라는 주의를 주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지금 들은 정보 어떠냐? 값어치가 있냐?”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천금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야 표도행이 정보 어디 팔 데 좀 찾아봐라.”
“대형, 방금은 별 볼일 없다고……?”
“야 그럼 거기서 내가 ‘와!’ 하고 놀라면 그 영감이 진짜로 일 할을 달라고 할 거 아니냐? 그러니까 정보만 듣고 아무것도 아닌 척해야 그 영감이 그냥 갈 거 아니냐! 하여간에 미련해 니들은!”
“와아! 그런 심오한 이유가…….”
아우들의 입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그런데 대형, 그동안 도대체 뭔 짓을 하셨는데 그 많은 세력이 대형을 죽인다고 찾아온다는 겁니까?”
황대산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궁상개가 말한 세력 중 하나만이라도 원한을 맺는다면 그것은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지금 유성탄은 무려 다섯 개가 넘는 세력과 문제가 있었다.
“아아 걱정 마! 내가 이래봬도 포천망쾌거든. 오면 전부다 옥으로 직행이다.”
“그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우리까지 다 죽습니다.”
“뭐야! 마동파 너 지금 나랑 같이 있는 것이 싫은 눈치다. 겁나냐?”
“무슨 소립니까? 저는 언제까지나 대형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만 죽고 대형은 살아 있으면 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남자란 모름지기 목숨을 초개같이 생각해야 하는 거다. 얘기 못 들 었어?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드는 자는 죽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게 사나이의 삶이고.”
“대형의 신조는 가늘어도 길게 사는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매번 신조가 달라지시니 우리는 어느 신조를 따라야 할지 헷갈립니다.”
철패가 다시 우직하게 바른말을 했다.
‘이 씨! 하여간에 철패 이 놈 언제 한번 손 봐줄 거다.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