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4장 춘약 (72/79)

제4장 춘약

왜관의 객잔은 그 모양이 중원의 객잔과는 그 모양이 조금 달랐다. 우선 지붕이 중원의 지붕과는 달리 각이 져 있었고 전각이 올라가는 방식도 약간 달랐다.

미루관은 왜관에서 가장 큰 객잔이었다. 그런데 오늘 미루관은 누가 전체를 전세를 냈는지 손님을 받지 않고 있었다.

삼 층 누각의 가운데 방.

“네가 직접 올 줄은 몰랐구나.”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도 천주님을 바로 옆에서 보필해야 할 네가 여기에 오다니 뜻밖이구나.”

“일들이 다 엉망이 되었더군요.”

청담은 태성기의 말에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듯이 말했다.

“그래,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어버렸다. 천주님께서 책임을 지라고 명하시더냐?”

“그럴 리가요. 천주님께서 형님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그 정도로 힐책하시겠습니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 모든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천주님께서 형님께 준비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천주님께서 명하시면 나는 그 말을 따를 뿐이다. 부탁이라니?”

청담이 황송하다는 듯이 말하자 태성기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진심으로 천주란 자를 존경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천주님께서 정치적인 입지가 많이 좁아지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감히 어떤 놈들이?”

“천주님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반대세력 정도는 단숨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주님께서는 그러시고 싶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그렇다면 옆에서 보필하는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되었을 것이 아니냐?”

“절대로 그러지 말라는 명이셨습니다.”

청담은 태성기의 말을 듣자 검미를 바짝 좁히고는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천주님께서 내리신 명을 말해 봐라.”

“북원은 지금 종족 간의 분쟁으로 지리멸렬해 버렸습니다. 북원의 황제는 암살당했고 이제는 나라라기보다는 부족연합이 되어버려 서로 간의 권력다툼이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습니다. 거기다 서장과 서역도 밀교와 회교 간의 다툼으로 거의 내란 상태에 가깝습니다. 천주님께서는 그들을 모아 중원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그냥 자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무림을 먼저 평정한 후 기회를 봐서 황실을 전복시키실 계획을 짜라고 하십니다.”

“무림을? 무림을 평정하는 건 황실전복보다 더 어려울 수 있네.”

“알고 있습니다. 황실은 황제와 그 측근만 잡으면 실로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지만 무림은 정말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타나는 잡초 같다는 것을요. 그래서 천주님께서 북밀천의 고수들을 모두 거느리고 곧 중원에 입성하실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미 천주님께서 예전에 한번 무림을 제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단신이셨는데도 천하의 모든 고수를 꺾었습니다. 지금의 천주님께서는 그때보다 열 배 이상 강해지셨습니다. 무림은 언제나 강한 자의 것이었습니다.”

“나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태성기가 청담의 말에 무슨 말이냐는 듯이 쳐다보자 청담이 말을 이었다.

“현 무림의 최고수는 무림 십대고수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림에 나타나지를 않아서 그렇지 막상 강한 적이 나타나면 사방에서 생각지도 않은 고수들이 나타난다. 전통이란 그런 것이더라. 거기다 무림의 제압이란 것이 어디서 어디까지가 제압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평정인지 정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천주께선 무림인을 황실전복에 이용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렇게까지 하려면 그들이 진심으로 천주님을 따르게 하든가, 아니면 따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공포를 그들에게 집어넣어야 하는데 둘 다 만만치 않다.”

말을 마친 청담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하지만 천주님이 원하신다면 나는 뭐든 다 할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계획을 다시 세울 것이니 천주님께 그렇게 전해라.”

“제가 직접 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천주님께서는 이미 중원으로 들어오시고 계십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중원에 들어오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벌어 왔냐?”

장우왕 등 도박장에 갔던 유성방의 부하들이 돌아오자 유성탄이 물었다.

“이 자식들이 생각보다 버티더라고요. 그래도 은자 백 냥은 벌어 왔습니다.”

“아니, 시간을 이렇게 끌고서 겨우 은자 백 냥이냐? 에그, 어쨌건 이리 줘봐라. 그리고 이런 식으로 벌려면 그만둬라. 이 돈으로는 니들 행패 부린 거 무마비 하기에도 부족하다.”

돈을 받아 든 유성탄이 품속으로 돈을 집어넣으며 말하자, 마동파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대형, 대형께서 특수포쾌인데 무슨 무마비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얘들이 아직도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네? 내가 아무리 높아도 무마비는 꼭 들어가게 되어 있는 거 몰라?”

“그럼 매번 벌어 올 때마다 무마비조로 이렇게 떼실 겁니까?”

“이거 내가 먹는 거 아니야! 다 들어갈 데에 들어간다니까.”

“그럼 이번에는 무마비조로 얼마 떼실 건데요?”

“은자 백오십 냥은 필요한데 이번에 봐줘서 백 냥만 하지 뭐.”

“그럼 벌어 온 거 전부 다 아닙니까?”

“그러게 많이 벌어 와야지. 그렇게 조금 벌면 우리한테는 생기는 게 없다고!”

말을 마친 유성탄의 땡잡았다는 표정을 보는 아우들의 얼굴이 떫은 감을 먹는 얼굴로 변했다.

“참, 그런데 거기서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유성탄의 품속으로 들어간 이상 더 이상 나오기는 힘들다 느낀 장우왕이 돈은 포기하고 품속에서 차 봉지를 꺼내며 말했다.

“그건 뭐냐? 차냐?”

딴청을 부리던 유성탄이 급히 물었다. 공짜가 아니던가.

“이게 부수다 보니까 도박장 금고에 들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춘약(春藥)입니다.”

장우왕의 말에 모두 눈이 동그래졌다.

“춘약이 뭐냐?”

유성탄이 안달이 나서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 모두의 반응으로 짐작컨대 분명 대단한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춘약이란 남자에게는 마약보다도 더 비싸게 팔리는 약이었다. 어떤 여자든 먹이면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다는 춘약은 남자들에게는 꿈에서도 가지고 싶어하는 약이었다. 하지만 춘약을 소지하고 있다가 걸리면 무림인에게는 공적이 되고 관에서는 마약 소지보다도 더 엄중하게 다스리니 시중에서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것이기도 했다.

거기가 춘약은 조제하기가 어떤 약보다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들어가는 약재들이 모두 비싸기도 했지만 특히 주요 제품인 환상초는 재배 자체가 어려웠는데 물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가물어도 안 되고 거기다 동물은 물론 곤충들조차도 냄새만 맡으면 달려들어 먹으려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그 옆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거의 천 일 가까이 매일처럼 아기 돌보듯이 해야 백 그루를 심으면 열 그루 정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천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부자들이나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사지 못했다. 한마디로 돈을 벌기 위해 재배하기에는 그다지 경제성이 없는 약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춘약이 일개 중소도시의 도박장의 금고에 한 뭉치나 들어 있었다는 것은 아주 뜻밖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지저분한 것을 뭐 하러 가져온 거예요!”

유성탄과 아우들이 같이 있을 때는 오살은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춘약이라는 말에 고화월이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저분? 어째 갈수록 점점 좋은 것 같네…….’

지저분하다는데 점점 좋은 것일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유성탄이었다.

“춘약 한 뭉치면 거의 금자 백 냥은 할 텐데 그걸 어떻게 그냥 두고 옵니까?”

“이것들이! 죽을래! 대형이 뭐냐고 묻는데 자꾸 딴말만 할 거야?”

“대형, 춘약이란 것이 뭐냐면요, 말하기가 좀 뭐한데… 여자한테 살짝 먹이거나 뿌리면 여자가 흥분해서 아무 남자한테나 안기게 만드는 약입니다.”

“아무 남자나……?”

“예.”

“아무 여자나?”

“그렇죠.”

“그럼 길 가다가 아무 여자한테나 살짝 뿌리면 그 여자가 나한테 안긴다는 말이냐?”

유성탄의 말을 들은 모두는 안색이 변하며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고는 모두의 표정이 불안하게 변했다.

“그럼 남자가 먹으면 어떻게 되냐? 남자도 흥분하게 되는 거냐?”

“그거야… 그러겠지요. 보통은 남자가 여자한테 사용하지 여자가 남자한테 사용하지는 않으니까 확실하게는 모르겠네요.”

“남자도 흥분한다 이거지… 그거 이리 줘라.”

드디어 유성탄의 입에서 내놓으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해갔다.

“대형! 이걸 어디 쓰시려고요? 이거 소지만 하고 있어도 무림공적으로 몰리는 엄청 나쁜 약입니다.”

“방주님, 지금 이걸 여인네들에게 사용하시려는 거예요?”

마동파와 고화월이 동시에 물었다.

“얘들이 미쳤나? 야, 날 봐라. 나 자체가 여자들에게는 춘약이야. 나를 보기만 해도 여자들이 흥분하는데 왜 이 아까운 걸 여자들에게 사용해.”

유성탄의 착각이 이제 거의 신경(神境)에 들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럼 혹시 남자에게… 아니, 대형께서 그걸 왜 남자에게 사용합니까?”

“잔소리 말고 이리 내놔라.”

춘약을 빼앗아 소중하게 품속에 집어넣은 유성탄은 가슴을 툭툭 몇 번 치더니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요새 몸이 좀 늙은 것 같아서, 흥분이 잘 안 될 때 정력제로 쓰려고 그런다. 왜!”

마누라가 셋씩이나 생기게 되자 유성탄으로서도 자신의 정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하게 되자 아주 기분이 좋아진 유성탄이 떳떳하게 말하자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세상에, 누가 춘약을 정력제로 씁니까?”

“야! 정력제가 따로 있냐? 흥분시키면 정력제지 거기다 효과도 엄청 빠른 것 같으니까 급할 때만 사용할 거다.”

유성탄의 이어지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존경(?)의 빛이 나타났다.

“자, 그럼 이제 생각을 좀 해보자.”

모두를 쳐다본 유성탄이 신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춘약이 소지만 해도 공적이 될 정도로 나쁜 건데 어떻게 도박장이나 하는 일개 흑도 놈들이 이걸 가지고 있을까?”

아주 날카로운 지적에 모두의 눈이 유성탄을 향했다.

“그 말은 그런 놈들까지 소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춘약이 흔하게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그놈들이 춘약을 만드는 놈들과 무슨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역시 대형이십니다. 맞습니다. 마약과 마찬가지로 춘약 역시 시중에 풀리게 되면 사회 혼란을 자져오게 됩니다. 거기다 춘약은 그 가격이 비싸고, 마약이 스스로를 망친다면 춘약은 여인들에게는 아주 치명적이 약이기 때문에 그 해악이 더 큽니다. 걸리면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이런 약을 그런 일개 흑도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가 않습니다.”

강태웅이 유성탄의 말을 듣자 동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떡할까요?”

황대산이 유성탄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도박장으로 간다. 가서 그놈들한테 이 춘약이 어디서 났는지 알아내고 그 춘약을 ‘발본색출’한다.”

약간은 이상한 문자까지 써가며 말하는 유성탄을 보며 모두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유성방이 정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첫 일이 시작된 것이다.

‘자식들, 이상하게 되게 좋아하네? 이거 아무래도 자식들이 뭔가 잘못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성탄은 춘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왕창 얻어낼 생각으로 한 말인데 방도들은 유성탄이 협의를 위해서 말을 꺼냈다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춘약을 찾아냈다 이거지? 그런데 뭘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다 부순 거냐?”

유성탄이 방도들을 이끌고 다시 도박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모두 사라진 후였다.

“이놈들이 겁대가리도 없이 엄청 반항하더라고요. 그래서 손 좀 봐준다는 게 조금 지나쳤나 봅니다.”

“이게 조금 지나친 거냐? 이렇게 다 부숴놓으면 다시 장사를 못할 거 아니냐?”

“도박장은 백해무익한 곳입니다. 다시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는 어디서 돈을 버냐? 도박장이 성할수록 우리한테는 수입원이 많아지는 것을 모르냐? 하여간에 머리들이 없어요. 그래도 뭐 아쉬울 거는 없지.”

“여기 도박장은 죽창파라고 이 고장 토박이 흑도들이 하던 곳이랍니다. 원래는 빌빌대며 보호비나 빼앗던 놈들인데 갑자기 어디서 큰 물주를 잡았는지 도박장을 세우고 기루까지 인수했답니다.”

“그래? 어째 갈수록 냄새가 나네. 당장 애들 풀어서 이놈들을 다 잡아들여라.”

“알겠습니다.”

유성탄은 뭔지 모르지만 진짜 땡을 잡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팍 받았다. 그리고 아우들은 신이 나서 크게 대답하고는 사방으로 방도들을 이끌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고을의 곳곳에서는 곡소리가 울려퍼졌다.

유성방의 방도들이 흑도들을 다 때려잡는 소리였다.

“대형, 놈들을 족쳐서 알아냈는데 춘약이 이곳만이 아니라 상당히 많이 퍼져나왔답니다.”

“그래! 그럼 그 약들은 다 어디 갔냐?”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니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요. 하지만 하후 소저에게 연락을 했으니 곧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춘약은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들었는데, 누가 그렇게 많이 유통시킨 걸까요? 놈들 말로는 이 고을에서만도 춘약으로 여러 여자 건드린 것 같던데.”

마동파도 알아온 것이 있는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러 여자를 건드려? 어떻게?”

유성탄이 또 쓸데없는 곳에서 관심을 보이자 모두 못 들은 척하고는 다음 보고를 한다.

“퍼져나간 곳은 알 수 없지만 어디에서 유입이 되었는지는 대충 알아냈습니다.”

표도행의 보고에 유성탄이 급히 물었다.

“퍼져나간 곳보다는 들어온 곳이 더 중요하지! 어딘데?”

“왜관이랍니다.”

“왜관? 하하하! 역시 나는 운이 좋아. 횡재수가 있더니 가는 곳마다 횡재를 하게 생겼군. 가자!”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왜관이지.”

돈을 벌면서 간다고 세월아 네월아 언제 갈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왜관으로 향하던 유성탄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춘약이라고요?”

“예, 방금 유성방의 강 부방주께서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랬군요. 이제야 이유를 알 거 같아요.”

“예?”

“사방에서 이상한 일들이 상당히 많이 일어났어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여인들이 사라지고 자살하고… 거기다 이상한 놈들에게 돈을 주고. 양민들 일에다 어떻게 보면 사적인 일들이라 자세하게 조사는 하지 않고 있었지만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서 의심은 하고 있었는데 춘약이라면 딱 이유가 맞아떨어지네요.”

“아가씨, 춘약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데요.”

“맞아요. 유 대형 덕에 더 이상의 마약의 유입은 막았지만 아직도 이미 퍼진 마약 때문에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망치고 여러 성에서 큰 문제로 번지고 있어요. 그런데 춘약까지 번진다면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벌어질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래요, 제 짐작이 맞는다면 춘약도 마약과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거예요.”

하후란의 단정적인 말에 마효춘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춘약을 만들려면 상당히 많은 약재에다가 특히 환상초가 꼭 필요한데, 저희 하오문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그 많은 춘약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상한데요.”

“춘약이 왜관에서 들어왔다고 했어요. 다른 나라에서 조제되었다면 우리가 발견할 수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치요? 호호, 유 대형이 춘약에 관심이 많은지 곧장 왜관으로 향했다고 하는군요. 유 대형이 관심을 가졌다면 더 이상 무슨 조치가 필요하겠어요.”

“춘약이라니요?”

주소연은 자다 말고 갑작스런 팔지신타의 방문을 받고 보고를 듣다가는 춘약이라는 대목에서 놀란 목소리로 팔지신타에게 소리쳤다.

“예, 아무래도 아주 중요한 사안인 듯해서 무례를 무릅쓰고 이 밤에 깨웠습니다.”

“괜찮아요. 그래, 어느 정도까지 퍼졌다고 하던가요?”

“상당히 많은 양이 유입된 듯한데 찾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죠?”

“남자들이 춘약이라면 여간해서는 그냥 내놓지를 않습니다. 어딘가에 쌓여 있다면 모를까 이미 여러 사람의 손으로 들어갔다면 찾기는 이미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춘약이라면 말은 들어봤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약효인가요?”

“아무리 정숙한 여인이라 해도 춘약을 먹게 되면 창기하고 같아진다고 보셔도 됩니다.”

주소연은 팔지신타의 말을 듣자 얼굴이 굳어졌다.

“큰일이군요.”

“하후 소저의 전갈에 의하면 절강성과 호남성에서 근래에 상당히 많은 여인들이 자살을 하거나 평상시와는 다른 행동을 하다가 걸린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평상시와 다른 행동이라면……?”

“상대할 리도 없는 자들에게 돈을 건네준다거나 아니면 패물을 주었다가 남편에게 걸린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바로 춘약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건가요?”

“하후 소저는 그렇게 본 모양입니다.”

“당장 관부에 비상을 걸고 여인들과 관계된 모든 사건을 재조사함과 동시에 거기에 연루된 흑도인이나 무뢰배들을 모두 잡아들여서 춘약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라고 하세요. 그리고 각 성에 연락해 성을 드나드는 물품을 자세히 검문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물건이 있으면 무조건 압수해서 정밀 조사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춘약의 시작이 왜관인 것 같다고…….”

“왜관이요? 유성탄 이 자식, 아직도 왜관에 도착 안 했대요?”

그렇지 않아도 유성탄이 곧장 왜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빙빙 도는 통에 열이 받아 있던 주소연이 짜증스럽게 말하자 팔지신타가 급히 보고했다.

“지금 급히 왜관으로 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 춘약 건도 유성탄이 찾아낸 모양입니다.”

“그래요? 하여간에 운이 좋은 건지, 어떻게 하는 것마다 마음에 안 드는데 결과는 언제나 마음에 드는군요.”

밤을 새워 왜관에 도착한 유성탄은 먼저 객잔을 하나 잡아 방도들을 잠시 쉬게 해주었다. 그리고 한 시진 정도 쉬자마자 아침을 먹게 하고는 곧장 닦달을 해서는 모두 내보냈다. 왜관을 샅샅이 뒤져 춘약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히히히! 춘약을 왕창 찾아내서 숨겨놓고는 조금씩 먹어야지. 아마 오랫동안 먹으면 영원히 서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만 되면! 하루 백 번의 사나이에서 하루 천 번의 사나이로 바꿔야지.’

유성탄이 품속에 고이 모셔놓은 춘약을 손을 넣어 만지작대면서 혼자 야망에 찬 포부를 다짐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아니지! 이 자식들이 나 모르게 춘약을 조금씩 먹어치울지도 몰라. 살짝 쫓아가 봐야지. 누구든 슬쩍하는 놈들은 나한테 죽는 거야!”

저 같은 생각을 하며 유성탄도 밖으로 나갔다.

콰당탕!

“이 자식들이! 야, 애들 불러!”

마동파와 철패가 이끄는 십여 명의 유성방도들과 이십여 명의 왜관의 선창가를 장악한 사해파라는 흑도와 싸움이 붙었다. 이상하게 생긴 상자를 가지고 가는 것을 열어보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왜관의 선창가는 그 수입이 여간한 중소도시를 다 잡고 있는 것보다도 수입이 컸다. 당연히 흑도라고 해도 거의 사파의 중견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유성방도라는 말 한마디에 순순히 상자를 열어 보일 리 만무했다.

“이 자식들이 무서운 맛을 못 봤군.”

팔짱을 낀 채 싸움을 뒤에서 보고 있던 마동파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수십 명의 장한들을 보고는 철패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싸움은 처음부터 유성방이 우세했다. 비록 약하다고 해도 무림인에 속하는 낭인들 출신이었고 전부 다 상당한 용병 경험이 있었다. 거기다 오살에게 엄청난 괴롭힘을 당하며 수련을 한 보람이 있었는지 십여 명이서 이십여 명의 흑도들과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락을 받은 사해파의 패거리들이 몰려들자 더 이상 그들만으로는 싸움을 끌어가기 어려웠다.

“아이쿠!”

“으악!”

마동파가 끼어들자마자 칼집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두들기고 철패가 손에 잡히는 족족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치자 사방에서 곡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비록 오십여 명이나 되는 패거리들이 몰려왔지만 이제는 일류 고수들과도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마동파와 철패를 당할 수는 없었다.

“비켜라!”

으스스한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사해파의 흑도들이 급히 좌우로 물러서자 그 사이로 염소수염을 하고 눈이 쫙 찢어진 노인 하나가 곰방대를 손에 들고는 나타났다.

‘뭐야? 일개 선창가에서 기생하는 흑도 패거리에 웬 고수?’

낭인 시절에도 눈썰미가 좋아 상대의 강함을 눈치로 알아차리던 마동파였다. 그런데 이제 십 년 가까운 내공도 운용이 가능한 지금은 당장 상대가 자신보다 세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마동파가 손을 들자 유성방도들이 둘의 뒤에 가서 섰다.

“니들 모두 가서 당주님이나 부방주님 찾아서 빨리 모셔와라. 철패야, 싸움이 시작되면 무조건 합공이다.”

뒤에 선 방도들에게 급히 다른 유성방도들을 불러오라고 시킨 마동파는 철패에게 상대가 강적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주지시켰다.

“흠! 웬 놈들이관데 감히 사해파의 구역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냐?”

노인이 좌우에 쓰러진 자들을 훑어보다가는 모두 사해파 부하들만이 쓰러져 끙끙거리고 있자 보통 흑도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우선 누구인지부터 물었다.

“나는 유성방의 당주를 맡고 있는 마동파요.”

“유성방? 못 듣던 방파인데, 어느 구역에서 온 작자들이냐?”

“우리는 흑도패가 아니요. 유성방은 무림방이요.”

노인은 유성방이 흑도가 아닌 무림방파라는 말을 듣자 곰방대를 한번 빨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무림방파가 뭐 먹을 게 있다고 흑도패의 구역에 와서 행패를 부린단 말이냐?”

“행패를 부린 적 없소. 우리는 단지 저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오.”

노인은 마동파가 가리킨 상자를 흘깃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행패지 그럼 뭐가 행패냐? 너희 유성방은 니들 물건을 아무나 보자고 하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보여주냐?”

노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마동파가 유성탄과 다니며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누구도 우리 방의 물건은 볼 수 없소. 하지만 우리는 어느 방파의 것이든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소.”

“허! 그건 또 무슨 억지냐?”

“우리 대형보다는 무척 겸손한 억지요.”

철패는 마동파가 하는 말을 듣더니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마동파가 확실하게 유성탄의 특기를 터득했다고 느낀 것이다.

노인은 마동파가 너무 떳떳하게 큰소리를 치자 쉽게 손을 쓰지 못했다. 사해파에서는 셋째 가는 고수였고 실지로 무림인으로 행세해도 일류 고수 소리 정도를 들을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흑도파에 몸을 담고 있는 이유는 대가 세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우글거리는 무림에 뛰어들어 귀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는 흑도 패거리들 사이에서 큰소리치며 지내는 것이 그에게는 훨씬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우리 애들이 좀 다치기는 했지만 무림인이라니 우리로서도 더 이상 시비를 확대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 이대로 끝내자고 하면 나는 더 이상 싸움을 끌 생각이 없는데 어떠냐?”

“우리도 더 이상의 싸움은 원치 않소, 하지만 유성방은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해야 하는 방이오.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면 저 상자 속을 보여주어야 하오.”

노인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분명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데도 그가 양보했건만 마동파가 끝까지 버티자 살기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노부가 비록 뒷골목의 흑도에 몸담고는 있지만 강호의 예의는 좀 안다. 이 정도까지 양보했는데도 이렇게 나온다면 너희들이 오로지 시비를 걸기 위한 것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노인은 말을 끝내자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이십여 명이 넘는 죽립을 쓴 자들이 손에 도를 들고는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으악! 좆 됐다. 대형이 없을 때는 좀 살살 하는 건데. 그렇다고 사내대장부가 이 정도에 기가 죽을 수도 없고.’

마동파나 철패나 그들의 기척을 전혀 감지 못했었다. 그것은 나타난 자들이 최소한 그들과 동급이거나 강하다는 말이 될 수 있었다.

“동파 형님.”

“왜?”

“어찌하시겠소?”

“뭘?”

“대형 말마따나 죽을 걸 뻔히 알면서 싸운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놈들 짓이 아니겠소?”

“그래서? 도망가자고? …튀어!”

마동파는 철패의 말에 대꾸를 하다가는 그대로 뒤로 내빼면서 소리쳤다.

“이런! 동파 형님! 혼자 먼저 내빼면…….”

말은 자기가 먼저 꺼냈는데 마동파가 언질도 안 주고 갑자기 먼저 튀자 언제나 반응이 느린 철패는 즉시 따르지를 못했다. 그리고 죽립을 쓴 자들의 포위에 갇혀버렸다.

“으야압!”

포위망에 갇힌 철패가 도를 꺼내 들고는 좌우를 살피는데 갑자기 기합 소리와 함께 포위망이 뚫리더니 마동파가 검을 들고는 뛰어들더니 철패의 등에 자신의 등을 대고는 섰다.

“혼자 도망친 줄 알고 정말 의리 없다 그랬는데 뭐 하러 다시 들어왔소?”

“미련한 아우를 둔 덕에 오래 살기는 어려울 줄 알았지만 이렇게 골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그걸 못 도망치냐?”

“형님도 그렇소, 이왕 도망쳤으면 확실하게 도망쳐야지 다시 돌아오는 건 뭐요?”

“대형 말씀 못 들었냐? 네놈이 밤마다 나타나서 내 목숨 돌리도, 그러면 무서워서 평생 어떻게 살겠냐? 아예 나도 죽어서 같이 귀신으로 사는 게 낫지.”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죽립인들은 마치 강시라도 된 듯이 한마디도 없이 도를 들어올렸다.

“하나같이 고수다. 조심해라!”

“형님이나 조심하쇼, 나야 그래도 대여섯 번은 맞아도 끄떡없지만 형님은 한 방반 맞아도 갈 거요.”

“대형! 아우들이 먼저 갑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꼴값을 해요, 꼴값을. 에이! 도대체 나만 없으면 사방에서 터지고만 다니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아우들이 춘약을 삥땅칠까 봐 나와놓고는 마치 아우들 걱정이 돼서 나온 것처럼 말하는 유성탄의 말소리가 들려오자 마동파와 철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놈들, 이제 죽었어. 저분이 바로 유성방의 방주님이시다!”

마동파가 기승이 났는지 크게 소리치자 노인이 소리 난 쪽을 쳐다보다가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마동파와 철패를 둘러싸고 있던 죽립인들이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뭐야? 자식들이 키는 작달막한데 되게 빠르네.’

포쾌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방망이를 건들거리며 나타난 유성탄은 좌우를 둘러보더니 몽둥이를 어깨에 걸치며 소리쳤다.

“네놈들 죄는 니들이 알렷다! 만약 모른다면 반역에 준하는 죄로 다스릴 것이다.”

유성탄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던 노인의 안색이 점점 변했다.

“알건 모르건 반역에 준하는 죄입니다. 감히 낭인칠웅을 협박했으니까요.”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장우왕과 황대산이 방도들과 함께 나타났다. 급히 달려왔는지 코에서 김까지 뿜고 있었다.

“흑도패에 왜국의 무사들이 있다니 확실히 수상하군요.”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강태웅과 표도행까지 나타나자 노인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현 무림에서 흑도패들에게 가장 무서운 자를 말하라고 하면 누구나 다 포천망쾌라고 할 정도로 유성탄의 악명은 멀리 퍼져 있었다. 거기다 낭인칠웅이라면 오대사파 중 하나인 마룡방의 무력집단을 둘이나 전멸시킨 것으로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이미 이 바닥에서 이십 년 이상을 굴러먹은 노인으로서는 유성탄의 모습과 낭인칠웅이란 이름을 듣자마자 당장 상황이 최악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하하! 소인이 포천망쾌 나리가 납신 줄도 모르고 결례가 많았습니다. 이분들이 나리의 아우님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감히 제가 어찌 이런 무례를 저질렀겠습니까. 이번 일은 모두 저희 사해파에서 고인들을 보는 눈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니 이렇게 깊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재빨리 유성탄을 향해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굽히며 아첨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흠! 흑도 망나니 중에도 예의를 아는 놈이 있긴 있구나. 좋다. 죄를 자복하니 저지른 죄에 대해서만 내가 죄를 묻겠다.”

‘자복? 무슨 자복을 했다는 거야? 그냥 사과인데…….’

“죄를 물으신다니요? 그냥 우연히 생긴 가벼운 시비였을 뿐인데요.”

“에이 씨! 왜 이렇게 가려워!”

그는 손을 모자 안으로 넣어 머리를 박박 긁더니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랑 시시비비를 가리자, 이 말이렷다?”

“아니, 그, 그게 아니고… 아이고!”

제법 상당한 고수라고 자부하던 노인은 머리를 긁는 걸 봤는데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가선 유성탄의 말에 위험을 느끼고 급히 변명을 하며 뒤로 빠지려고 했지만 이미 머리에 떨어진 방망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노인의 뒤에 서 있던 죽립인들이 그대로 유성탄을 향해 도를 날렸다.

“니들은 우리가 상대해 주마.”

“일대일이라면 나도 겁날 게 없지.”

하지만 죽립인들의 도는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낭인칠웅의 아우들에게 막혀버렸다.

“니들은 저 상자 열어봐. 죽어라 하고 안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은 뭔가 구린 게 있는 거야.”

머리를 감싸고 자빠져 있는 노인의 앞에 쪼그리고 앉은 유성탄이 뒤에 서 있는 방도들에게 말하고는 노인의 머리를 잡아올렸다.

“쟤들 왜놈들이지? 속일 생각 마라. 난 똑똑해서 탁 보면 안다.”

“맞습니다.”

“왜놈들이 왜 너를 따라다니냐?”

“요즘 왜관의 흑도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신변보호 차원에서 호위용병을 데리고 다는 것입니다.”

“그래? 진짜 세상 좋아졌네! 멀쩡한 상인들 보호해 준다고 돈이나 갈취하는 놈들이 자신들은 따로 호위용병을 데리고 다닌다 이 말이지?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왜 하필이면 용병으로 왜놈을 쓴 거냐?”

“여기가 왜관입니다. 왜인이 구하기가 더 쉬워서… 아이고!”

노인은 유성탄의 주먹에 한 대 더 맞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미 포천망쾌에게 맞느니 죽는 게 낫다는 말이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직접 맞아보니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그였다.

“자식이, 누구를 핫바지로 보나! 야! 저놈들 실력이 일개 용병 실력이 아닌데 그런 거짓말이 내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너 진짜 실수한 거야. 내가 겸손해서 말은 잘 안 하지만 뭐든 상황을 딱 보기만 하면 모든 진실을 다 알아낸다고 해서 사람들이 나보고 제갈공명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하는 판이다.”

“니들은 덩치만 커가지고 저렇게 조그만 놈들한테 그렇게 쩔쩔매냐?”

“그래도 어쨌든 이겼지 않습니까?”

“그게 이긴 거냐? 저놈들이 그냥 후퇴한 거지.”

“그래,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이미 유성탄에게 너무 맞아 완전히 뻗어 있는 노인을 흘깃 쳐다본 강태웅이 물었다.

“저 상자 안에 춘약이 있는 게 맞더라.”

“그렇죠? 내가 탁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동파, 정말 너 어떻게 안 거냐?”

“제가 이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보다 보니까 이상하게 암캐들이 저 상자를 자꾸 따라가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왜 수캐가 아닌 암캐들이 저 상자를 쫓아갈까? 그리고 그래, 춘약밖에 없다, 하고 직감한 겁니다.”

“완전 운이었구먼.”

유성탄이 장황한 마동파의 말을 듣더니 한마디 한다.

“호법들이 잘 쫓아갔겠지요?”

“아까 그놈들 실력으로는 오살의 추적을 눈치 못 챈다.”

유성탄은 말을 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이제 내가 세상에서 춘약을 제일 많이 가진 사나이가 되는 거야. 이 세상 남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남자가 되는 거지. 우하하하!’

“대형!”

“왜?”

“그런데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십니까? 우리도 같이 좋으면 안 될까요?”

“안 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