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꼬질꼬질한 말티즈처럼 귀여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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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꼬질꼬질한 말티즈처럼 귀여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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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꼬질꼬질한 말티즈처럼 귀여운 아이
2023.04.21.
자려는 것 같던 시엔이 뒷골목으로 간다 하니, 시녀들과 성기사, 그 꼬맹이도 따라붙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티어스의 명을 받은 패트와 매트 역시 시엔의 뒤꽁무니에 몰래 따라붙었다.
그냥 뒷골목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시엔은 제법 구체적으로 골목을 지명했다.
앤트 거리, 피네아 거리, 샬롯 거리. 이렇게 세 곳.
특이점이 있다면 세 군데 모두 집시들의 집성촌으로, 그들이 판을 치는 장소라는 점이었다.
‘워낙 뒷골목에는 집시들이 판을 치니……. 우연이겠지.’
악당의 촉이 가슴에 싸하게 내리꽂혔지만, 아무리 봐도 시엔은 귀여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꼬마의 순박한 표정에 테드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굳이 왜 수도의 더러운 거리에 가시려 하세요, 시엔 님? 치안이 좋지 않습니다.”
패트와 매트는 뻣뻣하게 구는 성기사 녀석을 불편하게 바라보았다.
충성의 ‘충’자도 못 배운 듯했다.
지금 패트와 매트는 마티어스 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아이의 뒤에서 보모 노릇을 하고 있거늘. 고작 집시들의 뒷골목에도 못 가는 충심이라니.
만약 시엔 미르모드가 악독해졌다면, 테드는 지금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러나 악당들의 기대 아닌 기대와는 다르게, 시엔은 토실토실한 볼을 괴며 시크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움, 구냥.”
“그곳은 집시들이 많아서…… 위험합니다.”
“갠차나. 테드랑 애시드가 지켜 주니까!”
배시시 웃는 표정에는 한 점의 불신이나 부정적인 부분이 없었다. 그 순수한 미소를 보면 누구나 넘어갈 법했다.
실제로 애시드라는 소년과 성기사는 이미 시엔에게 넘어간 지 오래인 듯, 뿌듯한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그러면, 가, 가요!”
……특히 저 애시드라는 꼬마는 거의 귀신에게 홀린 수준으로 충성도를 보여 주었다.
패트와 매트는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귀엽긴 해.’
‘그렇지만 저들과 우리는 다르지. 어린이의 애교 따위엔 넘어가지 않아.’
시엔이 굳이 집시들의 세상에 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마티어스 님의 명령인, ‘혹시 시엔을 악에 물들게 한 놈이 있다면 잡아 와’라는 것과 이어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순간 패트와 매트의 머릿속에 섬광 같은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저분을 악에 물들게 한 건, 어쩌면 집시 놈들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더러운 집시 놈들’이라 매도하지만, 적어도 패트와 매트는 알고 있었다. 집시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홀릴 만한 야바위를 보여 주는 경우도 많겠지.
사실 평범한 골목대장 꼬맹이들조차 집시촌에 들어갈 생각은 못 한다.
‘어쨌든 가만히 내버려두라 하셨지.’
그들은 마티어스의 명을 충실히 따르며, 시엔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 집시촌으로 향했다.
***
나는 악셀 미르모드를 위협하기 위해 신성력을 지닌 성기사를 주웠다.
이 신성력으로는 악셀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사람이 가장 공격을 받는 부분은 심리적인 요소다. 원작 속 멜로디아는 그 부분을 효과적으로 공격해 악셀을 패배하게 만들었다.
그의 심리를 확실히 파악해서 우위를 점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주술사였다.
‘악셀을 홀릴 수 있도록, 말도 잘하고 나한테 충성하는 집시를 구해야 하는데.’
푹 자고 하루 종일 놀면서 생각해 보니 솔잎을 먹었던 날, 자꾸 졸려서 떠올리지 못했던 원작 정보가 떠올랐다.
멜로디아가 처음 찾은 주술사는 제국의 집시촌에 있었다.
그 주술사는 ‘진짜’ 영험하고, ‘진짜’ 대단해서 사람의 심리를 그린 듯이 읽는다고들 했다.
그렇게 선량한 멜로디아임에도, 주술사는 그녀를 문전박대했다. 그녀는 주술사를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겨우 주술사를 동방에서 구해 오게 되는 것이었다.
멜로디아는 집시 주술사를 구해 오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집시 주술사를 구한다면 악셀을 다룰 때에 조금 더 이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섯 살밖에 안 돼서 동대륙으로는 못 가. 멜로디아가 이미 실패했던 루트를 따라가되 성공을 해야 해.’
멜로디아가 세 번이나 찾아가는 만큼, 소설 속에는 그 주술사의 출몰지나 외모에 대한 간략한 묘사가 있었다.
집시들의 집성촌에 사는 집시.
입술 옆에 까만 점이 있거나 없고, 머리칼은 갈색인 사람.
나이는 대략 10세에서 50세 사이.
말투가 다소 거칠고 솔직한 사람.
성별도 어떤지 모르고.
매우 간략한 내용이었다.
‘대체 입술 옆에 까만 점이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있거나 없고는 또 무슨 소리야? 나이가 10살에서 50살 사이면 거의 전연령이잖아!’
이 힌트로 주술사를 찾는 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내 밑에 딸린 식구들을 생각하며 다시 의지를 다졌다.
‘가난한 집의 가장이 된 기분이야…….’
그래도 그 생각을 하니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단호하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악셀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주술과 징크스에 미친 악셀 미르모드를 잡기 위해서는, 직접 주술에 대해 연구해 봐야 해.’
눈앞에 보육원이 보였다.
집시들을 전담으로 보육하는 곳인 듯했다.
‘그래, 저곳부터 뒤져 보자!’
나는 보육원의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안녕하세여! 저 길을 조금 물-.”
“세상에…….”
보육원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내가 당황해서 고개를 갸웃했을 때였다.
“이렇게 꼬질꼬질한 아기는 난생처음이야!”
“우, 우웅……?”
시녀들이 집시촌에 간다니까 일부러 꼬질꼬질하게 입혀 주기는 했는데……. 나는 손자국에 더럽혀진 내복과 얼룩덜룩한 외투를 내려다보며 시무룩하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나, 눈물 자국 생긴 말티즈 같군. 버려졌겠지, 이리 와!”
나는 이 집시 할머니에게 바보 같은 꼬질이로 오해받고 말았다.
게다가 조그만 몸을 덥석 들려서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나는 재빨리 테드와 애시드를 향해 괜찮다고 눈짓한 뒤 위엄 없게 덜렁 들려 나가는 채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래도 보육원 안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야겠다.
***
“그러니까……. 사람을 하나 찾고 있다고요.”
급하게 뒤에서 따라붙어 준 테드와 애시드, 근육 시녀 언니들 덕분에 내가 꼬질꼬질 말티즈라는 오해는 푼 것 같은데.
이 보육원장님…… 나를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 일단……. 킁! 해야지요.”
“크으응!”
그래도 이 보육원장님은 짬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무릎에 앉히더니 콧물도 풀게 해 주고 세수도 시켜 주었다. 아무리 봐도 보육의 프로였다.
나는 그녀의 손길 아래에서 정말 말티즈처럼 꾸벅꾸벅 졸 뻔하다 정신을 차렸다.
내가 평범한 다섯 살이라면 그렇게 졸다 지쳐 잠들었겠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평범한 다섯이 아니었다.
“우웅…….”
“찾는다는 사람이 집시?”
“녜. 움…… 점을 보고 시퍼서요. 중요한 일이 이써.”
원작 속 멜로디아가 댔던 핑계를 나도 똑같이 댔다.
“점이라…….”
보육원 원장은 한껏 다정했던 표정을 무뚝뚝하게 굳히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눈가가 발간 아줌마 같지 않고, 신묘해 보였다.
“그래요, 옛사람들은, 집시들이 예언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고들 하지요.”
이 원장님, 벌써 영험해 보인다.
나는 그녀를 신뢰감 넘치는 시선으로 응시하면서 눈을 깜빡거렸다.
“예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사실 흔치 않아요. 아니, 거의 없죠.”
“…….”
“찾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집시가 직접 ‘찾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 정말로 찾기 어려운 것일 터.
“그래도 힌트가 이, 이따면…….”
꼬질꼬질 말티즈처럼 불쌍해 보이도록 눈동자를 반짝였다.
과연 보육원장이 내 얼굴에 남은 그을음을 닦아 주면서 힌트를 남겨 주었다.
“그래요…… 흐음, 그들 역시 평범한 집시이니, 집시들이 모이는 곳에 있을 겁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집시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
골목에서 집시들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는 것보다는, 보육원 안에서 수소문하는 게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꼬질꼬질 말티즈처럼 쓰다듬는 보육원장님을 향해, 보육원에 왔으니 봉사 활동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도 원래 뒷골목 대장 출신이니까 아이들과 놀아 주고 싶다고!
보육원장님은 내 토실한 볼에 묻은 꼬질꼬질한 까만 이물질을 쓰윽 닦아 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시들이 뭘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집시에 대해서 최대한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보려 했다. 물론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서!
‘봉사를 해 주신다면, 우리 말티즈…… 아니, 아기는 아이들과 놀아 주는 봉사, 여기 기사님은 바깥에서 풀 깎기, 시녀분들은 교구를 날라 주세요.’
보육원장님의 훌륭한 분배에 따라 우리는 조각조각 흩어지게 되었다.
테드가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고 하니 근육이 넘치는 데드리 언니가 나섰다.
‘일손이 생겨 좋네요.’
나는 보육원장의 뿌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알려 준 보육원 201호실로 향했다.
보육원은 2층짜리였고, 201호실에는 10세에서 15세까지의 아이들이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육원장님은, 201호실에서 무엇을 보더라도 너무 놀라지는 말라고 덧붙였다. 집시 아이들은 원래 과격하다며.
나는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데드리 언니와 함께 토도독 달렸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나는 까르르 웃으며 201호실로 들어서려 했다.
집시 아이들이라면 내 말을 잘 들어 주…….
“야, 내 말이 우스워?”
우뚝.
나는 문을 차마 열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응? 우습냐고 묻잖아.”
그런데 201호실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우당탕 소리와 함께 싸우는 소리가 났다.
보육원 내부의 분위기가 이상했던 것이다.
“아기님? 왜-.”
“쉿. 저리 가 이써.”
나는 데드리 언니에게 주의를 준 뒤, 그녀를 문가에서 밀어냈다. 내 조그만 손에 언니는 쉽게 밀려났다.
그녀가 조금 멀리 떨어진 것을 본 나는 조심스럽게 틈 사이로 빼꼼히 눈을 들이밀었다. 201호실 안에는 대략 7명 정도 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들은 중앙에 있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아이를 집단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다시 말해 봐, 응?”
“…….”
“아, 그 뚫린 입으로 다시 말해 보라고.”
건달마냥 건들건들한 목소리였다. 주먹까지 위협적으로 쥐고 있었다.
“대, 대장. 참아요. 원장님 오실 수도-.”
“아, X발. 싫다니까. 저 X끼가 죽든, 내가 뒤지든 오늘 끝을 봐야겠다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대장이라 불린 소년이 발끝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저 자세, 날아 차기 직전이다!’
‘대장’이라 불린 소년의 발은 벌써 발차기 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나는 뾰족한 대장의 발을 응시하다가 참지 못하고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중에 듣는 귀가 밝은 집시 아이가 나를 보았다.
“대, 대장. 저기 바깥에 웬 여자애가 있는데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중앙에 있어서 두들겨 맞을 뻔한 아이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당당하게 주먹을 움켜쥐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폭력은 납빠!”
대장으로 보이는, 건들건들한 소년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 솜털 같은 계집애는 뭐야?”
청색의 머리칼에 금색 눈동자.
진한 푸른빛의 눈썹엔 벌써 스크래치에, 뺨에는 흉이 져 있었다.
누가 봐도 깡패 같은 몰골.
그렇지만 그 모습마저도 몽환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야, 네 일 아니면 꺼져.”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 녀석의 말본새를 고쳐 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 등 뒤에서 몹시 분개한 듯한 음험한 목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니 지금 시방…….”
산처럼 커다란 데드리 언니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아주 음산한 표정으로, 프트 지방 사투리까지 쓰며 이를 으드득 갈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채로, 데드리 언니가 관절을 우두둑, 꺾으며 말했다.
“울 아그님헌티 뭐라고 혔냐?”
뚜둑, 뚜둑.
관절 꺾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