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44/51)


#44.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
2023.08.01.



 
어둡다.


‘여긴 또 어디야.’

시야가 차단되었다. 아래로는 모든 게 검다.


‘화산지대인가?’

땅은 산화되어 붉게 물들고, 그 위로 노란 불꽃을 피웠다.

불꽃 알갱이들이 유황천을 떠돌고, 유독가스가 곳곳에서 올랐다.

썩은 사체가 바닥에 뒤엉켜 나뒹굴었다.

마물들 사체가 썩어서 바닥에 널브러졌고, 놈들 뼈마디들이 녹아서 흉물스러웠다.

땅 곳곳에는 깃발이 꽂혔고, 유황천에 녹슨 갑옷과 투구가 덩그러니 놓였다.


“마물인가?”

마물들 사체였다. 뼈가 깊숙하게 파묻혔고, 마물의 사체도 다른 마물들보다 크고 괴이했다.

마물 머리뼈에는 뿔이 돋았고, 갈비뼈로 보이는 것들이 땅바닥에 박혔다.

뼈로 된 무덤이었다.

‘그륵그륵’

아무것도 없다.

온통 검은 것들뿐이었다. 형체도 없다.

그저 존재할 뿐.

샤를로프는 무덤 사이를 지났다.

그 곁으로…….

무형의 압박감이 샤를을 덮치듯 꺾어 눌렀다.


“허억!”

폐부에 물이 찬 듯 속이 답답했다. 시야가 엎치락뒤치락 뒤집혔다.

숨이 턱턱 막혔다.

손톱으로 목덜미를 긁자 살갗이 그대로 뜯겼다.

뜯긴 살갗이 너덜거렸고, 목에는 핏줄이 퍼렇게 돋았다.


“혀 깨물지 마.”

낮은 목소리가 샤를을 깨웠다.

샤를로프는 입안에 이물질을 느꼈다. 혀에 뭉툭한 손끝이 닿았다.


“힘 풀고.”

호흡이 파르르 떨렸다. 낯빛이 창백하게 질려 뺨 한쪽이 경련했다.

제 두 팔은 목을 조르고, 그의 손가락을 깨물며 입안을 우물거렸다.


“샤를. 팔에 힘 풀어. 목 조르지 말고.”

하아, 샤를로프는 얕은 한숨을 터트렸다.


“좀 진정됐군.”

“…….”

“괜찮나?”

그가 샤를의 손목을 붙들어 똑바로 눕혔다.


“팔 내리고 힘 빼.”

시야가 한 번 더 뒤집혔다.

샤를로프는 천장을 보며 똑바로 누웠다. 쌕쌕대는 숨이 가냘프게 떨렸다.


“그만 깨물어.”

입안의 이물감에 이빨로 잘근잘근 깨무는데, 그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아, 아직도 씹고 있었구나.


“혀를 깨물어서 급한 대로 손부터 넣었어.”

벤하민이 이빨에 긁힌 손을 빼냈다.


“……뭐예요?”

“호흡부터 골라. 목이 뻣뻣하게 굳었어.”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돈다.

혀를 진짜 깨문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이빨에 긁혀 상흔이 붉게 파였다.


“당신 집무실에 계시던 거 아니었어요?”

숨이 가파르게 떨렸다. 기도가 좁아진 듯 꽉 막혔다.

피부가 하얗게 질렸다. 호흡이 막혀 파리하게 질렸던 낯이 혈색을 잃었다.


“……왜 여기 있어요?”

“타란국 사절단이 다녀가고, 낮잠을 좀 오래 자는 것 같아서 깨우려던 참이었어.”

횡설수설하던 샤를로프는 아차 싶었다.


‘신년제가 끝났구나.’

타란국 사절단이 모두 떠났다. 지금이면 포퓨타 항구를 이미 떠났을 때였다.

일정이 모두 끝났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이 맥없이 꺾였다.

몸이 이불에 또다시 파묻혔다. 긴 머리칼이 거미줄처럼 엉겼다.


“황궁의를 부를 테니 기다려.”

“……숨 쉬는 게 답답해요.”

사절단을 보내놓고, 숨이 계속 무거웠다.

이 기분은 어제도 느꼈다. 온몸이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듯 끊겨 나오던 기분 말이다.


“무덤을 봤어요.”

뼈와 사체들이 쌓인 곳이었다. 썩은 뼛조각들이 잿더미 속에 파묻혔고, 그곳 전체가 무덤 같았다.


“그건 네가 보면 안 되는데 이상하군.”

그의 답은 모호했다.

마치, 네가 그걸 왜 보느냐고 되묻는 듯한 어감이었다.


“마물들 무덤을 봤구나.”

“……어떤 무덤이요?”

“마물 경계구역이 활동기에 접어들면, 기감이 예민한 이들이 그걸 느끼며 먼저 깨닫기 시작해. 경계구역 틈에 가깝고, 틈이 열리면 무의식적으로 그곳에 닿는데, 마물과 오래도록 싸워온 이들이었지.”

그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당신 표정이 왜 그래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내저었다.

* * *



“아주 단단히도 긁어놓으셨군요. 흉터약을 발라놓았으니, 약을 손으로 만지진 마십시오. 그냥 손만 조심해 주십시오.”

아론이 샤를의 목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오늘은 바깥출입을 조심하십시오. 목은 급소입니다. 목에 상흔이 있다는 건 바깥에 보여선 안 됩니다.”

“그 밖의 부분은?”

“……그건, 독대를 청해야겠습니다. 허해주시겠습니까?”

벤하민이 침대에 기대앉은 샤를로프에게 이야기했다.


“잠시만 혼자 있어. 시녀장을 불러줄까?”

“아무렇지 않아요. 그냥 다녀오셔요.”

벤하민이 아론을 이끌고 떠났다.

침실 문이 닫히고, 벤하민은 문을 등진 그대로 아론을 돌아봤다. 아론이 목을 꾸벅 숙이며 납작하게 낮췄다.


“황궁실록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폐하께서 마물의 무덤을 엿본 게 맞습니다. 대비해 두십시오. 곧 활동기가 시작됩니다.”

마물의 활동기가 시작되면, 놈들은 한 층 더 포악해지고 거칠어진다.


“긴 토벌이 시작되겠군.”

“황실도 막 안정을 되찾는데, 시기가 안 좋습니다.”

“이 무렵이라고 예상은 하던 부분이었다. 다만, 이번 활동기는 조금 달라. 놈들이 땅 밑을 긁는데, 땅 위에 있어선 안 될 것들이 기어다니는 기분이군.”

그간 황실은 마물 토벌단을 꾸려 마물의 개체수를 줄여왔다.

용병단과 황궁 직속기사단을 파견해 마물 피해를 최소화했고, 토벌체계를 잡아 마물 정벌을 도왔다.


“저는 마물의 무덤 또한 우려됩니다.”

마물과 접점도 없던 분께서 마물의 무덤을 엿봤다.


“……좋은 의미로는 해석되지 않는군요.”

“그녀는 어떤가?”

“일단 기운이 불안정합니다. 몸이 닿아선 안 될 것과 닿았음을 깨닫고, 스스로 몸을 보호한 것 같습니다.”

“어렵군.”

“……황후께서 닿아선 안 될 곳에 닿았습니다.”

아론은 샤를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봐왔고, 지금도 그 시절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어려서부터 아슬아슬하게 삶을 이어가는군요.”

“그런가?”

“경계구역은 고대 마물들의 무덤이자, 고대협약의 흔적과도 같고, 보통 사람들은 무덤에 닿지도 못합니다.”

아론은 조심히 덧붙였다.


“죽음에 닿았던 이들만 겨우겨우 닿죠.”

죽음을 겪었던 이들.

마물 때문에 사선을 넘었던 이들.


“과거 용병들이었죠. 삶의 일생을 마물과 같이 지냈으며, 죽음 또한 마물과 함께하던 이들 말입니다.”

“그들 말로가 어땠던가?”

“일찍 생을 마감했지요.”

마물과 싸워오던 이들이었다.

삿된 놈들과 삶을 지내온 이들은 삶의 끝자락 또한 놈들과 함께했다.


“그들은 죽음에 가장 가까웠고, 그 죽음조차 불운했습니다. 또한, 저들의 말로를 잘 기억하는 이들도 없습니다.”

“이 부분은 함구해라. 바깥에 이야기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유의하고.”

그 뒤, 둘은 짤막한 대화를 더 나눴다. 대략 이런 부분을 조심하라는 이야기였다.


“또……. 아닙니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나?”

“이 부분은 연관이 없을 겁니다.”

“듣고 생각하지.”

“과거 황후께서 루퍼틱 병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루퍼틱이라면, 자신이 아는 그 병이 맞는지 벤하민이 되물었다.


“남대륙 광부들이 걸렸던 풍토병 말인가?”

“으음……. 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인데 잘 아시는군요.”

“일단 듣지.”

“루퍼틱 병은 근육이 서서히 굳고, 종국에는 폐가 굳어 죽는 병입니다. 이유는 ‘루퍼틱’이라고 알려진 광물의 유해성 때문이었지요.”

해당 광물 때문에 옛적에 광부들을 수백씩 죽어 나갔다.

남대륙 광부들이 자주 걸렸고,

광물을 공정하던 대장장이들도 여럿 죽었다.


“과거 이 병에 대해 아느냐고, 황후 폐하께서 제게 하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상하지요? 광부들이 겪던 병이잖습니까? 제국 중앙귀족이었던 분께서 관심 두기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었지요.”

아론은 힘겹게 덧붙였다.


“이 말이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야기해.”

“체념한 이의 눈빛이었죠.”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그 눈짓 말이다.


‘이 이야기는 함구하는 게 좋겠군.’

감정의 무게가 달랐다. 그 무게가 친모의 죽음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


“꼭 무언가를 놓친 것 같았습니다. 손아귀에 쥔 모래알이 흩어지듯, 허망함 마저 느껴집니다.”

이 허망함은 아련하면서도 깊다.

그는 거기서 울분을 읽었다. 뼛속 깊숙하게 숨겨놓았던 울분은 짙고 아득했다.


“아직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폐하께서도 알아두셔야 하지 싶어서요.”

아론은 몸을 꾸벅 숙였다.


“오늘은 물러가 봐.”

벤하민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밟힌다. 뒤에 무언가를 남겨놓았는데, 그게 뭔지 구체화되지 않는다.

그는 목을 더듬거렸다. 목덜미 근육이 팽창하며 빳빳하게 섰다.


“그럼,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 * *

아론이 다녀갔다.


“음, 뭔가 좋지 않구나.”

따로 독대를 요청하는 게 그랬다.

마물들 무덤이라……. 이건 전생에도 겪은 적 없던 일이었다.


‘전생과 너무 달라졌어.’

이젠 되짚을 때였다.

톡톡. 샤를로프는 협탁을 손끝으로 두들겼다.


‘혼약으로 묶일 시기였나?’

지금이면 샤를로프도 혼약을 맺고 결혼매물로 묶일 시기였다.

내 삶이 바닥에 닿던 그 날, 온전히 망가진 삶이 몰아닥쳤다.

루퍼틱 병은 그런 삶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바깥일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으며, 집에 갇혀 지냈고, 샤를로프는 삶이 제한적이었다.


‘아무도 없었구나.’

저택에 내 사람은 없고,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다.

내 자신을 처신하기도 급급했다.

똑똑.

그 무렵, 벤하민이 돌아왔다.


“아론과 대화는 끝났어요?”

“막 끝냈지.”

“오래 걸렸네요.”

“예정보다 조금 길어졌어.”

짤막한 대화가 이어졌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서로의 내면을 꿰뚫고, 샅샅이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몇 가지만 사실확인 차원에 묻지. 답이 힘들다면 예, 아니요로만 답해도 돼. 대신, 거짓말은 섞지 마.”

“……네.”

“어릴 적 마물에게 다친 적 있나?”

짙은 시선이 샤를로프에게 향했다.

샤를로프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나는 튜텨가의 외동딸이었어요. 어릴 적에도 튜텨가 저택에서만 지냈고, 마물과 마주칠 일도 없었죠.”

“……그럼, 마물의 무덤을 엿본 적은?”

“아니요. 처음이었어요.”

“확실한가?”

“마물과 접할 환경은 아니었어요.”

이 부분이 가장 의아했다.

전생에는 겪은 적 없던 일이었다.


“어릴 적 병으로 아팠던 적은?”

“없어요.”

“……없나?”

“네. 아론에게 확인해도 좋아요.”

거짓은 아니다. 적어도, 어릴 적에는 말이다.

또한, 전생의 죽음은 이젠 없던 일이 됐다.


“나는 거짓으로 내 자신을 속인 적 없어요.”

“내 눈에도 보이는군. 너는 덤덤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는데, 나는 왜 계속 그런 너를 놓칠 것만 같을까, 샤를?”

둘의 시선이 사선으로 비스듬히 엇갈렸다.

그는 그런 샤를을 빤히 내려다봤다.


“내 눈을 피하지 마.”

벤하민이 엇갈린 시선을 오롯이 자신에게 고정했다.


“계속 피한다면 네가 내게 뭔가를 숨긴다는 듯 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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